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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다녀와.

12월말 오랜만에 걸려온 친구의 부재중 전화가 있어 통화를 했었다.

몇개월 만에 대뜸 한다는 소리가 "나 1월말에 프랑스로 유학가."였다.

 

7년이나 지낸 친구로 원래 성실한 타입인데다가 공부에서 그림으로 급전환하고서도 서울의 좋은 4년제를 포기하고 전문대 애니메이션과에 입학해서 3년이라는 시간을 꾸준히 실력을 늘려온 아이. 하루종일 12시간을 야근을 밥 먹듯 해가면서 돈도 거의 받지 않고 선배들 졸업작품에다, 교수님 디자인회사를 돕는데다 자기 작품을 만드는 터라 몇 달만에 한번씩 보면 삐쩍삐쩍 마르고 해골처럼 변하면서도 힘들다는 소리 한번 안 하는 친구.

 

캐릭터업계가 자리를 잡아가고 상품화되고 있는 반면에 애니메이션은 노가다에다 저임금이며 여성애니메이션 작업자가 되기는 힘들기에 진로를 놓고 고민한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애니메이션으로 유학을 떠나기로 결정했다고 하니 반갑기도 하고 친구답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하고 복잡하다. 그래도 담당 교수님의 캐릭터회사에 취직을 마다하고 다시 공부하러 떠난다니 기쁘다.

 

일때문에 1월이되서야 친구를 만났고, 9개월정도는 프랑스어를 공부하고 이후에는 대학에 들어가 애니메이션공부를 계속하겠다는 것과 4,5년 후에나 돌아올 수 있으며 일이 잘 풀리면 현지나 외국에서 작업을 하고 싶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집안이 그닥 좋은 형편은 아니기에 거기 가서도 또 지금처럼 고생할 친구를 생각하니 선물이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보고싶다고 해서 빌려준 '페미니즘의 도전'을 선물로 가지라고 했고, 가방이나 여권케이스를 만들어주마하고 헤어졌다.

 

맘먹고 쉬는 날 눈맞으며 동대문가서 융천을 떼왔다.

대안생리대도 더 만들고 친구에게도 이것저것 만들어서 보내야지 했었는데 일한답시고 뜸들이는 사이 친구가 바빠서 서울로 오지 못하고 바로 프랑스로 떠난다는 연락을 받았다.

 

울컥.

보고싶었다. 한번이라도 더.

 

프랑스가 일본처럼 가까운 데라 맘 먹으면 갈수 있는 곳도 아니고 더군다나 요 몇년 내에 학생신분을 졸업할 생각이 아니니 돈을 모아 여행을 갈 수 있는 곳도 아니고 너도 돈이 많아 1년에 한번씩이라도 들어올 처지가 아닌 걸 생각하니 아쉽다.

아쉬워서 눈물난다.

너도나도 꿈을 버리고 공무원준비생 대열에 합류하는 친구들 속에서 꿈을 향해 나가는 너를 보내자니 기뻐서 또 눈물이 난다.  

 

가서도 서울에 혼자 올라와 고생했던 것처럼 고생하겠지

그리고 또 몇 년을 그랬던 것처럼 그걸 삭히고 삭혀서 작업하겠지.

 

잘 다녀와.

명박이 집권할 때 가서 좋겠다. 나도 니 가방에 데려가라 깔깔깔. 그러게나 말이야. 5년후에나 돌아오겠지. 우리 언제보냐 또. 우리 다시 만나면 몇살이냐. 나 그때도 백수면 조수로 써줘 히히. 그래 미술배우고 싶다며.공부하면 생각해보께.

너 프랑스어스터디 가야되고 내가 그 전에 친구 만나는 거랑 겹쳐서 우리 세시간도 얘기 못 했구나. 아쉽다. 이렇게 바로 가버릴 줄 몰랐어. 며칠 뒤면 출국이구나.  

 

잘 다녀와.

잘 다녀와.

잘 다녀와.

 

5년뒤에 꼭 여성 애니메이션 디렉터가 되어서 짠하고 나타나지 않아도

니가 돌아오면 난 분명히 기뻐하며 맨발로 배웅하러 갈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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