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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로제

여학생휴게실 근로자는 2명이고, 일주일에 한번 빼놓고는 내가 모두 9시에 오픈을 한다.

저번에 한 번, 세미나 이후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새벽에 잠들어 내가 오픈하지 못하고 10시반에 오픈이 된 적이 한 번 있다. 11시에 일어나 부랴부랴 학교로 왔고, 사과문을 쓰고, 징계를 달라 여위에 요청했다. 그리고 한시간 반은 자진해서 채우면서 일이 마무리 되었지만, 세미나의 여운?충격?을 혼자 해결하지 못한 것이 근로라는 것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게 용서가 안되서 위원장님을 만나니 감정이 폭발해 울어버렸다.

자책감 대략 200%

 

*

저번주 2개의 전공시험때문에 일요일 밤을 지새웠다. 월요일에 시험을 치고 수업이 끝나 7시쯤 집에 가서 바로 뻗었다. 알람을 맞춰놓았지만, 휴대폰이 진동으로 된 상태였다. 눈을 뜨니 1:46. 바로 위원장님에게 '오픈을 하지 못했다, 죄송하다, 어쩌면 좋냐'는 문자를 보내고 부리나케 일층으로(내 고시텔은 3층이고, 내 방에는 창문이 없다) 내려가니 깜깜하다. 시계를 다시 확인해보니 AM. 아 다행이다. 위원장님에게 시간을 착각했다, 미안하다, 나 요즘 미쳐가나 보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잤으나, 중간에 여러번 깨고 아침일찍 학교로 와 오픈.

 

**

어제 팀프로젝트가 11시에 끝나 이후 집으로 가 기절.

일어나니 시간이 꽤 많이 지나있고, 부재중 전화 수십통. 기절할 거 같다.

다시 일어났다. 아 꿈이구나. 현재시각 새벽 5:45

물 먹어 제 정신이 아닌 휴대폰에 다시 알람을 제대로 맞추고, 다시 누움. 6시쯤 다시 일어남

7시쯤 다시 일어남

8시 반 쯤 알람을 듣고 일어나 채비 하고 학교로 와 오픈.

 

 

아 심장이 두근거린다, 제길. 이러다 내 명에 못 죽겠다.

학생들 돈으로 운영되고 학우들과의 약속인데다 내가 오픈인 만큼, 그냥 알바와는 좀 다르다는 건 알지만, 오픈하지 못하는 꿈까지 꾸다니. 나른지못미.

노이로제 걸릴 거 같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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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하다,

수업이 끝나고 시험과 레포트에 관한 것으로 교수님 연구실을 찾아갔다. 팀플을 함께 하는 팀원 하나가 보고서를 냈는데, 오류로 인해 교수님은 받지 못하셨고, 벌써 2주가 지난 상황에서 그도, 교수님도 당황해 하셨다. 보낸 메일함에 저장도 되어 있지 않고, 파일도 집에 있다는 그의 말에 교수님은 난감해하며 일단 보내라고 하신 뒤 돌려보내셨다.

 

나는 시험에서 왜 점수가 깎였는지에 대해 듣고, 납득했다. 3점이 깎였지만, 다른 보고서와 레포트들은 거의 만점인데다 시험도 결국 A등급에 들었고, 내가 틀린 부분이 있었기에 납득했다. 그리고 친구와 내려와서 팀원의 보고서 평가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중요한 보고서이니만큼 그가 한번 보내고 말 것이 아니라 이후라도 교수님의 수신을 확인했어야 하며, 인터넷이 오류가 많은 것은 컴공인 그가 더 잘 알 것이다, 교수님이 여타 공지하지 않은 것은 문제지만 결국 학점이나 보고서는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만큼 그의 레포트 점수에 불이익을 주어야 한다, 게다가 보고서의 특성 상 더 많은 시간이 주어지면 더 많은 정보와 내용조직화를 이룰 수 있으므로 '조작'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등의 입장이었고,

 

친구는 교수님이 인터넷의 오류로 인한 문제에 대해서는 말씀하신 적 없다, 그의 잘못도 분명이 있지만 온전히 그의 잘못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게다가 난 그 사람의 평소의 성격 상 조작하지 않았을 것이라 믿는다, 너 점수때문에 너무 예민한 것 아니냐, 라는 말을 했다.

 

졸업이 다가오고 1학년의 학고 때문에 학점은 나에게 '성실도'를 평가하는 항목으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이 수업은 절대평가인데다 그 사람의 학점을 깎는다고 해서 나에 대한 평가가 올라가는 것도 아니며 사실 이 부분은 교수님이 내릴 결정이라는 것, 교수님의 성격 상 어느 정도의 불이익은 그 사람이 감당해야 할 몫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학생들과의 '공평성(또는 형평성)'의 문제와 연관되는 것이지, 그 사람의 '성격(인품)'의 문제와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정말 안면 없는 누군가가 똑같은 상황이었다손 치더라도 난 똑같이 반응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 친구는 어떨까? 생각해 보게 되는 문제다.

사람의 성품이나 품행이라는 것에 어떻게 '신뢰도'를 측정할 수 있느냔 말이다.

'그 사람은 그럴 사람이 아니야. '

'평소 그 사람을 봐, 그렇게 바르게 사는 사람이 그럴리가 없어.'

'저 사람은 평소에도 저러는데, 어떻게 믿어?'

등등등

 

게다가 이 많은 토론을 단순히 내가 시험에 대해 "예민"해져서 보인 반응이라 치부하다니, 이거 너무 억울했다. 뒤늦게 다시 문자를 보내서 예민하다는 말을 듣는 건 좀 억울하다 했다. 이래저래 이야기가 오가고 자신은 이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귀찮았다는 답을 듣고보니 참 허무하다.

참, 이런 토론같지도 않은 토론을 하느라 힘 빼고 점수때문에 예민하다 말 들으니 참 치사스럽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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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를 만나다

2007년 중순, 나는 그때 약간은 강박적으로 연애를 시작했고, 학교의 일을 습관처럼 또 놓아버리고 있었고, 주변인들과의 관계가 복잡하게 꼬이고 있었다.

 

J를 만난건 2006년. 우리가 친해지게 된 계기는 J의 짝사랑의 대상이 나의 주변인이었다는 것.

그리고 2007년 5월? 난 술을 잔뜩 마신 상태에서 J에게 독설을 퍼부었다-그러나 앞 부분만 기억날 뿐 무슨 내용이었는지는 도통 지금까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 이후에도 J와 어느 정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었기에 난 그저 아무일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당시의 여러 관계에서 도망치고 싶기만 했던 그 순간들 속에 J와의 일은 여전히 정지되어 해결되지 않은 찝찝한 그 무언가로 남아 있었다.

 

그저께, 학생회들이 모여 있는 공간에서 화장실로 가는 J를 보았다. 순간 사무실로 뛰쳐들어갔다. 아, 왜 숨었지? 그치만 심장이 콩닥콩닥 거렸다. 지금 마주치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할지, 도통 모르겠다. 망설이다 이어폰을 꼽고 있는 J를 뛰어가 잡았다. 어색한 인사, "오랜만이다."

 

10분 정도 이야기했다. 미안하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너가 나와 이야기하길 원하지 않는다 들었다, 그래서 연락할 수 없었다, 너의 소식이 궁금했다, 앞으로 만나든 만나지 않든 한번쯤 정식으로 사과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어쩌구 저쩌구.. 시간이 지나서 그런가, 내 예상보다도 J는 나에 대한 감정이 많이 없어진 듯 했다. 

 

나는 왜 J와의 연결고리를 다시 이으려고 하는 것일까, J가 마음에 두었던 상대의 연애관계를 보면서 어쩌면 J도 그 낚시질을 덥썩 문 아이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내가 J와 나누었던 것은 무엇이며, 앞으로 무엇을 나눌 수 있을까.

 

다큐멘터리를 찍고 하고 싶어하던 시절, 난 J를 대상으로 하려고 했고, 인터뷰(혹은 수다)를 통해 몰랐던 J의 여러 부분을 발견하고 공감했었다. 피겨를 하는 J의 몸-다이어트에 대한 강박, 체육계의 여러 문화나 관습, 여타 J의 개인적인 부분들.

 

그러나 여전히 한구석이 불편한 것은, 나만 온전히 가해자로 몰리고 있는 것같은 기분때문이다. 시간이 많이 지났음에도 J의 어투에는 비난뉘앙스가 섞여 있다. 일방적으로 쏟아낸 것, J와의 관계를 단순화시켜 상처입힌 것 등 나의 잘못이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뭐랄까, 나 혼자 옴팡 뒤집어쓰는 기분이랄까. 정작 분노의 대상이나 함께 이야기했던 사람들은 사라지고, 그 원망의 몫을 내가 여전히 학교에 남아 존재한다는 이유로 다 받아야 하는 건 어쩐지 좀 억울하다.

 

아아 머리가 복잡해.

그치만 역시 J와 만난 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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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2월 25일

최근 미니홈피의 다이어리를 정리하다 저번에 '엄마의 집'을 읽고 쓴 글이 있다.

세미나에서 읽었던 책인데, 어떤 멤버는 재미없었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난 감정이입하고 봤다.

 

설에 '엄마집'에 갔다.

- 전경린 '엄마의 집'을 보고 나서가 아니라 난 원래 부산에 갈때면 자연스레 '엄마집'에 간다고 말한다.

 

아르바이트로 거금을 좀 쥐고 있던 내가 선물을 하겠다고 하자

엄마는 또 거절이다. 화장품이라도 사주마라고 하니 그제서야

"그럼 내려와서 엄마 가방 사도. 엄마가 고르께." 한다.

지난 4년간 가족과 상황과 공간이 급변하면서부터 엄마는 더더욱 나에게 그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게 되었다. 밥먹었나, 잘 먹고 다녀라, 뭐 해 줄까, 돈 안 필요하니, 아프지 마라, 안 춥나, 안 덥나.

 

카네이션 말고는 처음으로 선물을 했다. 처음 하는 선물인데도 4만원짜리 가방 앞에서 비싸다며 망설이는 당신을 보며 짜증나고 답답하고 미안하고 안쓰럽다.

 

엄마는 4년 전부터 차츰차츰 변해서 지금도 변하고 있다.

가방을 사달라는, 화장을 하는, 머리에 신경을 쓰는, 일요일마다 데이트하러 나가는 당신이 너무 좋다. 점점 더 변했으면 좋겠다. 난 어느 정도 서운할 것이다. 내가 없어도 괜찮은 엄마가. 엄마에서 이순옥여사로 계속계속 행복하게 변하길 바란다.

+)

 

"딸 오늘 생일이제. 5만원 보낸다. 맛있는거 사먹어라."

벚꽃나무와 함께 도착한 메시지.

 

음력 2월 25일은 내 생일이다. 올해는 4월 1일이 그 날이었고, 사실 생일을 잘 챙기지 않아서(게다가 요즘 누가 음력생일을 ;;) 이여사(엄마)의 문자를 받고, 아 오늘이구나 했었다. 생일이고 자시고를 떠나서 현금 5만원이 생긴거이 무척이나 기쁜 날이었다. +ㅁ+

 

"엄마는 그 때 갈 데가 없는거라. 돈도 없고. 지금 이만큼 자리잡고 니가 올 때도 있고 하니까 좋긴한데, 돈 벌 수 있을 만큼 벌어서 집 같은거 하고 싶다. 집 나온 엄마들, 갈 데 없는 중고등학생들 데리고 있고 싶다. 연립주택같은거 사면 엄마는 방 한칸만 있으면 되니까. 나머지는 그런 사람들 올 수 있는데 만들고 싶다."

 

엄마의 계획을 처음 들었을 때 생경했지만 너무 좋을 거 같다 이야기했다. 난 좁은 다락방이 좋으니 내 공간도 하나만 주면 안될까 하니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크크. 다이어리를 보니 엄마가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고, 오늘에서야 엄마한테 낳아줘서 고맙다는 메시지를 보낸다. 이여사님, 낳아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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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에 대한 광위적 해석

우리 과에서 유일한 여자 교수님의 '노사관계론'수업을 듣고 있다.

노동조합 설립 요건 중에서 소극적 요건(결격 요건)중 첫 번째가 '사용자가 참가해서는 안된다'이다. 그러나 이 사용자에 대한 광위적 해석을 요한다는데, 인적자원관리(HRM) 담당자들, 감독자들 등 사용자의 직간접적인 이해를 대변하는 자또한 사용자로 해석해야 한다는 거다. 노조의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는 요소가 있기 때문이란다. 사실 잘 이해가 안됐다. 어디까지를 경영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어디까지를 노동자라 할 수 있을까, 어렵다.

학교에서 근로를 하는 나는 금토 저녁에만 호프집에서 5시간씩 일을 한다. 사실 그만두겠다고 했지만, 우리를 관리하는 매니저님때문에 그냥 남아있게 되었다. 매니저님은 34살로 매우 인간적인 사람이며, 이래저래 잘 챙겨주시는 분이다. 정도 많고 권위의식같은 것도 없는 분이라, 나도 한 달만에 정이 들어 결국 이 가게에 눌러 앉아 버렸고, 가끔씩 대타를 뛰어주거나 알바시간을 바꿔 주거나 한다.

그리고 같이 일하는 언니중에 근처 K대에 다니는 중국인 직원언니가 있다. 언니와 매니저님은 사이가 매우 좋고, 암튼 그렇다. 방금 내가 퇴근하기 전, 가게 분위기가 쌀벌해졌다. 언니와 매니저님이 일 문제로 불꽃이 튄 것.

한국어 능력시험과 중간고사를 앞둔 언니가 알바로의 전환을 요구했고, 사장은 평소부터 언니를 못 마땅해 했기에 별로 반기지 않고, 매니저님이 중간에서 조율을 했다. 평일에는 알바로, 주말처럼 길게 일하는 시간은 직원의 급여로 받는 것이다. (참고로 직원의 급여가 시급 4000원인 알바보다 저임금이다) 언니는 불만을 토로했고, 주말에 알바로 전환해서 일찍 보내달라, 사정좀 봐 달라, 했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매니저님의 반응. 그건 니 사정이다, 가게가 어떻게 니 사정까지 다 봐주냐, 주말까지 널 알바로 쓸 수는 없다, 이런 식이면 계속 일 못한다, 사장입장에서도 어떻겠냐, 가게 사정도 어려운데 너까지 왜 이러냐 어쩌구 저쩌구 저쩌구

 

아, 이거구나. 관리자라는 입장의 사람을 어째서 사용자로 해석해야 하는지.  평소에는 그리도 사람 좋은 당신이 어째서 그렇게까지 핏대를 세우고, 언니를 몰아부쳐댔는지. 내가 독감으로 편도가 부어 침을 삼키지 못하던 지경에서 연장알바를 했어도 미안하다는 말로 끝나고 결국 칼같이 분까지 계산해서 주시던 그 모습과 오늘의 그 모습에서 나는 사장을 보았습니다.

당신도 고용자이면서, 노동력의 수적 유연성을 추구하는 사장의 성향으로 미루어 당신도 언제 잘릴지 모르는 똑같은 고용자이면서, 어째서 임금이나 고용에 대해서는 그리도 사장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인지. 이건 단지 알바일 뿐이지만, 기업이나 사회로 더 나아가게 되면 결국 사용자에 대한 광위적 해석의 필요성에 대해 어렴풋이 알게 된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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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갑. 한 김정두당선, 그리고 동서터널

김해라는 작은 도시가 내 고향이라고 말하면 다들 "김해 평야"를 떠올린다. 뭐 노무현을 떠올리는 사람도 간혹 가다 있긴 하지만, Pass. 사실 난 김해에서도 중심지가 아닌 구역에 살았고, 김해 평야는 주거지역과는 좀 떨어진 외곽이기에 나도 김해평야에서 뛰어논 기억따윈 없다

 

내가 자란 동네를 빙 둘러싸는 '신어산'이라는 곳이 있다. 동김해에 속하는 우리 동네에서 초중학교를 나온 나에게 신어산은 1년에 한 번 극기훈련을 떠나는 곳, 식목일에 나무를 심는 곳(물론 한 번도 심은적은 없다;;), 신어산 가야랜드에 소풍을 가는 곳, 등산을 가는 곳, 신어산에 자리잡은 은하사라는 절로 산보를 가는 곳으로 기억되어 있다. 어릴 때부터 체력이 약해서 극기훈련으로 신어산 정상까지 올라야 할 때면 늘 꼴찌를 기록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려가는 나에게 신어산은 웅장하고, 크고, 무성한 곳으로 산공기의 시원함과 자연에의 두려움을 공존하게 한 산이다.

 

그리고 김해는 동김해와 서김해로 나뉘어 있는데 산으로 막혀있어 버스를 타면 빙빙 돌아가기 때문에 인근 대도시인 부산으로 나가는 것만큼 시간이 많이 걸린다(40-60분정도). 그래 불편한 거 안다, 인정한다. 나도 고등학교 때 버스 타고 30분씩 돌아가는 그 길을 저주하기도 했었다. 그치만 그렇다고해서 신어산을 뚫어 터널(동서터널)을 만든다니, 고작 2,30분 단축시키자고 산을 뚫는다니 이게 웬말이냐.

주민등록 상 김해시민으로 되어 있는 나와 친구는 어떻게 하면 이 '동서터널'을 막을 수 있을까에 대해 이야기했다. 시청 홈페이지에 항의서한을 보내고, 이곳저곳 알리고, 여름 도보여행에 대운하건설 반대와 신어산을 뚫는 '동서터널'을 반대하는 것을 모토로 여행을 하고 이걸 블로그에 올리는거 어떠냐, 그렇다면 인원을 더 모집하거나 지역마다 만나서 무언가 세미나를 하거나 Acting을 해도 좋겠다, 경주라는 곳에는 핵폐기장으로 인한 오염이 심각하댄다 오염 지역을 직접 돌아보는 건 어떠냐, 등등.

일단 자전거보다는 도보여행으로 의견 수렴했다, 며칠 전.

 

그리고 총선.

"김해 갑 한나라당 당선이다.. 선거공보에도 터널 얘기 있다." 친구의 메시지.

 

김해 갑 2.한 김정권 3만273(당선)

김해 김해을 1.민 최철국 3만9405(당선)

 

아 끝장났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동서터널에 대한 언급이 있다.

"6월에 삽 뜬단다"

 

신어산 가운데를 6월부터 뚫기 시작해서 동서김해 연결하고, 동서터널이랑 연결해서 산복도로 개설해서 또 동김해 우회하는 도로 건설하고, 농경지인 대동 개발해서 아파트 미친듯이 짓겠다고 약속하는구나.

신어산 공사 현장에서 농성이라도 할까, 엉엉.

 

민원부터 넣어야겠다.

이번에 부재자 투표 못한 것이 못내 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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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 걸린지 3일째. 증세가 호전되고 있다.

 

사실 담이 있다고 해서 미치도록 아픈 것은 아니지만, 큰 숨을 들이쉴 때마다 담 걸린 곳과 폐가 동시에 아파 불편하고 찌르르 하는 느낌이 기분 나쁘다.

 

요 며칠 한 사람에 대해서 무진장 나쁘게 이야기하고 돌아다녔다.

그치만 곰곰 생각해보면 그 아이의 행동도 문제가 있지만, 결국 내 담의 원인은 그 아이가 아니라 그 아이에게 화를 내는 나 자신이다.

 

사람에게 기라는 것이 있는 걸까. 역시.

현대식 병원에서 척추를 수술받아 나은 나로서는 한의원이라는 곳을 가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감기에 걸리거나 장이 꼬이면 내과에 가고, 이가 아프면 치과에, 눈이 아프면 안과에 간다.

 

담이 걸리고 나서 당황했던 것은 '으. 이건 어디로 가야돼?였다. 딱히 갈 병원이 있는게 아니더라.

그리고 지인을 만났는데, 기에 대해서 들었다.

 

음, 사람의 몸에 기라는 것과 혈이라는 게 있다는 걸 생각해 본 적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기라는 것은 에너지처럼 먹는 것이나 운동으로 채워넣어지는 것이 아니라하니 수련하고 단련하고 심신을 좋게 하면 좋은 기도 함께 생기는 건가보다.

 

어쩌면 상황이 스트레스적이라기보다 내가 상황을 대하는 자세가 스트레스적일지도

그리고 역시 대상에게 제대로 확실히 이야기하지 않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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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학금 받다

저소득 가정을 위한 학과추천 장학금.

받게 됐다.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은데, 왠지 모르게 떨떠름한 이 기분은 도대체 먼가. 쩝

 

모든 대학들이 등록금을 인상하려고 한다. 등록금이 천만원인 시대라네.

내가 다니는 학교도 작년에 거의 10%가까이 올라 300을 육박하고, 이제 또 10%오른다고 가정하고, 학자금 대출이 7.65%니, 반액을 받아도 보증액까지 합하면 200가까이 든다. 게다가 이자만 한달에 6만원씩 내고 있는데 제길 또 오른다니 낭패다. 이제 거의 8만원정도를 매달 이자로 내야 한다는 이야기.

역시 2008년도 알바와 함께 한 해를 보내겠구나.

 

등록금 좀 그만들 올려라. 허리휜다 허리 휘어. 4학기 다녔는데, 벌써 빚이 천만원이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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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다녀와.

12월말 오랜만에 걸려온 친구의 부재중 전화가 있어 통화를 했었다.

몇개월 만에 대뜸 한다는 소리가 "나 1월말에 프랑스로 유학가."였다.

 

7년이나 지낸 친구로 원래 성실한 타입인데다가 공부에서 그림으로 급전환하고서도 서울의 좋은 4년제를 포기하고 전문대 애니메이션과에 입학해서 3년이라는 시간을 꾸준히 실력을 늘려온 아이. 하루종일 12시간을 야근을 밥 먹듯 해가면서 돈도 거의 받지 않고 선배들 졸업작품에다, 교수님 디자인회사를 돕는데다 자기 작품을 만드는 터라 몇 달만에 한번씩 보면 삐쩍삐쩍 마르고 해골처럼 변하면서도 힘들다는 소리 한번 안 하는 친구.

 

캐릭터업계가 자리를 잡아가고 상품화되고 있는 반면에 애니메이션은 노가다에다 저임금이며 여성애니메이션 작업자가 되기는 힘들기에 진로를 놓고 고민한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애니메이션으로 유학을 떠나기로 결정했다고 하니 반갑기도 하고 친구답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하고 복잡하다. 그래도 담당 교수님의 캐릭터회사에 취직을 마다하고 다시 공부하러 떠난다니 기쁘다.

 

일때문에 1월이되서야 친구를 만났고, 9개월정도는 프랑스어를 공부하고 이후에는 대학에 들어가 애니메이션공부를 계속하겠다는 것과 4,5년 후에나 돌아올 수 있으며 일이 잘 풀리면 현지나 외국에서 작업을 하고 싶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집안이 그닥 좋은 형편은 아니기에 거기 가서도 또 지금처럼 고생할 친구를 생각하니 선물이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보고싶다고 해서 빌려준 '페미니즘의 도전'을 선물로 가지라고 했고, 가방이나 여권케이스를 만들어주마하고 헤어졌다.

 

맘먹고 쉬는 날 눈맞으며 동대문가서 융천을 떼왔다.

대안생리대도 더 만들고 친구에게도 이것저것 만들어서 보내야지 했었는데 일한답시고 뜸들이는 사이 친구가 바빠서 서울로 오지 못하고 바로 프랑스로 떠난다는 연락을 받았다.

 

울컥.

보고싶었다. 한번이라도 더.

 

프랑스가 일본처럼 가까운 데라 맘 먹으면 갈수 있는 곳도 아니고 더군다나 요 몇년 내에 학생신분을 졸업할 생각이 아니니 돈을 모아 여행을 갈 수 있는 곳도 아니고 너도 돈이 많아 1년에 한번씩이라도 들어올 처지가 아닌 걸 생각하니 아쉽다.

아쉬워서 눈물난다.

너도나도 꿈을 버리고 공무원준비생 대열에 합류하는 친구들 속에서 꿈을 향해 나가는 너를 보내자니 기뻐서 또 눈물이 난다.  

 

가서도 서울에 혼자 올라와 고생했던 것처럼 고생하겠지

그리고 또 몇 년을 그랬던 것처럼 그걸 삭히고 삭혀서 작업하겠지.

 

잘 다녀와.

명박이 집권할 때 가서 좋겠다. 나도 니 가방에 데려가라 깔깔깔. 그러게나 말이야. 5년후에나 돌아오겠지. 우리 언제보냐 또. 우리 다시 만나면 몇살이냐. 나 그때도 백수면 조수로 써줘 히히. 그래 미술배우고 싶다며.공부하면 생각해보께.

너 프랑스어스터디 가야되고 내가 그 전에 친구 만나는 거랑 겹쳐서 우리 세시간도 얘기 못 했구나. 아쉽다. 이렇게 바로 가버릴 줄 몰랐어. 며칠 뒤면 출국이구나.  

 

잘 다녀와.

잘 다녀와.

잘 다녀와.

 

5년뒤에 꼭 여성 애니메이션 디렉터가 되어서 짠하고 나타나지 않아도

니가 돌아오면 난 분명히 기뻐하며 맨발로 배웅하러 갈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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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쓸 수 있을까

기말고사를 이틀만에 치루고 다음날부터 계속 일만 했다

중간에 부득부득 주말에 쉬겠다 우겨 태안에 한번 다녀온 걸 제외하면

아.무.것.도.안.했.다.

 

더이상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주말에만 알바를 하겠다고 선언하고

오늘부터 백수로 전환했다

 

개강하기 전까지 죽어라 일만 하면-달리 딱히 할 일도 없고-

200여만원을 손에 쥘 수 있지만

백만번 곱씹어도 날 좀먹는 일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11일 월급을 받았고, 지금 그 돈으로 산 컴퓨터로 글을 쓰고 있어도

정승처럼 쓰고 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통장에 찍힌 숫자와 잔고를 보고 나니 기쁘지도 보람되지도 않고

그저 허망하다

허망하다

허무하다

 

고작 이 숫자를 위해서 하루 12,13시간씩 서서 일했었나

된장남 된장녀 복부인들에게 왜 그렇게 굽신댔었나

가게 마초들의 비위 상하는 발언에도 그렇게 자신없게 저항했었나

씨발

 

일하면서 는 거라고는 지랄같은 성격과 이중인격과 욕뿐인 것 같네

 

결론은 개처럼 벌면서 살 수 없다는 거다

 

 

*

12일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는데

작년에 오래 일했던 매장 직원의 부고를 받았다

연락을 받고 5초동안 멍 하다가 2명에게 전화를 했고

부고 사실을 확인하고 고인을 떠올리다가 우울했다가

 

다음날 평소처럼 출근해서 가게 사람들과 웃고 떠들었다

 

젊음이 안타깝고 사람이 아쉽다

친한 사람이 아니었는데도 그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는다

 

그저 좋은 사람이었으니 좋은 곳으로 갔을 것이라 믿는 게 내가 취한 유일한 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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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돈에 내 인생을 팔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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