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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설과 상담

상담을 해왔던 친구에게 나도 모르게 휩쓸려 버린 때가 있었는데, 울면서 전화 한 이후 내가 여성상담센터등을 권고하고나서 연락이 두절되었다. 실수한 게 아닌가 싶어 걱정했었는데 미니홈피를 보니 매우 건강하게 살고 있는 듯 해 기운 빠졌었다. 물론 당시에는 힘들었겠지만, 근본적으로 극복이나 치유가 목적이 아닌 해소를 위한 배설이었다는 생각을 뼈저리게 하고 난 후, 그 친구의 얘기를 반복적으로 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싹 사라졌다.

 

올 여름 도보여행을 다녀오면서 6년지기와 조금더 소소한 것들을 공유하게 되었는데, 어제 시험과 남자에 대한 눈물나는 것에 대해 듣게 되었을 때, '배설과 상담을 구분해다오'라는 문자를 보냈다. 친구는 알았다고 답했고, 너무 매몰차게 말했나 걱정하고 연락이 두절됐을 때 더더욱 걱정됐고 새벽에 연락이 닿았을 때 지금 괜찮다 니 말대로 아까 순간적 해소를 위해 널 찾은 거 같다, 미안하다 라고 전해들었다.

 

휴대폰이 있음으로해서 많은 부분을 일상에서 혼자 생각하거나 해소해내지 못하고 타인에게 배설하게 된다.

 

짜증나 힘들어 외로워 도와줘

 

순간적인 해소는 순간의 기분을 낫게 할 수 있지만 결국 그것이 안으로 풀어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하게 된다. 말 그대로 배설이다. 배설을 당한 사람은 감정 이입하거나 생각하거나 고민하거나 감정을 전달받고, 배설하는 사람은 기분은 괜찮을 지 몰라도 공허하다. 뭐 깨닫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 패턴은 반복되고 이 반복되는 패턴으로 인해 결국 관계는 깨지는 거 같다.

 

내가 지금까지 무수하게 반복해오던 많은 관계의 깨짐은 바로 순간적으로 해소하려는 나의 패턴때문이었고 이것이 다시금 관계를 파토내는 요소로 작용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지만

 

결국 극복도 치유도 해소도 자신이 할 수 밖에 없으며 나 또한 다른 사람에게 배설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배설을 차단해야겠다는 것이 2시간의 자전거 라이딩을 통해 내린 결론이다.

 

누군가에게 나에게 배설한 친구에 대해 상담한 적이 있는데 배설은 당하고 나면 기분이 더럽다 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최근들어 그런 것에 대해 감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친구에게 미리 말해두고 선을 그어야 관계가 유지될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친구는 다른 친구에게 이야기했다지만 어쨌든.

 

그래도 배설하지 말아달라 말한 거 정말 잘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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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알고 있다

어제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머리가 지끈거리고 속이 울렁거려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끝날 때마저도 눕고 싶다거나 이곳을 빨리 나가고 싶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차가운 공기를 마셔도 지하철 타고 오는 와중에도 증상이 완화되지 않아 한양대에서 내려 결국 화장실로 달려갔다. 계속되는 울렁거림에도 별로 토한 것이 없다.

 

프로그램에 가게 되면서부터 은연중에 이것저것 사소한 일들이 많이 떠오르게 되고 그것으로부터 연속되는 심리적 압박에 대해서는 감지했었다. 눈치도 없고 둔감한 성격이라 몸이 무언가에 반응하는 경우는 내가 기억하기로 별로 없다. 그래서 몸의 격렬한 반응이 신기하고 무서웠다.

 

몸의 세포가 활짝 열리는 순간 압박을 밀어내는 에너지가 생긴다고들 한다.

그래서 극복하는 거고 자기치유하려고 다들 열심히 하지 않나.

 

아직 준비가 안 됐지만, 내 세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있다.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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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12

나는 그 순간에 떠오른 엄마의 얼굴에 의아했다. 그리고 덩달아 떠오른 그 언니의 얼굴에 더 의아했다. 초등학교때부터 쭉 같은 아파트의 엘리베이터에서 얼굴을 봤던 그 언니.

 

가해자들에 대해서는 예전보다는 분노가 많이 사그라든 것 같다. 사실 더 이상 그들을 붙들고 싸우며 매달리고 싶지 않은 게 맞는 것 같다.

 

그 언니는 목격자이면서도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원망,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리고 이후에도 같은 초,중,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엘리베이터에서 수없이 마주치며 왠지 모를 죄책감과 부끄러움, 껄끄러움을 느꼈다. 발가벗고 그 사람 앞에 서 있는 기분을 김해를 떠날 때까지도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나한테 엄마에 대한 원망이 남아있는가?

 

어렸을 때 엄마는 내가 기억하기로 한,두번 정도 폭발적으로 나에게 분노를 표출했던 적이 있어 미워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항상 집에 없고 한달에 한두번 볼까 말까 해서 사실 별로 기억에 없다. 일상적으로 나를 키워 잔소리를 하는 할머니보다, 무서운 아빠, 오빠 보다 자상하고 다정한 엄마가 좋았다.

나를 데리고 외갓집으로 가고 아빠가 빌어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일년에 한 번쯤은 반복되어서 그러려니 한 기억이 한 자리 차지.

 

고등학교 때 입원했을 때는 이혼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아빠는 또다시 약속을 했었다. 

그러다 19살 때는 사라진 엄마를 원망했었다. 할머니와 나는 약자축에 속했었으니까. 경주에서 비오는 밤 빛을 비추던 그 무덤들과 추위때문에 돋았던 소름, 사진, 가게 아주머니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세포에 꽂혔었다. 낮에는 밤이 오지 않기를 미치도록 기도했었다. 겁 났었다. 엄마라는 보호막이 사라진 현실이. 그리고 사건 후에도 다른 아르바이트를 구해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현실도 엄마가 있었으면 나았을 거라고 책임을 전가했다.

 

그래도 돌아와줬으니까 날 찾아줬으니까 괜찮다 괜찮아졌다

 

그리고 나도 비겁했으니까

말리는 척 하다가 결국 무서워서 내 방으로 돌아와 문을 잠궈버리는 것 밖에 못 했으니까

경찰에 신고할 수 있었는데도 안 했으니까

더 적극적으로 이혼하라고 안 했으니까

나도 공범이다. 침묵하는 가족 속에 내가 있다.

 

그래서 싸이코 드라마를 하고 싶지 않다. 엄마가 나에게 빚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내가 무섭다. 아직은 무서운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지금 억누르고 있는 그 무엇이 폭발하는 것이 견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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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들의 출사

2월 19일

 

다섯명의 언니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모였다.

명절이 아직 다 지나가기 전,

 

숨막히는 친척집에서 떡국을 먹자마자 도피한 나,

집에 내려가지 않고 집에서 노다메 칸타빌레에 빠진 언니,

이쁜이 카메라를 들고 온 명절을 싫어하는 언니,

일하느라 오랜만에 본 언니,

굶주린 우리를 위해 음식을 잔뜩 싸들고 온 언니.

 

햇빛이 나면서도 서늘한 날

아이들이 많은 어린이 대공원 계단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먹는 명절음식은

우리에겐 행복, 그 자체였다.

 

물론 셔텨를 누르는 손이 어색하거나

노출을 걱정하거나

빨리 롤을 뽑아보고 싶다거나

사물에 구애받지 않고 찍고 싶은 것에만 셔터를 누른다 

그리고 재잘재잘 수다

 

행복했던 순간의 기록은

빛바랜 예쁜 사진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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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의 시한부

지난 2006년 12월 30일 비정규직 법안이 통과됐다.

 

요즘 자주가는 알바*사이트에 가면 경악할 정도로 모든 직종이 파견이나 비정규직이다.

거기에는 "니가 열심히 한다면 계약직으로 전환될 수도 있어"라는 얄팍한 문구도 추가로 새겨져 있는 곳이 많다.

그것을 보면 왜 쓴웃음을 짓게 되는 것일까.

 

나 또한 알바로, 비정규직으로 일했고 앞으로도 어쩌면 평생 비정규직이나 파견노동자로 일할 수도 있다. 취업은 내 맘대로 되지 않을 뿐더러 서울에 4년제 졸업생은 넘쳐난다. 또한 많은 일자리들이 1,2년 정도 "쓸 수 있는" 노동자를 원한다.

 

이제 7월 1일부터 300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있는 곳에서는 비정규직법안을 적용해 2년 이상 일하는 기간제 근로자, 파견근로자에 대해 정규직화를 의무시하고 있다.

그리고 점차적으로 확대해갈 것이라고 한다.

높으신 님네들은 이걸로 비정규직 보호 될 거라고 믿나보다. 반대하는 사람들 제쳐놓고 재빠르게 의장봉 탕탕 내려치고는 흐뭇해 한다.

 

그런데 이게 왠걸.

벌써부터 역효과가 나타난다.

비정규직, 파견근로자, 각종 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고 계약만료를 이유로 혹은 기타 이유로 해고조치 해버리는 것이다.

공적 기관인 법원에서조차 비정규직을 계약만료되는대로 내보내겠다는 데 일반기업이야 뭘 더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2년, 비정규직의 생명은 2년까지다.

고작 24개월.

짧고도 허무한 숫자다.

 

20대- 그것도 갓 대학을 졸업한-는 가장 생산성이 높은 시기이며 가능성도 열려 있는 시기이다. 이 높은 생산성을 지닌 20대-특히 여성-를 비정규직이나 계약직, 파견직으로 1,2년 부려먹고는 그 다음에는 나 몰라라 하며 버리고 다시금 갓 졸업한 창창한 20대를 고용한다는 것이다.

 

여성에게만,

남성에게만,

나이에 한해서만,

학력에 한해서만,

외모에 한해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내 주변에서도 일어나고, 나에게도 일어났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내가 졸업을 하고나서 비정규직이 아닌 정규직으로 취업을 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일 것이며, 그런 상태에서 고용에 안정감을 느끼고 일을 할 수 있으리란 보장은 실상 하기 힘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리고 20대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지, 일회용 근로자나 닳으면 교체할 수 있는 기계가 아니며, 2년이라는 그 고리에 얽매여 켁켁거리며 불안해 하고 싶지 않다.

 

 

변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해 봐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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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시간(mad minutes)

미친 시간 (mad minutes)

[베트남 전쟁 당시 베트남에 파병된 미군 병사들의 무료함을 달래주기 위하여 2개월에 한 번 정도 2-3분의 시간을 주어 부대 안의 목표물을 제외한 어떠한 것에도 자유로이 총격을 가하도록 허용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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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콩을 잡는 다는 명목 하에 저질러진 수많은 학살과 범죄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1966년 미국의 베트남 침공에 한국군은 외화와 차관과 무기를 받으며 지원에 나섰고, 그들은 월남군인으로 한국 경제를 부흥시켰다는 거창한 명예를 얻었다.

 

그리고 .. 전쟁 중 한국군에 의한 학살과 범죄가 드러난 것은 불과 얼마 되지 않았지만 큰 파문이 되었었다.

 

요즘 전쟁이나 평화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되는 시점이고, 일본 군 위안부 문제는 꼭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대다수의 국민들이 있기에, 이 "미친 시간"은 참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는 것 같다.

 

한국인 누구나 일제와 전쟁의 피해에 치를 떨고 분노할 것이다. 일정 시대를 살고, 북한에서 6.25를 피해 월남한 할머니를 통해 전쟁과 일정시대는 다시는 돌아와서는 안된다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듣고 자랐다. 그리고, 할머니를 통해, 한국은 전쟁과 제국주의의 피해자라고만 생각했었다. 적어도 몰랐을 때는.

 

고등학교 때 근현대사 시간에 배웠던 베트남 전쟁과 라이따이한(베트남 전 당시 한국군과 베트남 여성 사이의 자녀로, 한국군은 대부분 이들을 현지에 두고 왔다. 전쟁이 끝나고 이들은 대를 잇는 빈곤과 폭력에 시달리며, 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었고, 이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의 문제에 대해서는 간략하게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알고 있으면서도 회피심리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월남군인들과 그 자손들 중에서도 고엽제나 각종 질병-정신병을 포함한-을 질병을 앓고 있는 피해자들이 많기에..

 

하지만 대학에 들어오고 나서 베트남전쟁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한겨레에 의해 보도되곤 했던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이 베트남 서민들에게 저지른 끔찍한 학살과 범죄에 대해서 말이다.

전쟁은 인간을 극도로 광기로 몰아넣으며 내면의 밑바닥까지 드러내게 만든다.

그것은 한국군도 예외일 수 없었던 것이다.

 

"미친 시간"에서는 베트남 전 양민 학살의 생존자들이 나와 학살 당시의 사건과 죽은 가족들과, 한국군과 미군이 저지른 일에 대해 담담히 이야기 한다. 대부분은 빈곤하게 살고 있으며, 가족을 잃고, 몸을 다친 정신적 고통에 아직 힘들어 하고 있다-사실 이런 일을 잊을 수 있다는 일이 가능한 지 묻고 싶다-. 담담하고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 하지만 이들은 학살 당시의 끔찍한 상황에 대해 자세히 기억하고 이야기하며 한국인과 미국, 그리고 전쟁을 증오한다고 털어놓는다.

 

왜 아니랴.

하다못해 일제시대도 아니고, 독재시대의 세대도 아닌 내가 일제를 증오했고, 분노했으며, 독재시대의 탄압과 인권유린에 대해 분노하는 것은 비단 경험에 의해서만은 아니니까.

 

나는 미친시간을 보는 내내 부끄러웠다.

일제 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분노하고 당연히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내가, 한국군이 베트남전에서 저지른 학살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었고, 넘겨버렸다는 것이 견딜 수 없었다.

 

뭐, 이야기가 잠시 샜지만.. 무튼 내가 바라는 건 진정한 평화다.

그리고 그 평화는 과거의 기억을 반성하고, 사죄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다.

우리는 베트남 전쟁에서 저지른 학살과 범죄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죄하고, 보상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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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

운동장 채식란에 들어갈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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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의 채식일기

-채식 스터디.

 

아는 분의 소개로 채식스터디 모임을 함께 했다.

채식주의 클럽에서 모인 이들은 8년, 4년씩 채식을 한 사람과 이제 막 채식을 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학생은 나를 포함해 3명이었다.

등산을 함께 가기로 했었으나, 날씨 관계 상 주최자의 학교인 동국대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스터디를 진행하기로 했다. 각자 간단히 싸온 도시락을 펼치면서 우리들의 수다는 시작되었다. 직접 조리한 채식 반찬과 잡곡밥, 햄을 뺀 김밥, 옥수수, 고구마, 떡, 과일, 각종 견과류.. 다양한 반찬만큼이나 먹으면서 다양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채식의 힘든 점이나 궁금한 점, 나누고픈 정보들이 속속 나왔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스터디를 한 다음에 다음 모임에서 읽을 책을 정하고 발제를 나눈 후에 모임을 해산했다.

 

채식을 시작하는 이유들은 개인에 따라 다양하고, 먹는 범위도 다양하다. "백 명의 채식주의자에게는 백 가지의 채식주의가 있다"는 말이 있다. 육류만 먹지 않는 사람, 우유과 달걀을 먹지 않는 사람, 음식쓰레기로 남게 되면 고기를 먹지만 본인 스스로 시켜 먹지는 않는 사람, 해산물을 먹는 사람.. 시작한 이유들도 다양하다. 건강상의 이유로, 혹은 동물학대를 예방하자는 차원에서, 또 어느 누군가는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서 채식을 한다.

 

내가 채식을 하게 된 이유는?

바로 자본주의에 대항하기 위함이다. 나는 자본주의 속에서 살고 있고, 또한 이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 하지만 물건에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와 쓰레기 배출은 곧이어 생명에까지 이어졌고, 소, 닭, 돼지들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잔인한 방법으로 사육되고 도살되고 우리에게 도달한다. 살아있는 어린 돼지들을 시멘트 바닥에 내려치거나, 움직일 수조차 없는 좁은 곳으로 닭들을 몰아넣고, 스트레스를 받아 서로를 쪼는 것을 막는다고 부리끝을 모조리 잘라버리기도 한다. 알 하나를 더 얻기 위해 조명을 극도로 쬐게 하거나, 잠을 재우지 않거나.. 우유를 공급받기 위해 임신한 젖소에서 강제로 송아지를 빼내어 젖을 돌게 한다거나.. 이들에게 생명은 없다. 단지 상품으로서의 가치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 속에서 생명은 철저히 무시된다. 그리고 이런 생명경시는 곧 인간에게도 적용되었다. 더이상 사람들은 카드빚 때문에 자살한 가족이야기를 보면서 놀라지 않는다는 것이 이를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자본주의의 폐단으로 인해 나타난 이 생명경시 풍조와 돈이면 모두 된다는 물질 만능주의. 우리도 그것에 이미 찌들어 있다.  

나는 이에 대한 반성과 저항의 수단으로 채식을 선택했다.


그리고 채식스터디에 가면서 채식과 육식이 몸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공부할 수 있었다. 육식은 체내에 불필요하게 지방과 콜레스테롤이 축적되는 원인이 된다. 과다한 육식은 동맥경화를 일으키고, 당뇨병, 저혈당증 등 각종 성인병과 암을 유발한다. 채식으로 고기에 들어있는 필수 아미노산을 한꺼번에 섭취할 수는 없지만 좀 더 꼼꼼히 골고루 먹으면 더 건강하게 몸을 유지할 수 있다. 이를테면 시금치는 철 함유량이 소고기 등심의 14배이며, 우리가 브로콜리에서 얻을 수 있는 철분을 섭취하기 위해서는 냉장고만한 크기의 버터를 먹어야 한다.


어쩌면 완벽한 채식은 한국사회에서는 무리일 지도 모르지만 고기의 소비를 조금이라도 줄이고, 그로 인해 몸도 마음도 건강해진다면, 그것으로 인해 환경과 나를 함께 지킬 수 있다면 일석이조 아닐까? 요즘 한미FTA의 필수조건으로 미국산 소고기가 유입된다. 하지만 이 소고기는 1%정도만이 광우병 검역을 받았고, 99%는 검역받지 않은 것이다. 지금은 채식이 필요한 시점은 아닐까.


[Tip]동물들은 위협을 받으면 자기 방어를 위해 어떤 물질을 방출한다. 그리고 도살장으로 동물들이 끌려왔을 때는 극도의 공포심으로 인해 그 물질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그것은 신경을 통해 그들의 살에도 도달한다. 그리고 이들은 도살을 당하지만 그 물질은 살점에 그대로 남아 우리들의 입 속으로 들어온다. 우리는 곧 그들의 집약된 "화"를 먹는 것이다. 이것이 신체에 좋은 영향을 미칠 리가 없다. 이것은 팃낫한 스님의 "화"에 나오는 내용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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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하니 어때?

924 집회에서 오랜만에 본 선배가 나에게 물어온 말이다.

 

두어달 전 선배는 내가 채식을 시작했다는 말을 듣고,

함께 밥을 먹다가 "너 진짜 고기 안 먹는구나?"라고 물어오던 게 옛날일 같다.

 

아직도 채식을 하냐는 말에 그렇다고 대답하니 이것저것 물어온다.

몸이 좀 달라진 것 같냐, 홪장실 가는 건 어떠냐, 등등..

 

음 그냥 저냥 대답을 했고, 나름대로 좋다,라는 결론을 도출했지만서도 ..

 

난 사실 몸의 변화라는 건 그닥 모르겠다

잠이 좀 줄었다는 것 외에는 그리 몸의 변화라고는 잘 모르겠다

이번주 금토일을 야간알바를 하고 돈이 궁했기에 낮시간에도 알바를 해야해서 거의 4시간 정도를 자고는 움직였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뭐 그럭저럭 버티고 924까지는 참여해으니 잠이 확실히 많이 줄어든 것 같기는 하다

 

그리고 처음부터 건강을 생각하고 시작한 건 아니지만 이 질문을 듣고 보니 좀 더 제대로 채식을 해서 나의 몸의 변화를 보고 주변사람들에게 좋은 것을 추천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채식,하면 몸에좋아? 라고 먼저 물어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채식을 시작하기 전에도 삼겹살이라던가 고기 종류를 잘 먹지 않았던데다-못 먹었던 건가?- 햄 종류도 있으면 먹고 없으면 안 먹었기에..

거의 변화가 없다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내 채식생활은 인스턴트를 없애고 직접 조리해 먹는 것이 해결과제다

현재 학교에서 산다는 것을 이유로 해서 조리를 거의 하지 못한다

핑계일지도 모르지만

이제 보름쯤 뒤면 다시 방을 잡고 방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방을 잡을 때 조리하기 편한 곳으로 방을 얻어야 겠다

 

이것저것 생각해 놓은 반찬도 있고

밴드 친구들에게 도시락을 싸가겠다과 으름장을 놓기도 했으니

조리를 하게 되겠지

 

음 나의 빈곤한 레시피를 사진을 찍어서 공개해야겠다

간단하게 자취생이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채식식단, 은 어떠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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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비누

비누베이스와 천연비타민E , 라벤더오일, 글리세린이 도착했다

 

이번에 가을축제에 프리마켓에서 운동장과 함께 배포될, 혹은 판매될 비누이다

자본주의, 계란으로 바위 덮기 섹션에서 다루어질 것

 

자본주의에 의해 우리에게 공급되어지는 물품은 일상에서 쉽사리 만들어 쓸 수 없는 것이 허다하다

옷, 신발, 가방에서부터 치약, 샴푸, 세제, 비누등 함성품목들까지

 

하지만 요즘 방송으로 인해 부각된 환경호르몬때문에 그런지 우리 또한 좀 더 실천적으로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대안물품을 만들어 보기로 한 것이다

 

오우 생각보다 돈도 시간도 많이 들었지만

현수, 현주선배와 셋이서 법석을 떨면서 만드니 재밌더라 

 

위의 기본적인 재료 이외에도 파프리카, 적채(보라색 양배추), 무순과 브로콜리 새싹등등을  사서 즙을 냈다

왠만하면 플라스틱 용기를 사용하기가 꺼려져서 양철로 된 컵등을 사용했다

양철컵에 비누베이스를 저어서 녹이고 글리세린 반 컵, 천연비타민 E 다섯방울, 라벤더 오일은 한, 두 방울만 넣었다

라벤더 오일은 양이 적기도 했지만 향이 아주 강하기 때문에 한 방울만으로도 족하다

그리고 라벤더는 안정을 시켜주고 숙면에도 도움을 주고, 천연비타민 E는 여성에게 좋다고 한다

 

참고로 말하자면 비누베이스나 파프리카 등의 향은 인위적인 무언가가 들어가지 않아서 그런지 향이 좀 역하다

그래서 라벤더 오일이나 레몬같은 오일 한 방울 정도를 넣어주면 좋다

 

*적채 같은 경우는 알칼리성이라 그런지 비누베이스에 넣으니 보랏빛이 녹색으로 변해 버려 만들던 세 명이 기겁을 했다

파프리카도 주황색을 넣으니 비누로 굳혔을 때는 예쁜 노랏빛이 났다

 

그렇게 녹여 섞은 비누액을 담을 틀이 없었기에 종이컵, 두유 종이팩 등에 넣었다

실리콘 틀을 인터넷에서 팔았고 편리하긴 했지만 그냥 생활에서 찾아 쓸 수 있는 것으로 대체했다

 

그리고 방금 전에 일어나서 떼어내어 보니 종이컵이 확실히 편한 것 같다

찢어 버리면 코팅되어 있는 종이 탓에 깔끔하게 떨어진다-이 부분에서 컵이 참 아까웠지만 ㅜㅜ-

그리고 두유통이나 팩에 들어있는 것은 아직 어찌 꺼낼 지 좀 난감하다

다시 재활용을 할 수 있는 방향으로 해야겠다

 

 

음 틀이라던가 계량컵등을 준비하지 않아도 훌륭하게 비누를 만들 수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합성물질이 들어가지 않아 몸에도 무해하다는 것이 장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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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정기적으로 대안물품을 만들 예정이니

도움주실 분이나 함께 만드실 초보분이 있어도 좋을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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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스터디

채식모임에 처음 나가게 되었다.

영화 스텝 한 명의 친구가 운영하는 스터디라 참여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우연히 미디액트 수업을 진행했던 조교님을 보고 뜨악(수료를 못했기 때문)

 

이제 막 채식을 시작한 사람도 있었고,

나처럼 두어달 된 사람

5년째에 접어든 사람

8년이나 해 온 사람..

 

발제를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겨레 신문에서 채식에 대해 다루면서

"백 명의 채식주의자들에게는 백 가지의 채식주의가 있다"는 말이 생각났다.

그만큼 방법도 다양하고 이유도 다양했다.

 

생태주의자이면서 에너지 등에 대한 대안으로 시작한 사람도 있었고

동물에 대한 차원으로, 건강에 대한 차원으로

그리고 나처럼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의 차원으로 시작한 사람

 

모이니 즐겁고 신났다

 

저녁에는 점심에 먹고 남은 각자 싸온 도시락과 옥수수, 떡 등을 놓고

수다를 떨며 먹었다

 

많이 배우고 많이 느끼고 재미있었다

 

나도 점점 더 신념이라는 것을 굳히고 공부를 하게 된다면

뭔가 더 안 먹게 되겠지

하지만 그렇게 되더라도 지금의 즐거운 마음을 잊지 않아야겠다

 

운동이 필요한 이유도 내가 운동을 하는 이유도

그리고 채식을 하는 이유도

모두 즐겁게 자본에 휘둘리지 말고 중심잡고 살아보자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학내의 채식모임을 다시 활성화시켜보는 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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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채식에 관심있거나 같이 하고싶고

시간이 되시는 분이 있다면 학교(세종대)에서 일주일이나 이주에 한번씩

같이 하면 좋을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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