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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9/29
    나의 욕망은,(3)
    은수
  2. 2006/07/31
    성폭력을 노래한다?(14)
    은수
  3. 2006/05/29
    다시
    은수
  4. 2006/02/26
    그럴지도 모르지
    은수
  5. 2006/02/21
    (3)
    은수
  6. 2006/02/20
    ..........
    은수
  7. 2006/02/19
    왜 이렇게
    은수
  8. 2006/02/18
    뮌헨
    은수
  9. 2006/02/18
    또 누군가를(1)
    은수
  10. 2006/02/15
    겨우 하나,(3)
    은수

나의 욕망은,

며칠 전 <여성의 근대, 근대의 여성>을 텍스트로 이야기가 오고갔다.

 

나혜석, 윤심덕과 같은 신여성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그동안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냥 이름만, 그리고 그 유명한 동반자살설 정도는 어디서인가 본 정도.

책을 보고

그녀들을 자아분열로 몰고 가게했던 고통과, 사회적 비난들은

단순히 그녀들에게 '부르주아'의 계급적 특권 딱지를 붙이기 전에

다시금 신여성과 근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근대성 규정에 대한 페미니즘적 제기에 대해선 좀 더 고민해봐야겠지만.

 

문제는 '된장녀'와 관련된 것이었다.

지난 시간, 나는 된장녀 논란에 대해 여성에 대한 비난이라는 측면이 강하지만

요즘 20대가(남/여 할것없이) 미국의 중산층을 모델로 삼고 일종의 신분상승을 꿈꾸며

그들의 옷, 그들의 가방, 그들의 커피까지도 동경하는 현실에 대해 비판적이라고 말했다.

그들 개인에 대한 비난보단, 그렇게 만드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어쨌든.

 

그런데 한 친구는 지난 시간 내 말이 '불편했다'고 털어놓았다.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난 내가 된장녀라고 생각해."

그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격이 있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 '된장녀'논란을 이야기하면서도

내가 아닌 '타자', '사회적 현상'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었으니까.

 

친구의 말을 간단하게 요약해보자면, 이러했다.

"난 명품 보면 예쁘고 갖고 싶고, 나중에 돈벌면 갖고 싶은거 다 살꺼야.

예뻐지고 싶어 성형수술 할까도 생각했어. 그런데 그게 왜 잘못됐지?

여성주의하는 사람은 그렇게 하면 안되는거야?

넌 욕망이 없니? 그걸 억누르면서 살아야한다면 고통스럽지 않니?

난 자기 욕망을 긍정하고 실현하는 여성주의자가 되고 싶다"

 

 

자기 욕망이라. 자기 욕망이라.

그 문제에 대해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실은 하루에도 몇번씩 생각하고 있는지도.

운동을 하면서는 일종의 '윤리의식'과 '자기검열'로 억눌렀던 부분도 있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어떻게 보였을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만나면 부담스런 친구들을 끊어가면서, 나 자신을 통제했던 적도 있었다.

견물생심이라고 안보면 욕망도 안생기는게 사람 마음이니까.

나한테는 그게 차라리 맘 편한것이기도 했다.

 

지금도 여전히 개인들의 욕망을 집단적으로 획일적으로 생산하고 부추기는 건

자본주의의 사회적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나의 욕망'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을 해봐야겠다.

정이현의 소설을 가장 좋아하는 그녀와 나의 '차이'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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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을 노래한다?

  plsong.com의 민중가요 감상실에는 Deadly TaeKwonDo bOi 라는 밴드의 곡, 8곡이 올라와있다. 그런데 그 노래를 클릭하는 순간 나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이지 이렇게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떨리고 있다. 노래의 가사를 보고 싶은 분들은 아래 '계속보기'를 누르셔도 좋다. 공개된 포스트라 단지 제목을 보고 클릭했다는 이유로, 저런 온 가사가 성폭력적이고 여성비하적인 노래를 봐야만 하는 것도 또다른 폭력일테니까, 보기 싫은 분들은 보지 않으셔도 좋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이런 노래가 마초들을 비꼬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으로 정당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후배가 하는 원맨밴드인데요.. 마초이즘에 물든 극우펑크밴드(를 포함한 모든 마초들;)를 비꼬는 노래라고 하더라구요;; 곡조의 우울함으로 가사를 반어적으로 해석이 어쩌고... 사실 진짜 녀석의 생각은 저도 잘 모릅니다만...ㅡㅡ;

-답글 중

 

노래의 참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 당신들도 그토록 싫어했던 꼰대가 됩니다. 단어에 집착하지 맙시다. 단어는 기호에 불과한데..

-답글 중


마초들을 비꼬기 위해서 이런 성폭력으로 가득찬 노래를 불러야만 한다는 것인가? 그것이 표현의 자유와 가사의 반어적 의미로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 이 노래가 올라온 이후, 감상평에는 많은 사람들의 문제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감상평에도 여러 답글을 통해 여성동지들이 '불쾌감'을 토로하며 삭제를 요청하고 있고, 요청게시판에도 삭제요청 글이 올라와있다.


Deadly TaeKwonDo bOi 노래를 삭제해주시기 바랍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노래 제목과 가사가 성폭력적입니다.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노래 제목,여성을 비하하는 욕설로 가득찬 노래 가사. 민중가요 감상실을 클릭할 때마다 마주쳐야 한다는 것이 정말 불쾌합니다. 이 노래 속에서 쏟아져 나오는 가사들을 듣고 모멸감을 느끼게 될 지도 모르는 여성 동지들은 생각도 안 하십니까?

-김재영 님의 글 중


그러나 피엘송닷컴의 운영자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번은 쉽지가 않군요. 삭제하지 않는 쪽으로 마음이 굳혀진 것은 창작의도에 더 많은 비중을 두었기 때문입니다.저를 반여성주의자, 마초 라고 비난하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여성주의에 입각하여 해석하면 들을만한 노래가 별로 없을 것입니다. 많은 노래들이 가사를 수정하여 재녹음되지 않은 노래들이 많으니까요.물론 정도의 차이, 노골적인 가사 등의 차이가 있지만요.님이 예로 드신...'노동형제'라는 단어가 들어간 노래들이 '노동동지'로 바뀌어 불리우고 있을지는 모르나, 바뀌어 녹음된 노래는 없습니다.오래된 음원이기 때문이죠.문제제기를 하시려면 과거 음원들까지 모두 문제제기 하셔야 하는 것이 맞다고 말한다면 제가 오버하는 것일까요? 운영자 입장에서는 그렇습니다.과거 음원에 대해서도 분명 같은 문제제기가 가능하고, 그것을 삭제하는 기준을 세우는 것은 매우 주관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다행히 PLSong.com에서는 창작자의 요청 또는 창작자와의 협의를 제외하고는 노래를 삭제한 적이 없습니다.이번의 경우에도 그런 맥락을 이어가려고 합니다.불쾌해 하는 많은 분들이 계시다는 것이 미루어 짐작되지만, 운영자의 입장을 이해해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결국 많은 여성들이 이 가사를 보는 것만으로도 불쾌감과 모멸감을 느끼고 있는데도, 그래서 삭제 요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첫번째로 창작의 의도가 마초들을 비꼬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여성주의에 입각하여 해석하면 들을만한 노래가 별로 없기 때문에, 이 노래는 여전히 민중가요 감상실에 떡하니 버티고 있다. 그리고 지금 이순간에도 클릭하고 성폭력적 가사에 놀라는 사람들이 또 생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노래와 그를 둘러싼 반응들을 보면 나는 두가지 사건이 떠오른다. 첫번째는 잘 알려진 고 윤금이씨의 사진전시와 관련된 논의이며. 두번째는 잘 알려지지 않았기에 조금 길게 서술해보겠다. 학내 강의실 성폭력(교수들의 언어 성폭력)에 대해 반대한다는 한 진보단체의 학생들이, 교내 곳곳에 교수들의 언어성폭력 문구만을 피씨로 써서 거는 일이 있었다. 두가지 사건의 공통된 점은 바로 이것이다.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좀 더 '자극적인' '적나라한' 사진/문구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보를 자처하는 그들이 한 행동은, 그러나 동시에 수많은 여성들에게 사진/피씨를 보는 것만으로도 불쾌감을 불러일으킴으로서 또다른 성폭력을 재생산하고 있었다. 

 

피엘송닷컴의 노래 역시 마찬가지이다. 나는 그 밴드가 성폭력에 반대하는 사람들인지조차 의심스럽지만, 여성을 성적으로 비하하고 대상화하며, 온갖 욕설이 난무하는 이런 노래는 어떤 식으로 어떤 위대한 목적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또한 지금 그 노래가 민중가요 감상실에 등록이 되어있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여성들에게 불쾌감과 성폭력의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노래는 즉각 삭제되어야 한다. 그것이 더이상의 성폭력의 재생산을 막아내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사과를 요청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하자면, 피엘송 운영자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기존의 민중가요는 反여성적인 내용들로 가득하다. 비단 '노동형제'로 상징되는 여성배제적인 가사 뿐만이 아니라, 여성은 오직 모성이데올로기를 상징하며 전형적인 성별분업을 반영하는 노래들을 곳곳에서 볼수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노래가사를 바꾸어 부르는 작은 실천으로부터, 반여성적인 가사와 그것을 부르는 민중가수에 대한 문제제기를 끊임없이 해온 동지들이 있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그러한 문제의식을 확장시키는 실천이지, 그것을 '과거의 것'으로 묵인하는 것이 아니다.



지랄 떨어봤자 너넨모두 병신
빨간옷 입은 새끼들은 모두병신
친북좌익 새끼들도 모두모두 병신
레즈비언 썅년들도 모두모두 병신
씨발년 너 말이야 너

-국가폭력 기념일

 

남들이 나를 섹스머신이라 부르지
하지만 난 여자 가슴도 만져보질 못했네
남자가 되려면 사창가에 가야해
그전에 사람이 되려면 군대도 가야하지
사실 난 엠티가면 떼씹한다길래 대학도 갔어
하지만 떼씹은커녕 가슴도 못 만졌지
-사나이 여자 가슴도 못 만졌네

 

나는 남자라네 나는 한다면 하는 사나이 강간을 하고 도망간다네 하면 된다 배추란 포기를 셀때나 하는 말이다 나는 남자라네 강간을 하고 도망간다네 나는 존나 강한 사나이 나는야 진짜 사나이 강간을 하고 도망간다네 나는 남자라네 나는 한다면 하는 사나이 강간을 하고 도망간다네 하면 된다 배추란 포기를 셀때나 하는 말이다 (chrous) 나레이션: 사나이 대장부 이땅에 태어나서 못할게 그 무얼쏘냐 무지한

-나는야 한다면 하는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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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그의 닥달(?)에 못이겨 블로그를 다시 열었다. 모두 비공개로 해놓은 글들을 보면서 안지우길 잘했구나, 짧은 생각이 스쳤다. 힘들었던 환경들과 단절하고 싶은 마음만으로는 다시 출발할 수 없을테니까. 힘들었던 나도, 자랑스러웠던 나도, 숨기고 싶은 나도, 모든 것이 나의 흔적이고, 언젠가 딛고 올라갈 거대한 벽이기도 하다.

 

어쨌든 그는 내가 공부 많이 해서 이 곳에 차곡차곡 쌓아두길 바라는 것 같다. 난 귀찮아서 싸이에 대충 때우려 했지만, 뭐 결국 그의 말이 맞는 것 같다. 이렇게라도 진보넷 블로그에 한번씩 더 들어오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글을 보면, 나와 세상의 통로가 다시 열리는 셈이니까 말이다. 벌써 그렇게 세달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사실 내 감각은 점점 무뎌지고 있다. 사상과 신념은 실천 속에서, 논쟁 속에서, 조금씩 날카로워지고 또 강해지는 것이기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무뎌지고 있다. 그도 이런 점을 걱정하는 것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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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지도 모르지

...그럴지도 모르지, 그렇겠지.

그런 끝도 없는 상상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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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고 있는 사람에게 문제는 언제든지 나의 신경을 곤두세울 선인장의 가시다

품안에 있는 선인장은 조금만 운신을 잘못해도 예민하게 온몸을 찔러댄다 

가시 하나하나가 여전히 빤히 고개를 쳐들고 응시하고 있으니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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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을 수 없는 것. 결코 잊을 수 없는 나의 아픈 과거. 그는 변하지 않았다. 전혀 변하지 않았다. 나에게 상처를 준 시간만큼, 또다시 가해를 저질렀음을, 나는 오늘 다시 알게 되었다. 난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아니면 이건 진짜일까? 막상 그 애가 저지른 짓을 듣고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내가 고통받았던 시간들이 단지 나만의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는데. 내가 지금 흘리는 눈물은 무슨 의미인걸까. 그래도 한때나마 달라질거라고 품었던 희망이 무너지는 건지. 아니면 인간이 변하지 않음을 느끼고 한탄하는 건지. 미칠 듯한 기분이다. 미칠 것 같다. 그 애로 인해 날려버린 내 대학생활과 내 인생을 미친듯이 부정하고 싶다. 미친듯이.....

 그리고 또 왜 나에게 계속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는 건지 나는 알 수가 없다. 왜 자꾸 내가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가치가 부정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 건지. 왜 나에게만.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난 정말 죽고. 싶다.

 2년전과 지금은 달라진게 없다. 징그럽도록 똑같다. 상황은 사람들은 모두 내편이 아니다. 곱지 않은 시선과 감정 따위로 얼그러진 모든 것들이 똑같다. 똑같다. 정말이지 벗어나고 싶다. 왜 내 사생활이 그따위로 왜곡되고 짓밟혀야 하는지. 그럼에도 난 사과조차 받을 수 없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꿋꿋이 이어나갈 수가 없다. 나는 정말 없다. 더 이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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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무엇 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힘만 빠진다. "유독 너에게만"이라고 했던 그 말이 맞아떨어진 것처럼 재수가 옴붙은 것처럼. 자꾸 스스로에게 낙인을 찍고, 어쩔 수 없는 것마냥 힘이 빠지고 있다.

 근 한달을 고심해서 단 1분만에 집에다 메일을 보내버린 걸 보면 나는 참 성의없는 인간이다. 나의 성의없음 때문인지 자신이 원하는 결과가 아니기 때문인지 아버지가 분노하고 있지만. 설득할 힘도 대답할 힘도 나질 않는다. 될 대로 되라지. 날 더러 어쩌라는 거야.

 작은 시선조차도 민감하게 느껴진다. 넌 왜 날 보고 있지,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거지,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뭐 때문인데. 피해의식에 사로잡혀서 멍하니 땅만 쳐다보다가. 할 말도 의욕도 사라졌다. 열심히 해도 의미가 없다는게, 그 한마디가 나를 털썩 주저앉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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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

 

 

-집에 틀어박혀 뮌헨을 봤다. 여러 사람들의 평대로 스필버그가 시온주의자에서 휴머니스트로 돌변한 느낌이 드는 뮌헨. "폭력은 폭력을, 피는 피를 부른다."는 내용이 이 영화의 핵심인듯하다. 그러나 중립이란 있을 수가 없다.  또한 뮌헨의 저변에 깔려 있는 것은 여전히 '가족주의'이다.

 스필버그로서는 용기를 낸 영화일지 몰라도. 적어도 이 문제나 스필버그 영화에 관점이 있는 사람이라면 만족시켜줄 영화는 아닌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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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누군가를

괴롭히고 있는 것 같다.

 

나를 위해서

누군가를 괴롭히는 걸까.

 

그런 위치가 있다고

합리화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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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하나,

겨우 하나,

반쪽자리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난 정말 사회경험이 부족해서 문제다.

 

물건 값도 못깎고

광고전화도 붙들고만 있고

조그만 일에

전전긍긍.

 

하루종일 난리 법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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