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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3/15
    비독점적 다자연애(22)
    은수
  2. 2007/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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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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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7/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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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7/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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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수
  7. 2007/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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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수
  8. 2007/01/08
    오늘 저녁..끄적끄적
    은수
  9. 2006/12/22
    소름끼친다 정말(6)
    은수
  10. 2006/12/21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6)
    은수

비독점적 다자연애

쓰고보니, 이 말 한번 거창하네. '비독점적 다자연애'

다른 말로 표현하면 뭐지, 폴리? 자유연애?

아무튼 저 유식한 표현은 <아내가 결혼했다>에서 본건데

그냥 '비독점적'에 꽂혀서 쓰는것 뿐이다.

 

아무튼.

내 애인이, 그는 남자이고 우리는 연애한지 2년 다 되어간다,  

며칠전 '비독점적 다자연애' 에 '동의'했다.

동의라는 말이 막 내가 심하게 요구해서 그런 응답을 이끌어낸것 같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그러니까 최초에 "거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에 대한 물음을 내가 던진 건 맞다.

자세하게 표현하면, "내가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고 하면 우린 어떻게 되는거냐" 뭐 이런 얘기들?

콜론타이를 보면서, <아내가 결혼했다>를 보면서, 우린 배타적 연애관계에 대한 얘기를 많이 나누었다.

 

그러던 중, 내가 "xx이 참 괜찮은 거 같아. 넘 예쁜 거 같애. 막 보고 싶다니까."

나는 사람에게 '관심'과 '호감'을 잘 갖는편인데, 그게 오래가지는 않지만,

암튼 나는 내 애인에게 내가 가진 관심들을 잘 말하는 편이라서, 그런 말을 했다.

며칠 뒤에 애인이 나에게 말했다.

"생각해보니 역시 독점적인 감정은 이성애주의, 혹은 일부일처제와 관련이 있는 거 같다"

내가 말한 그 xx은 여자였는데,

만약 '남자'였다면 자신이 속상하고 질투하고 그랬을 것 같은데

xx이 여자라는 사실 때문인지 그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는거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보니,

이성애주의/일부일처제가 배타적 연애, 혹은 독점적 감정과 엄청나게 연결되어 있고,

(다른 '남자'만을 경쟁상대로 느끼도록)

결국 독점적 감정, 사랑이라는 건

태초에 인간 모두에게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이 아니라는 걸 새삼 느꼈다는거다.

 

내가 보기에 애인은 이런 단계를 거쳐거쳐, (머릿 속에 더 많은 생각이 있었겠지만)

"니가 다른 사람을 사귀더라도 괜찮을 것 같아. 그 사람 역시 연애관계를 독점하려 하지 않는다면"

라고 말했던 것이다.

물론 현재 나에게 연애할만큼의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 '또' 있는 건 아니지만

지금 당장 '비독점적 다자연애'를 실행할 수 있는것도 아니지만

그냥 기분이 좀 신나서, 주변인들에게 얘기를 했다

그랬더니 사람들의 반응이 아주 가지각색이었다. 진짜 재미있다.

 

-차라리 바람을 피우지 그래. 왜 꼭 넌 '연애'를 하려는거니? 힘들지도 않아?

-육체적 관계가 필요하면 원나잇스탠드를 해라.

-걔(내 애인)가 널 너무 좋아해서 마지 못해 해준 거 아냐? 걔도 참 (너같은 여자 만나서) 안됐다.

-걔가 동의해준건, 걔한테 다른 사람이 생겼다는 의미일 수도 있어. 보통 남자들이 자기 바람나면 부인한테 관대하잖아. 의심해봐.

-너 지금은 그렇게 말해도 일단 '다른 사람' 나타나면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절대 못해.

-하면 나한테 꼭 말해줘, 너무너무 궁금해.

-여자? 남자?

-걔가 동의해준건, 걔가 남자라서 그래. 자기가 그래도 first라는 거지. 다음 사람은 second고.

-걔 이제 군대가지? 위기감 아닐까?

-셋, 혹은 넷이서도 만날꺼니, 그건 정말 비추다.

-넌 진정한 폴리가 아니야.

 

 

하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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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

늦은 밤이었다. '그 사람'에게서 온 전화였다.

그 시간에 그 사람이, 게다가 군대에서 며칠 안되는 휴가나온 사람이,

술을 먹고 전화했을때, 난 직감할 수 있었다.

그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지를.

빙빙 돌려 한시간 동안 얘기했지만, 처음부터 알수가 있었다.

 

오랫동안 정말 진지하게고민해왔다.

"난 왜 그 사람을 싫어하는가"

이유는 정말이지 여러가지가 있었다.

 

'그 일'에 얽혀있다는 것, 그 때 그의 입장의 문제?

그것만으로는 절대 설명할 수 없는 거였다.

 

그 사람은 너무나 똑똑하다.

요즘따라 '똑똑'을 남발하는 경향이 있지만,

정말 사전적 의미에서 그 사람은 머리가 잘났다.

그런데 왜 그 사람은 여성주의에 그렇게 관심이 없을까.

왜 그 사람에게 여성주의는 늘 이차적인걸까.

내 주변에 다른 남성들은 그래도 '노력'하는 남성들인데,

왜 그 사람은 그 노력조차 안하는 걸까? (못본건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사람이 말할때 난 마치 레닌전집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언제나 당당하고 자기 확신에 차있으며 논리적이면서도 거칠고 배타적이다.

내가 그 사람에게 정말 제대로 '논박'할 수 없다는 걸 몇차례 느꼈을때

내가 언어가 없기 때문인건지, 논리가 없기 때문인건지, 아니면 내 생각자체가 틀린건지

불쾌한 감정을 설명할 수 없는 그  상실감이 나에게로 오지 않고,

그 사람에게로 가서 '싫어한다'가 되었을런지도 모른다.

누구말대로 '말해도 변하지 않을 걸' 아니까, 더 이상 말하지 않게 되었을런지도.

사실 그 사람은 '전형적인 운동권 마초' 스타일은 아닌데도

자꾸 그 사람에게 그런 원망과 분노들을 투사시켰던 것 같기도 하다.

 

그 사람은 나에게 "넌 정말 똑똑하다"고 아주, 자주 얘기했는데.

생각해보니 한편으로 난 누구보다도 그 사람이 날 인정해주는게 좋았던 것 같다.

그 사람은 "내가 다시 운동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

자신 역시 나에게 '두 가지 감정'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에게 불만스러운 지점은

"내가 지나친 '인정욕구'를 갖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운동을 할때 어떤 측면에서 필요한 "'희생적인 태도'가 나에게는 없었다는 것"이다.

 

역시, 그 사람은 머리가 너무 좋아 사람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파악하고

또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줄 안다.

그래서 난 그 사람이 싫으면서도, 그 사람이 좋았던거다.

난 너무나 '인정욕구'가 강하다. 모든 사람들에게 있는거지만, '유난히' 강하다.

그게 나를 지금까지 이렇게 성장시켜온 동력이기도 했다. 한 측면에서는.

하지만 때때로 보다 자주, 그게 나를 너무 힘들게 한다는 걸 나도 잘 알고 있다.

나처럼 자의식이 강해보이는 사람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건 다들 잘 모르지만.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나를 거꾸로 지배할때,의 그 기분 말이다.

난 끊임없이 망상을 만들어낸다.

내 스스로 만들어낸 언어, (저 사람들은 나를 이렇게 생각할까?)

언어가 실재를 만들어낸다. (저 사람들은 나를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 때 또 다시 발동되는 인정욕구, (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다)

그런 악순환.

정말이지 단순한 진리지만, "모든 사람에게 인정 받을 수는 없잖아?"

근데 왜 나는 편하게 마음을 먹지 못할까.

웃긴건 그렇게 '인정'받고 싶어하면서도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희생적' 태도가 나한텐 없었단거다.

(쓰다보니 '희생'이라는 말이 굉장히 거슬려서 설명하고 싶은데 잘 못하겠고

난 그 사람이 무슨 뜻에서 그런 얘기를 하는지 알겠다.)

아니다, 또 생각해보면 그런 노력을 안해본건 아니네, 결국 실패했지만.

 

아무튼 그 사람과 통화하고 또 다시 우울해졌다.

맞다, 그 사람이 싫은 이유 중의 또 하나에는 그 사람과 만나면 우울해진다는 게 있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보통들 하지 않는 말들,

당신의 단점, 당신에게 부족한 점들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까발려서

'나의 현재상태'와 직대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분석은 하나하나 틀린 것이 없어서

그 사람에게 기분이 나빠지는게 아니라, 내가 우울해졌던 것 같다.

이번에도 며칠, 보다 오래 가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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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을 할 수 있었던 걸까

오늘 내가 아는 한 선배가 군대를 간다.

지금쯤 논산으로 향하고 있겠다.

어제 마지막으로 그를 만났는데 우연히 머리 깎는데까지 따라갔다.

참으로 기분이 묘했다.

 

그는 초조하고 불안해보였다.

스물여덟의 나이, 때문은 아닌 것 같다.

 

그는 군대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알 수 없는 모든 것을.

 

어제 한 언니랑 

정말 내가, 언니가, 남자로 태어났다면

진지하게 병역거부를 고민하지 않았을까

그런 얘기를 나누었는데.

 

'그'라고 해서, 그가 '남자'라고 해서

난 괜찮을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그러면서 후회가 되었다.

군대가는 그에게 <대한민국은 군대다>와 같은 책을 권한 게 과연 잘한 일인걸까.

남자친구가 "군대가기 싫다"고 말했을때 그저 어리광 정도로 받아들인 것도

후회가, 되었다.

 

그래도 오랜기간 운동을 하고 여성주의를 접한

'그' 남자들에게

그 남자들이 군대를 갈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 

 

박노해의 '썩으러 가는 길' 같은 시가 더 싫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그런 구절 때문만은 아니다.

누군가의 인격을 파멸시킬 수도 있는 그 공간에서

운동적 관점에서 인내하고 노동의 의미를 배우라는

그 말이 더 싫다. 싫다. 싫다.

 

도대체, 난, 무슨 말을 할 수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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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소 계획

이번 주 일요일엔 대청소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어쩌면 토요일에 술을 거나하게 먹고 일요일 하루종일

방바닥에 붙어있을지도 모르겠단 불안감이 엄습 중...-_-;

 

자취를 한지는 올해로 5년이 다 되어가지만

혼자 산지는 8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룸메가 없이 혼자 사는 건 여러모로 편하기도 하고

내가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난다 등등

그래서 '자기만의 방'이 있다는 안도감이 있지만.

가사노동에 한해서는 같이사는 사람 때문에라도

치워야'만'하는 일이 없다는게 문제다.

 

내가 나갈 때 어질러놓은 방 꼬라지를

집에 들어와서 불을 '탁' 켜는 순간 보면 한숨이 휴-나온다.

지금도 대략 그런 상태다.

문제가 뭘까? 며칠전에도 대충 치웠는데.

 

그러고보니 '책상'이 문제 같기도 하다.

일본가서 가져온 자료집이 아직까지 무진장 쌓여있으며

벌금으로 걷어놓은 100원짜리 동전들이 널부러져 있고

아무튼 더러움의 근원은 책상이라고 비난하려는 순간

돌아보니 침대도 엉망이긴 마찬가지다.

화장품이랑 디카가 왜 침대위에 있는건데 내가 못살아 아아-

게다가 베란다에 방치해둔 식물들이

무지하게 초췌한 꼴을 하고 있는 걸 보니

진짜 문제는 나다 싶다.

 

일주일 전인가 그와 전화통화를 하다가

"집에서 어머니에게 가사노동을 전담시키는건

파출부를 고용하는 것보다 더 나쁜 짓이야

왜냐하면 어머니에겐 최소한의 비용조차 지불하지 않으니까

(완벽한 부불노동이다)"

라고 그의 가사노동 그리고 출가를 '종용'했는데(출가를 하면 어쩔 수 없이라도 하게 된다)

(근데, 파출부라는 말 쓰면서도 찝찝해서 찾아봤더니

보수를 받고 출퇴근을 하며 집안일을 하여 주는 '여자'로 되어 있다)

 

생각해보니

어쩌면 내가 가사노동을 하기 싫어서 (나도 하는데 너도 해라)

혹은 누가-어머니 같은 존재가  대신해줬으면 좋겠다는 (난 엄마가 없단 말이야)

마음을 그렇게 표현한 건지도 모르겠다고 반성했다.

 

어쨌거나 가사노동은 정말 끝도 없어서

방을 치우고 나면 화장실이 더럽고, 화장실을 치우고 나면 베란다가 더럽고,

베란다를 치우고 나면 부엌이 더럽고, 부엌을 치우고 나면 현관이 더럽고,

이 좁은 집 현관을 치울 때쯤이면 다시 방이 더러워지는 악순환의 구조이다.

 

아무튼 반성의 마음을 진취적인 계획으로 변신시켜서

이번주 일요일엔 기어이 대청소를 하고 말겠다. 빠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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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적 지지

요즘따라 내가 자주 입에 올리는 말 중의 하나는 '정서적 지지'다.

 

운동이든 조직이든 2명 이상은 되야되기도 하지만,

이 사회에서 비주류(어감이 안좋지만-) 혹은 아웃사이더로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정서적 지지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 같다.

 

이렇게 세상을 보고 듣고 느끼는 사람이 나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

누군가는 나와 같은 감수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또 필요한가를.

거창하게 '동지애' 같은 방식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그저 '토닥토닥' 해줄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나는 아마 공간의 이동을 겪으면서 이런 부분을 절실하게 느낀 것 같다.

어디에도 제대로 속하지 못한다는 느낌 때문일까-

어쩌면 누군가의 말대로 '속해야 한다'는 것조차 강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너무 구식이고 고루한 인간이라 그럴런지는 몰라도

여전히 나에겐 그런 문제들이 너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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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호칭이 문제되는 이유

  어제 대우건설 집회에 갔다가 노학연의 '활동가' 2호를 받았다. 받고서 읽다가 어머니에 대한 호칭 문제에 대한 단락을 보고 전에 했던 고민(트랙백-[왜 꼭 "어머님" 일까?] 에 관련된 글)을 좀 더 구체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 싶어, 게시판에도 남기고 블로그에도 남기고.

 

 


 

 

 활동가 2호 잘 받았습니다. 여러가지 이야기할 것이 많겠지만, 저는 대우건설 투쟁글에서 '왜 대우건설 여성노동자들은 어머니가 아닌 동지인가'라는 단락에 대한 생각을 올려보고자 합니다.

 

 

  이 단락의 내용을 제가 요약해보자면 "나이 많은 여성노동자를 어머니로만 인식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데, 이는 보호해주어야할 대상으로 바라보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 같습니다. (제 독해가 잘못된 것이라면 지적해주세요.) 그런데 이 논리에는 상당한 비약이 있고, 사실 정확하게 어머니와 보호라는 개념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여성이라서 보호를 해야한다는 것인지, 나이가 많기 때문에 보호를 해야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어머니라는 정의 자체에 보호해주어야된다는 관념이 있는건지....말이죠.

 

  제 생각으론 '어머니'라는 호칭은 여성을 남성과의 관계, 특히 남성을 중심으로 한 가족관계 속에서만 사고하는 방식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여성은 개인 그 자체로 독립적이고 주체적이며 활동적인 것이 아니라, 남성과의 관계(가족관계)속에서만 의미를 획득합니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들은 독립적인 개인으로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어릴 때는 아버지로부터, 커서는 남편으로부터, 나이가 들어서는 아들로부터 보호받아야 하죠. 그렇지 않은 여성들-결혼을 하지 않거나, 자식을 낳지 않거나, 돌봄 노동을 하지 않으면- '가족을 내팽겨치는 비정한' 혹은 '사회성이 결여되었거나 심한 경우 정신세계에 이상이 있다'고 비난을 받게 되고요. 어느 책에선가 '어머니'는 곧 아버지의 '아내'이기 때문에 어머니 개념과 아내 개념은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의 글을 본적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나이가 든 여성들은 누군가의 '아내'이거나 '엄마'일꺼라고 당연하게 간주됩니다. 그녀가 실제로 결혼을 했는지 아이를 낳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거죠. 나이가 든 여성들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아줌마' '어머니'라고 뭉뚱그려부르는 걸 보면, 나이 든 여자가 '아이를 낳지 않고' '남자와 함께 하지 않은 채' 혼자 살아간다는 것을, 또 그것을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걸 상상조차 하기 힘든 것일런지도 모르죠.
 
   만약 결혼을 통해 가족관계를 꾸린 여성들이 다른 식의 정체성을 갖고(예를 들어 노동자) 활동하더라도, 사람들은 가족과 가족과의 관계는 그녀에게 가장 우선적인 과제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반드시 병행해야만 하는 '의무'로 생각합니다.예전에 이런 얘기를 들은 경우가 있습니다. 결혼한/아이를 가진 여성활동가들은 회의를 할때마다(회의는 보통 저녁시간 시작해서 밤 늦게까지 하죠) 곤욕스럽다고 하더군요. 가사노동과 양육을 위해 집으로 일찍 돌아가면 "활동가로서의 자세가 투철하지 않다"고 비난받고, 밤샘회의를 하면 "집과 아이를 내팽겨쳐두는 여자"로 비난받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같은 연령대의 남성노동자들에게는 최우선적인 것이 '활동'이고 그가 가사노동이나 양육을 병행하지 않더라도 비난 받을 일은 결코 없죠. 그래서 저는 '어머니'라는 호칭 뿐만이 아니라 '아줌마', '아가씨'(아가씨의 대립항은 아줌마죠)라는 호칭들, 유독 여성노동자들에게만 붙는 '아줌마' 조합원, '어머니들'...을 문제삼아야 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식의 사고는 글쓴 동지가 서술해놓은 것처럼 당사자 여성들을 대상화함으로써 여성들 스스로가 주체화되는 것을 막습니다. 그녀들의 노동을 '생계에 절박한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그녀들의 투쟁'만'이 조합주의적이고, 미숙한 것처럼 말이죠. 특히 (나이와 관계없이)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에서 남성 간부(혹은 지도부)들의 태도가 대리주의적인 경향을 띄는 건 이런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덧붙여, 왜 대우건설 여성 노동자들은 '어머니'가 아닌 '동지'인가

 

 대우건설 조합원 가운데 나이가 많으신 여성 동지들이 많으십니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여성조합원 동지들을 보고 "우리 어머니 같은 분"이라고 얘기합니다. 실제로 어머니와 비슷한 연령의 여성 동지들이기는 하지만, 나이 많은 여성 노동자들을 단순히 '어머니'로만 인식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여성 조합원 동지들을 투쟁에 함께 하는 동등한 동지가 아닌 보호해주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여성 조합원들을 투쟁의 주체가 아닌 보조적인 역할로 한정짓게 됩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여성 노동자들의 문제를 고민한다면 '여성 동지들을 보호해주는 것이 아닌, 여성 동지들이 주체적으로 함께 활동하고 투쟁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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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오래된 이들과의 만남은 많은 것들을 떠올리게 한다.

한때는 전부인 것만 같았던 무엇보다도 소중했던 것들,

그것들이 없어도 잘 살고 있는 지금의 나.

상실감과 쓸쓸함을 곱씹어보기도 하고

지나간 시간들을 돌이켜보며 이제는 같이 늙어가, 이러면서 청승도 떨어보고.

 

낯선이들과의 만남은 온통 긴장 투성이다.

누가봐도 어색하고 긴장된 웃음과 대화 속에 있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온몸이 피곤하고 팔다리가 저려온다.

얼마전부터 팔다리가 저린 증세가 계속, 그렇네.

 

 

 

어쨌건 관계를 유지시키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감정 소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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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끄적끄적

 

 

이틀간 집에 처박혀있다가 드디어 오늘은 외출을 감행했다.

이 게으른 인간.....

날씨가 춥다춥다던데 넘 오래 갇혀있다 나와서 그런가 바깥 공기가 선선하니 좋기만 하더라.

하긴, 올 겨울이 덜 춥게 느껴지는 것도 내가 올해 실내에 주로 있어서 그럴런지도 모른다.

작년 이맘때쯤은 성진 농성장에서, 집회판에서 덜덜 떨면서 웅크리고있었던걸 떠올려보면....그렇네.....

 

꽤 늦은 시간이었지만 청계천에도 사람이 많았다...

오랜만에 걸으면서 바람도 쐬고 바깥 풍경도 보고...

늘 느끼는 거지만 서울엔 참 높은 빌딩이 많다.

내 고향이 시골인 것도 아닌데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있으면 왠지 주눅드는 느낌이 드는것 같다.

루체비스타 오늘이 마지막 날인데, '조선일보' 'SK'이런거 광고 제발 좀 안할 수 없을까? 또 자동으로 툴툴댄다...

폰으로 찍은거지만 아무튼...사진 몇 장...

 

 

 

 

좀 걷다가 교보문고로 향했다....

새로 나온 책들을 보니 사고 싶은 욕구가 막 생겼지만, (게다가 요즘 책들은 예쁘기까지 해서 소장욕구가 더욱 생긴다는거 -_-) 주머니사정을 감안해서 참고 다음주쯤 시간내서 서점에 한번 다시 와야지 하고 생각했다.

좋은 책, 글, 글쓰기... 

글쓰기를 잘하기 위해서는 분야를 넘나드는 박식함(물론 많이 알아도 난독증 만드는 학자들도 많지만)과 글재주(이건 어느정도는 타고나는 거 같다)가 있어야하겠지만...요즘 들어 생각하는건 창조적인 사유방식, 발상이야말로 새로운 글쓰기를 만들어낼수 있을 것 같다.

완전히 새로운 감수성이 필요하다.

우주와 이야기하다가  '최후의 만찬은 누가 차렸을까?' 책 얘기가 나왔다. 책 내용과 관계없이 난 책 제목을 보고 또 문득 생각이 들었다. 전혀 다른 물음을 던질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꼭 필요한 것이라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만큼 내가 가진 온갖 고정관념과 편견들을 벗어던져야한다. 내가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곳곳에 습관처럼 배여있는..부르주아적이고, 이성애중심적이고, 남성중심적이며, 비장애인중심적이며, 엘리트적인..기타 열거할수 없는...모든 것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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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름끼친다 정말

 

편두통이 다시 시작됐다. 학원에서부터 조금씩 지끈거리더니 집에 오자마자 서랍을 뒤져 아스피린을 먹었는데도 머리는 여전히 아프다. 집에 오는 길에 소름끼치는 일이 또 있었다. (중요한 건, '또'라는 거다. 또, 또, 또! [낯선 남자에 대한 두려움])

 

퇴근하는 길이었다. 지하철 통로를 걷고 있었다. 이어폰을 꽂고 멍하니 걷고 있어서 지나칠뻔 했지만 분명히 어떤 젊은 여자가 핸드폰을 들고 서성이고 있었다. 그녀는 나와 반대편 방향으로 가려는 듯 했지만 무슨 일인지 선뜻 가지 않고 그 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그녀의 불안한 표정을 보고 뒤를 보니 어떤 술취한 아저씨가 비틀거리며 그녀의 뒤를 계속 따라걷고 있었다. 흠칫했지만 내 마음도 불안해서 갑자기 어떤 용기가 생긴 것처럼 그 자리에 서서 그들을 보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 남자를 보았다. 내 시선을 의식한 것인지 그 아저씨가 다른 쪽을 보고 있는 사이, 그녀는 빠져나갔다. 휴- 나도 이제 그 자리를 떠나도 되겠구나 하며 교통카드를 찍고 나왔다. 술취한 아저씨는 지하철 통로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따라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몇번이나 돌아봤지만 따라오지 않았다. 그리고 5분쯤 기다렸을까, 버스정류장에서 환승할 버스를 타려고 몸을 움직이는 순간 누군가 내 뒤에서 말을 하는 것이 들렸다. 돌아보니 그 남자였다. 미친듯이 소름끼치는 그 순간에 내가 어떻게 버스를 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버스문이 닫히고 버스 정류장에서 여전히 나를 쳐다보며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는 그 남자의 얼굴만은 기억이 난다. 마치 영화속의 한장면처럼, 그 때가...

 

이런 소름끼치는 일들을 얼마나 더 겪어야 '대담'해질 수 있는 것일까. 언제쯤 그녀도 나도 그런 공포들을 겪지 않을 수 있을까. 영원히 불가능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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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며칠전 티비 틀어놓고 설거지하다가 놀란 사건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생떼 쓰고 난동 피우는 애들 버릇 잡는 프로그램인줄 알았더니

드디어 성정체성 개조까지 할텐가..분개했다.

염색체, 호르몬 검사까지 하더니만 이것도 결국은 부모의 탓이다.

아이에게 남성성을 가르친다더니 인형놀이 대신 화살쏘기를 하고 노는 모습을 보여주더라.

군모를 쓰고 총을 들고 있는 아이의 모습 밑에 "여장보이에서 터프가이로 대변신"이라는 글귀가 씁쓸하기만 하다. 도대체 왜 이렇게 폭력적인 걸까, 정말.  

여자가 되고 싶은 남자 아이는 어떻게 '치료' 해야할까라니,  

치료 운운 하는 너네들의 병적인 사고야말로 어떻게 치료 좀 할 수 없을까.

 

 





제6회 7살 여장보이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수건으로 만든 긴~ 머리! 가냘픈 허리에 휘감긴 분홍치마!
게다가 현란한 댄스에 머리를 매만지는 화려한 테크닉까지!
그런데, 이 모든 행동을 하는 아이가, 남자아이라고?
과연, 이런 아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요!

오늘의 주인공! 7살. 여장보이, 서 원
무려 4년 이상 남모르게 속 끓여온 엄마의 제보!!
유치원에서는 패션쇼와 재즈댄스 수업에만 관심갖는 아이.
미술 시간에도 언제나 긴~머리 화려한 장신구를 한 여자그림만 그리는 아이.
집으로 오면 수건으로 만든 긴~머리에 반짝반짝 머리띠까지 골라 끼고
여자물건에만 집착하는 남자아이.
남자친구들과는 멀리하고 여자친구들과만 노는 아이.
정말 여자가 되고 싶어하는 남자아이.
이런 아이, 도대체 어떻게 고쳐야하는 걸까!!!

그래서, 심리! 아동! 성! 육아!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다각적 솔루션 위원회가 꾸려졌다!
전문가들이 보는 원이의 문제는 과연 얼마나 심각한 것일까?

염색체, 호르몬 검사에서 심리검사까지~ 종합적인 모든 검사 결과!!
웃음. 심리. 치료 전문가 투입 결정!!
그리고 아이를 키우는 가정에서 가장 필요한 현장코치 전문가 투입!!
하루아침에 고쳐지지 않을 여장 퍼레이드.
문제 행동에 대해 부모님은 그때그때 어떻게 반응해야할까?
현장에서 잘못된 육아를 즉각적으로 수정해준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서 들려주는 명쾌한 육아해법의 시간.
놓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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