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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 다녀오다

  처음부터 갈까 말까 망설였다. 3박4일이나 일정을 비울만한 여유도 없었고 액수가 꽤 큰 여비도 마음에 걸렸다. 그러다가 일주일 연기되었다. 둘째 아이 초등학교 입학식을 포기하고 학부강의, 사업장 보건교육 일정을 조정하면서까지 가고 싶진 않았기에 못 간다고 편지를 썼다. 

  결국 떠나게 되었다.  이미 평양 간다고 알만한 사람들한테는 다 이야기를 해 놓았기 때문에, 홍실이의 부추김, 어린이 의약품 지원본부측 차장과 통화하면서 마음이 약해졌기 때문, 이유도 여러가지이지만 결정적인 것은 북한 산업보건에 관한 호기심이었던 것 같다.   



이번 방북에서 내가 맡은 역할은 새롭게 시작될 철도성 방역소 지원에 관한 자문이었다.  일하러 간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여기저기 다니는데 시간을 더 많이 쓸 수 밖에 없었다. 

 

#1. 평양에 가려면 심양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타야 한단다. 발안마, 찻집과 같은 우리 말 간판이 신기해서 한 장 찍었다. 공항 한켠에 서 있는 엘지가 만든 대형 티비에선 SBS 쇼 프로그램도 나오더라.  


 

#2. 비행기 갈아타려고 기다리는 동안 부페에 들러 뭐 좀 먹으면서 쉬었다. 이 때 받은 '공화국'이 발급한 증명서와 고려항공 탑승권. 증명서는 나올 때 반납해야 한다고 해서 한 장 찍었다.

 

#3. 고려항공 비행기표는 이렇게 생겼다.



 

#4. 오후 5시 평양에 도착해서 맨 처음 간 곳은 만수대. 이 오른쪽 옆엔 큰 동상이 있고 거기에 단장님이 헌화를 하고 묵념.


 

#5. 둘쨋날 아침엔 만경대를 거쳐 철도성병원에 갔었다. 거기서 방역소장과 한시간 가량 면담을 했고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했다. 이것으로 평양에서의 내 임무는 끝.

 

  한편 방역소장은 내가 평양에서 만난 사람중 가장 인상깊은 사람이었다. 그는 1936년 생으로 강원도 탄광촌에서 태어나 일자무식 광부로 살다가 해방이 되자 초등교육부터 받을 수 있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위생방역의사가 되어 탄광촌으로 돌아가 근무하다가 철도성 방역소에서 반생을 보낸 분으로 북한 철도성 방역의 살아 있는 역사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참고로 북한의 위생방역의사는 남한식으로 말하면 예방의학의사이다. 북한의 의과대학은 구강과, 임상과, 위생방역과, 약학과, 동의학과 이렇게 다섯개 과가 있는데 이중 위생방역과와 임상과만 6년제이고 나머지는 5년제이다.  북한은 예방의학을 중요시 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위생방역과가 가장 들어가기 어렵고 우수한 인재들이 가는 과라고 한다. 

 

 그 나이에 무슨 사심이 있으랴. 우리를 만나러 온 이유에 대하여 퇴임하기 전에 방역소 현대화에 작은 기여라도 하고 싶어서 왔다고 설명하면서 웃었다. 헤어질 때 보니 무릎 관절의 통증이 너무 심해서 다리를 절뚝 거려 마음이 아팠다. 70살이 넘어서 협심증, 고혈압, 퇴행성 관절염 같은 병을 앓으면서도 활기차게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6. 대동강 구역병원, 어린이 의약품 지원본부가 수술방 현대화 사업을 했고 그 결과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속의 종이를 든 분은 개원의로 방북 6차례라는 기록의 보유자이다. 공식직함은 병원현대화사업단장이라는 것 같더라. 오른 쪽에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분은 이번 방북단장님.


 

 

어린이 의약품 지원본부는 이 병원에 상당한 의료장비와 기술을 지원했다. 위내시경, 복부 초음파, 심전도, 폐기능, 일반혈액검사장비, 생화학검사장비 등등. 여러가지 사정으로 활용도가 높지는 않을 것으로 추측되긴 하지만 대동강 구역 주민들이 다른 상급단위 병원으로 가는 일이 줄었다고 말하는 북측 의사의 얼굴에 자부심이 스쳐지나가는 것을 보니 변화가 있긴 있는 듯 하다.

 

#7. 대동강 구역병원의 고려의학(우리 식으로 말하면 한방) 약품 제조실, 병원 살림에 필요한 것부터, 약품제조까지 모두 병원에서 하는 모양이다. 철저한 자급자족 체계.


 

#8. 병원 곳곳에 교육자료가 붙어있다. 한편 '사회주의 의학은 예방의학이다'는 글씨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9. "쉿, 병원에서 떠들지 마세요."

각 층마다 다른 얼굴을 한 고전적인 미인들이 간호사복장을 하고 출연하고 있다.


 

#10. 어린이 영양관리본부안의 비타민 제조공장, 이 설비들도 어린이 의약품 지원본부에서 지원했다고 한다.


 

#11. 비타민 보관장 위에 부착된 '어린이 의약품 지원본부'로고, 관심있는 분들은 후원해주세요!


 

 

#12. 민족식당에서의 저녁식사, 거기선 서빙하는 사람이 노래도 하고 춤을 춘다.

 

 

#13. 세째날 아침엔 선물궁전을 돌아보고 묘향산 보현사 관람. 비석에 희끗하게 보이는 점들은 무엇일까?


 

#13-1 전쟁의 흔적- 총탄자국이라 하더이다.


 

#14. 상점에 들어 쇼핑하는 시간, 네오비아그라라는 게 있길래 한 장 찍었다. 그런데 왜 이리 사진이 흔들린다냐.



 

  상점을 나와 들른 서점에서 귀한 책을 구했다. 북한에서 나온 2004년 판 예방의학 학술지 2권, 그 책을 통해 함흥에서 북한 산업의학분야 학술집답회가 열렸고 주된 건강문제는 콤퓨터사용에 의한 안증상, 진폐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안내원이 관련 서적이 없다고 하여 쉽게 포기한 뻐꾸기와 달리 온 서점을 다 뒤져서 책을 찾아낸 단장님의 내공에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다.

 

#15. 마지막 날 아침은 주체탑과 개선문 관람, 원래 탁아소 방문 계획이었는데 방학이라 취소되었단다. 


 

#16. 개선문 앞에서 찍은 평양 시내 버스, 평양엔 이층버스, 두 대를 연결한 긴 버스, 그냥 버스, 전차 등이 다닌다. 달리는 차 안에선 사진을 찍을 수 없어 평양의 모습을 담지 못해 아쉬웠다. 일행 중의 누군가 말하기를 9.11이후 미국도 그렇다더군.


 

#17. 공항에서 떠나기전 차 한잔 하자고 들어갔는데 민화협 사람이 라면을 시키길래 따라 시켰다. 아쉽게도 '대동강라면'이 아닌 수입제품이었다.


 

#18. 소감?

 

 맨 입으로는 안되죠^^

 

 

#19. 한편

 

 그 짧은 기간, 철도파업이 시작했다 끝났고, 평택 대추리는 침탈위기에 있고, 비정규직 산재예방정책 연구과제는 사회학교수팀이 되었다 하고, 이사간다고 내놓은 집문제는 해결되었다고 한다. 둘째 아이, 붕어는 무사히 입학식을 치루었고 등교 둘쨋날 그린 개구리 그림을 선생님이 칭찬해주었다고 으쓱했다 한다.

 

 그런데 일요일 저녁 두 아이 모두 학교갈 준비가 안되어 있어 왕 짜증난 뻐꾸기, 쇳소리를 내었다. 붕어한테 최후진술을 시켰더니, '엄마 나는 글씨 잘 모르잖어, 그래서 알림장에 쓴 말이 뭔지를 잘 몰랐어'한다. 불쌍한 내 아들. 누리는 훌쩍 거리며 밀린 일기를 쓰다가 잤다.

 

  그리고 오늘 아침엔 감기기운으로 무거운 몸을 억지로 끌고 출근했다. 오후엔 본과 2학년 직무스트레스 강의가 있는데 연신 코를 훌쩍이며 할 생각을 하니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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