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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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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리법석입니다. 애시당초 예상했던 바이지만, 가는 곳 마다 선거포스터에 홍보물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각 후보들이 저마다 내세우는 공약들만 실현되어도 세상은 엄청나게 바뀔 것 같습니다. 공약대로 된다면야, 저는 기표용지에 1번부터 12번까지 잉크가 마를 때까지 죄다 찍고 싶습니다만. 선거가 자판기는 아니죠.

 

한 두 번 속는 장사가 아니라서 이제는 그 공약들이 딱히 신뢰는 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누굴찍을 것인가를 고민하기 보다는 투표장에 갈까말까를 고민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딱히 찍을 후보자도 없을뿐더러 자기들 마음대로 뭉쳤다가 헤어졌다가 나왔다가 들어갔다가 하니 지금 마음 속에 누굴 하나 정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조급하게 서두를 필요도, 호들갑을 떨 필요도 없습니다. 투표날이 지나고 대통령이 선출된다고 하루 아침에 경제가 보일러 돌아가듯 뜨끈뜨끈하게 돌아가지도 않으며, 막힌 하수구가 뻥하고 시원하게 뚫리지도 않습니다. 라이터 불 하나로 세상을 밝힐 수 없고, 성냥불 하나로 온 방을 데울 수는 없습니다.

 

쇼펜하우어란 철학자가 바늘두더지 일화를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찬바람이 부는 어느 겨울날, 바늘두더지 한 쌍은 너무나 추운 나머지 얼어붙은 몸을 녹이기 위해 서로를 끌어안습니다. 그러자 뾰족하게 돋아난 털이 서로의 몸을 찌르게 되고 그 둘은 다시 떨어집니다. 다시 몸이 얼어붙자 서로를 끌어안지만 털이 서로의 몸을 찔러 그 고통으로 다시 떨어집니다. 결국 바늘두더지 한 쌍은 얼어죽고 맙니다. 이게 소위 ‘바늘두더지 딜레마’라는 겁니다.

 

신문을 보는데 눈을 바짝 갖다 댄다고 해서 신문의 작은 글자가 잘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적절한 거리가 유지될 때 신문의 작은 글자가 눈에 선명하게 들어오는 법입니다. 사람과의 관계도, 사물을 바라보는 태도도, 어떤 일을 판단하는 일도 그것과 적절한 거리를 두고 바라봐야 비교적 정확하게 볼 수 있습니다.
술집에 들어가도, 아주 친한 친구를 만나도, 간만에 부모님을 만나도, 생판 모르는 보험외판사원을 만나도 하나같이 하는 이야기는 “누굴 찍을 겁니까”입니다. 죄다 대선 외에 다른 이야기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럴 때는 사람과도, 대선과도 거리를 두는 게 좋을 듯합니다. 어차피 대통령이 당선되면 국민들은 “저럴 줄 알았다”는 탄성을 쏟아내기 마련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후보가 당선이 되어도, 혹은 당선이 되지 않아도 걱정하실 필요없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후보가 당선되면 “나는 저 사람 찍었으니 욕해도 돼”라고 하시면 되고, 자기가 원하지 않은 후보가 당선되면 “저럴 줄 알고 나는 안 찍었으니깐 저 놈은 욕먹어도 싸”라고 하시면 됩니다.

 

인도의 정치인인 네루는 ‘정치는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근데 선거광고를 보면 정치인, 저네들이 울고 자빠졌습니다. 가끔씩 눈물을 닦아주기도 하지만, 이번에는 뭘로 닦아주실지 솔직히 겁부터 납니다. 이번 대선, 너무 걱정하시지도 마시고 너무 깊이 관심을 가지시지도 말고, 그냥 실눈을 뜨고 모르는 척하고 지나치는 게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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