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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02/02
    봉제사와 의사
    공돌
  2. 2008/02/02
    착한 사람이야기
    공돌
  3. 2008/02/01
    공돌
  4. 2008/01/30
    스님과 가수
    공돌
  5. 2008/01/29
    필드형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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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8/01/25
    고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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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8/01/23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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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8/01/21
    곧은 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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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8/01/16
    우이(吳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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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8/01/15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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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제사와 의사

 

찢어진 상처를 꿰매거나 혈관 등을 서로 잇는 일을 천직으로 하는 의사들이 있습니다. 외과의사들이 이런 봉합 혹은 문합하는 일을 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바로 ‘바느질’ 기술입니다. 예전에 ‘성공시대’라는 TV프로그램에서 국내에서 최초로 심장이식 수술에 성공한 ‘송명근 박사’가 소개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좀 더 빠른 수술을 위해 왼손을 사용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담요에다 왼손으로 거의 수를 놓다시피 연습을 합니다. 그것이 결국 많은 사람을 살리는 의술로 발전하는 거름이 되었지요.

이러한 의사들과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이 바로 봉제사입니다. 똑같이 바느질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바느질만으로 의사가 될 수 없듯이, 봉제사들도 봉제로만 진정한 봉제사가 될 수 없습니다. 의사가 해부학을 공부하듯, 봉제사들도 패턴을 알아야 제대로 된 옷을 지을 수 있습니다. 의사는 사람을 살리는 바느질을 하고, 봉제사들은 사람을 살리는 의사들이 입는 옷을 만듭니다.

위대한 기술은 그 자체만 보면 보잘것 없습니다. 그러나 그 보잘것 없다는 기술이 죽어가는 사람을 살아서 걷게 하고, 옷 한 벌로 품위가 나게 만듭니다. 의사는 사람을 살리고, 봉제사는 살아있는 사람을 빛나게 합니다. 봉제가 저임노동이라는 사회적 인식을 깨기 위해 수다공방은 한  발짝 더 도약하려 합니다. 살아있는 사람들의 옷을 만들기 위해, 생명을 잇는 정성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는 2008년이 되기를 간절히 기대합니다.

 

2008년 1월호에서는 2007년까지 오도엽 선생님께서 맡아 주셨던 우리 봉제사들의 이야기들을 이어서 편집장이 대신하였습니다. 수다공방 소식과 참 신나는 소식을 아울러 담았습니다. 올해부터는 회원님들의 글과 소식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려고 합니다. 회원님들의 글과 소식을 기대합니다. 그리고 미싱으로 다져진 손으로 보낸 글들도 대환영, 대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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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람이야기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참으로 많은 시련이 닥치게 됩니다. 거기에 그것을 잘 극복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질펀하게 말하면 독한 국물이 줄줄 흐르는 놈과 물러 터져 질질 흐르는 놈이 있다는 말이죠. 더군다나 힘들 때 잔머리 굴려 요리조리 피하는 사람과 그대로 정면으로 ‘꽝’하고 현실과 맞붙어 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조금만 약아도 두 다리 정도야 뻗고 살 수 있습니다. 근데 그걸 못해서 힘들게 사는 분들, 제 주변에 몇 명 있습니다. 현대인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그래도 제 소신 하나 붙들어 쥐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지요. 이번 호는 그 분들 중 한 분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제 친구 이야깁니다.

 

이 친구, 왕고집으로 세계적인 사람입니다. 일단 제 스스로 지켜야 겠다고 하는 건, 목숨 걸고 지킵니다. 목숨, 참고로 저는 목숨 여러 번 끊겼다가 살아난 사람입니다. 헌데 그 친구 목숨, 여지껏 단 하나였습니다. 대단한 뚝심의 소유자라는 말이죠.

 

횡단보도 파란불은 기본,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쓰레기통 없으면 집에까지 들고 갑니다. 요건 약과죠. 쓰레기를 아예 줍습니다. 육교에 소쿠리통에 돈 넣는 것도 취미입니다. 젓가락, 복주머니, 복조리 파는 외국 젊은 이들, 무슨 청각장애인 기부함을 들고 있는 할머니, 지하철이나 서울역에서 차비달라는 사람. 다 줍니다.
술 취한 사람, 길거리에 누워 있으면 집에까지 보내줍니다.

 

지하도에 할머니, 봇짐을 머리에 이고 한 손에는 신문지 뭉치를 들고 갑니다. 당연히 그냥 갈 수 없지요. 일단 그 친구, 양 손에 봇짐과 신문지 들고 계단을 오릅니다. 어린이가 길 물어 봅니다. ‘자, 다 왔어요. 빨리 들어가세요.’

여기까진 좋다. 착하다고 해두자. 문제의 발단은 이 친구 30살 먹고도 직장이 없다는 사실. 그래서 언제나 논란의 중심에서 빠지지 않았죠.
어느 날, 술자리에 그 친구가 왔습니다. 친구들은 그 친구를 도마 위에 얹어놓고선, 요리 뒤집었다 저리 뒤집었다, 엎었다가 매쳤다가, 끼웠다가 뽑았다가 난리도 아닙니다. 그러다 ‘천사논쟁’, 일어납니다.

“니가 천사가? 뭐 할라꼬......참나.”, “그냥 니는 목사나 스님해라.” “그거 다시 수능봐야 돼서 안된다카니깐.”

 

“점마 보면 내는 술맛 떨어진다” “마셔, 마셔” “니는 술도 안묵나?” “빨리 장가가야지” “부모님 좀 생각해라”. 이 모든 이야기, 그 친구 위해서 한답시고 하지만 사실 면박주는 이야기들입니다.
아, 술? 안먹는 친구입니다. 그냥 친구들이 몰아쳐다는 잡소리에 그냥 광대뼈를 들었다 내렸다 할 뿐 미동도 없습니다. 오히려 제가 이런 얘기 듣는 동안 불편했습니다. 그리고 술자리가 끝나고 먼저 일어나 집으로 간답니다. 그리고 친구들은 밤 12시가 다되어서야 술집을 나섭니다. 계산? 물론 돈도 없는 녀석이 계산을 해뒀습니다. 친구들은 그냥 그런모양이다, 하고 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한 1년 정도 연락이 없었습니다.
1년 뒤 그 친구는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신의 몸을 다른 이에게 기부하고 말이죠. 그리고 친구들은 매년 그 친구와 고등학교 때 노래를 불렀던 그 곳에 모여 그 친구를 회고합니다. “그 때 잘해 줄 껄”하고 후회하면서 말이죠. 지금은 제 친구들, 열심히 봉사활동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 친구의 마지막을 지키려는 것처럼.

“남 돕는 기 피해주는 기 아이면 내는 그거 하는 기 부끄럽다는 생각 않안다. 사람들도 알끼다. 그렇게 저거들도 하고 싶어도 부끄러버서 몬한다는 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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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은 복수학(複數學). 여러가지 학설이 난무하는 동시에, 대립지점이 비교적 명확한 편이다. 

따라서 법학자들은 보통 사고의 유기성이 담보되는 경우가 많다. 바로 이것이 리걸 마인드라는 것이고.

 

법학이 현실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보다, 현실과 경계지점에서 기능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법은 국적을 넘게 되면 사실상 의미가 없기 때문에 자국의 변화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경제학, 경영학과 같은 범용이 가능한 학문과는 달리 굉장히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고 현실을 반영하는데에도 지체가 없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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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과 가수

원공(圓空) 스님. 무작정 걷는 수행을 한다. 그의 몇 마디를 인용해 본다.

 

"달력도 인간이 만든 감옥이야. 올해가 무자년이니 1월이니 며칠이니 따지면서 인간사가 복잡해진 거지."

 

"가다가 적당한 데서 자. 절에서도 자고 교회에서도 자고. 교회니 절이니 구분하는 건 교육 때문이야. 눈감으면 똑같아."

 

"무소유는 있을 수 없어. 저소유가 가능하겠지. 나는 옷이 한 벌밖에 없지만 꾀죄죄하지 않아. 저녁에 빨아서 널어뒀다가 아침에 마르면 마른 대로 입고 덜 마르면 덜 마른 대로 입고. 속옷도 빨아가며 열 달 넘게 입었어. 떨어져야 버리든지 하지. 덜 소유하면 세상은 그만큼 좋아지는 거야."

 

평생의 화두가 뭔지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화두라는 것도 가지고 다니면 무게를 느껴. 화두의 무게조차 놓아버려야 해."

 

가수 김두수. 아는 사람 알고, 모르는 사람 모른다. 그의 노래, 암울하다는 느낌을 압도하는 몽환적인 명상세계를 유영하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러나 그의 노래를 듣고, 몇 사람이 자살을 기도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김두수에 관해서는 아래 링크.

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0712130927581&code=900315

 

그의 말 또한 원공만큼이나 치밀하고 간결하며, 본질의 정곡을 찌른다. 몇 마디 인용해 본다.

 

문: "과거 음원들에 대한 저작권료는 받고 계십니까."

김두수: “그것이 (정말) 궁금하십니까.”

문: "왜 노래 하십니까."

김두수: “‘왜 사세요’라는 질문과 비슷합니다.”

문: "건강은 괜찮으십니까."

김두수: “다들 그런 거 조금씩 안고 살지 않습니까.”

문: "김두수씨의 자존심은 무엇입니까."

김두수: “모든 존재는 자기가 부여하지 않더라도 자존을 갖고 태어납니다. 인위적으로 부여하면서까지 더 생을 복잡하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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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드형 인간

1. 어떠한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연구를 통해 최종적으로 그 연구의 타당성을 실험해 볼 수 있는 것은 방법 중 최상의 방법은 '현장 '에 그 연구를 이식시키는 것이다. 그 최상의 방법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방법은 바로 자신이 그 타당성 실험의 대상이 되는 피실험자가 되는 동시에 실험을 주도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2.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선행연구나 사실조사가 필요할 수도 있으나, 전적으로 현장에 자신을 부빌 태도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현장으로 가서 몸으로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다시 책상에 앉아 현장의 문제를 꼽씹어 보아야 한다. 직관이 빗나가면 문제의 본질과 평행선을 그은 인식이 계속된다. 따라서 직관의 위험성을 끊임없이 견제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현장이다.

 

3. 현장의 문제는 현실적인, 즉각적인 대안을 요구한다. 따라서 군더더기 없는 연구를 위해서라도 현장에서 발생되는 일과 현장 속에 있는 사람들과의 반복적인 만남과 인식의 교류가 필요하다.

 

4. 하나의 현장에만 매달릴 필요는 없다. 하나의 현장에서 비롯된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 문제의 본질을 달리하는 전혀 새로운 현장에서 발견될 수도 있다. 하나의 현장에서 비롯된 문제를 모든 현장의 문제로 결합시켜봄으로서 문제의 본질을 다각적으로 접근해 볼 수 있다.

 

5. 이러한 것들을 위해서는 우선 자신 스스로가 필드형인지를 판단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필드형 인간은 만들어지는 것일 뿐, 필드형에 적합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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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2

 故達人, 當順逆一視, 而欣戚兩忘.

단지 하나다. 내 실력탓은 아닐 것이다. 부족한 역량은 있을 것이다. 그래서 흔들릴 필요는 없다.

 

같은 일을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된다면 그것을 결정하는 사람이 문제가 있거나 그것을 결정하는 사람이 나를 싫어하는 것이 분명하다. 옷에 흙탕물이 튀기기 전에, 진흙탕은 저 멀리 피해서 돌아가는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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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그만두자니, 도움을 준 사람들의 노고에 죄송스럽고.

 

계속하자니, 거지같은 상황에 내 인격을 떨이로 파는 거 같아 속상하고.

 

내가 그리 딸리는지. 딸리는 직장 대가리를 만나 고생하는 건지. 참.

 

여튼 상황이 결정할 시기가 올 듯하다.

 

가장 걱정은 나의 애마에 마누라를 싣고 같이 출근하는 일을 못하는 것.

 

제길, 에이 시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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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은 목지

전태일 노동상 기념패 '곧은 목지'

 

  

 

우리 민족의 옛 이야기 중 아주 처절하고도 아름다운 이야기인 곧은목지 이야기가 있다. 곧은목지란 목이 부러져 붙어버린 목병신을 말하는데 사람을 쳐다보려해도 온몸을 움직여야하고, 물건을 주으려해도 온몸을 움직여야 하고, 길을 걸으려면 눈은 먼곳을 응시한채, 가슴을 쫙 펴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앞만 보고 곧장가는 길밖에 모르는 병신이다.

곧은목지 이야기의 주인공은 '말뚝이'라는 힘이 장사인 노비이다. 그는 매우 우직하고 순박한 사람이어서 주인이 시키는 일을 아무 군소리 없이 척척 해내곤 했다. 그러나 주인이 죽을때가 되자, 무덤에서도 자기를 지켜줄 힘센 종놈이 필요하다며 산채로 말뚝이를 묻도록 했다. 말뚝이는 쇠사슬에 목이 매인채, 주인과 함께 무덤에 묻혀야 할 신세가 되었는데, 우직했지만 뚝심있는 말뚝이는 쇠사슬을 끊고 산으로 도망쳤다. 결국 쇠사슬을 끊으면서 말뚝이는 '곧은목지' 목병신이 되었던 것이다.

산으로 도망친 말뚝이(곧은목지)는 살아남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산속에 숨어서 세상과 노여움을 잊고 살아갔다. 그러던 어느날 곧은목지가 사냥을 나갔다가 추쇄꾼들에게 쫓기는 한 처녀를 구하여 살려주게 되었는데, 그 처녀는 주인놈이 한 노비처녀를 겁탈하려는 것을 구하려다 죽도록 매를 맞고 곳간에 갇혀 있다 도망친 마음씨 곱고 아름다운 노비였다. 그 처녀의 이름은 새뚝이였는데, 캄캄한 하늘에 갑자기 떠오른 샛별같고, 겁먹어 축쳐진 판에 샛바람을 일으키는 소나기 같다 하여 새뚝이라 하였다.

곧은목지는 이 새뚝이를 사랑하게 되고 둘이서 산 속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어했다. 그러나 새뚝이는 자기 때문에 친구와 가족들이 당할 고통에 괴로워하며 어느날 가랑잎에 사연을 적어놓고 산아래 세상으로 떠나가버렸다. 이를 본 곧은목지는 충격을 받아 잊고 지냈던 부모형제와 노비친구들의 고통이 새삼스럽게 생각나 세상으로 내려왔다.

식구들을 찾아나선 곧은목지에게 나타난 사실은 아버지는 매맞아 죽고, 어머니는 산채로 거꾸로 매달려 죽어 까마귀가 파먹고, 여동생은 주인놈한테 강간당한 뒤 딴데로 팔려가고, 남동생은 곧은목지 대신 산채로 묻혔다는 사실뿐이었다. 이 기막힌 혈육의 사연에 눈이 뒤집힌 곧은목지는 피눈물을 흘리며 팔도를 떠돌게 되었다. 이렇게 떠돌다가, 머슴살이하다가 일에 지쳐 쓰러진 채 주리를 틀려 '앉은뱅이'가 된 병신을 만나게 되었고, 둘이 한패가 되었다.

그러다가 또 사지를 제멋대로 흔드는 '(정신)나간이'를 만나게 되는데, 그는 충실한 소작농으로 그가 심부름간 사이에 주인에게 겁탈당한 그의 아내가 임신중인 몸으로 우물 속으로 빠져 죽어버리자 발작을 일으켜 '나간이'가 된 사연을 갖고 있는 자였다.

그는 천하일품의 휘파람을 불었다. 이렇게 한패가 되어 돌아다니다가 곳곳에서 뻐정다리, 곰배팔이, 장님, 귀머거리, 문둥이, 등신까지 다 만나게 되었는데 각기 사연들이 있는지라 울분을 달래는 제각기의 한가닥들이 있고, 그것이 어울리면 신나는 한판이 벌어지곤 했다. 그들 울분패들은 이마을 저마을 사람들을 몰고 다니며 신나는 굿판들을 벌이고 다녔다.

그러자 조정에서는 일부 '병신 불순세력'들이 선동해서 민심을 소란하게 한다고 법석을 떨며, 이들 울분패들을 없애기 위한 병신들의 '호강잔치'를 꾸몄다. 병신들은 좋은 세상되고, 좋은 임금 만났다며 너도나도 호강잔치판으로 신나게 모여들었다. 곧은목지네 울분패들도 거기서 진짜 굿판을 벌일 요량으로 서울로 향했다.

한강 백사장에서 잔치상을 기다리며 와글거리고 있는 팔도의 갖은 병신들 앞에 병졸들이 나타나 잔치상 대신 '잔치 전복음모'니 '유언비어 유포죄' 혹은 '국가기강 문란죄' 혹은 '화해분위기 방해죄'라는 등의 온갖 죄목을 끌어내여 칼을 내리쳤다. 곧은목지네는 '목을 꼿꼿이 세워' 숙일줄 모르니 '나랏님에 대한 불경죄'를 저지른 것이며, 그것이 곧 '화해분위기 방해죄'에 해당되므로 목이 잘리게 될 지경에 이르렀다.

그때 '나간이'의 애간장을 끊어내는 휘파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를 신호로 울분패들이 제각기 악기를 꺼내어 불고 두들기며 곧은목지를 에워싸고 대열을 갖추어 판을 몰아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병신들은 다같이 들고 일어나 한판을 이루어 병졸놈들과 싸우기 시작했고, 병졸들이 몰리기 시작하자 조정에서는 이웃 큰 나라 상전에게 원군을 요청하여 신무기를 든 원군들이 왔다. 원군들과 맞서 싸우다 병신들이 몰리자, 잔치 구경꾼들까지 제 민족이 죽는다 하여 함께 뛰어들어 목숨을 건 싸움판이 전개되 병졸들은 도망치고 원군들은 타향에서 개죽음을 당한다고 울기 시작하자 드디어 천년성(썩은 조정)이 하나로 말려 곧추섰다가 "꽈당"하고 무너져 내렸다. 이 소리에 귀머거리가 귀가 뚫리고, 눈먼 장님이 눈뜨고, 곧은목지가 목이 풀려, 병신들 앞에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몸이 풀린 병신들은 울분패와 함께 앞장서 싸움판에 참여하는 평등한 새나라를 일으켜 갔다.

이러한 이야기에서 유래하는 곧은목지의 팔뚝은 썩은 조정에 항거하여 새 세상을 여는 병신(억눌린자)들의 의로운 힘을 상징한 팔뚝이다.

다른 병신들과 고통을 함께하며 같이 울분과 신바람을 나누고 끝내 억눌림으로부터 해방되는 곧은목지의 이야기는 1970년 11월 13일 청계천 평화시장의 한 청년 노동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못배우고, 굶주리고, 장시간의 살인적 노동조건속에서 병들어가는 평화시장 동료 노동자들의 한을 함께 나누며, 인간적 삶을 위해 조직하고 투쟁한 전태일동지의 모습에서 곧은목지는 다시 살아나온다.

절박한 노동해방의 기원속에서 근로기준법을 태우며 산화해가신 전태일동지의 정신을 곧은 목지의 팔뚝 속에서 새롭게 다시 찾고자 하는 취지로 곧은목지의 팔뚝을 전태일노동상의 기념패로 제작하였다. 따라서 이 팔뚝은 이 시대 노동자의 해방을 향해 앞장서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팔뚝이기도 하다.

 

출처: http://www.chuntaeil.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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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吳儀)

중국 국무원 부총리. 여성이다. 그녀는 작년 12월 24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중국 국제상공 회의소회원 대표대회'에서 자신의 퇴임을 밝히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를 잊어달라. 나는 내년 전인대와 정협(정치협상 회의)이 끝난 뒤 완전히 은퇴할 것이다. 당 중앙에 분명히 밝혔듯이 정부기관이든, 반(半) 정부기관이든 또 대중적 단체이든 어떠한 직책도 맡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여러분은 나를 완전히 잊어달라!"

 

'철의 낭자'라고 불린 우이. 중국의 실리주의 외교노선을 완벽하게 그려내면서도 대국적 외국에서 밀리지 않는 협상력과 담력있는 용기로 타협을 예술로 승화시킨 인물.

 

내 생각은 협상의 기본은 팽팽해야 한다는 것, 이게 가장 중요하다. 팽팽한 상태가 유지되어야 힘을 뺐다가 넣었다가 하는 공학적 기술이 가능하다.

 

하나의 예.

 

우이가 중국 대외경제무역부 부장으로 있을 때, 그 잘난 미국과 지적재산권 문제로 협상을 할 때였다. 당시 중국의 가짜 모조상품 문제가 심각하던 상황에서 미국측 협상대표가 우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지금 도둑과 담판하고 있다."

 

그러자 우이는 곧바로 이렇게 응수했다.

 

"우리는 지금 강도와 담판하고 있다. 당신들의 박물관에 전시된 진열품을 보아라. 그 중 얼마나 많은 것들이 중국에서 빼앗아간 것들인가!"

 

그러나 우이는 70세 여성이지만. 미혼이다. 미혼인지 비혼인지 몰라도,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독신주의자가 아니다. 다만 생활이 나에게 이 기회를 부여하지 않았을 뿐이다. 나는 연애를 해본 적이 없고, 이제까지 한 명도 나의 삶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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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참...이걸 극복하기란 쉽지는 않을 것이다.

 

http://www.hani.co.kr/arti/SERIES/153/26072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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