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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7/12/04
    인연
    공돌
  2. 2007/12/04
    창세기
    공돌
  3. 2007/12/04
    감기몸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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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7/12/04
    짝사랑부터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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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7/11/19
    으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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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7/11/19
    안재성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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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7/11/19
    양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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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7/11/19
    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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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7/11/19
    남재희->이병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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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7/11/12
    아프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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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인연

 

‘인연’이라는 게 참으로 묘합니다. 우리들이 맺고 있는 인연은 몇 천 겁(劫)에 걸쳐 단 한 번 이어지는 거라죠. 그 한 번도 짧은 울림으로 시작됩니다. 우리가 ‘필 꽂혔다’고 하는 말이 그런 것이겠지요. 그게 찰라(刹那)입니다.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겁’은 산스크리트어에서 나온 말인데, 겁이라는 시간은 상상이 가지 않는 시간일 겁니다.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10km 정도 되는 큰 바위를 상상해보세요. 그리고 어떤 한 사람이 그 바위를 비단으로 스쳐서 그 바위가 완전히 닳아 없어지면 그게 1겁이라는 시간입니다.

 

이에 반해 ‘찰라’는 아주 짧은 시간을 말하는데 이것도 상상이 안갈 겁니다. 2명의 남자가 여러 가닥의 명주실을 팽팽하게 당겨 잡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남자가 날이 매섭게 선 칼로 단숨에 명주실을 자릅니다. 그 때 그 한 번의 내리침으로 명주실 한 가닥의 허리가 끊어지는 그 시간이 64찰라 정도입니다. 누군가 그것을 계산해보니 75분의 1초 정도라고 하네요. 계산한 그 분도 대단하십니다. 여하간 1 찰라에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정해지고 바뀐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는 일은 일생에 단 한 번 주어지는 우주 간의 만남입니다. 그 만남의 시작은 순식간에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는 많은 인연을 놓치고 삽니다만. 모든 인연을 감당하기는 어렵기 때문이죠. 그래도 단 하나의 인연은 삶이 끝날 때까지 지키고 살아갑니다.

 

가끔씩 참터의 회원이 되십사 권유하다보면 저에게 이런 질문을 많이 합니다. ‘너 그 일을 왜하냐’고요. 심지어 이 일을 돈받고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물론 수다공방에서 만든 옷을 팔러 다닌 적이 있어 ‘보따리 장수’로 생각하셨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여하간 그렇게 물으면 인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인연에는 나쁜 인연이 있습니다. 나쁘게 맺어진 인연은 평생 서로의 골을 파고 상처를 안기며, 증오하고 복수심에 가득차게 합니다. 나쁘게 맺어진 인연은 번식력이 좋아서 증오에 증오를 낳고, 복수에 복수를 낳습니다. 늘 다가올 인연을 맞이하려면 나쁜 인연부터 청산해야겠지요.

 

참터와의 인연. 모든 사람들은 좋은 인연을 원합니다. 인연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만들어지지만, 사람이 아닌 물건이나 사건, 집단과도 맺어지기도 합니다. 그러한 인연은 과학적인 뭔가도 아니며, 다만 숙명에 가까운, 그 분이 오셔서 맺어주는 ‘계시’에 가깝다는게 제 생각입니다만. 농담같은 이야기 같지만 것도 그럴 것이, 좋게 맺어진 인연도 번식력이 좋아서 또 다른 좋은 인연을 만듭니다. 그렇게 만나고, 또 만나서 하는 일들이 인연이 닿아서 하는 일인데 어떻게 그것을 뿌리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인연이 다가왔다면 오랫동안 유지하고 가꿀 수도 있어야 겠지요. 우리 소식지도 그런 인연을 만들고, 가꾸는 소임을 다하려고 합니다. 한 달에 한 번, 우리 소식지가 회원님들과 참터 식구들 간을 잇는 인연의 실타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달콤한 인연으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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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창세기

 

우리『참신나는 소식』이 횟수를 거듭하면서, 창신동 이야기들은 저에게 각별한 의미로 다가옵니다. 오도엽 선생이 만나는 ‘아줌마’들의 ‘가슴앓이’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점점 불편하게 다가왔습니다. 그 가슴앓이가 그이들의 인생에 성장통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오랜 ‘지병’이자, 삶의 ‘관절염’같은 존재로 늘 자신들을 눌러왔습니다. 그래서 그이들의 삶을 읽으면 읽을수록 답답하고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머리 속에 먹물이 끼어 이제는 씻어도 잘 탈색되지 않는 저 같은 사람은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시다의 고통도, 남편의 폭력도, 외환위기의 충격에도 그이들은 몸부림쳤지만 그런 가시덩쿨을 빠져나오기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이들은 오늘 우리와 함께 살아있고, 함께 웃고 있습니다. 그들을 이해하지 못한 것 중 하나는 삶이 자신을 지치게 할 지라도 포기하지 않는 그 정신 때문이었습니다. 그 ‘정신’은 먹고 살만한 사람들이 ‘잘’ 살기 위해 번지르르한 지식으로 칠갑한 가식덩어리가 아니었습니다. 금방금방 포기하고, 새로운 것에 쉽게 현혹되는 저와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매일매일 ‘나는 살아야 한다’, ‘나는 살아내야 한다’고 주문을 외치며 수많은 절망의 손목을 끊어내면서 시퍼렇게 멍든 손발로 미싱을 돌려야 했던 우리 언니, 누이, 형님, 오빠들.
 70년대 혼돈과 폭압의 역사를 뒤집으면서, ‘나’라는 존재는 ‘우리’의 또 다른 표현이 되었고, 그이들의 몸은 ‘한 몸’이 되고 ‘한 정신’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깨달았습니다. 그이들이 창신동의 ‘창세기’’를 연 주인공이며, 우리 봉제의류 산업의 알파요, 오메가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창신동의 역사는 ‘하얀 손’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미싱바늘에 손가락을 찔려 새 살이 차오르는 고통을 이겨낸 손들이 만든 역사입니다. 그 손으로 조막만한 엷은 가슴이 찢어질 때마다 짜깁고, 또 이어붙이며 이윽고 너덜해졌다고 하지만 이제는 그 마음의 색깔은 오색의 찬란한 모양으로 다가옵니다.

오늘 밤에도 창신동, 아니 미싱 아래 가느다란 바늘에 초점을 모아 한 올 한 올 수를 짓는 이 땅의 모든 창세기 주인공들이 있습니다. 단박에 세상을 열어내진 못하지만 열 번 스무 번 절망을 이겨내며 엮어낸 희망이 비단융단처럼 세상을 빛나게 만듭니다. 그 비단융단같은 세상을 꼼꼼히 지어내는 사람들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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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몸살

감기몸살

 

제 몸을 함부러 다룬 탓일까요. 한 몇 일, 제 몸에 바람이 불고 혹독한 불덩어리가 목구멍을 기어올랐습니다. 아프다는 것은 고통입니다. 고통스러운 시간 동안, 제 몸을 비난하고 미워했습니다. 평생동안 몸과 정신은 서로를 길들여가며, 의견을 맞춰가면서 살아갑니다. 아프다는 것은 몸과 정신이 반목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함께한다는 것이 내 몸에서도 이렇게 어려운데 이 사회는 오죽할까요.


문수사리(文殊師利)가 유마거사(維摩居士)에게 그이의 병이 왜 생겼는지 묻습니다. 그러자 유마거사는 ‘세상이 병들어서 나도 병이 들었다’고 말합니다. 병이 드는 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몸이 제 것이 아닌데 어찌 몸에 드는 고통스러운 물건마저 나만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몸의 병이든, 마음의 병이든, 사회의 병이든 모든 이의 아픔이고, 고통일 때 그 병은 완전히 치유될 수 있습니다.

 

37년 전, 철옹성 같이 버티고 서 한 치도 양보하지 않을 듯한 세상 사이로 제 몸을 불살라 인간다운 삶의 길을 낸 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이의 죽음을 모두의 죽음이라고 생각했고, 결국 모두가 인간으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몇 일전 제 몸이 불덩어리가 된 날, 한 택시노동자가 온 몸에 불을 당겼습니다. 그 또한 우리 민중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흔들 ‘한미FTA’를 반대하여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고 말았습니다. 제 몸을 불살라야 사회적 발언권을 획득하는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일까요. 인간으로서 살아간다는 것, 그것도 함께 살아가기 위해 목숨을 던져야 하는 비정상적인 이 나라가 원망스럽습니다. 그이를 설득할 능력도 없이 한미FTA를 과연 했어야 했는지 의문입니다.

 

열사달력의 매일 칸마다 빼곡히 차 있는 열사들의 이름을 보고 있노라면 갑자기 마음 깊은 곳에서 묵직한 뭔가가 올라옵니다. 그 뭔가는 희망도, 절망도 아닌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시대에 대한 분노심과 배반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분노심과 배반감은 쇳불로 벌겋게 달아오른 채 좀처럼 삭아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죽음으로 근근히 획득한 ‘사회적 발언권’을 통한 생존의 소리를 현 정부가 듣고 있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감기몸살에는 걸리지 않았는지, 그런 ‘사회적 질환’을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말해도 듣지 않아 생기는 ‘속병’은 늘어만 가고, 들어도 모른 척하는 ‘이명증’은 더욱 심해져가고 있습니다. 감기몸살에 합병증까지. 감기몸살도 정복될 수 없는 병이지만, 이 병을 그냥 방치해 두었다가 큰 병이 되면 수술로도 완치될 수 없습니다.

 

제 몸에는 건강이라는 평화가 다시 찾아왔지만 우리 사회의 평화는 언제 찾아올지 답답하기 그지 없습니다. 이 달의 참신나는 소식을 전하는 마음이 그리 편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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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부터 시작하자

짝사랑부터 시작하자

 

“너랑 나랑 가는 길은 다르지만 한번 끝까지 가보자”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얼마 전 ‘하얀거탑’이라는 MBC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그의 라이벌인 친구에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주인공이라는 작자는 야망에 눈이 멀다 못해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출세욕이 강한 사람이고, 그의 친구는 맹한건지 착한건지는 몰라도 친구의 과도한 출세욕을 경계하지요. 그래서 가는 길이 다를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그렇게 서로의 궁합이 절망에 가까운 수준이라도 친구랍시고 깊은 우정을 과시합니다.
프랑스 속담에 ‘관심은 친구를 만들지만 무관심은 적을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정반대의 인생을 산다고 하더라도 ‘관심’이 있다면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말이겠지요. 저 또한 지긋지긋하게 오래가는, 말마따나 ‘안보면 보고싶고 보고나면 이 갈리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만나면 서로 못잡아서 먹어서 안달입니다. 그렇지만 그 친구들은 참으로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무엇보다 늘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이 식으면 상대방에게 무관심해집니다. 사랑의 반대말이 ‘증오’가 아닌 ‘무관심’이라는 말이 이해갑니다. 상대방에게 끊임없이 관심을 구하는 경지에 다다르면 상대방에게 관심을 얻게 되고 결국 사랑이 이루어지기 마련입니다. 짝사랑 요거 돈 안들고 상대방을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다는 매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여태껏 우리 ‘참신나는 소식’은 명랑하고 즐거운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근데 고민에 빠졌습니다. ‘참신나는 소식’이 친구처럼 여러분 곁에서 잔잔한 소식을 어떻게 하면 제대로 전할 수 있을까하고 말이죠. 이런 고민의 시작에는 반성도 함께 따르더군요. ‘참신나는 소식’을 ‘라면받침’으로 사용했다는 죄책감. 회개하는 마음으로 우리 소식을 제대로 전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면 먼저 짝사랑, 짝사랑부터 하자. 우리 회원들과 독자들을 먼저 짝사랑하자. 관심받기 보다는 먼저 관심을 가지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친구도 되고, 사랑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해서요.
우선 점수를 좀 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참신나는 소식’은 빗질도 하고 옷매무새도 새로 고쳐가며 새단장을 했습니다. 아직은 100만 볼트 ‘삘’이 꽂혀 감전될 정도는 아닙니다.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하나하나 수줍게 가다듬기로 했습니다.

 

여러분을 짝사랑하기로 한 ‘참신나는 소식’, 짬이 날 때면 가끔씩 곁눈질해 주세요. 뜯지 않은 봉투 안에 ‘참신나는 소식’은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숨쉬는 ‘참신나는 소식’, 봉투를 여는 순간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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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흠

뭔가가 새롭게 시작된다는 것이 성취감을 줄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 않을 때도 있지요. 현재의 상황에서 재구성되는 일들이 굉장히 많다는 말씀이고. 그런데 뭔가 계획한 것이 돌파되지 못한 상태가 익숙않다면, 조급해하고, 실패한 느낌에 좌절하기도 하지만 그건 일시적인 상태에 불과한 것이고.


물론 그러한 어정쩡하고 불쾌한 느낌, 허탈하면서도 불안한 심정은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정확하게 평가해본 적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구요. 다른 사람과 나를 현재의 지점에서 상대적으로 평가하게 되면 더욱더 그런 느낌이나 생각이 강하게 들지만 그러한 비교가 자신에게 앞으로도 별 도움이 안된다는 사실을 알고있다면, 의도적으로 그런 비교를 배제하는 훈련을 해야할 것이고.

 

그러나 지금 당신의 상태에서 느끼고 있는 것은 왠간한 대학원 졸업생들은 비슷하게, 혹은 거의 동일하게 느끼는 심정일 것이고. 그래서 그러한 상태는 통과의례적인 측면이 있으니깐, 일단 흘러가는 대로 두고 유심히 관찰할 필요가 있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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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성의 말

안재성 : (웃음) 내가 다른 얘기를 하나 더 해보겠다. 좀더 취재를 해봐야겠지만 실제로 '전태일은 대학생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없다. 당시 상황에서 전태일이 거의 접해보지 못했던 운동권 대학생 친구에 대한 기대가 있었을 것 같지 않다.
  
 전태일의 마지막 편지는 박정희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박정희 각하, 옥체 만강하시냐. 혁명 과업을 달성하는 데 대한 각하의 노력을 존경한다. 노동자들이 이렇게 어렵게 사는데 돌아봐 달라', 이런 내용이다. 그게 바로 당시 노동자들의 생각이었다. 운동권 대학생들에 대한 환상이 있을 수 없었다.
  
아마 전태일이 죽은 후 대학생들이 많이 와서 장례를 치르고, 시위도 하면서 나중에 이소선 여사가 '우리 태일이에게 이런 친구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말했던 게 시간이 지나면서 전태일이 직접 한 얘기로 전해진 것 같다.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60041208113742&s_menu=문화

 

* 이소선 어머니께 이 사실에 대해 여쭈었으나, 답변은 안재성과 다른 답변이 나왔다.

 

"엄마 친구 자식들 중에 대학생이 있으면 꼭 하나 소개 시켜 주소." 그리고 이소선 어머니는 백방으로 주변 사람 중에 대학생이나 대학 나온 사람들을 찾아 다니다가 국수집 아저씨를 소개시키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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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봉

양동봉은 누구? 치과원장 접고 과학·수학책 3000권 독파

 

“전설적인 수학자로 알려진 인도의 라마누잔을 연상케 한다”고 말했다.

라마누잔은 정규 수학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뛰어난 수학 실력 덕분에 영국의 수학자 하디의 눈에 띄었다. 그의 도움으로 라마누잔은 케임브리지 트리니티칼리지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했고, 하디와 함께 정수학(整數學)의 발전에 공헌했다. 인도인으로는 처음으로 영국 왕립학회 회원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라마누잔은 직관과 명상으로 수많은 수학 공식을 발표했고, 후대의 수학자들이 뒤늦게 그의 진가를 인정했다.

 

양 원장과 라마누잔이 직관으로 숱한 난제를 풀어냈다는 점에서는 비슷할지 몰라도 삶의 궤적에선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1954년 경남 진해에서 태어난 양 원장은 마산고등학교를 나와 조선대 치과대학에 입학했다. 1992년 그가 불현듯 삶에 관한 영감을 얻기 직전까지 그는 남부러울 것 없는 치과의사였다. 회사원 평균 월급이 40만~50만원이었을 때, 그의 월급은 600만원이 넘었다고 한다.

관련기사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5&oid=262&aid=000000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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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자

'역사를 훔친 첩자' 의 서평기사.

 

고구려는 상당히 이른 시기인 기원 전부터 첩자를 썼다. 중원 왕조나 북방 민족과 국경을 접한 지정학적 조건에서 비롯한다. 고구려는 주변국과의 혼인관계를 첩자 활용의 수단으로 삼거나 승려들을 첩자로 적극 이용했다. 자신의 아내를 첩자로 둔갑시킨 호동왕자, 비수를 식기에 숨겨 적장을 암살해 나라의 위기상황을 타개한 유유, 심리전에 능숙했던 을지문덕, 백제를 멸망으로 몰아넣은 위장간첩 승려 도림, 당 태종에게 사로잡혀 그 이름을 남긴 연개소문의 첩자 고죽리 등 문학소재로 삼기에도 넉넉한 사건과 사례가 적지 않다.


신라는 7세기 이후 고구려와 백제의 협공에 시달리며 생존 돌파구를 모색했다. 그 결과 신라는 당과의 연합을 성사시켰고, 결국 삼국을 통합할 수 있었다. 여기에는 일찍이 첩자의 중요성을 인식한 김유신의 구실이 상당히 컸다. 첩자에 관한 한 김유신은 군계일학이었다. 왕의 동생들을 탈출시키기 위해 고구려와 왜로 간 박제상의 행적, 역사의 전기를 마련한 김춘추의 고구려행과 양국간 치열한 첩보전, 젊은 날 고구려에 잠입해 첩보활동을 벌인 거칠부 등 극적인 첩자가 많다.


백제의 첩자 활동이 성공해 신라를 낭패에 빠뜨리고 결국 김춘추를 궁지로 몰아 고구려행을 결행케 만든 대야성 전투 등 중대 사건도 있다. 특히 이 사건에는 신라 내부의 치정관계를 백제가 이용하는 등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요소가 다분하다. 고구려와의 칠중성 전투에서 신라가 패하는 데 결정적 원인을 제공한 신라인 이중간첩 비삽 등도 흥미를 더한다.


첩자와 관련한 백제의 기록은 열악하다. 그러나 백제는 고구려와 수의 2차 전쟁 때 수와 고구려를 동시에 내통하는 줄타기 외교로 국가적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왜에까지 첩자를 심어놓는 등 첩자 활용이나 첩보력이 만만치 않았다. 나라가 멸망한 뒤에도 부흥군 조직을 가동, 첩보 활동을 계속했다.

 

출처: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3&aid=000020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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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희->이병박

"미국의 빌 게이츠는 전세계적으로 최고인 액수를 자선사업에 기부하여 신선한 화제가 되고 감동을 자아냈다. '새로운 자본주의' 운운하며 그의 역량을 빈곤 해결에 쏟겠다고 방향을 잡았다. 이 후보도 연령, 재력, 위치 등 모든 것을 고려할 때 이제 통 크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그러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며 하등 어색할 것이 없다고 본다. 특히 땅, 누구의 말마따마 '그놈의 땅'을 그렇게도 많이 갖고 있다는 점에서 오늘날 한국사회에 있어서의 '땅의 정의'가 어떠해야 하는 것인가를 숙고하여 모범을 보일 필요도 있을 줄 안다. '땅의 정의'라 말할 때 땅 과다 소유의 결과적인 대중 수탈구조를 염두에 두고서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 오마이뉴스에서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60070829143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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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지 마세요.

사랑하는 사람이 몸이 많이 안좋다고 하시는데.

 

꼭 약 챙겨드시고. 아프지 마세요. 아침에  혹시 이 글을 보시면 힘내시구요.

힘나는 보양식 한 번 사드릴께요.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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