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익] 나는 누구인가

2008/11/03 22:04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이 자리에 우두커니 서있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비뿌리는 삼천천 산책길을 소요하며
안개핀 다가공원 숲길을 생각하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잊어지든 잊어지지 않든 잊었다고 되뇌이며
흰 칼로 붉은 손가락 자르듯이 단호하게 일어선 나는 누구인가?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내가 누구라고 말하지 않았다.
광곡리 샆짝에는 이제 갓심은 쑥갓 싹이 피어올라
담벼락 아랫녁에 고즈넉이 몸을 구부렸다.
나는 누구인가?
아이는 둘이나 되고
아내는 아직 독립할만한 나이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내 길만 가고자하는
그것만이 사람사는 길이겠거니 하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사랑도, 명예도, 재물도, 생명도, 가정의 행복, 인간의 윤리도 다 중요하지만
나는 그것을 갖지 않겠다며
천변에 우두커니 서있는 나는 누구인가?
가지지 않은 것을 자랑스러워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그것이 조건임을 이미 알아차려버린 나는 누구인가?
그 속에 담긴 외로움과 추위마저 인정하고 수용한 나는 누구인가?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아!
사랑받는 존재로서의 '사랑하는 사람'이란 원래 없단다.
그 스스로 사랑할뿐, 사랑하는 대상은 없단다.
세상에는 객체는 없고 오직 주체만 있단다.
광곡리  안선생네 돌담에는 이제 연녹빛 벗어버린 감나뭇잎들
쟁쟁하게 손마디 흔들며 바람과 해후할텐데
해후는 멀마나 아름다운가?
어쩌다가 이렇게 만나 다음 순간 헤어진다고 말하지만
무엇이 만나는 것이고 무엇이 헤어지는 것인지
나는 모른다.
나는 내 느낌만을 알 뿐이고
말할 수도 없구나.
생각으로 번역되는 나의 물음은 이미 해답
나는 누구인가?
질문만이 세상에 떠돈다.
발밑으로 풀잎들처럼 가볍게 뒹군다.
아아, 맨발이었더라면 풀잎들도 발가락사이로 유쾌하게 들어와 지저귈텐데
아아, 맨발이었더라면....

2000년 5월 22일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단심혈기(丹心血旗)

언젠가부터 내마음속에는
마음으로 모아낸
진홍 빛 깃발 나부끼네
모든 역사적 문명과
모든 사람들에 대한 외경과 존중속에서
정성스럽게 간직한 나의 열정
폭발하듯이 마음을 열수는 없지만
다소곳한 깃발은 항상 퍼드득 나부끼네

너무나 오래되어서
언제부터인지도 몰라.
그러나 내가 살아갈 길을 잃고 헤매일 때
내가 누구인가 다시 물었을 때
해방과 연대를 향한
붉디붉은 마음 간직하는 것이
피 뚝뚝 떨어지는 심장을 움켜쥐고
저벅저벅 걸어야하는
행복한 길임을
다시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보았네
푸르청청한 하늘에
내 가슴속 붉고 힘찬
심폐(心肺)의 깃발 다시 휘날렸네
아, 그 깃발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 우주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우주의 중심에서
우주목(宇宙木)으로 나부꼈던 것을.
내가 그 깃발 항상 움켜쥐고 있었던 것을.
내마음의 영원한 붉은 마음 핏빛 기치(丹心血旗)여!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바로 나의 깃발이다.
나의 사랑이 바로 만인의 깃발이다.
내가 붉은 깃발 되어 이땅에 왔고
이제 의당 사라지기위해 사소하게 걷는다.
깃발되어 간다.

2001년 6월 28일 이른 아침

 

 

저녁노을 깔린 들녘에서 그대에게 갈꽃다발을 바친다


내가 한때 갈대처럼 흔들렸던 것은 세상이 다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살아있는 갈대였으며 그러므로 뿌리를 항상 갈밭 깊숙히 내리고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내가 갈대처럼 흔들릴때조차 결코 전진을 포기하지 않은 것은 이미
내가 애초에 태어나지도 소멸하지도 않는 존재임을 알아버렸기때문이다. 하여
나는 난 날도 모른다. 돌아갈 날에도 무심하다. 그리고 다만 지금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을 뿐. 사람하는 사람아. 그럼에도 노을지는 갈꽃 들녘, 당신의
생일을 축하하는 이유는 내가 아직도 가끔씩 흔들리기때문이 아니다. 다만 그대가
존재하는 사실이 나에게 희망이 되고 있음을 알리려는 사치일뿐. 저녁노을 깔린
들녘에서 그대에게 갈꽃다발을 바친다.  - 사실 우리는 매일 다시 태어나고
있지않나요?

 

2002-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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