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우리가 아는 것이고, 철학은 우리가 모르는 것이다.
Science is what you know, philosophy is what you don't know.
 
송상용(과학기술학자) 
 
철학과 과학의 관계를 설명하는 버트런드 러셀의 상당히 명쾌한 말이다. 그렇게 구분을 해서 우주에 대해 우리가 아무것도 몰랐을 때 도대체 우주는 무엇으로 되어 있을까 골똘히 생각하고 탐구한 것이 철학이라고 한다면, 시간이 흐르면서 우주에 대한 뭔가 알게 되는 부분이 있다. 그 부분은 과학으로 넘겨주고 철학은 계속 모르는 것을 탐구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주론이 천문학으로 독립해나가고 또 영혼의 문제 등을 철학에서 탐구했는데 그것을 조금 알게 된 부분은 심리학으로 넘어가고...... 이런 식으로 철학은 개별과학을 계속 독립시켰다.

 

그러면 이와 같이 다 과학으로 넘겨주면 철학의 역할은 무엇이냐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는데 실지로 그런 경향 때문에 철학의 위기가 얘기될 때가 있었다.
 
리어왕이 딸들에게 땅을 다 나눠주고 나중에는 황야에서 울부짖고...... 철학의 가련한 운명이 아니냐 이런 얘기까지 나왔는데 사실 우리가 수학에서 무한이라 정의함은 거기다 보태도 무한이고 빼도 무한이기 때문에 결국 아무리 가감을 해도 무한은 무한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철학에서 아무리 살림을 많이 낸다고 하더라도 철학의 영역은 계속 무한한 것으로 남는다고 볼 수 있다.

 

17세기 영국의 과학자 보일(1627~1691)이 이전의 화학과 다른 점은, 물질에 관한 신비적인 설명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보일에게는 화학물질이 왜 그렇게 변하느냐라는 것이 이것이 문제가 아니라, 화학물질이 변하되 ‘왜?’가 아닌 ‘어떻게’ 변하는가?를 중점적으로 보는 것이 보일의 목적이다.

 

물리학에서도 마찬가지다. ‘왜’ 무거운 물체가 땅으로 떨어지느냐?라는 질문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문이라면 갈릴레오는 거기에서 ‘왜’를 제거하고 무거운 물체가 ‘어떻게’ 떨어지느냐, 또 속도가 ‘어떻게’ 변하느냐는 것이 갈릴레오의 관심이었다.

 

‘왜’에서 ‘어떻게’로 넘어가는, ‘why’가 아니라 ‘how’로 넘어가는 이것이 바로 과학혁명의 특징이다.

 

- 출처 : 아트앤스터디 지식메일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Trackback

Trackback Address :: https://blog.jinbo.net/nomad22/trackback/221

Comments

What's on your mind?

댓글 입력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