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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대투쟁25주년, 세상엔 감사할 일이 너무도 많습니다.

6월 항쟁 25주년, 789 노동자대투쟁 25주년,
세상에는 감사할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87년~90년 '사람개조, 사회개조'의 길을 달리시다가... 이미 오래전 90년대에 뉴라이트의 유명하시고 고명하신 분이 되어 어떤 이유에서건 굳이 자기 신변의 변화를 곧 역사발전의 필연으로 설명하는 합리화의 달인까지 되어, SBS 심야토론에 나오신 분 말고...

이 땅에는 땅 아래, 땅 위 어디서건 직업적, 전업적이든 아니든 활동하는 내내 자칭 "활동가입네." 소개하는 것을 못내 쑥스러워 하는 동지들이, 스스로의 삶을 역사속에서 고민하고 또 고민하지만... 자기결정과 그에 따른 삶의 변화나 여정을 결코 역사와 철학을 차용해서 설명하려 하지까지 않는 동지들이, 아름다운 삶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어디 그 뿐인가요....
...대중으로부터의 올바르지 않은 존중, 타인의 시선에 대한 과한 의식, 자기 실천에 대한 과대 포장, 활동으로 인한 경제적, 사회적 이익, 활동의 원칙에 앞서는 관료로서의 지위상승과 안정에 대한 희망, 비평가를 닮아가기, 자신과 자조직에 대해서는 자아비판의 다른 기준을 챙겨갖기..부터

...나아가 이제 이만하면 '할 만큼 했지' 않냐는, 운동에 첫발을 내딛은 순간부터 이후의 모든 시간들을 자신의 '활동사'로 굳이 애써 설명하려는 좀 많이 쑥스럽고 우스운 생각까지

이런 것들을...칼날처럼 경계하고 일순간이라도 상념 한 끝에라도 등장할라치면 스스로 서슬퍼런 철퇴를 가하는,
이것이 더 일상화되어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또 보는' 동지들이...
너무도 많이 있음을 믿습니다.

나이가 들고 또 들어갈수록 겸손함과 더 많이 열린 귀로 사람들과 동지들을 만나고자 하는 노력을 오직 더해만 가는,

가면 갈 수록, 더 낮은 곳으로만 가는, '바보' 소리와 '비웃음'은 '이해'할 생각도 없이, 아니 이젠 아예 이해를 못하는...

그저 끝도 없이 아래로만, 더 아래로만 가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음을 믿습니다.

간혹 하고 또 놓기도 하는 그 어떤 역할에도 그것을 일말이라도 흔들리지 않게 하려는 사람들이, 동지들이 이 세상엔 너무도 많이 있음을 믿고 또 믿고, 언제나 믿습니다.
 
이 모든 일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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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행렬, 파렴치한 노란 풍선 - 5.19

쌍용차 살인해고박살 해고자 원직복직 쟁취 범국민대회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
 

노무현 3주기 노란 풍선 퍼레이드인 시청광장을 빙글 옆으로 돌아야 겨우 통행이 가능한 상황...

아... 그런데 웬 '역사교육'을 하려는가...
4.19로부터 쭉..시간대별로 웬 역사 사진 피켓들이 이리도 많으냐.
 

그런데 그 때 눈에 들어온 것은 연도별 열사들의 얼굴과 사망 사건일지 비슷한 피켓들, 특별히 80년대 이후 노무현이 세상에 알려진 후의 시기 것들은 거의 2년씩 꼼꼼하게도 정리되어있는 듯했다.
옆을 걸으며 열이 올라 차마 눈길을 줘 읽지 않았으나, 너무도 뚜렷이 기억하는 얼굴들이 차례차례로 그 어느 곳에서보다 원한 서린 눈빛과 표정으로 거기에 있었다.
 

무수한 사람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기도 했던 그들의 모습이...
수년을 잊을 수도, 잊혀지지도 않는 얼굴로 뇌리에 남아 팔다리와 머리를 이끌어주던 그들이 거기에서 몇 표인지 알기 힘든 '표'에 또 팔리고 있었다.
 

2002년~2006년의 구속노동자 일지는, 열사들의 사건일지는 역사가 아닌가?
"2004년에 현재의 쌍용차 살인해고, 희망퇴직, 무급휴직 노동자와 그들의 생떼같은 가족 22명의 죽음을 원천적으로 생산함" 이란 서술은 역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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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토 모교수의 자작 '당권파 위기원인론'을 보고

어제 '백분설레발'에 나온 모교수가 말했다.

 

"이게 다 옛날 프랙션 활동의 낡은 습관을 버리지 못한 채 그대로 합법정당활동을 하면서 비롯된 일이에요. 옛날에 말이에요... 사실은 지하 프랙션에서 대중조직에 다 '심고' '꽂고' 했던 거고 대중조직(여기서 예는 학생회)은 뭐 사실 그렇게 그려지고 만들어지고 했던 것에 불과하죠... 그래도 그땐 군부독재가 있으니 대중이 그걸 용인했죠. 근데 지금이 어디 그런 시절입니까? 그러니 안 통하죠."

 

단어는 틀릴 수 있겠으나 얘기는 이런 거였다.

 

근데 참... 너무 웃어주시는구만... 씁쓸하다. 그가 ‘실증’과 ‘형식적 민주주의-부르조아민주주의-’에 유독 강한 동기를 갖고 있음이야 익히 알고 있기에 별달리 새로운 언급으로 들리지도 않는다.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프랙션'과 대중조직의 관계는 그렇게 완벽하게 자동반사적으로 구성되고 온전히 일방 지배, 통행되는 데 아무런 무리가 없는 구조만은 아니었다. (물론 일면 사실이었고.. 이더라도)

 

특히나 모교수가 학사를 마치고 난 이후의 시간대인 87년 노동자대투쟁과 6월 항쟁 이후의 대중조직의 성장과 분출 후의 변화로부터 80년대 끝트머리 여전히 군부독재치하에서였지만, 폭력의 또 다른 한편의 기만적인 상대적 유화국면 그 약간의 열린 공간에서 대중조직의 재생산이 조금씩 안정화될 즈음 소위 지하와 지상의 관계와 양상이 서서히 달라져가던 기억들이 있다.

 

당연히 그걸 모르지 않겠지만, 이 사람은 앞뒤 없이 “과거엔 다 그랬다”고 하고, 그 말은 TV 앞의 무작위의 사람들에게 도대체 언제부터 언제까지랄 것도 없이 “아, 뭐 그랬고, 그런 걸로 보면 지금도 그렇겠고... 대체로 그렇겠구나”로 들린다.사람들의 생각은 “그래 그러니 대중조직은 그저 역시 허수아비야.”라는 데까지 얼마든 미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치 아무리 '혁명적인' 당도 대중조직을 무시하거나 권리를 일방적으로 묵살, 부정하고는 혁명을 할 수 없다고 하듯이, 이미 89~91년경의 대중조직만 해도 그렇게까지 맘대로 그릴 수 있기만 했던 빈 도화지는 아니었다.

 

참, 대체 그런데 이 아픈 얘기를 이다지도 웃으면서 할 수 있는 그는 자그마치 20년이 넘는 기간의 이 양자의 관계와 역사를, 양자 그 자체 혹은 둘 중 하나라도 대변할 권리를 스스로에게서 흔쾌히도 부여받은 듯 보인다.

 

“그래 이른 바 ‘논객’이지..” 하며 듣다 보면, 무수한 이들이 맞아가며 쓴 ‘몸빵’의 역사를 입술로 쉽게도 훓는다. 대중에게 별로 친숙하지도 않은 단어인 '프랙션', '프랙션'을 계속 집어들며 반복하면서...

 

“그래도 진보를 애정있게 봐주세요~” 라는 마지막 멘트를 제외하면, 중앙일보 논설위원과 똑같은 해석을 되풀이하며, 자작 '당권파론'을 펼치는 듯 보인다. “'당권파에 대한 비난과 외면’의 역사적 필연성, 불가역성”을 폼나게 펼치며 논증(?)했음에 만족했을까.

 

혼자서 TV를 보며 씁쓸한 조소와 함께, 그가 언급한 부분이 아니라 또 다른 이유로 힘들어 하던 과거의 기억들까지 끄집어내주는 데에는 조용히 분노가 올라온다. 많은 사람들에게 80년대 끝~90년대 초반 즈음의 상황은 다소간의 힘겨움으로 기억되는 부분이 있었기에.

 

웃는 얼굴이 참 ‘경쾌’하기도 하다.

 

그래서 결국 그 진작 버렸어야 할 그 ‘관행’이, 합법정당 하겠다면서도 끝내 버리지 못한 그 관행이 통합진보당 문제의 모든 원인인가? 과연 그럴까?

 

마치 '당권파'만의 타고난 속성인양 낙인찍혀진 '과도한 '프랙션' 편향의 '관행',  비민주성과 패권성만이 지금 이야기되어야 할 것들인가?

 

그래서 '나는 저들이 무얼 했는지 다 알고 있다' 는 듯 과도한 프랙션의 영향력을 비판하며 비단 통진당이 아닌, 결과적으로 훨씬 더 큰 범위의 사람들에 대한 이미지 형성에 기여할 프랙션비판론을 누구보다 앞서 설레발의 밥상에 올려놓고 칼질을 하는가?

 

또는 '전과 27범'이 원하는 바 밑도 끝도 없이 끌려가는 종북주의 논쟁의 수렁이 지금 또 필요한 것인가?

 

그래서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주창하듯(!) "이제 'NATIONAL LIBERATION'은 물러가고 'PEOPLE'S DEMOCRACY'가 진보운동을 '장악(?)'하면 '건강한(?)' '진보정당'운동이 또한 새삼 자리를(?)" 잡는가?

 

소가 웃을 얘기다.

 

많은 이들이 주지하듯이, 자본가계급의 대변인들에게는 사실 '주사' 자체가 문제도, 유일한 적도 아니다. 그들에겐 맑스도, 레닌도, 트로츠키도, 로자도 모두가 섬멸의 대상일 뿐이다.(이 시점에서는 심지어 '스탈린'조차도 물론.)

 

그들에게는 '아래로부터'든 '위로부터'든, 역시 중요하지 않다.(종종 '위로부터'만을 주로 차용하지만)  단지 남한에서 살아가는 대중이 늘 겪고 목도하는 착취체제를 유일무이한 구현 가능한 세계로 설파하면 그만이고, 그 틀에 뭔가 아귀가 안 맞거나 덜 맞는 듯 비춰지거나 뭔가 다른 틀을 갖고 있는 듯 비춰질 여지가 있는 그 어떤  세력에 대해서든 대중적 환멸과 고립을 보다 더 조장하고 배가시키면 그만이다.

 

그렇기에 이 시점에서 새삼 '자본주의 틀내에서의 사민주의적 개량을 진짜 열심히 한번 잘 해'보라며 썩소 섞인 '고무'를 기꺼이 보내며 우경 사민주의의 또 다른 극점으로 'PD'를 설정해놓고 '칭찬'(!)하며 분열을 촉진한다.

 

다시 돌아가보면, 사람들은 단지 '당권파'만을 특정해서 왜 그렇게 '음모적'이었냐고 물어왔는가?

왜 대중정당하겠다면서 안타깝게도 아직도 '프랙션 편향'이며, '비밀결사적'이냐고 캐묻거나 원망하고 있는가?

이른바 '프랙션' 편향이 비판의 주된 촛점인가?

사람들은 왜 현존 '선거법'을, 가식적이기 짝이 없는 '부르조아민주주의'의 절차를, '법질서'를 어겼냐고만, 그 기준에 끼워맞춰지기 힘든 이유와 배경을 관행적으로 계속 싸짊어져왔냐고만 당권파 혹은 이 당에게 물어왔는가?

만일 그 뿐이었다면 당권파가 아닌 전체로서의 이 당에 대한 노동자들로부터의 신뢰가  이 수준까지 떨어지고 있을까?

 

이른바 '비민주성'과 '패권성'으로 표현되는 모습은 오로지 '당권파'만의 문제거나, 그들 당내만의 문제는 아니며, 도리어 대중조직과의 관계 혹은 대중조직 내에서 활동하는 당내 다양한 부분이 함께 상당부분 공유하며 보여주어온 모습이란 생각이다.

더 혹은 덜 '완고하고' '고집스런', 부분이든, 더 혹은 덜 '유연한' 부분이든, 함께 보여준...

   

정작 모교수에게 이런 말이 하고 싶었다.

 

나는, 또 어쩌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은 실상 그 점에, 거의 '당권파론’ 내지 ‘학'으로 보이는 당신의 그 해석의 지점에 별 큰 관심을 주고 싶지 않을 것 같다고.

 

오히려 그 좁은 ‘비평’보다는 ‘편한 길과 방식’을 찾아가고자 했던 '한 배'가,

쌍용차의 죽음을 생산한 전직 집권세력 자본가정당과의 ‘한 배’조차 '통전'과 '전술'로 설명(!)해낼 수 있는, '대중적 진보정당'이라는 그 정확히도 동일한 입장이,

단지 노동조합조직 상층부가 아닌, 다양하게 표출된 바 있는 노동자운동과 운동진영 내의 목소리를, 2차례의 당대회 결과가 말하는 바를 무시 혹은 방기하며 결국 묻지마 원샷통합으로 내달린... 크게는 같은 발자국이,

오늘에 함께 이르러서까지도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으로 서로 또 한번 먼 발치에 서 있기만 하려는 듯한 '더 큰 전체'로서의 모습이...

현상으로, 나아가 '원인'으로서 더 관심이 있지는 않을까.

 

또 그 중 어느 한 세력이 특별히 더 두들겨 맞을 때 대중앞에서 그들 스스로 서로에 대해 혹은 자신에 대해... 이 '사태'에 대해 말하고 설명(?)하는 논리와 방식에 진정 '관심'이 가지는 않나. 

 

이 당이 노동자계급으로부터는 물론, 또 달리 '대중'으로부터의 신뢰 또한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지에,

그들의 불안정한 동거속에서의 이른바 '집권전략'이 만일 '실현'될 미래의 그 어느 시점에서도, 그 어떤 계기를 통해서든 또 다시 얼마든지 표출될 수 있는 상황이 지금 앞당겨져 있음에 관심이 가지는 않나.

 

현재의 이 당이 스스로의 제한성에 대한 인식속에서 노동자, 민중의 운동과 평등한 소통을(총연맹 찾아가는 것만 말고) 더 해나갈 의지와 여력이 과연 남아있는 조직인지에 적든 혹은 크든의 관심이 주어지지 않나.

 

그리고 또 하나, '군부독재 시절엔 대중이 프랙션의 지배를 용인'했는데, 지금이 어떤 시절이냐고? ‘세상이 어떤 세상’이냐고?

 

세상으로 말하면, 그 때에 비해 착취율이 훨씬 더 높고 자본의 이윤율이 하락해 있는, 노동자계급의 과반 이상이 2년에 한번꼴로 해고(계약해지)로 간접살인을 당하는, (군부)자본가독재가 아닌, '날 것'의 자본가독재가 더없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그래서 이른바 '지식정보의 섭취력'만 '세련화'된 자유주의적 구경꾼들만이 아니라, '원샷통합'의 대상으로서도 국참세력을 능히 포함하고도 남는 이른바 '진보적 대중' 뿐 아니라, 그것이 '지하'든 '지상'이든, 입 도마 위 불리우는 바의 '프랙션'이든 광범위한 이들을 포괄한 조직이든, 아래로부터 투쟁으로 불타오를 때 기꺼이 함성으로 맞으며 그 대열에 몸을 실을 '대중' 또한 존재하는 세상이다. 그런데 우리 힘이 딸려서 안타깝게도 ‘논객’들의 공간이 너무 넓은 그런 세상이다.

 

만일 얼마나 멀든 가깝든, 훗날 그 어느 ‘시절’에 노동자계급과 억압받는 사람들이, 바로 그 과거보다 훨씬 더 자각적이며 높은 사회적 의식을 확보한 '대중'이 '군부독재'가 아닌 '자본가독재’를, 착취체제를 박살내기 위해 대중조직의 권리를 더 튼튼히 보장할 것과 더불어 자신으로부터 탄생하고 순환하고 소환되는 자기 계급의 혁명적 부분(지난 밤 ‘설레발’ 상에서 부정적 이미지를 중심으로 뭉뚱그려진 ‘프랙션’ 및 써클주의가 아니라)의 활동과 그 공간을 더 폭넓게 '용인'하기를 강렬히 원할 땐...

 

그는 또 어떤 얘기를 하려 들지...도통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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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할 의지가 있는 자, 반성을 요구만 하는 자 혹은 반성할 생각은 여전히 없는 자

순전히 장작을 땔감으로 때서 가는, 나무로 만든 기차가 있었다. 산길 물길을 지나는 장거리를 가다 연료가 떨어져가자 이 기차의 운행자들은 선택을 했다. 어렵고 힘들게 산과 들판을 헤매어 도끼질을 해서 장작을 구해 때기보다 나무기차의 몸통을 맨 뒤부터 한 칸씩을 잘라서 그걸 때서 가는 길을 택했다.
 
연료가 모자란다 싶을 때 계속 한 칸 한 칸씩 잘라 가는 것은 참 편리하고도 쉬었다. 외딴 산길에서 장작을 구하다 누군가 다치지도, 죽지도 않았고, 단지 잠깐의 정차만이 필요했다. 지위가 낮은 이들 몇몇이 기차 몸통을 부술 동안 지휘자들은 가만히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며 기다리면 되었다.
 
마침내 그 기차는 먼 길을 끝내고 종착역에 도착했다. 그러나 이제 종착역에 도착한 것은 이미 '기차'가 아닌 그 무엇, 차마 ‘기차’...라고 부를 수 없는 그 무엇, 맨 앞 칸... 한 칸만이 남아 있는, 자동차도, 기차도 아닌 그 무엇, 괴물이 되어 있었다.

좋아하는 영화에 나오는 얘기다. 영화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변혁의 가치를 하나하나 희생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얘기한다. 세계 그 어느 곳보다 과거 '전투적 민주노조운동' 이 활성화되어 있던 멕시코에서 자본의 신자유주의 공격 이후 부패하고 관료주의화된 노동조합 지도부가 보여준 모습에 대한 묘사 중에 나오는 얘기다. 민중의 항쟁에 함께 하다가, 민중에 기반한 공교육을 사수하기 위해 싸우다가 100명이 넘는 평교원노동자가 실종되서 아직도 시신을 찾지 못하고 있지만, 바로 그와 동시에 노동조합 지도부가 역사의 반동들과 손을 잡고 썩어간 역사에 대한 얘기다.
 
"배타적 지지 철회를 포함한 가장 강력한... 조치..."
만일 단지 하나, 아른바 경선부정이 없었다면 전혀 고려되지 않았을 그 '강력한' 조치.
이른바 '반성'은 통진당 내에만 필요한가. 대중조직은?

 
여론조사라는 게 대체로 그렇지만, 비례대표 후보 '배타적 지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동원되었던 '노동자참가단' 이란 이름의 총연맹의 기막혔던 여론조사도, 시간을 다 흘려보내놓고 이루어진 임시대대 소집도 아직은 그다지 반성 아니 환기되지도 않아 보인다. 현장토론보다, 대의원대회보다도 더 앞세웠던, 하고 싶은 이들이 모여 표본을 이루고 그 표본들의 의사를 민주노총 전 조합원의 의사로 공식화한, 여론왜곡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이 과정은...
 
2009년 쌍차투쟁이 시작할 즈음, 노무현이 죽었을 때 애도의 뜻을 담아 평화적으로 투쟁하라던 총연맹의 공지 문자는 반성되지 않는다. 조직적으로 머리를 조아리러 가던 그 모습은 반성되지 않는다. 계급이 자신의 계급적 이해에 충실하게 투쟁하자고 단 몇 차례만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것조차 '이기적 노동자주의'로, '생디칼리스트'로 왜곡, 치부당할 때, 이제 '투쟁으로는 백날 해야 안된다'며 의회주의에 대한 경계와 거부의 목소리에도 안타까운 톤으로 혀를 차는 이들이 당당해질 때 '대화와 소통'은 쉬운 일이 이미 아니다. '그랬던' 사람들은 다른 의미의 ‘반성’은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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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해고 희생자 분향소를 준비하며.

‎2009년 쌍용차 지부가 파업에 돌입하기 전, 가장 먼저 자본의 공격을 받았던 동지들이 비정규직 동지들이었듯이 22명의 생목숨이 매장당하듯 자본에게 간접살인을 당한 지금도 쌍차 안에선 노동강도의 살인적 강화와 더불어 이른바 신규 '사내하청' 을 급속히 들여 사내하청노동자가 다시 750여명을 넘어서고 있다고 한다.
 
15년전 IMF 시기의 정리해고반대, 노사정야합 반대투쟁, 아니 혹은 그 이전인 89~91년 자본이 다시 이윤율을 확고히 회복, 제고한 후 93~94년 파견제 도입 등을 통해 늘 비정규직이 넘치는 오늘을 그려내기 위해 신자유주의 총공격을 예비하던 때로부터 저들에게 있어 '정리해고'와 '비정규직확대' 는 당연히 애초 '자웅동체' 같은 기획이었지만, 20여년이 지난 아직도 현실의 투쟁과 선전 속에서 이 두 부분이 충분히 묶여지지 못해온 것도 사실이다.
 
쌍차-상하이치저-자본과 국가권력에 의해 철저히 기획되고 밑받침된 회계조작, 기획파산 등의 정리해고까지의 '과정'과 함께... 이 살인해고의 '결과'로서 오늘 일어나고 있는 쌍용차 안에서의 상황 (간접고용 비정규직으로의 생산의 대체, 비정규직 짜내기와 극단의 노동강도 강화'라는 자본의 '기획'을, - 모든 '동기와 목적'을, '결과와 이후'까지를 어느 것보다 생생하게 보여주는 - ) 을 선전의 공간에서 보다 구체적이고 '금새 들리게', 더 확고하게 내용으로 담아낼 지 고민이다.

 

'노동자에게만 고통을 들씌운 파렴치'함과 '무자비'함, 정리해고-헐값매각, 먹튀 밑받침 등 자본과 정권의 하나같은 패턴과 동시에 끊임없이 반복되는 비정규직 확대, 귀결을... 이른바 '죽은자'도, 그 죽은자의 빈 자리를 대신하는 자도 하나같이 비정규노동자의 피땀으로 귀결시키는 천편일률적인 시나리오를.
  
'문건'이나 '조합원용' 등 말고 지역분향소 등 대 시민, 대 미조직노동자 선전의 공간에서... 더 구체적으로 주력해서.
 
기아차가, 동희오토자본이 정말 원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이미 많은 사람들 또한 기억하고 있으니까.‎

 

'해고는 살인이다.'는 구호가 옳은 만큼 '해고는(계약해지는) 다반사다, 일상이다'는 구호 또한 옳다. 결국 '천만 비정규직에게 간접살인으로서의 해고는 일상다반사다.'는 말은 현실을 정확히 표현한다.

 

 시퍼런 가족까지 생명을 버리는 일이 또 누군가에겐 이미 일상다반사인 것이 현실이고, 그 일상다반사에도 죽는 소리 한번 내보지 못하고 죽었다 살아나기를 대략 정년 때까지 2년에 한번씩만 볼 땐 평균 15번도 더 반복할 수 있는 것도 현실이다.

 

 그래서 더욱 22명에 이른 이 살인해고의 의미와 분노는 '일상다반사의 간접살인'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자행되는 15번의 살인에 맞서기 위해 일어서는 긴 과정에 더 긴밀히 맞닿도록 하여야 한다.

 

그렇게 준비해야겠다. '이미 살해당한 자'와 '죽지 못해 살아는 있는 자' 모두가 결국 비정규직 확대의 수단, 고강도 착취 강화의 수단과 경로로서 살인해고를 더 뚜렷이 각인하며 내일을 맞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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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끝, 또 다시 먼저 가신 동지들에게

 

‎3월의 마지막 쌍차에서, 또 현대차에서 두 동지가 또 젊은 목숨을 내려놓았다.

한 동지는 77일간의 옥쇄파업의 마지막까지 함께 하고 끝까지 희망퇴직을 거부하며 생존과 투쟁을 위해 몸부림쳤고, 또 한 동지는 2004년 노조에 가입하고, 2005~6년 파업 이후 많은 이들이 노조를 떠날 때 끝까지 남아 재작년 25일간의 점거파업투쟁에 함께 했고, 그 후로도 현장위원으로 활동하며 자본의 악랄한 불법파견과 폭력에 맞서 마지막까지 싸우다 급성간암으로 돌아가셨다 한다. 장애를 가진 아이의 부모에게 지워지는 힘겨운 무게도 묵묵히 감당하며 동지들의 곁을 지켰던 동지라 한다.

"함께 살자"는 외침을 일관되게 몸으로 끌어안고 몸부림친 죄로 동지들이 또 먼저 가셨다.

'먼저 가신 동지들, 가족분들 만나 이제 '정리해고도 비정규직도 없는 세상'에 편히 계시'라고 보내드릴 수 있는 마음...잘 생기지 않는다. 지금의 현실과 올해의 투쟁과 삶을 생각하면 더더욱이 그렇다.

그보다 그저 매일 아침 작은 방 배갯녘 둥지에 남아 지켜봐주시라고, 때로 눈물로 원망도 하고 답답해하고 혼내주시라고... 청을 드리고 싶다. 또 다시 먼저 가신 이 시퍼렇게 시리게 젊은 동지들을 편히 가시라고 보내드리기조차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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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희망광장으로. 그 후 언제..가 아닌 지금.

희망광장이 견찰들에 의해 매일 거의 침탈상황의 반복 속에 있고 동지들이 연행되고 서울시가 버러지같은 철거 계고장을 붙이고 간 상황이지만...

 

어제 오후 사업장을 돌고, 6개 노동조합의 간부들을 만났지만, 25일의 '총선승리결의대회'가 아닌 24일의 '희망광장'과 '전국해고노동자대회'에 대한 '산별지침' 여부, 숙지 여부는 일관되게도 한몸처럼 동일함을 확인한 하루였다. - "전달받지 못했음", "알지 못함"

 

희망광장에 엄청난 군중이 있지 않음에도... 피켓은 부숴지고 처절하게 투쟁하는 장투사업장 동지들, 해고된 동지들은 견찰들의 사이코패스 짓에 시달리고 서울시는 철거를 협박한다.

 

저들이, 자본의 하수인들이 가장 발광을 하는 곳이 바로 그 곳이라면, 나중이 아닌, 거리마다 나부끼는 '현수막 슬로건...그 후'가 아닌, 혹은 '준비된 각본, 이미 예고된 그 때의 무엇 그 후'가 아닌, 언제일지조차 모를 그 어느 때가 아닌 바로 지금! 광장으로 가자.

 

적들이 두려운 눈으로 응시하고 있는 발화점이 광장의 발전이라면, 바로 지금 그 곳으로 달려가자!

 

실천하는 비정규직철폐, 간접고용철폐, 정리해고분쇄, 반자본의 거대한 함성이라면, 그 곳으로 가자.

 

피눈물을 옹골찬 눈빛으로 터뜨리는 광장으로 가자!!

 

그 곳에 작은 깃발 있게 하자.

사랑하는 동지여. 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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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지도위원 특강 <소금꽃나무가 희망버스에게>-12.19(월) 19시 성공회대 피츠버그홀

김진숙 지도위원 특강 <소금꽃나무가 희망버스에게> 

(성공회대 노동대학 공개강연, 원하는 누구나 들을 수 있습니다.)

'외부세력' 환영!!  트윗,페북 무한멘션,RT 환영!!

 

12.19(월) 저녁 7시 성공회대 피츠버그홀

(09번 건물: 피츠버그홀/성미가엘성당)

 

- 성공회대 : 온수역(1,7호선) 도보 7분

버스 - 6614, 6716, 마을버스 - 7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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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철폐!파견제,불법파견박살! 현대차비정규직,기륭전자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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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지치지 않고 집중하기...계속 말하기

천안함 침몰로 구천에 떠돌기조차 억울할 노동자, 민중의 자식들의 떼죽음이 있었지만 한달이 넘게 원인'공개'('규명'이 아닌)와 사과는 고사하고 반동적 언론의 일체화된 북풍공세만이 난무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 죽음에 이름을 붙이는 일을 한사코, 장기적으로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다.

조중동의 가증스런 '영웅' 칭호 뿐 아니라 너무 허탈한 죽음을 일컬을 때 보통 우리가 쓰곤 하는 'O죽음' 이란 단어도...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그저 수긍 아닌 수긍...포기를 하듯 사뭇 조용해지기도... 그들의 죽음에 대해 그렇게 홀로 '정의 아닌 정의' 를 내리며... "그만 잊고 싶지도" 않기 때문이다.

 

본질에 주목할 때 여전히 반복적으로 상기해야 할 것은 이 참혹한 죽음들이 공격적 전쟁연습인 독수리훈련의 한 와중에 발생한 사건이라는 것, 즉 "46명의 사망자는 다름아닌 노동자계급의 이해와 한치의 유사성도 없는 전쟁연습으로 인해 죽었다는", 변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사태의 본질은 만의 하나 설혹 어떤 '교전'의 결과 발생한 일이라 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김선일씨가 왜 죽었을까?" 라는 질문에 그의 선교활동의 방식, 기독교의 일방적, 배타적 선교관, 그 어떤 부주의 등등...이 아니라 자본가들이 벌인 추악한 제국주의 전쟁과 남한정부의 이라크 파병이 그를 죽였다고 답할 수 밖에 없었던 것, 지금 다시 물어도 그렇게 답할 수 밖에 없는 것과 같으리라.

 

3월초부터 3월18일까지 키리졸브훈련이 1차로 마무리되고, 3월19일에서 사고 당일까지는 한미합동 독수리훈련이 연이어 실시중이었다.

 

23일부터 27일까지 NLL근처 최전방을 포함한 서해상은 미 이지스함 라슨(9155톤), 커티스윌버(8950톤) 2척, 남한 이지스함, 세종대왕함, '최신예' 전투함인 최영함, 윤영하함, 속초함, 독도함 등 대,소전함 십수척으로 장악되었고, '포 쏘고 전투기 날리고 대잠헬기 띄우는', 잠수함(공개사항이 아니지만)의 동원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수준의, 지극히 공격적인 작전상황에 있었다.

 

이번 사건에서 이 날카로운 준전시상황을 누가 만들었는지에 대해,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변할 수 있는 위험천만한 '전쟁연습' 그 자체에 대해 얼마만큼의 비중이 두어지고 '비판이라는 무기'로라도 짚어지고 책임지워지고, '회자'되어 왔는지, 생각해보면 오히려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아직 원인이 불분명함'이 이유로 거론될 순 있었다 해도 더욱이 지방선거 목전의 상황은 많은 사람들의 많은 말들이 입안에서 맴도는 상황을 강화해왔는지 모른다.    

 

한편 본질을 다시 상기하는 것과 더불어 또 다르게 집중력을 유지해야 할 것이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누구든 충분히 이야기할 권리, 논리와 실증, 견해와 이론 뿐 아니라 느낌과 직관, 감정까지 모자람없이 공공연히 얘기할 수 있는 환경을 의식적으로, 스스로 만들어내고 요구하는 싸움...이 역시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이리라는 점이다.

 

단지 그날 밤 아들과 통화한, 애인과 문자를 주고 받은 내용을 증언했다는 이유로 국가권력으로부터 온갖 압박을 받아 거의 정신적 공황상태에 이르렀다는 증언자들의 현실,

 

제3부표 지점을 잠수했던 이들이 증언한 침몰상태 구조물의 존재,

연일 계속되는 미군 헬기와 잠수부들의 인양작업,

손상된 천안함 스크류와 선저면의 상태,

사고 후 대잠헬기인 링스헬기의 이례적인 빈번한 출동,

사고현장 부근 서해상에서의 미군의 바쁜 움직임들.

 

미의회 청문회 출석 중 급히 남한으로 돌아온 한미연합사령관과 주한미대사,

외교적으로 매우 이례적인 그들의 고 한주호준위 빈소 방문과 조의표명,

그리고 대잠수함 작전능력을 보유하고 인양작업을 지휘하던 독도함으로의 방문,

서해상으로의 미군의 초대형 선박수송선의 급파,

이명박의 급거 방미와 핵안보정상회의 남한 유치,

군의 사활을 건 정보통제...

 

기타 켜켜이 쌓여있는 정황들은 '충돌로 인한 좌초'를 중심으로 하는 추론, 또 그 밖에도 여러 형태의 추론들이 가능한 물적, 상황적 증거와 의문점들을 충분히 제공해왔다.

 

더욱이 충돌의 대상이 암초가 아닌 그 무엇, 한미합동전쟁연습에 동원되어 작전을 수행중이던, 잠수함을 포함한 그 무엇일 수 있다는 가설은 상당한 설득력을 이미 확보하고 있고, 더 확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자칫 '증거불충분'의 '음모론'으로 치부당하고 소외당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

자신의 주장, 추론과 가설이 사실과 다르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불안감.....

만일 일말이라도 이런 것들이 머릿속 생각의 표현을 필요 이상으로 제한하고 있지는 않은지... 여전히,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네티즌'들 중 '이런저런 눈치 볼 필요도, 그럴 생각도 전혀 없는' 사람들이 그들의 정열을 바쳐 의심하고 제기하고, 말하고 묻고 답하며... 어쩌면 '혼자' 것 같은 불안과 두려움을 함께 지켜주며... 정당한 '의혹'들을 이야기해오지 않았나.

 

어쩌면 천안함에서 죽어간 청년들이 정말 바랄수 있겠다 싶은 것은 적어도 이런 사람들의 모습이 아닐까.

 

가증스런 비공개와 정보통제, 호전광들의 나날의 핏대선 외침들속에서...

다. 시. 한. 번. 되. 뇌. 이. 자.

 

"공공연히 의심하기",

"모든 의심에 대해 거리낌 없이 말하기"

"그 의심이 틀릴지라도 진심으로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한 자들을 얼마든지 줄기차게 비난하기"

"여전히 용서받지 못할 저들의 책임을 분명하고 똑똑히 묻기" 

"누구든지 얼마든지 언제나 틀릴 수 있다고 말하기"

"자신이 틀릴 수도 있는 가능성을 알고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을 말한 것은 어떤 경우에도 비난받을 일이 될 수 없음을 말하기"

"지난 한달간 당신이 편한 잠을 자왔다면 사적 이해관계 없이 밤새 정열적으로 의심한 그(녀)들을 절대로 비난하지 말라고 말하기"

 

털끝만큼의 '자유'와 '같이 살아남는 삶'을,

저들이 결코 실현할 수 없는 '진짜 민주주의'를 아직 꿈꾸고 싶다면....

지금, 또 내일의 할 일로 이런 것들을 다시 메모해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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