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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4/15
    지하철을 타고(2)
    흑점
  2. 2006/04/15
    살아있는
    흑점
  3. 2006/04/13
    몇일째 달렸다.
    흑점
  4. 2006/04/12
    시험중(3)
    흑점

지하철을 타고

 인천에 가고 있는 중에, 내 건너편에 앉아 있던 한 사람이 엄청 심각한 표정을 하고는 양손을 사용한 다양한 제스춰를 취해가며 열심히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너무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누구랑 이야기하는건가 살펴보았는데, 양 옆에 있는 사람들은 고개를 푹 숙인채 졸고 있었고 그녀 앞쪽 또한 아무도 없었다. 그녀의 시선은 스치는 사람들을 흘긋 보기도 했지만 줄곳 어떤 한곳에 고정되어 있었는데 그 곳은 허공이었고 초점은 없었다. 무슨 말을 하나 싶어 귀기울여보았지만 말소리는 그리 크지 않아 거의 들리지 않았는데, 표정이나 제스춰가 주기적으로 바뀌는 걸로 보아 누군가와 주고 받는 식의 대화를 나누고 있는 듯했다. 혹시 무슨 연극 같은 걸 연습하는게 아닌가도 생각해보았지만, 그것이 연기라는 생각이 절대 들지 못할 정도로 그녀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한참 동안 그녀를 관찰하면서 나는, 내가 꼭 지금 저런 상태인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 블로그 또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사족1. 결국 그녀가 무슨 대화를 누구와 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내 옆에 앉아서 빨간 거울을 자신의 얼굴에 들이댄 한 아가씨의, 코디가 어쩌고 검정가디건이 저쩌고 하는 이야기 보다 최소한 몇 백배는 의미있는 대화였지 않았을까 싶다.

 

사족2. 사실 블로그를 만들게된 가장 큰 계기는 이쁜 일기장을 샀음에도 일기가 잘 써지지가 않았기 때문이다.(그 일기장에는 3월 한달동안 달랑 시 두편이 옮겨져 있을 뿐이다.)  하지만 비루한 내 자신을 잘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는 소심한 나로서는 벌써 두사람이나 나를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이 이곳을 들어왔다는 것이 내심 걱정이 된다.(총방문자수도 벌써 49명이다!) 하긴 진보넷이라는 이 좁디좁은 바닥에 블로그를 개설한 것 자체가 안그러기는 무리인 것을 알면서도 더욱 우스운 것은, 그럼 혼자 볼 수 있도록 설정해 놓으면 될 것을 이 따위 자족적인 글쓰기를 드러냄으로써 이렇게 뻔하게 표현되는 나 자신의 인정욕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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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사람들.

왼쪽부터 지경, 마고, 판, 준, 흑점.

photo by 짤막

 

-2006.4.14 새벽에

 인천 '반지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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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째 달렸다.

그 바람에 오늘은 늦잠을 자서 스피노자수업도 못가고 팬티바람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이러고 있다.
 

 월요일엔 컴퓨터를 고치고 성진형과 저녁을 먹으면서 “차라리 태어날 때부터 두 쌍씩 찍어줘서 나왔으면 좋겠어. 이렇게 힘들지 않게.” 하는 식의 대화를 하다가, 12시에 현아의 문자를 받고는 잠도 안 오고 날씨도 좋은데 맥주나 한잔할까 하는 생각에 나갔다가 완전히 말려버렸다.
 박정희를 좋아한다는 J의 말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어떻게 하다보니 장장 2시간 남짓 걸린 나의 ‘자본론’강의로 넘어갔고, 이것저것 여러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새 시간은 새벽5시를 넘어가고 우리는 학교정문광장에서 추위에 떨고 있었다.
 J에게는 부모가 없다. 일주일 내내 학교 마치자마자 11시까지 학원에서 알바를 하면서도, 주머니에 돈이 있는데 없다고 하기는 싫다면서 저번주엔 후배들 밥 사준다고 20만원을 썼다고 한다. 그러면서 당장 내일 얹혀살았던 친구 집에서 쫓겨나게 생겼고 아직 갈 곳이 없다고 했다.
 ‘내가 인천에서 만난 아이들은 학습능력도 떨어지고, 없는 살림 쥐어짜내 학원을 가도 대부분은 실업계로 진학하고 혹 인문계를 간다고 하더라도 대학은 등록금 때문에 갈 생각도 못한다. 내가 너무 부정적으로 보는게 아니라 이게 현실이다.’ 라는 나의 말에 J는 ‘그래도 열심히 공부하면 그 사람은 성공 할 수도 있고 잘 먹고 잘 살수도 있다. 나는 그 아이들에게 총 한 자루를 쥐어주고 싶다.’ 고 했다. 나는 그의 말을 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라고 비판했지만 뭔가 씁쓸했다.

 화요일엔 낮에 율과 함께 서울대에서 스피노자 강의를 듣고 프로메에서 ‘러시아 혁명’을 주제로 세미나를 했다. 뒤풀이 자리에서 뒤늦게 준희형이 합류했고,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다’. 어제처럼 준희형의 말이 잘 들리던 때가 없었다. 덕분에 난 취하지도 않으면서 소주 2병 이상을 마셨고 그 바람에, 다음날 아침 부랴부랴 알바를 갔는데 12시까지 술이 안 깨서 시뻘건 얼굴로 카운터를 봤다. 사리곰탕으로 겨우 해장을 하고, 인터넷을 하다가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에 들어갔는데 메인화면을 보고는 갑자기 멍~해져 버렸다. 평택을 생각하면 걷잡을 수없이 마음이 무거워진다. 정말이지 기도라도 하고 싶어진다. 작년 여름 평화 캠프에서 느꼈던 무게감이 아직도 가슴한구석에 그대로 남아있다. 평화캠프에서 만난 덕균을 화요일 서울대 청강하러갔던 날에 만났는데, 학교에서 평택캠페인을 하고 있으니 ‘평화캠프 갔던 사람으로서’ 한번 들르라고 했지만, 결국 나는 가지 못했다. 알바를 마치고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공사를 지나는데 그 앞에서 청소용역아주머니들이 집회를 하고 계셨다. 버스 안이 무척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봄바람이 분다. 눈이 따갑다.
아마도 황사바람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갈 수 없는 고향-노찾사

 

저 멀리 저 산 마루에 해가 걸리면
쓸쓸한 내 맘에도 노을이 지네
물결따라 출렁이는 그리운 얼굴
혼탁한 강 내음이 내 맘을 적시네
갈 수 없는 그리운 그리운 내 고향
나는 가고 싶지만 내가 갈 수가 없네


이따금씩 지나가는 기차를 보면
내 고향 산 마루도 그리워 지네
뜨겁더 지나 여름나 더운 바람속에
설레이던 가슴안고 서울로 서울로
갈 수 없는 그리운 그리운 내 고향
나는 가고 싶지만 내가 갈 수가 없네


갈 수 없는 그리운 그리운 내 고향
나는 가고 싶지만 내가 갈 수가 없네
내가 갈 수가 없네
내가 갈 수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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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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