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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4/26
    케비넷 싱얼롱즈.
    흑점
  2. 2006/04/26
    pc방 알바를 하면서(5)
    흑점
  3. 2006/04/25
    [영화]연애의 목적
    흑점
  4. 2006/04/23
    집회방식에 대한 고민.(7)
    흑점
  5. 2006/04/22
    민망한 상황
    흑점
  6. 2006/04/22
    [영화]우드맨
    흑점
  7. 2006/04/17
    이상한 일주일.(6)
    흑점
  8. 2006/04/17
    미쳐라!
    흑점
  9. 2006/04/17
    이런식의 글은 별로 맘에 들진 않지만...(9)
    흑점
  10. 2006/04/15
    [영화]린다 린다 린다(2)
    흑점

케비넷 싱얼롱즈.




언덕길 공간열기.

케비넷 싱얼롱즈. 옥상 공연.

2006.4.22.

photo by 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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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방 알바를 하면서

가장 짜증이 나는건, 카운터 근처에 앉아서 음악(같지도 않은 음악)을 크게 틀어놓는 사람들이다. 소위 알앤비라고 불리는 -에스.쥐.와사비, 하늘로날라리 등 같은- 음악들을 듣고 있노라면 책도 안 읽히고 정말이지 미처버릴 지경이다. 특히나 워우워우~하며 바이브레이션이 극대화된 부분은 더욱 그렇다. 알바를 하러 버스를 타고 오는데 라디오 방송에서 꽤 옛날 가요가 흘러나왔다. 촌스런 멜로디에 유치한 가사, 뽕짝같은 가벼운 리듬이었지만 거기엔 어떤 '진정성'같은게 있었다. 지금의 가요는 기교만 남고, 진정성은 사라졌다. 그렇다고 좋지도 않다.

 

그 가요들의 영원한 주제인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매년 어떤 날에 혓바닥에 초콜릿 쳐발라가며 "사랑해"라고 말하는 그들이 하는 연애란, 어차피 성별로 고정 역할화된 "밀고 당기기" 사회적 게임일 뿐이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거 엄청 위험하다는거 안다. 그리고 그건 타인이 절대로 판단 할 수 없는 거라는 것도 안다. 그거 다 감수하고 하는 말이다. 적어도 서로에게 솔직해지자는 말이다. 아니면 최소한 상처라도 주지말자. 상처도 적어도 한쪽이 진정성이 있을때 발생하는것이겠지만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내가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뭔가 아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래도 인간은, 프로이트적 무의식으로도, 라깡적 결핍으로도 절대 설명해낼 수 없는 어떤 것이 있다고도 생각한다.

또, (무겁게시리) 어깨에 손올리고, (쪄죽는데) 손 꼭 잡고 쌍쌍이 지나가는 인간들 보면 그래도 부러운거 사실이다.

그냥 23년동안 살면서 그 흔한 연애 한번 못해 본 솔로의 푸념이었다.고 웃어넘겨주길 바란다.

사실 나는 누군가에 대한 환상만 가지고 몇 년 동안 끙끙 앓는 순정파(?)일 수도 있다. 

 

....

요즈음은 그냥, 혁명이고 뭐고,

집에서 책보다 담배피고, 영화보다 맥주먹고,

사람들과 실없는 농담이나 주고 받다가,

피곤하면 그 사람 품에 안겨서 곤히 잠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는 실없는 생각따위를 하곤 한다...

 

이야기가 왜 이렇게 빠졌는지 모르겠다.

암튼 결론은,

소음공해!

 

사족1. 또, 그렇다고 나의 음악적 취향이 그리 심오한 것도 절대 아니다!

 

사족2. 혹시나 위에서 언급한 음악들을 좋아하시는 분이 이글을 읽고 상처받지 않으시기를 바란다. 어차피 취향은 개인적인 것이니. 하지만 '그것이 과연 진정으로 개인(주체)적인 것인가',하는 문제는 남아있다. 이에 대해서는 동재형과 꽤 긴 논쟁을 벌인 적이 있는데, 지금 여기서 다 언급하기는 힘들고 담에 기회가 있으면 한번 써볼 생각이다. 공부도 좀 더 해야하고ㅋ.



조 PD - 소음공해
[ Politics & Social change Pt.1  2004 ]

 

 

나는 숨을 참 듯이 한참을.. (inhale)
말을 참았다가 비트에 다 뱉지.
삶의 up and down 엔 익숙치 못해.
아직 나에겐- 인내심이 부족해. 나 어젠,
두통에 시달렸지.
요즘 사회엔- 소음 공해가 너무 심해. 욕 나오네
나의 정신건강을 위한 음악치료는
들을 때가 아닌 뱉을 때-만 가능한데
알 카포네-와 비토 꼴레오네- 마피아
또는 테러분자 빈라덴- 도 아닌 내가 어떡하면
이런 소음공해-를 없앨 수 있을까?
종일 고민 했네

난 tv에서, 길에서, 시장과 옆차에서,
편의점과 아파트 경비실에서 나오는
음악소리를 피해가기 위해
외출시 헤드폰을 모자같이 쓰네.
마치 할머니에게 틀니처럼,
할아버지에게- 보청기처럼...
내겐 귀마개가 필요해.
소음공해 때문에 노래 같지 않은 노래.
내 귀를 고문해.
과대평가와 평가절하 사이
황색언론에만 기댄 시각

낼름 삼키고 해치운 조작.
상위 5%만의 꿈일 뿐인 대박
꿈깨라 꿈깨 세상이란 굴레-
한손에 쥐려면 어떻게 하는데?

짹짹짹 거려봐라 봐라 니네..
주는 대로 받아먹는 놈이 결국 손해.
니가 먹는 것-이 피와살이 되듯-.
니가 읽는 것-은 너란 놈의 그릇-
니가 듣는 것-은 너란 놈의 수준.
먹고 듣고 보는것은 말과 똥과 오줌

i want to , i want to.. 좀 음악 다운. 노랠 틀어
다오.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기에 시간이 짧아
it"s just pollution y"all turn that shit down..

i want to , i want to.. 좀 음악 다운. 노랠 들어
다오.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기에도 시간이 짧아
내 음악치료를 위해 turn that shit down..

다들 사랑의 패자들을 대변하는 노래 하네.
난 반항과 저항을 대변하는 노래 할래.
철없는 어린이들 중학교 다니는 애-
눈높이에 맞춰 줄선 음악과 노예
육체와 정신적 사랑을 대변하기 위해 라며
이슈 만을 위해 오바하네.

고독과 철학을 대변하는 노래.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난 기억하네..
아무- 고민 없는 한량들을 대변하며
음주가무- 타령-하는 도령-
맨날 놀아보자, 할줄알어? 워우..
작사하는 이들 수준들이 거의 뭐..
초등학생 아니신가 의심스러워.
초등학교는 나왔나 의심스러워.
조로증 들이신가 의심스러워.
더 깨는 사실은 그게 내심 부러워-
카피하는 일당. 삼류 제작자랑-
태생상 한량이 될수없는 wanna be,
건달 날라리 aka 밥벌레,
이거 듣고 보니. 참 좋은 부류네..

그런 부류들이 그런 노래 부르네.
그런 가수들이 tv화면에 구르네.
구르고 나니 그런 음악 또 나오네..
그러고 보니 인기순위가 오르네
그래 그렇다고 멈출수는 없네
그래도 지금 명확히 드러나는 문제-를 볼래?
뮤직 비즈니스는 쇼비즈니스에 산채- 먹혀버렸어.
제작자는 선심쓰듯 어린 가수에게-
작사작곡 프로듀스 기회를 주네-
어차피 음악은 상관없기에...
이렇게 만들어진다네 소음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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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연애의 목적

(* 늦게나마, 듀나님이 말한 의무감을 실천(?)하고자 한다. 이미 볼 사람들은 다 봤겠지만.흠흠.)

 

몇 일간 계속 한 심각하는 영화들을 봤다. 오랜만에 새벽에 일어나서 아침을 먹은 나는, 머리나 식힐 겸 가벼운 영화 하나 보자는 생각에 <연애의 목적>을 보았고, 덕분에 지금 심기가 매우 불편하기 짝이 없다. 나는 영화 중후반까지 이유림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감정 이입은 커녕, 도저히 정이 갈래야 갈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영화는 중반부터 이 문제를 사람과의 관계와 소통의 문제로 '변질'시키고, 결국엔 사랑이라는 ‘포장’으로 이를 '정당화'한다. 영화 후반부에서야 이유림이라는 인물을 겨우 이해하게 되고 그를 동정하게 된다. 영화의 꽤 높은 완성도와 두 배우의 훌륭한 연기는 이 과정에 큰 힘을 보태준다. 그게 바로 이 영화의 '무서움' 이다.

 

사족1. 이 영화에 대한 글들을 찾아보면 별 쓰레기 같은 것들이 다 있다. 그나마 읽어볼 만한 글은 이거다.

 

사족2. 이유림 같은 인간들이 학교 선생이랍시고 거기 붙어있는 한, 나는 설령 학교를 다시 다닐 수 있다고 해도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다. 무서운 것은 이유림보다 더 한 인간들이 학교에, 이 사회에 널려있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고등학교 자퇴한 것을 단 한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다. 좀 더 일찍 그러지 못한 것을, 그리고 자퇴이후에 나의 행보를 조금 후회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사족3. 영화에 관한 사진을 하나 올릴까 하다가. 도저히 그러고 싶지가 않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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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방식에 대한 고민.

한심한 스머프...님의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 에 관련된 글.

 

 지나가다가 우연히 스머프님의 글을 보았습니다. 덧글에서 '음'님과 '붉은늑대'님이 얘기하신 것 말고, 좀 더 본질적인 부분이 남아있는 것 같아서 이렇게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그 전에 먼저 짚고 넘어갔으면 하는 것은, 스머프님의 글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갈라놓는 이분법적인 사고입니다. "몸 성한 이들이 몸 불편한 이들을 앞세우고 자기 몸을 사리는 꼴"로 그 때 상황을 묘사한 스머프님의 글은 어떤 사람들에게 굉장히 폭력적으로 다가옵니다. "몸 성하다(?)"고 해서 전경들과 더 잘 싸우는 것은, 또 그래야 한다는 것, 은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구요. 실제로 제 친구들 중에는 그 운동의 주장에는 백분 공감하면서도 집회 때 전경들과 싸우는 양태를 보고서는 '환멸'을 느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유는 다양하겠지요.) 그들을 통칭하여 "집회하러 나와서 싸움하나 제대로 할 기세를 보이지 않는 어린학생들"의 "안이한 행태"로 치부하는 것은 정말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은 좀 더 중점적인 문제인 투쟁방식에 대한 것입니다. 그날 서울역에서 시청까지의 행진 중에 발생한 충돌은 스머프님의 말처럼 "예상치 못한 상황"이 절대! 아니었습니다. 저는 비교적 집회행렬 앞쪽에서 걸어가고 있어서 그때의 상황이 어떻게 벌어진 것인지 보았습니다. 행진 중에 순간적으로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인분들이 앞서나가 일렬로 서서 도로를 막았습니다. 앞서나간 사람들은 그렇게 도로를 봉쇄했지만, 뒤따라오던 학생행렬은 전경들을 뚫지 못하고 봉쇄되었으며, 대열이 분리되어 더 이상 도로를 점거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즉, 그 상황은 도로를 '점거하려다가 실패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여기서 합법투쟁이냐, 불법투쟁이냐, 하는 논의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합법이든 불법이든 그것은 어차피 '그들'이 마음대로 갖다 붙이는 것이니까요. 다르게는 폭력투쟁이냐 비폭력투쟁이냐 하는 것을 말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상황에 따라서 어떤 투쟁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그래서 그 당위성과 필요성이 투쟁의 주체들과 충분히! 공유되고 논의 된다면, 그래서 결정된다면, 저는 그렇게 하면 된다는 생각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충분한 논의와 공유과정'입니다. 하지만 이번 집회는 그 공유과정이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속적으로 장애인운동에 결합해온 사회당 학생위원회 친구들과 집회를 함께 갔는데, 그 친구 또한 그날 벌어진 그 상황들에 대해 사전에 들은 바가 없다고 했습니다. 만약 그날 집회에서의 계획을 제가 알고 있었다면 집회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상황들을 예상해서 집회 참가자에게 공유시키고 참가여부를 선택하도록 했을 것입니다. 또 참가여부가 결정되면 참여정도(?) -앞쪽에서 전경들과 싸울지, 뒤 쪽에 물러서있던지 등- 또한 선택하도록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사전에 공유가 된다면, 그 구성원들이 좀 더 체계적으로 움직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실제로 그날 집회에서 뒤따라오던 학생대오는 어찌된 상황인지도 몰랐기에 우왕좌왕 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장애인 운동이 지금까지 그나마 이루어온 성과는 그만큼 끊임없는 고난한 과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일년 중 하루인 4월20일에 사람들 좀 많이 모여서 전경들과 잘 싸우고 길 좀 잘 뚫어서 얼마간 도로를 점거했다고 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게 저의 생각입니다.

 

간단히 집회참가후기형식으로 쓴 글에 이렇게 '오버'하는게 맞는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은, 제가 다른 방식의 운동을 고민하면서 기존의 운동방식과 많이 부딪혔던 부분이고, 또 그만큼 고민도 많이 했던 부분이라서 제 생각도 정리해볼 겸, 이렇게 글을 써봅니다. 생산적인 논의가 전개 될 수 있길 바라면서 미흡한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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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망한 상황

이 발생했다. 덕분에 나는 약속했던 참치회!를 사게 되었다. 판사가 참치회 한번 제대로 못 먹었던 용석형이 안쓰러워 보였나보다.ㅋㅋ 오늘, 같이 저녁을 먹고, 1000원짜리 생과일주스-그것도 이 시렵다고 얼음은 다 빼고- 하나씩 사서 학교 정문에 앉아 물고는, "전화번호만 주면 '잘되든 못되든 간에' 연애문제 자기가 다 해결(?)해 주겠다"고 자신만만해하는 그에게 "불구속 판결 난거 축하해야할지 말아야 할지..ㅋ"라며 농담하는 이 민망한 상황이,

무척이나 고맙고도 소중하다.

 


2005.5.15 평화수감자의 날 캠페인, 대학로에서.

병역거부선언했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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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우드맨

(스포일러가 잔뜩 있지만, 영화를 안보셨으면 글을 이해하기 쉽지 않을거에요.아마)

 

 

이 영화는 '특수한 상처'를 가진 한 남자와 그를 둘러싼 다른 상처들을 가진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 남자가 가진 ‘아동성애증’(pedophilia)이라는 특수한 상처는 현실 경험 속에서 수시로 과거의 기억들을 플래시백시키며 그를 괴롭히고, 동시에 그의 내면적 욕망과 항상 충돌한다. 주변 환경(직장동료, 그를 감시하는 경찰관)들 또한 그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특히나 소아성애증에 대해 굉장히 민감한 -혹은 공포적으로 강박적인- 미국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1시간 27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동안 영화는 많은 것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어쩌면 할 수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동성애증에 대한 도덕적, 윤리적 판단을 -우호적으로-무리하게 하다가는 자칫 엄청난 사회적 질타를 받게 될 것은 안 봐도 뻔하다. 그래도 영화는 균형을 잘 잡은 편이다. 영화는 주인공의 섬세한 심리를 묘사하는 것에 집중한다. 신인 여성 감독인 Nicole Kassell의 섬세하고도 감각적인 연출은 이를 꽤 잘잡아 낸다.
어떤 사람들은, 월터가 공원에서의 로빈과 대화 장면을 “다시 범행을 저지르려고" 했던 것으로, 캔디맨을 구타하는 장면을 “자기 자신(의 욕망)을 극복”하는 것이라고 말하던데, 나는 이에 별로 동의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그저 머리카락 냄새 맡는 것을 좋아했을 뿐”이다. (그가 여동생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해서 12년동안 감옥에 있었지는 영화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는 여자친구에게 그때 일을 고백하면서 '니가 생각하는 그런거 아냐'라고만 할뿐이다.)  하지만 그러한 욕망을 추구하는 과정이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타인에게는 상처로 남을 수 있다. 그의 동생도, 극중 아버지에게 성추행 당했던 '로빈'도 그랬듯이. 그래서 그는 '캔디맨'을 때림으로써 인간 대 인간으로서 타인에게 상처를 주었던 자신을 (좀 과격하게ㅋ)반성했던 것이다. (영화 초반 주인공은 캔디맨이 아이들을 꼬시는 장면을 보면서 "만약 저 차에 타는 아이가 있다면 그건 그 아이가 원해서 일거야"라고 하며 외면한다. 공원에서 '로빈'에게 자신의 무릅에 않기를 권유(?)하는 장면도 그리 폭력적이지는 않다. 물론, 권력이 작용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서 그것은 단순한 '권유'가 아닌 '폭력'으로 작용할수도 있다.) 

 

 케빈 베이컨과 그의 실제부인인 키라 세즈윅의 연기도 좋았지만, 잠깐 출연하는 아역배우, Hannah Pilkes의 연기도 만만치 않다. 특히 공원에서 케빈 베이컨과의 대화 장면은 영화전체를 통틀어서 감정의 떨림이 극대화된 장면이다. 그녀는 그 나이대의 소녀들이 절대로 가질 수 없는 목소리와 눈빛을 가지고 있다. 역할에 힘입은 바가 크겠지만. 한쪽 얼굴을 찡그리면서 “11살은 싫어요. 세상에서 제일 바보 같은 나이일 거에요.”라고 말할 때(물론 영어로ㅋ)는 가슴이 콩닥거리더라.ㅋ

 

삶을 관통하는 상처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아름다움이 있다.

 

사족1. '성해방'이 되었을때, pedophilia도 포함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 특성상 '권력관계'가 작용하지 않을수없으니.

 

사족2. 얼마전 한국에서 연속적으로 아동성폭행 사건들이 있었고 이에 대해 사회적으로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이놈 꼬추한번 만져보자"가 당연시되는 사회에서(그런데 "요년 보지 한번 만져보자"는?)  아동의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한 논의는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하고 충분히 필요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전자족쇄""사형제도"등에 대한 논의 또한 이성적으로(제발!!이성적으로)되어야 한다. 사람을 가장 비이성적으로 만드는건 '공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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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일주일.



 

참으로 이상한 일주일이었다. 일주일 동안 말을 엄청나게 많이 해서, 한 한달간은 침묵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이 말들이 전혀 다른 공간에서, 각각 다른 사람들과, 완전 다른 맥락으로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각 말들이 나름의 이상한 연결고리를 가지며 이어지는 것이었다. J의 박정희론에 대한 반발로 시작해서, 준희형의 운동관, 오랜만에 본 지나의 고민, 휴가나온 현호와의 생뚱맞은 구조주의 대 실존주의에 대한 논쟁, 프로메 싸이 게시판에서의 답글들, 심지어 금요일 동재형과의 대화시작은 "알앤비-워우워우~하는 식의- 를 어떻게 봐야하는가?"였다. 신기하기도 하고, 내가 워낙 말이 많았으니 당연했던거 같기도 하고. 어쩌면 마고가 자주 쓰는 표현대로 '삶이 통합되는 지점'일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충 메모를 해보니 이렇게 됐는데, 이걸로 글을 써보면 뻔하긴해도 한번 읽어 볼 만한 글이 나오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귀찮기도 하고 다른 할 것들도 많아서 관뒀다. 결론은, 요새 공부에 탄력받았다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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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라!

야간 알바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포장마차 옆 보도 블럭에서 한 아저씨가 앉아서

종이컵에 소주를 부어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눈길을 주며 "허허허" 웃고 있었다. 지나치며 그 아저씨와 잠깐 눈이 마주쳤는데, 나도 모르게 눈길을 피해버리고 말았다. 집으로 걸어가면서 NL민중가요'틱'한 노래를 만들어 부르다가 문득, 보들레르의 시가 떠올랐다.

 

시간의 짐을 견디기 위해선 취하는 정도로 되겠지만,

세상의 '공기'를 견디기 위해선 미치는 수 밖에 없다,고 나는 다짐했다.

 

미친 사람들은 무섭다. 그러나 그 반대는 더욱 무섭다.

 

보들레르 알코홀릭!

 



취하라 - 샤를르 보들레르

 

취하라

언제나 너희는 취해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은 거기에 있다. 그것이 유일의 문제다.
너희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너희를 지상(地上)으로 누르고 있는

시간이라는 끔찍한 짐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 너희는 여지 없이 취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으로 취하는가?
술로 또는 시(詩)로, 또는 당신의 미덕(美德)으로,
그건 좋을 대로 하시오. 그러나 하여간 취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당신이 때로 고궁의 계단이나 도랑의 푸른 잔디 위에서

또는 당신 방의 삭막한 고독 속에서

취기가 이미 가셨다면 물어보시오.

바람에게, 물결에게, 별에게, 새에게, 벽시계에게,

달아나는 모든 것, 탄식하는 모든 것, 구르는 모든 것,

노래하는 모든 것, 말하는 모든 것에 물으시오.


지금 몇 시냐고.

그러면 바람은, 별은, 새는, 벽시계는 대답하리다.

 

"취할 시간이다!

 시간의 학대받는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취하시오.

 노상 취해 있으시오!

 술로, 시로, 또는 미덕으로, 하여간 당신 뜻대로..."


 

 

Enivrez-vous

 

Il faut etre toujours ivre. Toue est la:

c'est lunique question pour ne pas sentir l'horrible fardeau du Temps qui brise vos epaules et vous penche vers la terre, il faut vous enivrer sans treve.
Mais de quoi?

De vin, de poesie ou de vertu, a votre guise. Mais enivrez-vous.


Et si quelquefois, sur les marches d'un palais, sur l'herbe verte d'un fosse,

dans la solitude morne de votre chambre, vous vous reveillez,

a la vague, a l'etoile, a l'oiseau, a l'horloge,

a tout ce qui fuit, a tout ce qui gemit, a tout ce qui roule,

a tout ce qui chante, a tout ce qui parle, demandez quelle heure il est;

et le vent, la vague, l'etoile, l'oiseau, l'horloge, vous repondront :

 

"Il est l'heure de s'enivrer!

 Pour n'etre pas les esclaves martyrises de Temps, enivrez-vous;

 enivrez-vous sans cesse!

 De vin, de poesie ou de vertu, a votre gu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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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식의 글은 별로 맘에 들진 않지만...

그래도 답답한 마음에 대자보나 하나 써볼까 한다.

정문에 한 몇일 붙어있다가

얼마안가 기독교동아리 홍보 포스터에 뒤덮일 운명을 가진 이런 글로는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할 것임을, 나는 알고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뻔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슬픈 글이다.

 

-

4월19일, 짧은 단상.

-민주화 이후, 4.19를 다시 생각함.

 

소위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그리 낯선 것이 아닙니다. 어릴 때 옆 짝꿍을 한대 툭 치며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야, 나는 내 맘대로 할 권리가 있다구"하며 장난을 쳤던 기억을 누구나 한번씩은 가져 보았을 겁니다. 한편으로 그 시절 국어 교과서에서 보았던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라는 시 역시 기억하실 줄로 압니다. 이 시에서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치떨리는 노여움으로...서툰 솜씨로...숨죽여 흐느끼며...남몰래"쓰던 ,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앞의 그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무게감을 지니고 있습니다.

 

 2006년 현재에, 46년전 이 날은, 또 26년전 광주의 5월18일은, 우리에게 너무나 멀게만 느껴집니다. 민주화 운동은 '기념사업'이 되었고, 그 주체였던 사람들은 현 정권에게 '보상'을 받습니다. 소위 386세대로 불리던 민주화세력은 지금은 집권 여당이 되어서, 유동적이면서도  더욱 강력한 지배체제를 만들어내었습니다. 민중들이 주체가 되어 이룩했던 민주화의 성과는 자본이 빼았아갔고, 여전히 그들은 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농민들이 더 이상 이 땅에서 농사지을 수 없게 만들어버렸습니다. 바로 옆에 있는 흑석시장에는 재개발이라는 명목하에 그 곳에서 20년 이상을 터전으로 살아왔던 사람들을 무참히 쫓아버리려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취업을 위한 학원정도로 변모해버린 대학교가 한때 진리의 상아탑이라고 불리웠다는 사실은 촌스런 옛 말이 되었습니다. 그마저도 비싼 등록금 때문에 빚을 지지 않고서는 다니기 힘들게 되었고, 졸업을 한다고 해도 노동자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인 불안한 현실에 맞서게 됩니다. 오는 4월20일 '장애인의 날'에 어떤 장애인들은 그 날을 '장애인 차별철폐의 날'로 명명하며 거리로 나서야 합니다. 또 어떤 곳에서는 경찰의 보호를 받는 용역깡패들이 그 곳에 살고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무참히 밀어내고, 포크레인으로 논과 밭을 갈아엎으며, 독재정권을 지원했던 미군의 확장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결코 잊지말아야 할 것입니다. 아니, 새롭게 기억해내야 할 것입니다. 언제나 세상을 변혁했던 것은 우리 민중들이었고, 또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는 것을...그리고 이 땅에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는 아직 한번도 오지 않았다는 것을.

 

 중앙도서관 앞에는 4.19혁명 당시의 중앙대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비가 서있습니다. 오늘 그곳에 꽃 한 송이 바치며 조용히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이것이 당신들이 진정으로 바랐던 세상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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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린다 린다 린다

 (스포일러가 있지만, 영화를 보는 데는 별 지장이 없을 거라고 생각되면서도 이런데 예민한 사람들은 괜히 후회하지 말고 그냥 읽지 마세요ㅋ)

 


 

최근에 우울할 때 마다 처방전으로 보았던 일본식 코미디 영화들 -박치기, 스윙걸즈, 거북이도 의외로 빨리 난다, 메종 드 히미코, 별이 된 소년 등- 이 나름의 효과들을 꽤 거두었기에, '린다 린다 린다'를 보게된 것도 순전히 이러한 맥락의 무척이나 실용적인 이유에서 였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그다지 발랄한 영화는 아니었고, 나는 영화를 보다가 술 먹자는 연락에 나간 것이 한번, 무척 피곤한 상태에서 보다가 졸아버린 것이 한번, 그래서 결국 세번에 걸쳐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이 영화는 한 일본의 한 고등학교에서 축제 공연을 위해 3일전에 급조된, ‘파란마음’이라는 팀명을 가진 후줄근한 스쿨밴드에 관한 내용이다, 라기보다는 그냥 영화가 '스쿨밴드 그 자체'이다. 영화전개는 실제 스쿨밴드가 공연을 준비하는 연습과정처럼 지루하기 짝이 없다. 영화 속에서 그나마 스펙타클 한 사건이라고는 공연 날 늦잠을 자는 바람에 비 맞으며 열심히 뛰어가는 것뿐이다. 그렇게 영화는 마지막 공연 날까지 그녀들을 조용히 따라가며 지켜보는데- (정말 조용히! 극중 방송반이 캠코더로 찍은 화면을 제외하고는 - 영화전체에서 클로즈업 샷이 내 기억으로는 단 한번도 나오지 않는다. 대개는 풀샷이고 많이 들어 가봤자 웨스트 샷 정도.) 그 마지막 무대 또한 그리 화려하지도 않다 -우연히도(?) 비가 내려주는 바람에 그나마 사람들은 꽤 있었지만서도.
 

이거 오늘 한국에서도 개봉 된다고 하던데, 정말이지 "와~배두나다~"하면서 몇몇 극장에 걸렸다가 일주일 만에 소리소문 없이 조용히 사라질 운명을 가진 그런 영화다.
 

만만치 않게 후줄근한 (대)학교밴드를 해본 적이 있는 나로서는 영화장면에 그때의 일들이 오버랩 되기도 하고, 영화에서 나오는 ‘블루하트’라는 그룹의 음악도 꽤 괜찮아서 조만간 조조로 다시 보러 가 볼 생각이다.

 

사족1. 써놓고 보니 정작 영화 얘기는 별로 없다. 뭐 형식을 갖춘 평론을 쓸려는 의도는 전혀 없지만, (사실 그럴 능력도 없고ㅋ). 위와 같은 이유로 영화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던 이유도 있다. 번역도 문제가 좀 있었던 거 같고. 조만간 극장에서 보고 다시 써봐야겠다.

 

사족2. 올릴만한 이미지를 찾기 위해 네이버에서 '린다 린다 린다'로 검색을 해보았는데, '잘 어울린다' '나는 달린다' '비가내린다' 와 같은 전혀 생뚱맞은 것들이 종종 눈에 띄인다. 그 중 최고는 '이거다'.ㅋ 





 


 


 


終わらない歌を歌おう クソッタレの世界のため

끝나지 않는 노래를 부르자 빌어먹을 세계를 위해
終わらない歌を歌おう 全てのクズ共のために
끝나지 않는 노래를 부르자 모든 쓰레기들을 위해서
終わらない歌を歌おう 僕や君や彼等のため
끝나지 않는 노래를 부르자 나와 그대와 그들을 위해
終わらない歌を歌おう 明日には笑えるように
끝나지 않는 노래를 부르자 내일은 웃을 수 있도록


世の中に冷たくされて 一人ボッチで泣いた夜
삶을 살다가 냉정한 취급을 받고 외톨이인 채로 울었던 밤
もうだめだと思うことは 今まで何度でもあった
이제 틀렸다고 생각한 적도 지금까지 몇 번이나 있었지
眞實の瞬間はいつも
진실한 순간은 언제나
死ぬ程こわいものだから
죽을 만큼 무서운 법이니까
逃げだしたくなったことは 今まで何度もあった
도망치고 싶어진 적도 지금까지 몇 번이나 있었어


 *Repeat


なれあいは好きじゃないから
한통속이 되는 건 싫으니까
誤解されてもしょう

誤解されてもしょうがない
오해받아도 어쩔 수 없어

それでも僕は君のことを いつだって思い出すだろう
그래도 나는 그대를 언제라도 생각해내겠지

 *Repeat

終わらない歌を歌おう クソッタレの世界のため
끝나지 않는 노래를 부르자 빌어먹을 세계를 위해
終わらない歌を歌おう 全てのクズ共のために
끝나지 않는 노래를 부르자 모든 쓰레기들을 위해서
終わらない歌を歌おう 一人ボッチで泣いた夜
끝나지 않는 노래를 부르자 외톨이인 채로 울었던 밤
終わらない歌を歌おう ……あつかいされた日日

끝나지 않는 노래를 부르자 ○○○○ 취급 당한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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