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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소설읽기

  • 분류
    riverway
  • 등록일
    2008/08/14 14:55
  • 수정일
    2008/08/14 14:55
  •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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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은 덥고, 여독을 푼다는 명분하에 붙잡고 읽었던 두권의 책. 요즘 들어 자꾸 뒤를 돌아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해되고, 받아들여지는 것이 많아지고, 그게 좋기 때문이지 싶다.

 

# 지상에 숟가락 하나

남자들이 쓴 소설을 읽으며 대개는 선택을 잘했다는 생각이 안들었는데, 읽어보니 예외였다. 신문광고에

제주도가 고향인 작가의 어린시절이 잘 표현되어 있다고 해서, 지난 봄 4,3 기념관을 다녀왔던 기억도 나고 해서, 붙들었다. 작가의 중학생시절까지 자신의 내면과 경험, 가족과 사회적 상황을 아주 상세하게 현실감있게 풀어놓은 이야기였다. 중학생시절까지만을 쓰는 이유로 그 때까지가 고향산천의 자연과 더불어 그 일부로서 살아온 자신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신을 키운 고향의 바다, 산, 바람, 냄새, 식물, 동물들.. 참으로 가난하고, 잔인한 시절을 살았지만 그 자연의 품에서 위로받고 살아날 수 있었음을 고백하는 작가의 강인함과 진솔함이 좋았다. 성장하면서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에 대해 가졌던 애정과 미움, 갈등 또한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작가가 갓 태어난 영유아시절에 대해서도 나름대로의 이미지를 기억하고 있음은 아마도 융 심리학과 같이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기 위한 노력을 했던 덕분으로 보여진다.

저 깊은 곳에 숨겨진 자신의 여성성을 잘 발견하고, 받아들이는 모습 또한 놀라웠다. 대개 심리학적인 이해에 대한 관심은 여성들에게서나 흔히 있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뜻밖이었다. 성장기에 겪은 자신의 성적 정체성에 대한 경험도 진솔하게 소개하여 남성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었다. 자신의 출생에서부터 살아온 날들을 충분히 기억해내고 의미를 부여하거나 해석하면서 온갖 감회와 감정을 쏟아놓을 수 있는 것은  작가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이 아닐까? 언젠가 나도 한번 시도해보리라...

 

# 유진과 유진

다음 학기에 1학년 학생들에게 "인간발달의 이해"를 강의할 것을 자청한 바 있기에 청소년들의 심리와 경험에 관심이 간다. 동일한 상처를 서로 다르게 받아들이며 자라는 큰 유진과 작은 유진의 이야기다. 어쩌면 아이들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서로 다른 어른, 부모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불가항력적인 상처를 받고, 그 상처로 인한 피해를 최대한 줄이고, 그 흔적을 드러내지 않도록 꼭꼭 감싸며 오히려 만회하기 위하여 주어진 "역할"에 집착하는 방식이 있다. 작은 유진은 전교1등을 하는 학생으로서 그 상처를 포장하도록 길러진다. 반면, 큰 유진은 그 상처의 아픔을 위로받고, 마음껏 같이 슬퍼해주며 존재 자체로 소중함을 인정받으며 자연스럽게 살아가도록 길러졌다.  감정의 자연스러운 분출과 흘러감을 허락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가출한 두 소녀가 부모와 다시 재회하는 상황에서 두 모녀가 보인 반응이 아주 대조적이었다. 화가 나면서도 반갑고 기쁜 마음을 끌어안고 표현할 수 있는 관계와 서서 바라보고 속으로만 느끼고 판단하는 관계.

내 사고가 유독 "...로서   ...해야 한다"에 고착되어 있었던 이유에는 "상처"를 드러내지 않으려함이 자의반 타의반 작용했던 것임을 부정할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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