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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겨울, 제가 만났던 간호사 두분의 이야기입니다.
한 분은 영산강 주변 영암군의 한 산골에서 일하시는 40 중반의 보건진료원입니다.
어릴 때 시골에 살면서 한 마을에 사는 친구 중에 저수지를 갖고 있는 부잣집 아이가 있었다네요. 친구 아버지는 과수원에서 일하시다가 저수지에서 낚시를 해서 친구를 불러 집에서 고추장가져오라고 하시어 날로 드시곤 했답니다. 언젠가 친구집에 놀러갔을 때 친구아버지가 편찮으셔서 누워계셨고, 얼핏 배가 부르고 누런 얼굴을 하고 계신 것을 보았다네요. 그리곤 돌아가셨다는 이야길 들었구요. 그 기억이 생생하게 다시 떠오른 것은 자신이 보건진료원이 되어 주민들에게 간흡충 검사와 예방교육을 하게 되었을 때랍니다. 먹을 것이 정말 귀하던 시절에 자기 저수지에서 민물고기를 날로 드시던 부자가 어릴 적엔 마냥 부러웠었는데 알고 보니 그것 때문에 돌아가셨을 수도 있었겠다 싶은 거지요. 그 꼬마가 커서 보건진료원이 될만큼 세월이 훌쩍 지난 지금, 아직도 유일한 단백질 보충식이라 여기며 민물고기 회를 어린 아이들에게까지 먹게 하는 주민들이 계시는 강가 마을에서 어릴 적 그 추억을 찾아낸 선생님의 마음이 제게 큰 감동을 주더군요.
또 다른 한분은 병원에서 평간호사로 일하며 정년퇴직을 하고 싶다는 40대 초반의 간호사입니다.
집안이 어려워 산업체 고등학교가 있는 회사를 다니셨다네요. 어느 여름 장마비가 심하게 와서 친구들 기숙사가 물에 잠겼대요. 그 당시는 월급을 현금으로 받아서 저금하는 것도 잘 몰라서 그냥 기숙사에 모아두고 있던 친구들이 많았는데 그만 한 순간 물에 다 잠겨 잃어버리게 되었답니다. 비가 많이 오니 기숙사에 가서 짐을 챙기라고 회사에서 안내만 해주었더라도 몇 년간 고생한 그들의 재산이 그토록 허망하게 없어지지는 않았을꺼라구요. 그 때 친구들은 망영자실 하여 그저 회사 정문앞에 모여 있었답니다. 피켓도, 머리띠도 두를 힘은 없었지만 한 발짝도 뗄 수 없을만큼 절박했고, 자신은 그 친구들에게 주먹밥을 해다 날랐다네요.
그 후 자신은 회사를 나와 졸업을 하고 간호사가 되어 병원에 들어갔을 때 그 때 그 경험을 잊을 수 없어 노조에 가입을 했답니다. 경력이 쌓이면서 대의원 활동도 하고 파업에도 참여하였고, 그로 인해 승진이 늦어지는 불이익을 당하며, 탈퇴를 권유받아왔지만 자기 혼자 힘으로는 허망하게 자신의 것을 빼앗길 수도 있음을 알기에 조합원으로 남아있답니다. 그리고, 환자를 돌보는 일은 자신에게 잘 맞고, 하고 싶은 일이라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정년이 될 떄까지 일하고 싶다고 합니다. 조용하지만, 당당한 그 목소리가 아직도 제 맘에 남아 있습니다.
저는 두 분의 이야기에서 간호사라는 직업인이기 이전에 자신이 살아오면서 겪은 경험이나 갖고 있는 바램을 통해서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의 의미를 재발견하는 진정성을 보았습니다. 두 분의 진실된 고백은 제게 새로운 도전이고 격려로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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