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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접근을 통한 변화' - 2

하지만 동독지역(Zone)에서의 변화는 매우 어렵게 달성될 수밖에 없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동독은 정치적인 발전 면에서 폴란드, 헝가리, 그리고 소련보다 더 낙오해 있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울브리히트가 권력에 머무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마지막 스탈린주의자임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바로 그러기 때문이었다. 1953년의 경험들은 크레믈린이 보기에 동독지역에서(in der deutschen Zone) 사람들에게 편익을 허용하면 그들에게 얼마나 위험한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주었다. 이건 바로 갈라진 민족의 한쪽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폴란드 혹은 소련 등과 달리 사회적 경제적인 요구들이 곧바로 [서독으로 가자는] 정치적이고 민족적인 요구들로 전복되기 때문이다. [동독이] 독일연방공화국과 비교해서 뚝 떨어지기 [때문에] [동독사람들이] 독일연방공화국으로 쏠리는 것은 [직관적인] 현실이다 (Das Gefälle zur Bundesrepublik ist da/동독사람들이 서독으로 쏠리게 하는 낙차가 있다.). 그리고 이런 낙차(落差)는 18년간의 공산주의 지배로 제거될 수 없었다. [생산]목표량(Normen)을 더 적게 하라는 요구에서 [출발한] 1953.6.16 [의 봉기가] 스탈린알레(Stalinallee/도로명)에서 [포츠담 광장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재무부(Haus der Ministerien)로 가는 도중에 자유선거를 실시하라는 요구가 되었다. 울브리히트 정권은 고삐를 놓치고, 오직 소련 전차의 힘을 입어 다시 장악할 수 있었다. 결과는 울브리히트의 지위 강화였다.

 

동독지역을(Zone) 소련 영향권에서 낚아챌 수 없다는 게 틀림없다면, 나는 그리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저쪽 정권의 직접적인 붕괴를 지향하는 모든 정책이 아무런 가망이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 결론은 우리의 분통을 터뜨릴 만금 불편하고 우리 감정에 거슬리지만 논리적이다. 이 결론은 변경과 [그 결과로서의] 변화(Änderungen und Veränderungen)는 오직 현재 저쪽에서 지배하는 혐오스러운 정권을 [전재로 하여] 출발해야만 달성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것은 듣기보다 그리 깜짝 놀라고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엄격하게 음미해보면(schliesslich) 우리는 이미 이 정권과 상당기간동안 관계를 갖고 있고 나아가 [들킬까봐 두려워 직접 하지는 못하고 뒤로 호박씨 까듯이] 슬그머니(verschämt) 신탁소라는 걸 차려서 [동서독] 지역 간의 교역(Interzonenhandel)을 [대행하도록 하는 걸] 지지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아주] 자연적으로 아직 현존하는 경제적 관계를 포함한 모든 관계의 단절로 동독지역(Zone)이란 구성체(das Gebäude der Zone)의 붕괴가 [생각]가능하지 않을까 저울질 해보는 충동이 솟아오른다. 여기다 한술 더 떠 의도적으로 추진된 상황악화를 통해서 그 구성체가 붕괴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이론적인 생각에 매달리고 몰두할 수도 있겠다. 냉정한 저울질은 이런 생각의 전면 거부로 이어진다. 경제적 어려움이 어쩌면 정권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이다. 동독지역(Zone)에 살면서 [동독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교역을 중단하라, 우리는 기꺼이 허리띠를 더 졸라맬 거다.’라는 선의의 조언들은 유감스럽게도 앞길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기대고 있는 경험] 바로 그 경험을 통해서 우리는 긴장 증대는 울브리히트를 강화하고 분단의 골을 깊게 한다는 걸 알고 있다. 저런 입장이 베를린이 처해 있는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저런 입장에 대한] 다음 반증은 우리[모두]가 정당하게 동독지역(Zone)의 정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얻은 결론이다. 나는 동독 인정을 둘러싼 논쟁을 때때로 협소하다고, 나아가 다분히 위험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런 류의 논쟁은 우리를 막다른 골목으로 끌고 가서 [결국 어떠한 정책도 취할 수 없게] 정치 [자체]를 망쳐놓을(jegliche Politik verbauen) 수 있기 때문이다. 동독지역(Zone)을 자주국가로 인정하는 걸 거부하는 자명하고 어느 누구도  문제시 삼지 않는 행위가 우리를 마비시켜서는 안 된다. 수년 동안 적(赤)중국(Rotchina)과 미국의 대사들이 제네바와 바르샤바에서 협상했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적중국을 인정했다거나 아니면 그런 대화가 인정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었다. 독일민주공화국 - 인용부호를 사용하지 않았다1 - 의 내무부 장관이 베를린에 주둔한 연합군에게 1961.8.13일자로 모든 통로를 통해서 베를린동부지역에 출입할 수 있는 권리를 계속 행사하는 걸 금지하고, 오늘날의 체크포인트 찰리의 통로로만 제한했다. 연합군이 이 지시에 따랐을 때  아무도 그게 ‘DDR’의 인정 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또한 동독지역(Zone)의 군대[=동독군]이 모든 법을 어기면서 동베를린에 진입하여 미국, 영국, 그리고 프랑스 군에 맞서 이들이 앞의 지시를 따르도록 했을 때 아무도 그런 주장을 하지 않았다.  오늘날 동독이탈자가 슈프레 강을 수영하여 도주할 때 총격을 받으면 혹은 동독 이탈자를 실은 버스가 복잡하게 구축해 놓은 진입방해시스템(Slalomsystem)에 걸려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차안의] 사람들이 총격을 받으면 이건 어디까지나 범죄행위의 사건이다. 그렇지 않는가? 그러나 우리 경찰은 응사해서는 안 되고 이런 범죄행위를 저지하게 위해서 그 무엇을 해서도 안  되게 되어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 아무도 감히 이것이야말로 가장 조야한 인정의 형식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연방경제부장관과 베를린 시장의 위임으로 [활동하는]  협상대표가 있다. 저쪽의 위임자와 수년 전부터 협상하고 있는 레오폴드 박사다. 이것 역시 인정이 아니다. 아무튼 아무도 그런 주장을 하지 않았다. 우리 중 그 누구도 [내독 통과검문소]  퇴펜, 마리엔보른, 혹은 라우엔부르크에서 통행료를 지불하고 [검문소의] 신분증 투입구에 신분증을 내밀고 뒤에서 이루어지는 신분조사에 응한다고 해서 울브리히트 정권을 인정하는 건 아니다.  우리가 특정 부류의 사람들에게 다른 길들이[육로가] 통제로부터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즉 울브리히트 정권의 압류가능성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항공을 사용하라고 권하면 이것 역시 인정이 아니다. [이런 것들이 동독인정이 아니라면] 독일연방공화국이  판코우(Pankow/동독수뇌부거주지)와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국가와 외교관계를 끊으면 이건 더욱더 인정이라 할 수 없다. 기껏해야 인정의 부정형식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저런 강제정권의 법적인 인정과 실증된 정당성을 밑도는 차원에서 [이미] 수많은 것들이 우리가 접하는 현실에서(bei uns) 통용되고 있고, 그 [강도는] 그런 형식들을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에게 유리한 쪽(Sinn)으로 사용 가능하게 할 수 밖에 없을 정도라는 결론에 이른다. [그래서] 레오폴드 박사가 혹은 다른 사람이 [동서독] 지역 간의 교역뿐만 아니라 양독일 간의 실천적인 이익과 관련이 있는 모든 문제를 다루는 당국의 수뇌로 승격된다고 해도 나는 거기서 현재상황의 실질적인 변경을 볼 수 없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동서] 지역간 교역을 위한 신탁소(Treuhandstelle füer Interzonenhandel)가 이미 지금까지 의심의 여지없이(ja) 오직 무역문제만을 따로 다루지 있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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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동독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표현으로 수구꼴통 언론사 슈프링어는 동독을 표기할 때 항상 인용부호를 사용하였다. 'DDR' 이런 식으로 텍스트로 돌아가기

번역: '접근을 통한 변화' - 1

접근을 통한 변화
(1963.7.15  독일개신교 아카데미 투찡에서의 에곤 바르의 발제)

원문

 

최근에 통일 주제에 관한 이야기들이 한보따리 있었다. 나는 이런 이야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연을(Korreferat) 하지 않고 단지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깨달은 점(Anmerkungen) 몇 가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이것들은 [다른 방향으로의] 토론을 자극하기 위하여 고안된 것이고 우리가 지금까지의 입장을 계속하면 과연 통일정책의 전적으로 부정적인 결과를 바꿀 수 있을까라는 회의와 통일정책을 가능한 한 선입관에 사로잡히지 않고 새롭게 두루 생각해야(durchdenken) 할 때가 되었고 이게 우리의 의무라는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새로운 통일정책은] 물론 베를린문제가 따로 해결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독일문제가 동서대립의 일부라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독일인이 한 [협상]테이블에 모여서’(Deutsche an einen Tisch)라는 구호는 [얼핏 독일분단 극복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항상 독일분단의 인정에 기여하는 구호일 뿐이었다. 소련이 아직 예전과 다름없이 동독을 [소련]방위의 완충지역으로(Glacis) 꽉 붙들고 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동베를린에 민주주의자가 앉아있다고 이론적으로나마 상상해 보자. 이때 곧바로 분명해지는 것은 통일은 오직 독일인의 일이라는 소련의 [민주주의 원칙을 준수하는] 테제가 동베를린에서의 소련 총독의 지배를 전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통일의 전제조건들은 오로지 소련과 함께 마련될 수 있다. 통일은  동베를린에서 얻을 수 없고, 소련에 대항하여 , 소련을 제쳐놓고 얻을 수 없다. 어찌되었든, 동베를린과 협력해서 통일을 이룩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결국 소급되는 관념들을 개발하는 사람은 환상에 매달려 있는바, 20 혹은 22개의 잘  무장된 소련 사단들이 [동독에] 주둔해 있음을 생생하게 그려보기 바란다.

 

통일은 외교적인 문제다. 이것은 수많은 결의와는 모순되지만,  독일연방정부 산하 전독일문제부가 아니라 외무부가 통일문제덩어리를 소관하고 있다는 건 현실적인 상황과 일치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도 이런 소관분담이 DDR[동독 약자]의 인정을 의미하는 거라고 생각하게끔 하지 않았다.

 

또한 미국의 평화전략은 공산주의 지배는 제거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변화되어야 한다는 문구로 정의될 수 있다. 미국이 시도하기 원하는 동서관계의 변화는 우선 현상에 아무런  변화를 주지 않음으로써 궁극적으로 현상 극복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이것이, 지금까지의 압력과 反압력의 정치가 단지 현상의 경직만을 야기하고 난  이후에, 새로운 전망을 개시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더 좋고 평화적인 의미에서 더 강한 세계라는 확신이  자신과 다른 쪽이 문을 열고, 지금까지의 [동독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해방관념을 보류하는 시도를 생각할 수 있게 한다.

 

문제는 이런 구상에서 특별한 독일 과제가  있는지 아닌지 그 여부에 있다. 나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동서관계의 발전에서 배제하지 않기를 원한다면 이 질문에 긍정적으로 대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 이런 틀 안에서 오직 독일인만이 실현할 수 있는 과제가 있다. 왜냐하면 민족이 분단된 우리는 유럽에서 유일한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평화전략을 독일에 적용하여 얻게 되는 첫째 결론은 다 아니면 무(無)라는 정치를 [배설하듯] 버리는 것이다. 자유선거 아니면 무, 전독일의 자유결정권 아니면 완강한 아니요,  첫걸음으로 선거 아니면 거부, 이런 모든 것들은 구제불능의 옛것이고 비현실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평화전략[이라는 맥락]에서 아무런 쓸모가 없는(sinnlos) 것이다. 오늘날에 분명한 것은 통일이란 어느 역사적인 회담에서, 역사적인 어느 날, 어느 한 역사적인 결의로 한꺼번에 완성되는 한 번의 행위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수많은 발걸음과 수많은 단계를 수반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다른 쪽의 이익도  역시 인정하고 반영해야 한다는 케네디의 말이 옳다면, 소련은 분명 동독이(Zone=소련 관할 지역) 서구의 역량  강화의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빼앗기는 걸 가만두고 볼 수 없다. 동독(Zone)은  소련의 동의아래 형상을 바꿔나가야 한다. [소련의 동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지점에 도달하게 된다면] 우리는 통일을 향한 큰 걸음을 내딛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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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저항의 미학 - 노동자의 읽기 2

(이어서)

 

 

그러지 않고 [배제대신 진리와 같이] 뭔가 영원하고 [자존하는] 위대한 걸 발견했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우리의 계급에서 멀어지는 위험에 빠지게 되었다. 새로운 호명하기와 새로운 연상을 사용함으로써 우리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지배에 의해서 지적 차원의 접근은 아예 고려하지도 못할 정도로 겁탈당한 [노동자들의] 불신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만 들여다보아도 그들 안에 가려져 있는 표현력을 상기할 수 있었다. 1933년 [히틀러] 이전에 점심시간에 아버지가 일하는 사업장을 방문하곤 했다. 그러면 종종 어느 한 교육단체에서 나온 사람이 기내식당에서 강연을 하거나 시를 낭독하는 일이 막 진행되는 판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저런 방식으로 정신적인 영역으로의 연관을 이룩하는 것의 불가능성이 분명해졌다. 거기 노동자들은 양철밥통, 보온병, 기름종이로 싼 빵조각 앞에서 금속과 리벳 해머의 굉음에 반 귀머거리가 된 체 허리 굽혀  앉아 있었다. 휴식은 단지 20분이었고, 그들이 강연하는 사람으로부터 눈을 떼고 얼굴이 책상에 닿도록 허리를 굽혀 앉아 있었던 이유는 식사를 빨리 끝내야 하는 바쁨에만 있지 않았다. 선의로 그들에게 제공된 것을 가지고 전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당혹함에 그 이유가 있었다. 강연이 끝나면 자리에서 일어나 사업장으로 되돌아가는 길목에서 박수를 친 것은 오로지 예의로 하는 의례적인 것이었다. 예술가인 강연자는 노동자들로부터 뭔가를 받아갔지만  노동자들은 아무것도 받지 못하고 가는 것이었다. 이것은 외부로부터, 위로부터 우리 속에 감명을 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감금되어 있는 한,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었다. 이걸 나는 그때 깨달았다. [감옥에 있는 우리에게] 한 번 밖을 내다보도록 선물하는 모든 시도는 [우리에게는] 불쾌하고 [노동자들에게는] 수치심을 돋우는 일 이상이 것이 될 수 없었다. 우리는 부스럼을(Zuteilungen) 원하지 않았다. 우리의 몫이라고 떼어서 주는 부족한 것(Stückwerk)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통째(das Ganze)였다. 이 통째는 또한 예로부터 내려온 것이어서는 안 되었다. 먼저 창조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우선 필요한 것은 정세보고, 정치적 조치들의 설명, 조직계획이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오로지 우리 내부의 대열에서만 나올 수 있었다. 이런 내부토론에서의 실천적인 고려가 또한 문화라고 일컬어질 수 있는 구성물로 이어지기도 했다. 세대에서 세대로 연결되는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자존과 위엄으로 발돋움하는 [탐]구하는 [촉촉한] 목소리들의 질이 묻어있는 그런 문화구성물이었다. 정신적인 억압에서 빠져나오는 우리의 길은 정치적인 것이었다. 시, 소설, 회화, 조각, 음악작품, 영화, 드라마 등 무엇이 되었든지 문화의 참조는 먼저 정치적으로 엄밀하게 검토되어야만(durchdenken) 했다. 이건 [촉각을 세우고] 우리 주변을 조심스럽게 더듬어 음미하는 (Umhertasten) 것이었고, 그러는 중 발견한 것이 있으면 어디에 쓸모가 있을지 아직 몰랐다. 단지 우리가 이해한 건 그게 의미 있는 게 되려면 우리 자신으로부터 나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코피의 아버지는 책상에 논 가방에서 구겨졌지만 [재활용하기 위해서] 접어 둔 [빵을 싸는 기름]종이, [보온]병, 이층 도시락 통(Butterbrotdose)을 꺼냈다. 설거지하고 커피를 끓였다. 코피의 아버지는 웃통을 벗고 목과 얼굴을 싹싹 씻었다. 그리고 앞 부문에 사슴머리 한 줄이 수놓인 면 재킷을 걸쳤다. 우리는 장차 우리의 소유로 만들 것들에 대하여, 우리가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인류의] 업적에 대하여 이야기를 계속했다. 밤이 되면 내 팔은 2미터야, 걸으면 손이 질질 끌려. 코피의 아버지가 말했다. 이 모습에 우리가 성인이 되는 과정에서 문학과 예술과 씨름하면서 우리에게 와 닿은 모든 것이 새겨져 있었다. 코피의 아버지는 공장 적하장에서 8시간 궤짝을 밀고 당기고 날랐다. 대포의 부품들을 포장한 궤짝들이었다. 그리고 코피의 어머니는 텔레푼켄공장에서 전투기 조정에 필요한 장비를 생산했다. 만들어 내보내지는 모든 부품과 포장에는 개별적인 책임추궁이 가능하도록 작업과정에 투입된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된 감독리스트가 붙어있었다. 덜 쪼여진 나사, 톱니바퀴 안에 모래 한 톨, 빼먹은 혹은 잘못 배선된 전선, 바로 이런 것들이 읽기의 결과, 그림보기의 결과가 견주어 평가되어야 하는 구체성(Gegenständlichkeit)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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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저항의 미학 - 노동자의 읽기 1

일러두기: 생산노동자 앞에서의(‘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면서’란 의미의 ‘coram deo’를 차용하여) 읽기 윤리학을 고민하면서 '저항의 미학' 한 부분을 번역한다. 단락매김은 참조를 쉽게하기 위해서 역자가 임의적으로 매긴 것.

 

1권

[§4]

(...) 상한 몸을 간추려 바리케이드 뒤에  옹그리고 있는 아무런 무기가 없는 사람들은 위용을 자랑하는 이름으로 치장하고 백전불패이며 최상의 세계질서를 추구하는 선택받은 사람이라고 자긍하는 자들에 의해서 절멸되는 형벌에 처해져 있었다.  그녀는 [코피의 엄마] 세숫대를 비우고 난 후, 구부정하게 앉은 자세로, 허벅지에 수건을 건 체, 알아볼 수 없게 희미한 형상으로 채워진 [페르가몬 신전의 양각] 벽 그림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우리의 서술에서 모든 힘을 빼앗긴 체 땅 위에 이리저리 흩트려져 있는 사람들을 짓밟는 고문자들의 대승리밖에 인식할 수 없었다. 한 참 동안의 침묵 후에 하일만이 입을 열었다, 페르가몬에서 만들어진 작품과 같은 [예술] 작품들은 [해석의] 전복을 획득하고 땅의 사람들이 어둠과 노예상태에서 깨어나고 그들의  참다운 모습으로 등장할 때까지 거듭 재해석되어야 한다고.


[§5]


지(知)의 우월성은 경제적인 비호와 분리될 수 없었다. 소유의 속성은 인색이었고, 기만으로 이익을 본 자들은 무산자들에게 자기형성(Bildung/교육)의 길을 가능한 한 끝까지 막으려고 시도했다. 우리 [노동자]가 [사회적] 관계들을 통찰하고 근본적인 [경험의] 지식들을 획득하기 이전에는 지배자들의 특혜들이 지양될 수 없었다. 결합하고 추론하는 사유의 능력이 우리에게 아직 충분하게 개발되어 있지 않아서 우리들은 반복해서 다시 뒤로 밀리게 되었다. 이런 상태에 대한 변화의 시작은 상위 계급들의 주력이 우리들의 지를 향한 억누를 수 없는 몸부림(Wissensdrang)을 겨냥한다는 걸 인식하는데 있었다. 이런 인식아래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의 훈련(Schulung)을, [지을 지향하는 우리를 가두는 격벽에서 빠져나오는 교묘한] 슬기(Verschlagenheit)와 자기극복에 이르기까지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탐구의 모든 영역에서 [완벽한] 숙련을(Ferigkeit) 정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우리들의 학습은 시작부터 반항이었다. 우리는 우리를 방어하고 정복의 기회를 준비하기 위해서 자료를 수집했다. 이 수집은 대부분 우리가 완벽하게 소화한 것(das Begriffene)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거의 우연이 아니었다. 우리는 한 대상에서 다음 대상으로 나아가면서 피로와 길들여진 자리에서 훈련된 익숙한 보기뿐만 아니라 우리 노동자는 노동일과 후 독학에 요구되는 노력을 할 역량이 없을 거라는 그럴듯한 말에 대항하여 분투했다. (...) 문화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거대한 재화와 축척된 발견들과 계발들의 비축으로 표현되는 문화와 일치되는 적이 거의 없었다. 무산자인 우리들은 처음엔 기가 죽어서, 그리고 경외로 가득 찬 마음으로 착착 쌓아 놓은 [문화유산]에 다가갔으나, 마침내 우리 스스로가 이 모든 것들을 우리 고유의 평가들로 채워야 하고 [문화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총체적인 개념이(Gesamtbegriff) 우리들 삶의 조건과 더불어 우리 사유하기의 어려움과 특질에 관한 이야기가 될 때 비로소 유용한 것이 됨이 분명해졌다. 이 문제는 루나차르스키, 트레티야코프, 트로츠키에 의해서 주제화되었고, 우리는 이들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우리는 또한 1920년대 [러시아에서] 일어난 글 쓰는 노동자 양성을 위한 발안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문화문제에 관한 마르크스, 엥겔스, 그리고 레닌의 발언들은 서클학습에서 토론했다. 이런 것들은 우리에게 뭔가가 활짝 트이게 하고 고무하고 또한 앞으로 있을 일을 지시하기도 했지만 우리가 [도착점으로 설정하고] 얻고자 애써 나아가는 총체성(Totalität)과는 일치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직 예로부터 내려온 것을, 즉 궁극적으로 지배세계의 기준들과 결별을 선언하지 않은 것을 표현하고 있었다. 우리에게도 역시 문화라고 일컬어지는 것이 유익한 것이 되어야 한다는 진보적인 쪽의 말도 있었고, 우리 또한 수많은 작품들의 위대함과 무게를 인식하고 어떻게 사회계층들이, 모순들이, 그리고 충돌들이 시대들의 예술적 사료들에 반영되어있는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것들로 아직 우리 자신을 [주체로] 포함하는 [형]상에 도달하지 못했고, 우리와 상응해야 한다는 모든 것은 [단지] 여기저기서 빌려다 놓은 형태들과 양식종류들의 집합일 뿐이었다. 완성품으로 우리 앞에 있는 것에서 우리가 읽어 내는 것은 언제나 우리가 단지 배제된 존재(Ausgeschlossensein)라는 것이었고 이 사실과 맞서는 것이었다. 이게 확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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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기록과 어머님의 기억

생일을 두 번 쇤다. 주민등록증에 기록된 생일과 어머님의 기억이 다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어머님과 연락이 두절되었고 나는 세상의 기록에 따라 생일을 쇘다. 다시 말이 오고가고 난 후 어머님은 내 생일이 아닌 날 전화하여 생일이라고 하셨다. 세상의 기록이 어찌 잘못되어 있을 수 있냐고, 어머님이 잘못 기억하고 계실 거라고 했지만, 어머님은 내가 세상에 나온 날의 상황을 세세하게 이야기해 주셨다.

어머님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여 내 생일을 ‘재구성’해 보니 어머님의 기억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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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독일 이상주의의 가장 오래된 체계구상 -1

스피노자의 윤리학을 이어받으면서 이에 대립하는1 윤리학.
 현재 태동하고 어느 날 우리 앞에 나타날 형이상학은 온통 도덕의 몫이 될 것이다. 윤리학을 다루는 칸트가 제시한 실천적인 [이성의] 요청 두 개는  단지 장차 윤리학의 언저리에서만 놀았지 [그 진수를] 다 길러내지 못했다. 그래서 이 윤리학은 모든 이념들을, 혹은 이와 다를 바 없는, 모든 실천적인 요청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아우르는 체계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첫째 이념은 물론 자기 자신을 절대 자유로운 존재(Wesen)로 표상하는 관념이다. 자유로운, 자신을 의식하는 존재와 함께 동시에 총체적인  세계가 - 무로부터  등장한다. [이것이야 말로] 참답고, 거슬러 올라가 생각할 수 있는(gedenkbar)  유일한 무로부터의 창조다. - 여기서 나는 물리의 영역들로 내려간다. 이때 제기 되는 질문은 이것이다. 도덕적인 존재 앞에서 세계는 어떤 성질을 갖춰야 하는가? 나는 우리들의 더딘, 실험에 기대어 힘들게 앞으로 나아가는 물리에 날개를 달아주길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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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원문의 줄표를 이렇게 번역하였다. 이 줄표가 함축하는 것을 Konstellation(배열/구도)라는 개념아래 방대하게 연구한 사람은 Dieter Henrich. 텍스트로 돌아가기

단상: 강신주의 노숙자대하기 9 - 스피노자의 잘못

산행을 준비하는데 등산화가 걱정이다. 등산화를 사러 갔다. 상점주인이 등산화 한 벌을 가져온다. 신어보니 영 불편하다. 그리고 뭔가 이상하다. 짝이 안 맞는 것 같다. 이리저리 불평해도 상점주인은 적극 권한다. 손님께서 계획하시는 산행에 최적 등산화라고. 요새 제일 잘 나가는 명품이란다. 한 짝에는 ‘스피노자’, 다른 짝에는 ‘ 제임스 조이스’라는 라벨이 달려있다.

 

우째 이런 일이.

 

사유를 shopkeeping 정도로 상상하는 사람은 물건정리(개념혼동)를 잘못했다고 지적하는가 하면 관용이 풍부한 사람은 서로 다른 짝을 한 벌로 보고 신어서 자기 걸로 만들라고 한다.

 

이런 것도 있는 것 같다. 백만 달러 수표를 흔드는데 어찌 동전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

 

근데 필히 동전을 요구해야 한다. 깨물어 봐야 한다. 의심이 진리로 가는 길이고 진리가 자유를 준다면 아니 자유 안에서 비로소 진리가 나타난다면 필히 그래야 한다.

 

스피노자의 감정론이 제대로 된 것인가? 백만 달러 수표 흔들기 전에 동전을 보자.

 

- 의심 1

 

스피노자의 수치[심](verecundia)의 정의가 제대로 된 것인가? 수치심은 어쩌고저쩌고 하고 나서 이에 대립되는 뻔뻔함(impudentia)은 감정이 아니라고 한다. 그 설명을 다른 곳에서 하겠다고 약속하나 내 눈이 어두운지 안 보인다.

 

verecundia가 짬뽕이란 건 앞 포스팅에서 지적했다. 스피노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토막 난 것들이 어지럽게 혼합되어 있는’(mutilatae et confusae, 에티카 3부 감정론, 요청 2, 명제 1) 관념이란 것. 이건 수치심이 뭔가를 능동적으로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혼잡한 관념의 원인으로 - 이런 게 신에게 있어서는 없지만 - 정신의 essentia(=adaequata idea/타당한 관념) 외에 다른 사물들의 정신들이 동시에 있기 때문이란 것. 이런 혼잡한 관념은 필연적으로 뭔가를 당하게 되어 있다는 것.

 

- 의심 2

 

욕망, 기쁨, 슬픔 3대 감정을 기본으로 하여 감정의 타블로를 만든다. 근데 놀라움(admiratio)과 경멸(contemptus)은 각 감정 정의 4번째, 5번째 자리를 차지하는 것으로 봐서 중요한 감정인 것 같은데, 3대 기본 감정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 다시 말해서 각 감정은 결국 ‘어쩌고저쩌고하는 슬픔이다, 기쁨이다, 욕망이다’ 이렇게 정의되는데 놀라움과 경멸은 완전히 달리 정의된다.

 

놀라움과 경멸은 기독교의 화두다. 기독교인인지 아닌지를 가르는 기준이다. 하나님 찬양 아니면 하나님 경멸. 경멸이란 밀턴이 ‘실락원’에서 말했듯이 어디서나 머리가 되는 것.(to reign is worth ambition though in hell better to reign in hell than serve in heaven). 그래서 대표 기도할 때 ‘어디가나 머리가 되게 해 주십시오’하면 절대 ‘아멘’해서는 안 된다. 큰 소리로 ‘사탄아 물러가라’해야 한다.

 

부끄러움에 달리 접근해야 하지 않는가 한다. 더 공부해야 할 문제. 아마 사르트르에 기대어 너와 나, 그리고 다른 너와 나의 사회적 공간이 형성되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강신주도 아마 이걸 목적하고 있을 것이다. 씹어서 미안.

 

그리고 ‘죽은 사람들’에 혼합되어 있는 관념들 하나하나도 분석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먼저 한국지식인을 지배하는 심급들이 더블린의 지식인을 지배하는 심급들과 비교될 수 있을까하는 점이다.

 

근데 게이브리엘의 눈물에 천안함 앞에서 정호승이 짜내는 눈물이 겹치는 건 왠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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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강신주의 노숙자대하기 8 - 치욕과 성폭행

성폭행은 치욕이다. 성폭행을 당한 여성은 자기 안의 모든 것이 죽어버린 것과 같은 심적 상태에 빠진다. 모든 것이 마비되고 행동력을 상실한다.

 

성폭행 피해자 여성은 대부분 신고하지 않는다. 성폭행을 신고하고 가해자가 처벌받도록 하는 걸 원하지 안 해서 그럴까? ‘정신과 감정이 죽어있어서’ 그런가? 아마 두려움 때문일 거다.

 

스피노자는 두려움 혹은 겁(metus seu timor)을 이렇게 정의한다.  

 

“겁이란 우리가 보다 큰 해악을 두려워한 나머지 보다 작은 해악으로 [대체하고] 피하려는 욕망이다.” (Timor est cupiditas majus, quod metuimus, malum minore vitandi.)

 

성폭행 피해자 여성이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는 걸 두고 수치심 없는 뻔뻔스러운 여성이라고 하지 않는다. 성폭행 치욕의 사실이 알려짐으로써 보다 더 큰, 즉 사회가 주는 치욕이 두려워서 그럴 것이다.

 

스피노자의 수치심(verecundia)은 욕망(cupiditas), 기쁨(laetitia), 그리고 슬픔(tristitia)이란 기본 3대 감정에서 욕망에 소속되는 감정인 겁(timor)의 하위 감정이다. 슬픔에 소속되는 치욕(pudor)과 종을 달리한다.

 

근데 두려움과 치욕을 결합하면 빠져 나갈 수 없는 덧이 된다. 이런 덧을 고대 로마 폭군 타르퀴니우스의 아들 섹스투스가 몸가짐과 정조로 소문난 루크레치아를 겁탈할 때 사용한다. 완강히 버티는 루크레치아에게 ‘어떻게 할래? 계속 버티면 널 죽이고 또 노예 한명을 죽여서 나란히 놓고 네가 그 노예와 놀아나는 걸 눈뜨고 볼 수 없어서 나와 친척관계인 네 남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죽였노라고 할 거다.’ 이 말을 듣고 루크레치아는 겁탈을 감수한다.

 

그리고 이후 이 사실을 남편과 가족들에게 알리고 목숨을 끊는다. 'fama'(사회적 명성)을 위해서, 자신의 정조를 달리 증명할 길 없어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사건을 이렇게 서술한다.

 

“그래서 그녀가 강간하지 않았지만 강간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정조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치욕으로 인한 무기력[상황의 애매성, 이중구속 등](pudoris infirmitas) 때문이었다. 덧붙이자면 그녀는 그녀 안에는 [결코] 없고 [오로지] 그녀를 침범하는 타자의 추악한 행위로 인해서 [치]욕을 본 것이다. 그리고 이 로마 여성은 [사회적] 명성을 너무나 귀하게 여긴 나머지, 그 사건이 폭행으로 이루어졌지만 죽지 않으면 그녀가 그 일을 기꺼이 받아드렸다고 사람들이 믿을까 두려워했다.”(quod ergo se ipsam, quoniam adulterum pertulit, etiam non adultera occidit, non est pudicitiae caritas, sed pudoris infirmitas. puduit enim eam turpitudinis alienae in se commissae etiamsi non secum, et Romana mulier, laudis auida nimium, uerita est ne putaretur, quod uiolenter est passa cum uiueret, libenter passa si uiueret. 아우구스티누스, 신국, 1.19/강조는 ou)  

 

돌을 던져라. 어는 쪽으로?

 

 

추가: 사족이지만 어떤 사람의 수준은 그가 얼마나 정연하게 논리를 전개하는지를 보면 안 보인다. 그가 누구를 대상으로 삼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아이들 손 비트는지. 강신주를 씹는 나도 강신주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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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강신주의 노숙자대하기 7 - 병주고 약주기

후기 자본주의의 상당부분은 아마 “병주고 약주기”의 메커니즘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보다 더 확실한 장사가("totsicheres Geschaeft"/죽음이 확실한 것과 같이 확실한 장사) 어디 있겠는가? 장사지내는 일 빼놓고.

 

알다시피 예수님이 지상에 와서 한 일의 상당부분은 치유였다. 치유의 기적을 보고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무리를 멀리했다. 예수님이 치유하는 일에만 몰두했다면 아마 십자가에 못 박히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예수님은 대려 율법학자들의 독점인 병주고 약주기 장사에 찬물을 끼얹어 망쳐놓았다. 아마 그래서 십자가형을 받게 되었을 거다.

 

마태는 예수님의 이런 행적을 8장 18-22 에서 이렇게 서술한다.

 

치유의 기적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에워싼다. 그때 예수는 건너편으로 가자고 명한다. 아예 무리들이 따라올 수 없도록 배를 타고 물 건너편으로 가자는 것이다. 저들이 넘을 수 없는 경계선 저편으로('eis to peran') 가서 저들과 쪼개지자고('apelthein') 명하는 것이다.

 

근데 이때 한 사람이 예수 따르기를 원한다. 율법학자다. 요새말로 하면 책을 많이 읽고 이것저것 조합해서 약을 짓을 줄 아는 인문학자정도 되겠다. 예수를 자기보다 한수 높은 달인정도로 생각하고 머리를 조아리고 ‘한수 가르쳐 주십시오. 어디든지 따라 가겠습니다’ 한다. 예수를 주님, kyrie, 즉 절대 권력이 있는 군주로 부르지 않고, 선생 혹은 장인(‘didaskale’, 독 Meister/루터번역)정도로 생각한 것이다.

 

예수 왈: ‘나 갈 곳 없어. 머리 둘 곳도 없는데 가긴 어딜 가.’

 

이 말에 ‘잔머리 굴리지 마’란 야유가 들린다. ‘나는 니들 율법학자처럼 병(=죄)명 카탈로그 만들고 해당 약을 짓는 사람이 아니야’하시는 것 같다.  

 

또 제자 중 한사람이, 그니까 예수를 이미 따르고 예수를 절대 군주로 (‘kyrie’) 모시는 사람이 나와서 잠깐만 기다려 달라고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장사지낼 일이 있다는 것이다.

 

‘그 일은 지도 죽어있으면서 다른 사람의 죽음을 진단하는 사람들에게 맡기고 넌 날 두말말고 따라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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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강신주의 노숙자대하기 6 -힐링?

폐결핵에 걸리면 약이 없었던 때가 있었다. 재래식 화장실의 누적된 인분까지 긁어모아 약으로 쓸 때가 있었다. 이와 비슷한 일들이 자본주의의 병을 치료한답시고 점점 더 횡행한다.

 

‘힐링’의 인플레이션이랄까? 독일도 한국과 마찬가지다. 독일에 Eckart von Hirschhausen이라는 의사가 있는데 몇 년 전에 코믹한 일상생활 스케치로 TV에 서너 번 등장하더니 이젠 느끼할 정도로 많이 출연한다. 이 사람의 십팔번은 ‘행복’인데 한국에서 만연하는 ‘힐링’과 비슷한 이야기다. 마음과 생각을 고치라는 것. 그가 이런 주제로 강연하면 사람들이 떼거지로 몰려든다.

 

Eckart von Hirschhausen에게 첫 TV 출연 플랫폼(Harald Schmidt Late Night Show)을 제공한 Harald Schmidt와 사뭇 다르다. Hirschhausen은 “Shit happens"하고 생각을 고치라고 하는  반면 Schmidt는 스스로 ‘Shit’이 된다.  뭐 의미부여(Sinngebung) vs. 의미 없음(sinnfrei)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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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가수 Melissa Graham과 하랄드 슈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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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이름을 이마에 붙힌 하랄드 슈미트)

 

 

아마 강신주류의 의미부여 때문에 한국엔 대형교회가 있고 독일엔 이런 쇼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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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카르트 폰 히르쉬하우젠의 쇼, 프랑크푸르트 근처에 있는 도시 훽스트의 Jajhrhunderthalle(세기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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