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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포스트모던-프리모던

오늘 베를린 시내를 돌아다녔다. 2차 대전의 폭격으로 뻥 뚫린 공간들이 아직도 채워져 가고 있다.

앙싱앵 레짐의 건축양식, 독일에 자본주의가 완착하고 민족주의가 형성된 이른바 건국시대(Gründerzeit)의 건축양식, 바우하우스의 모던한 건축양식, 포스트모던한 건축양식 등 어지럽다. 근대 이상하다. 모던한 양식과 그 이전의 양식은 어울리지 않는데 포스트모던은 잘 어울린다. 문득 포스트모던한 건축양식이라는 담론을 통해서 프리모던한(pre-modern) 잔재들이 생기를 찾는다는 느낌이 든다. 'post'의 실체가 ‘pre'라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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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사회주의의 과거와 미래(?)

동독이 ‘현존역사’(현존/실존사회주의 real existierender Sozialismus에 기대어 이런 표현도 가능할까?)에서 사라진지 벌써 한 세대가 다 되어간다. 근데 동독의 현존사회주의가 정말 과거로 사라진 것일까?

 

짝지의 직장동료들 상당수가 동독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다. 짝지의 관찰에 의하면 아직도 동독출신 서독출신 끼리끼리 모인다고 한다. 쉬는 시간에 모여서 잡담하면 이런저런 생활이야기를 하는데 동독출신은 서독출신이 하는 이야기를 얼른 알아듣지 못하고, 반대로 서독출신은 동독출신이 하는 이야기가 뭔지 알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일상생활에서의 소통은 공유하는 배경아래 이루어지는 지시와 지시의 연속이기 때문에 그 배경이 대화참여자에 내재하지(präsent) 않으면 대화에 참여할 수 없게 된다. 마치 수학기호의 배경을 모르는 사람이 기호와 기호를 사용하는 수학자의 대화에 참여할 수 없는 것처럼. 그래서 자연적으로 끼리끼리 모이게 된다는 것. 특히 다른 사람은 다 웃는데 자기만 왜 웃는지 모르는 왕따되는 걸 원치 않기 때문에.

 

현존사회주의가 현존했던 사회주의(real existierter Sozialismus)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독 현존사회주의가 말소된 건 아니다. 아직 남아있고 역사의 판결도 아지 미지수다.

 


2009년 라이프치히 소재 시장조사연구소(Marktforschungsinstitut Leipzig)의 조사에 의하면 동독 출신 사람들 과반수이상이 과거 동독을 좋게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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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막대기는 서독출신 응답자,

       오른쪽 막대기는 동독출신 응답자

 

 

 

 

 

 

이어 “동독이 불법국가(Unrechtsstaat)였나?”라는 질문에 동독 출신 41%가 부정적으로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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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가 28%, “반반”이 25%, “아니요”가 41%; 오른쪽은 연령별 통계)

 

[출처: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정치교육센터 4-2009, Politik und Unterric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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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 관련 - 잡다한 것들

1. 진보세력이 정말 왕따가 되나? 이석기 의원의 1심판결등 통합진보당이 왕따가 되어 입체적인 공격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다.

 

2. 통합진보당 해산관련 독일 헌재소의 판결사례가 참조될 거라는 생각에 검색해 봤더니 이런 기사가 눈에 뜨인다. 조갑제닷컴에 올라와 있는 ‘독일의 위헌단체 사례’라는 제목의 박광작 성균관대 명예교수의 글이다.

 

사기꾼에 가까운 글 흐름이다.

 

우선 이렇게 시작한다.

 

“구동독의 공산당인 ‘사회주의통일당’(SED)의 후계정당으로 독일통일 후 새로운 정강과 정책을 채택하여 활동 중인 ‘민주사회당’(PDS)은 독일연방의회 즉 하원(Bundestag)에 국회의원까지 진출시킨 정당이었다. 그러나 독일헌법보호청은 이 당에 대해 위헌정당의 의심을 품고 파악해 감시하고 있었으며, 헌법보호보고서(인터넷 사이트 www.verfassungsschutz.de에서 영문으로 볼 수 있음)를 통해 활동내역과 위험성을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을 만큼 경계심을 갖고 이 ‘민주사회당’에 대해 계속 추적하고 있었다.”


먼저 지적하자면 [동독지역의[ 민주사회당이 서독지역의 좌파와 연합하여 좌파당(Die Linke)이 되었다. 좌파당 위원 상당수가 헌보청의 감시를 받아왔다. 감시피해자와 좌파당은 국가 기관에 의한 국회의원 감시에 대한 합헌여부판결을 독일헌법재판소에 청구했다. 독일헌법재판소는 2013.9.17 헌보청의 감시를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판결의 기조는 다음과 같다.

 

“Das freie Mandat gemäß Art. 38 Abs. 1 Satz 2 GG gewährleistet die freie Willensbildung des Abgeordneten und damit auch eine von staatlicher Beeinflussung freie Kommunikationsbeziehung zwischen dem Abgeordneten und den Wählerinnen und Wählern (1.) sowie die Freiheit des Abgeordneten von exekutiver Beobachtung, Beaufsichtigung und Kontrolle (2.).”


“독일기본법 제38조 제1항 제2호[“연방하원의원은 국민 전체의 대표자이고, 위임과 지시에 구속되지 않으며, 오로지 양심에 따른다.”]에 따른 자유위임은 의원의 자유로운 의사형성을 보장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또한 국가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의원과 투표권자간의 소통관계에 이어서 의원의 집행부의 감시, 감독, 통제로부터의 자유를 보장한다.“


핵심어는 "국가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von staatlicher Beeinflussung frei")이다.  


박광작 교수는 이렇게 말을 이어간다.


 “연방정부는 연방헌법보호청으로 하여금 문제되는 정당의 위헌성을 우선 추적·조사·검토하고 그리고 모든 상황을 고려한 후 헌법보호의 계명에 따라 독일 기본법(GG 21조)과 연방헌법재판소법(BVerfGG 43조)에 입각해 금지신청을 제기할 것인가를 결정한다.”

 

마치 좌파당의 위헌성여부가 헌재소에 제소될 것처럼 말이다. 그럴 일 절대 없다. 한국 좌파를 겨냥한 교묘한 분위기 잡기다.

 

그리고 2001년에 실패하고 최근 들어 다시 독일헌법재판소에 제소된 네오나치 NPD의 위헌성여부와 관련해서는 독해력이 부족한 교수인지 권력이 주는 밥그릇을 의식하는 룸펜인지 모를 정도다. 조선의 선비정신이 아쉽다.

 

주지하다시피 2001년 네오나치 NPD의 위헌여부 심사는 본안 심사에 들어가기 전에 중단되었다. 박교수는 이를 세세히 설명하고 있다. 중단이유가 되는 핵심적인 문구를 “법치국가적 절차를 지키지 못한” 걸로 오역(?)하고 있다.

 

해당 독일헌법재판소의 판결문의 핵심어는 앞에서와 비슷하게 “staatsfrei", ”국가의 영향 혹은 개입으로부터 자유로운“이다. 판결문에서 누차 반복된다.

 

정당이 국가기구와 같은 위상이라고 하면서 정당 활동에 어떠한 국가개입이 있어서도 안 된다는 게 판결의 기조다. 박교수는 이 말이 하기 싫었는지 “법치국가”를 운운하는데 그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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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이북인권조사위원회 보고서 읽기

어제 유엔 이북인권조사위원회가 보고서를 발표했다. (한국일보 참조, 원문)

 

우선 훑어보았다. 내내 맘이 무겁다.

 

아침에 일어나면서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그래 읽기가 문제야.’

 


헤겔은 역사철학강의에서 세계사는 정신이 자신의 본질은 자유라고 의식하는 가운데(“Bewusstsein der Freiheit"/자유의 의식) 펼쳐지는 장에서 필연적으로 인식되는 진보라고 이야기한다. ("Die Weltgeschichte ist der Fortschritt im Bewußtsein der Freiheit, – ein Fortschritt, den wir in seiner Notwendigkeit zu erkennen haben.")

 

헤겔이 역사를 바라보는 자세가 우리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반인도적인 범죄)을 바라보는 자세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다행이도 유엔이북인권조사위 보고서에 이 자세에 대한 언급이 있다.

 

인용한다. (결론과 권고사항 부분이다.)

 

"1222. The Commission recommends that the Korean People foster Inter-Korean dialogue in a phased approach leading up to an Agenda for Reconciliation. Inter-Korean dialogue could be furthered through such initiatives as friendly sporting events; academic and business interactions; scholarships and apprenticeships for young people from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student exchanges; exchanges between civil society organizations including national Red Cross Societies; contacts between professional organizations and women's groups; the development of "sister city" relationships and, eventually, the reestablishment of transport and communication links.

 

1223. States and civil society organizations should foster opportunities for people-to-people dialogue and contact in such areas as culture, science, sports, good governance and economic development that provide citizens of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with opportunities to exchange information and be exposed to experiences outside their home country.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and other states should remove applicable obstacles to people-to-people contact, including measures that criminalize travel and contact to the extent that these are not in accordance with relevant obligations under international human rights law.

 

1224. States, foundations and engaged business enterprises should provide more support for the work of civil society organizations to improve the human rights situation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including efforts to document human rights violations and to broadcast accessible information into each country. Eventually, and once conditions are deemed to be appropriate, such foundations and enterprises should join forces with concerned Governments to coordinate efforts to adopt a coherent plan for the development of the country, creation of livelihoods for the population and the advancement of the human rights situation."

 

이 부분의 권고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국, 그리고 국제사회에 대한 권고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우선 권고의 대상이 ‘한민족’(Korean People)이다. 분명한 주체이면서도 그렇지 않다.  그리고 ‘인권’을 먼저 권고하지 않고 ‘화해’(reconciliation)를 향한 길을 닦아야 한다고 한다.

 

"1222. [유엔 이북인권조사]위원회는 한민족(Korean People)이 이남-이북간의 대화를(Inter-Korean dialogue)  단계적인 접근을 [거듭하는] 가운데(in a phased approach) 화해와 통일을 위한 [실천적인] 일정표(Agenda for Reconciliation)가 될 때까지 [튼튼하게] 조성하는 걸 권고한다." ("The Commission recommends that the Korean People foster Inter-Korean dialogue in a phased approach leading up to an Agenda for Reconciliation.")

 

다른 사람은 유엔 이북인권조사위원회의 보고서를 달리 읽겠지만 ‘우리 사람’ 한민족은 이렇게 읽어야 한다. 화해하고 같이 살아야 할 사람들과 관계하는 것이라고. 헤겔의 표현을 빌리자면 “화해와 통일을 내다보는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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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천사 대 기억의 천사 - 1

늘 그러듯이 [갓난아이의] 느낌이 먼저다.

 

벤야민의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는 뭔가 아니다. ‘역사의 천사’에게 내 몸을 맡길 수 없다. 반면 ‘기억의 천사’에게는 내 몸을 맡기고 싶다.

 

‘역사의 천사’와 ‘기억의 천사’는 20세기 노동[자]운동의 패배와 나치파시즘의 득세 앞에서 좌파가 취할 수 있는 둘로 갈라지는 자세(Haltung)의 비유(Sinnbild)다.

 

한국에서 벤야민이 유행(?)하게 된 것 아마 한국 노동[자]운동이 일단 패배한 것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기억의 천사’가 더 ‘유행’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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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천사 대 기억의 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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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이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에서 참조한 파울 클레의 "앙엘루스 노부스"(Angelus Novus"/새로운 천사) - 역사의 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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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바이스가 "저항의 미학"에서 참조한 뒤러의 "멜렌콜리아" - 기억의 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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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사민주의 대 사회주의 투쟁의 현장

베를린에 오면 일반 관광객은 별로 찾지 않지만 좌파라면 꼭 찾아가봐야 할 곳이 있다. 베를린의 번화가로 알려진 프리드리히거리를 쭉 올라가면 나오는 메링 광장(Mehring Platz)이다. 베를린에는 여러 광장이 있는데 광장의 모양에 따라 론델(Rondell/원형광장), 카레(Carré, 사각형광장, 브란덴부르크 문 앞의 파리저 광장/Pariser Platz), 그리고 옥토곤(Oktokon/8각형광장, 라이프치거 광장/Leipziger Platz)이라 불린다.

 

메링광장은 원래 원형으로 만들어져 Rondell이라 불렸는데, 워털루전투에서 승리하고 나서 나폴레옹이 사령부로 사용했다는 주점 ‘벨 알리앙스’(Belle Alliance)란 이름을 따서 벨 알리앙스 광장으로 개명되었다. 2차 대전 후 서베를린에 위치하게 된 이 광장은 프로이센의 군국주의를 청산한다는 취지로 마르크주의 사학자 프란츠 메링(Franz Mehring)의 이름을 따서 메링광장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 광장에는 옛날 모습이 없다. 바이마르 공화국시 언론사들이 밀집되어 있었고 또 정부청사와 가까운 지역이어서 집중폭격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통독이 한참 지난 지금 ‘문제지역’으로 간주되는 이 지역 재단장이 진행되고 있다.

 

다른 게 아니라 메링광장에 위치한 이 지역 관리 사무소(Quartier Management)가 이 지역 역사를 소개하기 위해서 마련한 사진자료와 설명이 매우 인상적이다. 11월 혁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의 독일 사민당과 독립사민당/스파르타쿠스연맹 간의 분열을 간단명료하게 설명하고 있다.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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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쿠스봉기 - 린덴[보리수]거리(Lindenstrasse)에서의 혁명

                     

※ 전후 길 위치가 약간 변경됨. 이전에서 메링광장으로 이어졌음.

 

1918년 11월부터 1919년 1월로 이어지는 몇 개월 동안 벨알리앙스광장과 린덴거리에서 사는 주민들은 혁명과 “스파르타쿠스봉기”의 처참한 유혈진압을 직접 목격한 산 증인이 된다.

 

1918년 11월 8일 군부대가 또다시 할레셔스 문(Hallesches Tor, 인근 지역이름)을 통과하여 진입한다. 1차 대전에서 귀국하는, 기관총과 가벼운 대포로 무장한 제 4 엽병(獵兵)연대(Jägerregiment)가 기존질서를 보호하라는 명령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이 연대는 11월 9일 시위하는 노동자와 군인들이 황제를 강압하여 퇴위하게 하자 혁명에 합류한다.

 

1918년 11/12월, “사회주의 소비에트정체”(독립사민당)냐 아니면 “의회주의”(사민당)냐 라는 대안을 놓고서 진행된 논쟁이 노동운동의 분열로 이어진다. 1919년 1월 5일 독립사민당은 사민당과의 공동행동(Zusammenarbeit/협력)을 회수한다. 혁명지도자들, 스파르타쿠스연맹, 독립사민당은 대중시위를 촉구한다.

 

같은 날 저녁 무장 노동자들이 주요 신문사건물들을 점거한다. [이 중 하나가] 사민당기관지 “포어베르츠”(Vorwärts/전진) 및 사민당 제국정당학교가 자리한 “린덴하우스”(Lindenhaus)다. “포어베르츠”는 유난히도 다수파사민당이 완고하게 걷던 “함구와 질서”(Ruhe-und-Ordnung)의 노선을 선전했다.
 

1월 11일 프리드리히 에버트와 구스타브 노스케가 이끄는 사민당 지도부는 반격의 [장치를] 마련하고 이를 위해서 [역사의] 뒷전으로 물러간(alt) 황제의 군부를 불러 원조를 구한다. 특히 “포르베르츠” 건물을 둘러싼 전투가 치열했다. 심한 폭격을 받은 점거 [노동자]들은 6명으로 구성된 대표단을 백기를 들게 하고 적군 사령관에게 보낸다.

 

대표단의 목적은 안전한 철수(freier Abzug)를 협상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6명 협상대표단은 인근 용기병 병영으로 이송되었다. 한명은 무조건 항복하라는 요구와 함께 돌려보내고 나머지 5명은 학대를 받고 총살된다.

 

 

 

나중에 이 자리에서 아래와 같은 일이 일어난 건 옛 세력과 결탁하고 혁명을 죽인 사민당의 원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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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

1.

 

이제야 비로소 뭔가 정확하게 이해한 게 있다. 정시현상학 서론(Einleitung) [§2]가 사실 뭔 말인지 몰랐다. [어, 뭐야, 번역해서 올린 줄 알았는데 알 올렸네.]

 

이제 분명해진 것은 정신현상학이 일종의 기념비라는 사실이다.

 

헤겔이 철학을 시작하는 터전(Anfangsgrund)은 절대자도 아니고 이성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반(反)이성도 아니다. 인간 특유의 자세다.

 

먼지와 같고 상한 갈대와 같고 하루살이 같지만 절대적인 것이 되는 자세다. ‘하나님 앞에서’(coram deo)와 같은 자세다.

 

바로 이런 절대적인 것 앞에 있다는 인식과 의식이 헤겔철학의 시작임이 분명해졌다. 변증법적 운동이 일어날 수 있는 자세 혹은 관계다. 헤겔은 서설 [§2]에서 그렇게 산 사람들이 있었고, 있고, 그리고 있을 거라는 확신에 차 있다. 이게 들린다. 문득, 정신현상학이 그런 사람들을 위한 기념비라는 생각이 든다.  

 

[사족이지만 마르크스의 상품이 바로 절대자 앞에 서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이중성을 갖는다.]

 

2.

 

레닌을 따르는 사람들은 다양했다. 다양한 출신과 경향의 사람들이 그를 따랐다. 그리고 혁명에 성공했다. 레닌이 죽고 난 후 그를 따르던 많은 사람들이 반동분자로 숙청당하고 죽었다. 왜 그랬을까? 레닌의 뭐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출신성향으로 봐서는 자본주의를 따랐을 법한데, 그를 따르도록 했을까? 현대성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왜 그를 따랐을까?

 

3.

 

일국 사회주의 발생의 근원. 독일 좌파의 분열로 독일 혁명 실패. 사민주의 대 사회주의. 쿼바디스 독일?

 

 

4.

 

탕자의 귀가 대 멜렌콜리아(Melenco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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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곳을 바라보는 치욕과 수치심의 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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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열심히 짓다가 연장을 놓고 수심에 빠져 있는 실천가.

 

 

노동[자]운동은 뉘우치고 귀가하는 거 없음. 있는 힘을 다했지만 좋을 걸 이룩하기는커녕 참혹한 역사도 저지하지 못했다는 ‘멜렌콜리아’만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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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근을 통한 변화와 북한인권법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의 기조가 되었던 에곤 바르의 발제 “Wandel durch Annährung”이 “접근을 통한 변화”로 번역되어 알려져 있다.

 

우선 이 번역에서 건너오지 못하고 ‘번역’을 기다리고 있는 게 혹시 있지 않나 살펴보고자 한다.

 

“접근을 통한 변화”를 번역하기에 앞서 그 사상의 기조가 기독교적인 정신과 인본주의가 사상이라고 했다. 막연하게 내던진 말이고 공허하다. 말은 또한 약속이므로 이 공허한 공간이 채워져야 할 것이다. “Wandel durch Annährung"이 함유하는 사상의 기조를 말의 의미를 음미해 봄으로써 약속을 지켜보고자 한다.


1. Annährung-접근(接近; 사귈 접, 가까울 근)

 

1) 첫 접근-erste Annährung (!)

 

예수님은 유대인과 그 이웃 사람들이 사는 땅을 돌아다니면서 많은 치유의 역사를 행하셨다. ‘역사’라고 하지만 별로 거창한 일을 하지 않으셨다. 머리에 손을 얹고 세게 기도하는 등 장풍을 날리는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다. 복잡한 심리상담을 하지 않으셨다. ‘가까이 가’ 주셨거나 ‘가까이 오’도록 허락하셨다. 그리고 몇 마디 하셨다. 이게 다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변화, 즉 치유의 역사가 일어났다.

 

2) 어원

 

‘접근’(Annährung)의 주구성부 ‘Nährung’은 genesen(낫다, 회복하다)과 어원이 같다. genesen의 어근 ‘nes-'는 ’[위험, 병 등에서] 빠져 나오다, 면하다, 생명을 혹은 건장을 유지하다. 운 좋게 귀가하다‘ 등의 의미가 있다. 위험에서 벗어나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근거 혹은 바탕에 주목하는 (古)인도어 ’nasate‘는  '[누구의] 동무가 되다, [누구와] 결합/연합하다‘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혼자의 힘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스어 neomai(운 좋게 귀가하다/도착하다), Nestor(네스토르=항상 운 좋게 귀가하는 사람) 등도 어근 ’nes-'를 갖고 있다. (두덴/Duden 어원사전 참조)

 

,Nahrung'(양분, 양식)과 어원이 같은 'nähren'은 ‘[위험 등에서] 벗어나 생명을 유지하게 해주는’ 양분이다. 이 양분은 앞의 말 연장선에서 보면 연합/결사다.

 

3) 'an'

 

가장 골치 아픈 독어 전치사. 방향성(라. ad)과 더불어 ‘가까이 감’의 도착점을 말해주고 있다. 어디까지 가까이 가야 하는가? 다다를 때까지. 매우 기독교적인 운동이고 [정신]자세다. 나병환자와 몸이 부딪칠 때까지. 하나 될 때까지. 아무런 전제조건이 없는 운동이다.

 

2. Wandel(변화)

 

카프가의 ‘변신’(Verwandlung)은 자기도 모르게 일어난다. 오비디우스도 ‘변신 이야기’(Metamorphoseon libri)의 들어가는 말에서 변신의 원인이 신에게 있고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진행형이라고 한다.

 

정신현상학 서설 §24(http://blog.jinbo.net/ou_topia/80)의 ‘wirklich'를 좀 장황하게 설명하는 대목에서 [근데 이건 뭐야, <>안의 독어들이 하나도 안보이네. 시간 내서 다시 삽입해야겠네.] wirklich(현실적), werden(되다), Werk(작품), wenden(뒤집다) 등에 이어 Wurm(지렁이)까지 어원이 같다고 했다.

 

‘Wandel’(변화)도 여기에 속한다. 지렁이가 구불구불 기어가는 뒤집어지기(wenden)의 연속성, 진행성을 표현하는 말이다. 행위 자체이지 어떤 목적의 수단이 되는 행위가 아니다.

 

그래서 ‘접근을 통한 변화’의 'Wandel'을 루터가 남긴 말 ‘Handel und Wandel’의 의미로 이해서는 안 된다. 자본주의적 사상에 물든 이해다. ‘Handel'은 사는 행위이고, ’Wandel'은 이윤을 붙여 다시 돈으로 바꾸는, 변형시키는 행위다. 그러나 ‘접근을 통한 변화’는 반대급부를 요구하지 않는 접근을 이야기하고 있다.

 

3.

 

앞에서 얘기한 것들이 나로 하여금 ‘접근과 변화’는 기독교적인 사상과 인도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생각하게 한다.

 

우선 기독교인의 기본자세인 겸손을 엿볼 수 있다. 기독교의 겸손이란 그저 자신을 낮추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내가 높을 줄 다 알면 날 낮추는 게 무지 쉬운 그런 겸손이 아니라, 절대적인 것 앞에 서있다는 걸 인식하고 그게 내면화된 의식이다.

 

'북한인권법'을 외치고 “서독이 인권유린 감시하자 동독 주민 탄압 줄었다.”라는 식의 보도는 ‘접근을 통한 변화’에서 배우자고 하면서 그 정신은 멀리하는 교만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나열되는 사실들은 정신이 빠져있는 허섭스레기일 뿐이다. ‘인권침해를 모니터링하기 위한 중앙기록보존소를 설립하는 등 압박도 병행했다’는 식으로 역사를 왜곡한다. 주지하다시피 중앙기록보존소는 1961년에 설립되었다. 1970년대에 들어와 실시된 ‘접근을 통한 변화’의 정책과 병행하지 않았다. 오히려 인권을 수단으로 삼아 압박을 가하는 것을 폐기하고, 다시 말해서 인권을 등에 업고 인권을 무기로 휘두르는 교만을 포기하고, 자신도 역시 인권의 지배아래 두고 인권 앞에서 모든 행동을 신중하게 고려한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coram deo)와 같은 자세를 인권 앞에서 취한 것이다.

 

“인권의 관철은 한 사람, 한 사람[의 권리]에 기여하는 것 외 절대 다른 것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연방정부에게는 인권정책이 다른 국가들에게 우리의 국가 및 사회모델을 강요하는 수단이 아니다. 인도적인 편익[을 증진하는 조치들은](Erleichterungen) 독일연방공화국 정치/정책의 중요한 요소다. 연방정부는 동독(DDR)과의 관계에서 한편으로는 인권상황 개선을 위한 법적, 정치적 가능성들을 전부(voll) 사용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에 못지않게(aber) 또한 이것과 [=모든 가능성을 다 사용해야 하는 의무와] 관련된 [우리의] 행동이 동독사람들이 처한 상황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항상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연방정부는 독일 상황의 특수성 앞에서 어떤 경우든, 어떤 행동을 혹은 말을 하기 전에, 미리 우리의 행위가 [야기할] 생각가능한 모든 사실적인 결과들을 더할 수 없는 성실성을 다해 검토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1979.9.20 연방정부의 인권정책에 대한 야당(기민기사연합)의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한국정부가 취해야 할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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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접근을 통한 변화' - 3

미국 대통령은 우리의 안전이 위협받지 않는 범위에서 동구권 국가들과의 교역이 가능한 한 많이 개발되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이 말을 독일에 적용하면 대단히 넓은 [실용]영역이 전개된다. 이 영역을 먼저 우리들의 가능성 및 한계들의 관점에 따라서 [시침바느질하듯] 길잡이가 되게 나누면(abstecken) 좋을듯하다. 내 생각에는 [이런 가능성들이] 지금까지 언급된 그 어떤 수보다 훨씬 더 크다. 앞에서 언급한 제한아래 동서교역의 강화가 서구의 이익으로 해야 할 일이라는(im Interesse des Westens) 게 틀림없다면,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러면 그것은 또한 독일의 이익으로 해야 할 일이고, 독일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이 때에 우리는, 익히 알려진 [조무래기의] 자세를 일컫는 잘 알려진 쾰른사람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개고집을 피울(pingelig sein)1 필요가 없다.

 

이와 같은 정치의 목적은 물론 동독지역의(Zone) 협박일 수 없다. 왜냐하면 공산주의 정권은, 더군다나 동독지역에서와 같이 위협을 받은 정권은 경제관계들에 의해서 자신이 성격이 변경되게 내버려 둘 수 없다.2  [그런 변화를 반대급부로 요구해야 한다고 하지만](aber) 그것은 엄밀하게 따져보면 폴란드에 신용대출을 할 때 미국도 요구하지 않았고 그게 또한 강화된 동구권교역을 원하는 미국이 뜻하는 바(Sinn)도 아니었다. 우리가 직면하는 상황에선(uns) 먼저 인간이 문제가 되어야 하고 [따라서] [인간의] 상황을 편하게 하는 생각가능하고 책임질 수 있는 모든 시도를 철저하게 다 이용하는 게 문제가 되어야 한다. 물질적인 개선은 [아마] 동독지역에서(Zone) 긴장완화의 효과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보다 더 강화된 소비품공급은 우리의 이익을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이다. 소련에서 소비욕구가 불어나 긍정적인 효과에 기여했다. 이게 동동지역에서는 (Zone) 아니라고 하는데 왜 그런지 이해할 수가 없다. 소련은 서구를 따라잡고 추월하겠다는 목표로 [서구와의 경쟁에] 나섰다. 다른 영역이 아니라 서구가 가장 강한 생활수준의 영역에서도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목적이야말로 필경 서구를 모범으로 삼고 서구의 능력에 눈을 맞추고 있다는 건 차치하더라고 이런 정책이 동구권에서 동독(Zone)만을 제외할 수 없다는 건 명료하다. 생활수준의 향상 과정을 가속하는 건, 이를 통해서 다층적인 종류의 편익이 사람들에게 주어지고, 강화된 경제관계로 강화된 결합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우리들의 이익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될 것이다.

 

그럼 [그런 편익이 제공됨으로써] [동독의] 동포들의 [동독 정권에 대한] 불만족이 느슨해지지 않나하는 [그래서 분단이 영구화되는]걱정까지 할 수 있겠다. [잘못된 생각이다.] 역으로(aber) 바로 그게 바람직한 것이다. 바로 그게 통일과정에서 통제 불가능한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고 그 결과 [상황을] 필연적으로 [통일의] 후퇴로 몰고 갈 수밖에 없는 요소가 누락되는 또 다른 전제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제공하는 편익으로] [동독] 정권을 지원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aber) 나는 바로 [동독] 정권붕괴를 통해서는 실천가능한 길이 전혀 없다는 걸 [증명하는 논리의] 개발을 시도했다. 나에게는 오직 소련의 이익을 고수하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소련의 개입을  불러일으킬 혁명적인 격변의 위험이 수반되지 않게 극소량의 분량으로 생활고를(Erleichterung für die Menschen/여태 편익으로 번역함) 덜어주는 좁은 길만 보일 뿐이다.

 

연방정부는 최근 정부성명에서 ‘[우리는] 동독지역의(Zone) 형제[자매]들이 [우리의 협상요구에]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응할 수 있다면, 많은 것에 관한 대화의 창구가 될(mit sich reden lassen)’ 준비가 되어있다고 발표했다. 이어서 ‘이때 인도적인 고려가 민족적인 고려보다 더 큰 역할을 한다.’고 했다. 나의 상술을  이런 맥락의 토론에 기여하는 것으로 알아차리고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우리는 장벽이 약함의 증후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게 공산주의 정권의 불안과 자기보존의 증후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문제는 전적으로 정당한 [동독정권의] 근심걱정을 점진적으로, 동독이 보기에 [서독과의 협상이 수반하는] 위험이 감수할 만하기 때문에, [동독의 동의하 철통같은] 경계와 장벽의 완화가(Auflockerung) 실천가능하게 될 때까지 덜어주는데 있다. 이것은 접근을 통한 [점진적] 변화라는 말로 축약될 수 있는 정책/정치다. 나는 우리가 이런 정치/정책을 아무런 환상 없이 추진할 수 있는 자부심이 있다고 굳게 확신한다. 나아가 이런 정치는 평화전략이라는 서구 구상에 꽉 들어맞는(nahtlos) 정치라고 확신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기적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데, 이건 정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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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쾰른 등 라인강지역 사람들이 사용하는 사투리 'pingelig'의 어원은 ‘peinlich'로서 죄(poena 라틴어)를 의식하면서 한편으로는 수치심을 느끼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혹시나 뭔가를 잘못하지 않았는지 지나치게 철저하게 다른 사람들을 들여다보고 잘못을 꺼내는 소시민적인 심정을 일컫는 말. 주지하다시피 쾰른시민들은 느긋하다. 유유히 흐르는 라인강을 보고 살아서 그런지 쾰른 대성당을 짓는데도 근 600년이 걸렸다. 돈이 떨어지면 공사를 중단하고 돈이 생기면 계속하고. 앞 포스팅에서 소개한 ’저항의 미학‘에서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활동에서 느끼는 감정을 ’peinlich'라고 한다. ‘[우리에게는] 불쾌하고, [노동자들에게는] 수치심을 돋우는 거’라고 번역했는데, 독어에는 이런 [변증법적] 관계에서 부동하는 말들이 많다. 이런 웅성거림의 번역이 참 어렵다. 이런 웅성거림 때문에 독일에서 변증법이, 해석학이, 소통이론이, 그리고 역설적이지만 이런 웅성거림을 해소하자는, 차후 20세기 영미철학의 주류가 된 의미론이 태동하지 않았나한다. 내친걸음 한마디 덧붙이자면 칼 슈미트가 지적했다시피 독어는 신학자와 장인의 언어인 것 같다. 이런 결합의 결정체가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이 아니가 하고. 횔더린은 휘레리온에서 독어의 장인적인 성격에 통탄한 반면 헤겔은 장인의 숙련을 높이 평가했지 않나한다. 암튼 숙련된 장인은 느긋하다. 엄밀한 잣대로 재봐야 하니 어쩌니 등 개고집을 피우지 않고 수많은 시도로 숙련된 눈짐작으로 벽돌을 척 둘로 나눈다.텍스트로 돌아가기
  2. 진보넷 바깥블로그 EM님의 글 ‘숙청과 공개처형 사이’가 이 논리를 정교하게 전개하고 있다. http://socialandmaterial.net/?p=5736텍스트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