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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1/17
    번역:1795.2.4 셸링이 헤겔에게 보낸 편지
    ou_topia
  2. 2014/01/16
    번역:헤겔 논리학,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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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14/01/16
    번역 - 횔더린: 판단과 존재 (Urteil und S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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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14/01/15
    201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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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13/08/28
    해외 노동운동 소개에 관한 몇 가지 지적(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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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13/08/27
    독가스전과 파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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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13/08/27
    아랍보기: 로렌스의 아랍 ⊥ 사이크스-피코의 아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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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13/08/27
    이집트-시리아(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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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13/08/26
    메모/질문(3)
    ou_topia
  10. 2013/08/25
    팔레스타인 사람되기 1(2)
    ou_topia

번역:1795.2.4 셸링이 헤겔에게 보낸 편지

무한한 뎡야님의 [먼 미래 종교] 에 관련된 글.

Gott ist nichts als das absolute Ich, das Ich, insofern es Alles Theoretische zernichtet hat, in der theoretischen Philosophie also = 0 ist. Persönlichkeit entsteht durch Einheit des Bewusstseins. Bewusstsein aber ist nicht ohne Objekt möglich; für Gott aber d.h. für das absolute Ich gibt es gar kein Objekt, denn dadurch hört es auf, absolut zu sein. -  Mithin gibt es keinen persönlichen Gott, und unser höchstes Bestreben ist die Zerstörung unserer Persönlichkeit, Uebergang in die absolute Sphäre des Seins, der aber in Ewigkeit nicht möglich ist  - daher nur praktische Annäherung zum Absoluten, und daher - Unsterblichkeit.

신은 절대자아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모든 이론적인 걸 완벽하게 파괴하고 없애버렸다는 한에서 절대자아다. 고로 이 자아는  이론철학에서는  텅 빈 껍데기일 뿐이다. 인격체는 의식의 통일로 생성된다. 나아가 의식은  대상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신, 다시 말해서 절대자아에게는 전혀 대상이 없다. 만약 그렇다면 더 이상 신, 절대자아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격체로서의 신은 없고, 다만 우리 인격체의 파괴와 존재의 절대영역으로의 이행만이 우리가 최고로 열망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절대영역으로의 이행은 영원토록 불가능하다. 그래서 오직 절대자를 향한 실천적인 접근만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 끝없이 실천해야 하기 때문에] 죽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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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헤겔 논리학, 존재

존재, - [존재 외] 그 어떤 규정도 추가되지 않는 - 순수존재. 이것은 무규정적인 직접성을 벗어나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면서 한결같은 자기 자신일 뿐이다. 또한 타자에 대해서도 부등하지 아니한다. 그래서 차이란 그의 안으로 들어가나 그의 밖으로 나아가나 없다. 존재가 어떤 규정이나 내용, 즉 그 안에서 구별되는 내용으로 혹은 다른 존재로부터 구별된 것으로 정립된다면, 그의 순수성은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존재는 순수한 무규정성이며 공허다.  [이런 존재의 인식을 놓고 보통 직관을 운운하는데] 이게 허용된다 할지라도 존재 안에서 직관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ist nichts). 달리 표현하면 단지 바로 그 순수하고 공허한 직관 자체만이 있을[존재 할] 뿐이다. [이에 생각을 고쳐 존재의 사유를 운운할 수 있겠으나] 존재 안에는, 직관의 경우에 못지않게, 사유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여기서도 역시 직관에서와 마찬가지로 오로지 공허한 사유가 있을[존재할] 뿐이다. 존재는 무규정적인 직접적인 것인 이상 무(Nichts)이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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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 횔더린: 판단과 존재 (Urteil und Sein)

판단(Urteil)은  가장 고귀하고 엄밀한 의미에서 지적 직관에서 더없이 친밀하게 통일되어 있는 객체와 주체의 [Subjekt-Objekt=Selbstbewusstsein/자의식, 역자] 근원적인 분리다. 이 분리에 의해 비로써 객체와 주체가 가능하게 되는바, 근원분리(Ur=Teilung)라 할 수 있다. 분리의 개념에 이미 객체와 주체가 상호 관계하는 관계개념이 포함되어 있으며, 여기에는 또한 객체와 주체가 각자 일부를 이루는 전체가  필연적으로 전제되어있다.  <<나는 나다>>[라는 판단]은  이런  근원분리의 개념에 가장 잘 어울리는 사례다. 다만 이론적인 근원분리일 뿐이다. 왜냐하면, 실천적인 근원분리에서는 [자아가] 비자아에 대립하지, 자기 자신에  대립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현실[성]과 가능성은 구별되어 있는데, 그 구별이란 간접적인 [대상] 의식과 직접적인 [자아] 의식간의 구별과 같다. 내가 어떤 대상을 가능하다고 생각할 경우, 나는 단지 어떤 대상에 현실성을 부여한 지나간 의식을 반복할 뿐이다. 우리는[=의식은] 현실이 아니었던 가능성은 생각할 수 없다. 그래서 가능성의 개념은 이성의 대상들에게는 유효하지 않다. 왜냐하면 [의식 저편의] 대상들은 전혀 그들이 존재해야 하는 바람직한 모습으로 의식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오직 필연성의 개념만이 유효할 따름이다. 가능성의 개념은 오성의 대상들에게  유효하고, 현실성의 개념은 지각과 직관의 대상들에게 유효하다.  

존재는  주체와 객체의 결합을 표현한다.

주체와 객체가 단지 [전체의] 일부를 이루는 형식으로만 통일되어 있지 않고 절대적으로  통일되어 있는 경우, 다시 말해서 분리되어야 하는 것의 본질을 손상시키지 않고는 분리할 수 없도록 통일되어 있는 경우,  오직 이 경우에만, 지적 직관에서 그러듯이, 절대 존재(Sein schlechthin)를 [정당하게] 말할 수 있다. 이 외의 경우에는 절대 불가능하다. [예컨대 절대적인 자아, 혹은 절대적인 주체성 등은 말이 안 된다. - 역자].
그러나 이 [절대] 존재를 동일성으로 착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내가 '나는 나다"라고 할 경우, 주체(나)와 객체(나)는 전혀 분리대상의  본질을 손상시키지 않고는 분리할 수 없도록 통일되어 있지 않다. 정반대다. 자아는 오직 <나>로부터 <나>를 분리함으로써만 가능하다. 자의식 없이 어찌 나!할 수 있을까? 자의식은 그럼 어떻게 가능한가? 내가 나를 나에게 대립시킴으로써, 나를 나로부터 분리함으로써, 그러나 이런 분리에도 불구하고 나를 대립되는 나안에서 똑같이 인식함으로써.  어디까지 똑같은 것으로 인식하는가? 물론 이렇게 질문할 수 있고 또 질문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일면 [나와 나는] 대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일성은 객체와 주체가 절대적인 통일을 이루는 일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동일성은 절대적인 존재와 같은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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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15

그 동안 뭐 했지? 한 일은 없는데 시간은 많이 지났다. 뭐 하지?

 

모르것다. 내일 다시 생각해 보자. 오늘은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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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노동운동 소개에 관한 몇 가지 지적

1. 동기

 

1.1 직접적 동기

 

참세상 정은희 기자의 번역 “6월 30일 이후 이집트 노동자” (원제: 조엘 베이닌의 “ Egyptian Workers After June 30”)

 

1.2 보다 본질적인 동기

 

다른 나라 노동운동 소개는 쉽지 않다. 특히 [서구] 자본주의의 全세계적 관철이 제국주의와 평행을 이루면서 - 이 평행을 해석하는 다양한 관점과 함께 - 이루어지는 후기자본주의 혹은 “제3세계”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운동을 소개하는 일은 더욱 그렇다.

 

부분적인 경험이지만, 한국의 노동운동 소개도 쉽지 않았다. 개관할 수 없는 수많은 조직적, 사상적 요소들이 있었다. 전노협이 결성된 후에도 다양한 대기업노조 등 다양한 독립노조들이 있었고, NL, PD, NLPD 등등 얽히고설킨 사상적 요소들이 산재했다. 어용노조도 있었다. 자생적 노조와 더불어 부평산업선교회 등 노동운동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했던 시민단체들로 있었다. 여기에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양단된 한반도의 역사를 더해야 했었다.

 

다른 나라 노동운동 소개는 해당 국가 사회의 총체적인 이해를 전제한다는 결론이다.

 

 

2. 노동운동가의 글쓰기

 

가장 깨끗하고 간결한 독어는 테오 피르커(Theo Pirker)의 저서 “Die Blinde Macht. Die Gewerkschaftsbewegung in Westdeutschland.”(눈이 먼 권력. 서독의 노조운동)에서 소개된 2차 대전을 경험한 어느 노조활동가의 보고서였다. [지금 이 책이 내 곁에 없다. 그래서 누구였는지 확인할 수 없다. 조만간에 소개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어떻게 말했는지는 (Wortlaut) 기억 속으로 사라지고, 단지 그의 문장체에 대한 느낌만이 남아있다.] 그의 문장체는 과학자의 프로토콜서술과 비슷했다. 담담하리만큼 간결했다. 그리고 정확했다. 그 안에는 아픔이 있었지만 그걸 받아내는 살아 움직이는 정신이 있었다.

 

3. 위의 정은희 번역에서 지적하고 싶은 점들

 

0 글의 상음

 

글도 음악처럼 상음이 있다. 글의 기조다. 근데 정은희의 번역에서는 글의 상음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다.

 

예:

[원문] “The Tamarrud campaign demanded early presidential elections, but the Egyptian army seized the opportunity of the mass gathering to depose Mursi on July 3, claiming, with some justification, that its coup was the will of the people.” [강조는 ou_topia]

 

[번역] “타마로드 운동은 조기 대선을 요구했지만, 이집트 군은, 7월 3일 무르시를 물러나게 하려고 자신의 쿠데타가 민중의 의지였다는 대의명분을 주장하며, 모여든 대중을 활용했다.”

 

원문의 상음은 “with some justification"이다. 이건 이집트 군부의 주장이 아니라 요엘 베이닌의 견해다. 번역문은 이걸 보지 못하고 있다.

 

다른 건 다 틀려도 괜찮다. 어쩜 틀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글의 상음, 글의 기조에서는 절대 틀림이 있어서는 안 된다.

 

0 현실에 주목하지 않는 번역

 

예:

[원문] “Three independent trade union organizations -- the Egyptian Federation of Independent Trade Unions (EFITU), the Egyptian Democratic Labor Congress (EDLC) and the Permanent Congress of Alexandria Workers (PCAW) -- also collected signatures and monitored workers’ participation in the demonstrations.” (강조는 ou_topia) 

 

[번역] “이집트 독립노조연맹(EFITU), 이집트 민주노동회의(EDLC)와 알렉산드리아노동자상임회의(PCAW) 등 3개 독립적인 노동단체도 서명을 모으고 노동자들의 시위 참여를 관찰했다.” 

 

“three independent trade union organisations”를 “3개 독립적인 노동단체”로 번역했는데, “노동단체”는 소그룹이라는 느낌을 준다. 현실적으로 3개 노조상부조직들이다.

 

이렇게 현실에 주목하지 않는 번역은 이런 오류로 이어진다.

 

[원문] “These independent federations and hundreds of their constituent local unions have been established since the ejection of Mubarak because the Egyptian Trade Union Federation (ETUF) created in 1957 has always functioned as an arm of the state.” 

 

[번역] “이들 독립연맹과 수백 개 지역 조직은 무바라크 제거 후 설립됐다. 1957년 창설된 이집트노총(ETUF)이 항상 국가편에서 기능했기 때문이다.”

 

독립연맹과 수백 개 지역 조직 간의 관계에 관한 설명이 없다. 원문은 수백 개의 지역노조들이 상부조직의 구성요소(constituent)가 된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자생 노조들이 힘을 합하여 상부조직을 결성했다는 점이다.

 

조목조목 비판은 여기서 그만둔다.

 

4. 노동활동가의 글쓰기는 어때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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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가스전과 파시즘

1.

 

대대적인 독가스전은 1차 대전에서 독일제국군대가 자행한 짓

 

2. 

 

전면적인 독가스전은 1915년 4월 22일 프리츠 하버가 개발한 방법에 따른 플랑드르 이퍼른에서의 독가스 살포가 있기 전에 이미 1915년 1월 말 폴란드의 볼리모브 인근 동부전선에서 러시아군을 상대로 적용.

 

3. 

 

당시 동부전선에서 독가스공격을 실시한 독일제국 9군의 기록

 

“우리 [독일제국] 군의 기사도적인 정신(Sinn)에 이 같은 전쟁수단의 사용은 얼핏 그다지 공감이 안 간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전쟁방법은 실질적으로 지금까지 각국의 군이 훈련한 전쟁(Praxis/실천)의 논리적인 진척일 뿐이다. ... [게다가] 우리의 적이 인종적인 자부심(Rassenstolz)을 다 포기하고 잡다한 민족들을 동원하여 우리를 대항하는 전장에 내보내는 상황을 감안하면 이 같은 수단의 사용은 완전 정당화 된다. 우리는 이렇게 우리의 전쟁목적을 달성하고 보배로운(teuer/값비싼) 피의 소모를 줄일 수 있다.”

 

"Es ist nicht zu leugnen, daß dem ritterlichen Sinn unseres Heeres die Anwendung dieses Kampfmittels zunächst nicht sehr sympathisch ist. Tatsächlich stellt aber dies Verfahren die logische Fortentwicklung der bisher in allen Armeen geübten Praxis dar ... Angesichts des Umstandes, daß unsere Gegner unter Verzicht auf jeden Rassenstolz ein buntes Völkergemisch gegen uns ins Feld führen, ist die Anwendung dieses Mittels voll gerechtfertigt. Wir erreichen auf diese Weise unseren  kriegerischen Zweck und sparen an kostbarem Blute." (Gerhard Kaiser, Wie die Kultur einbrach, Giftgas und Wissenschaftsethos im ersten Weltkrieg/문명의 붕괴과정, 독가스와 1차 대전의 과학윤리, 8쪽, http://www.freidok.uni-freiburg.de/volltexte/506/pdf/gaskrieg.pdf, 2013.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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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보기: 로렌스의 아랍 ⊥ 사이크스-피코의 아랍

1. 로렌스의 아랍

 

게릴라전을 위한 로렌스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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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이크스-피코의 아랍

 

지배를 위한 영.불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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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를 그저 모래라고만 생각하고 그은 일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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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시리아

1. 어떤 연관이 있나?

 

이집트의 살육과 시리아의 반인륜적 독가스공격이 거의 동시에 자행됐다.

 

2. 누가의 짓?

 

‘누가의 짓인가’는 지저분한 말속에 갇혀있다.

 

3. 지저분하게 만들기, 지저분하게 말하기

 

3.1 이집트

 

수정혁명이란다. 무바라크 독재를 몰아낸 민주세력이 무스시를 반동으로 규정하고 다시 몰아냈단다. 근데, 무슨 일이지? 무바라크는 석방, 무스시는 구금.

 

반동에 대한 반동은 혁명이 아니라 파시스트 정권장악? 과거 독일 나치가 등장했던 배경처럼?

 

3.2 시리아

 

유엔 조사단이 왜 ‘누구’의 질문은 다루지 않지? 이 질문은 왜 추측과 어둠속에서 활동하는 정보기관에 맡기지?

 

 

참조

- 이집트, 시리아, 그리고 예멘의 수정혁명 혹은 수정운동

http://en.wikipedia.org/wiki/Corrective_Revolution

http://en.wikipedia.org/wiki/Corrective_Mov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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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질문

1. 번역과 이성

 

관계가 있나? 있어야 할 것 같다.

 

번역사업을 정책적으로 진행한 국가/제국은 인도에서 스페인까지 이어지는 ‘중세’ 칼리프 제국. 번역이 이성과 관계가 있다면, 아랍-이슬람의 이성은? 아랍-이슬람의 번역이론은?

 

2. 마르크스 읽기

 

[소련 및 동유럽의] 현존사회주의 붕괴 후 마르크스를 레닌, 모택동 등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시킨 이론들과 결별하여 읽는 게 아니냐는 추측. 칸트로 떨어지면서 그가 적극적으로 제시한 실천적 보편주의의 윤리문제는 스피노자로 한발 더 후퇴하여 두루뭉술하게 만든다는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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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사람되기 1

1. 데리다의 결함

 

넘어가려는 사람에게만 주목한 데리다.

넘어가려는 사람들의 발언.

쉬볼렛. 

 

끌려간, 팔려간 사람들은?

끌고간, 사들인 사람들의 발언은?

이들의 쉬볼렛은?

 

2. 

 

하루아침에 내 주변을 두르는 말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소리가 되었다. 그 소리에서 ‘너 좋아, 너 싫어’의 쉬볼렛을 읽어야 했다. 이렇게 귀가 훈련되었다.

 

3. 

 

끌려간 사람들에게는 끌고간 사람들의 말이 그저 소리였다. 번역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의미가 없었기 때문에 번역도 없었다. 다시 동물이 되어 혼신을 다해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소리에서 생명의 위협 여부를 읽어야 했다.

 

4. 노래하기

 

베를린 SO 36. 분계선에 밀접해 있는 텅 빈 놀이터. 땅을 살며시 덮은 눈. 돌연 무에진의 노래. 사막. 달랑달랑 달려있는 큰 통 속에 숨어 노래하는 아이. 고향을 불러 사막을 만드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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