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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일 소설 '푸른 혼'

2005년 12월 7일 오후 1시 국가정보원 강당.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는 인혁당·민청학련 사건조사 결과 발표회를 갖고 1964년 인혁당 사건과 1974년 민청학련·인혁당재건위 사건이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중앙정보부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고 발표했다.

진실위는 1975년 4월 8일 인혁당재건위에 관한 대법원의 상고기각 결정이 내려진 지 18시간만에 관련자 8명에 대한 사형이 집행된 것에 대해 청와대 선에서 이미 '즉시 처형' 방침을 정하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국제법학자협회에 의해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됐던 1975년 4월 9일.

그날 새벽 인혁당재건위 관련자 8명이 형장의 이슬로 스러져간 지 30년 하고도 8개월이라는 기나긴 세월이 지나서야 비로소 '진실'이 밝혀진 것이다.


올해 2월 소설가 김원일이 『푸른 혼』이라는 제목의 연작소설집을 발간했다.

김원일은 '작가의 말'에서 "사건은 처음부터 끝까지 조작으로 일관되었으며, 갖은 고문으로 거짓자백을 받아내다 못해, '너희들의 꿈꿀 자유마저 없애겠다'며, 대법원 확정판결 하루도 채 못되어 교수형으로 처형한 이 사건이야말로 군사정권이 저지른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죄악"이라고 폭로했다.

그리고 "아직도 구천에서 원혼의 넋으로 떠돌고 있을 서도원, 도예종, 송상진, 우홍선, 하재완, 이수병, 김용원, 여정남, 여덟분의 영전에 이승을 뜬 지 30주기를 맞아 이 책자를 바친다"고 썼다.


76년 2월 29일, 서울 청계천3가 태성장이라는 중국요리집에서 이재문, 신향식, 김병권은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준비위원회를 결성했다.

일명 '전선기'로 불리웠던 남민전의 깃발은 인혁당 처형자 8명 가운데 총각이던 여정남을 제외하고 나머지 7명의 속옷을 가족들로부터 건네받아 전수진과 이문희가 밤을 세워가며 만들었다(김병권, 수기).

『푸른 혼』은 "그렇게 모아진 내의가 색깔별로 염색되었고 조각난 감을 재봉틀로 엮어 혁명, 통일, 평화를 상징하는 남민전 깃발을 하나 만들었다"고 전한다.

인혁당재건위 사건으로 피신중이던 남민전 위원장 이재문은 79년 10월 체포됐다.

혹독한 고문과 할복, 옥중 단식으로 지병인 위유문부협착증이 악화돼 81년 11월 22일 마흔일곱의 나이로 서대문 구치소에서 옥사했다.

통혁당 계열이었던 신향식은 82년 10월 8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남조선해방전략당 계열이던 김병권은 88년 12월 출소해 범민련, 전민련, 통일연대에서 활동하다 2003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투병중 지난 9월 타계했다.

손석춘은 이렇게 썼다.

"남조선해방전략당은 인민혁명당, 통일혁명당과 함께 박정희 독재시기의 '비합법 정당'이다. 아니 정당 추진세력이었다. 박정희는 세 당의 '지도부'에게 모두 사형으로 답했다."

"세 당의 살아남은 사람들은 굽히지 않았다. 힘 모아 세운 게 바로 남조선민족해방전선이다. 지도자 이재문과 신향식, 그리고 앞서 사형된 권재혁, '모독'당한 세 영혼은 지금 어디 있을까. 편히 잠들어 있을까."




송상진(당시 47세)

28년 9월 18일 대구시 동구 백암동 출생. 대구사범 대구대 경제학과 졸업.
4.19 이후 교원노조 활동 및 민주민족청년동맹 총무국장.
57년 대구 덕화중학교 교사.
60년 4월 19일 민민청 경북도위원회 사무국장.
64년 7월 소위 1차 인민혁명당 사건으로 연행, 무혐의 석방.
74년 4월 인민혁명당 재건단체사건으로 구속, 당시 양봉업.
75년 4월 8일 대법원에서 사형확정. 75년 4월 9일 사형집행, 대구 칠곡현대공원에 안장.



도예종(당시 51세)

24년 12월 25일 경북 경주시 서악 출생. 대구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4·19 이전 청구대학교(현 영남대) 경제학 강사.
60년 5월 영주 교육감 당선.
60년 10월 민주민족청년동맹 가입, 경북간사장.
61년 4월 민자통 중앙상무집행위원회조직부책 한미경제협정반대, 일본경제인입국반대, 2대악법반대 등에 주도적 활동.
64년 7월 1차 인혁당 사건으로 구속, 대법원 반공법위반으로 징역 3년 선고.
67년 8월 25일 석방.
<영남일보> 영천지사장→72년 2월 삼화건설 회장.
74년 4월 인민혁명당재건단체사건으로 구속.
75년 4월 8일 대법원에서 사형확정. 75년 4월 9일 사형집행, 대구 칠곡 현대공원에 안장.



서도원(당시 52세)

23년 3월 28일 경남 창녕군 대합면 신당리 출생. 대구매일신문 논설위원.
4·19 이전 청구대학교 (현 영남대학) 학생주임. 정치학 강의.
4·19 이후 민주민족청년동맹위원장.
5·16 이후 혁명재판에서 7년 언도, 2년 7개월 복역.
67년 국가보안법 사건으로 구속, 무죄판결.
74년 3월 인민혁명당재건단체사건으로 구속, 당시 침술사.
75년 4월 8일 대법원에서 사형확정. 75년 4월 9일 사형집행, 경남 창녕 선산에 안장.



우홍선(당시 44세)

31년 출생.
6 25 당시 고교생으로 학도의용군 참전. 58년 육군대위 예편.
4.19 이후 통일민주 청년동맹 중앙위원장 역임.
5.16 이후 수배.
64년 1차 인혁당 사건으로 구속 1년형, 집행유예 2년. 한국골든 스템프사 상무.
74년 4월 인민혁명당재건단체사건으로 구속.
75년 4월 8일 대법원에서 사형확정. 75년 4월 9일 사형집행.



하재완(당시 43세)

31년 1월 10일 경남 창녕군 이방면 안리출생. 단국대학교 졸업.
50년 입대.
57년 중사 제대, 양조장 경영.
4.19이후 민주자주통일협의회 경상북도협의회 부위원장.
74년 4월 인민혁명당재건단체사건으로 구속, 당시 건축업.
75년 4월 8일 대법원에서 사형확정. 75년 4월 9일 사형집행, 대구 칠곡 현대공원에 안장.



이수병(당시 39세)

36년 12월 경남 의령군 부림면 출생. 부산사범 경희대학교 졸업.
4·19 이후 경희대학교 학생민족통일연맹 위원장.
5·16 이후 구속, 혁명재판에서 15년형 선고, 7년 복역.
74년 4월 인민혁명당재건단체사건으로 구속. 당시 삼락 일어학원 강사.
75년 4월 8일 대법원에서 사형확정. 75년 4월 9일 사형집행, 경남 의령군 신반리에 안장.



김용원(당시 40세)

35년 경남 함양군 출생. 서울대 물리학과 졸업. 서울대 민통련대의원.(4.19 이후 서울대 학생민통련 참가)
64년 동양중고 교사. 소위 1차 인혁당 사건으로 연행, 조사받고 나옴.
74년 4월 인민혁명당재건단체사건으로 구속. 당시 경기여고교사
75년 4월 8일 대법원에서 사형확정. 75년 4월 9일 사형집행.



여정남(당시 30세)

45년 5월 대구시 남일동 출생. 경북고,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입학,경북대 학생회장.
64년 6월 3일 한일회담반대투쟁 주도 학생운동으로 3번 제적, 군입대.
69년 복학.
71년 정진희 필화사건으로 구속.
72년 11월 10일 유신반대 포고령 위반으로 구속.
74년 4월 인민혁명당재건단체사건으로 구속.
75년 4월 8일 대법원에서 사형확정. 75년 4월 9일 사형집행, 대구 칠곡현대공원에 안장.



이재문(당시 47세)

1934년 경북 의성 출생
1964년 1차 인혁당 사건으로 구속
1971년 민주수호 경북대구협회 선전부장
1979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남민전) 사건으로 구속
1980년 대법원에서 사형 선고
1981년 11월 22일 서대문 구치소에서 옥사. 백석 천주교 묘지에 안장



신향식(당시 48세)

1934년 전남 고흥 출생
1958년 서울대학교 철학과 입학
1968년 7월 통일 혁명당 사건으로 투옥
1972년 3년 6개월의 복역을 마치고 비전향으로 출소
1979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남민전) 사건으로 구속
1982년 10월 8일 전두환 정권에 의해 사형 집행. 경기도 광주 공원묘지에 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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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10 00:29 2005/12/10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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