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쓰기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신문 칼럼 원고

 

1987년 1월 14일 서울대 학생 박종철이 고문 끝에 사망했다. 분노한 국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전두환은 4월 13일 호헌조치를 발표했고 시민들은 거리항쟁으로 맞섰다. 6월 9일 연세대 학생 이한열이 경찰이 쏜 최루탄에 머리를 맞고 쓰러졌다. 6월 10일 민정당이 노태우를 대통령후보로 추대하던 날, 전국 22개 도시에서 24만여 명이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다. 6월 18일, 26일 시위대는 100만 명을 넘어섰다. 항쟁은 마침내 노태우의 6.29선언을 이끌어냈다.


7월 5일 사경을 헤매던 이한열이 끝내 숨졌다. 이날 울산 현대엔진에 노동조합이 결성됐다. 7·8·9월 노동자대투쟁이 시작됐다. 투쟁은 미포조선, 중공업, 자동차, 정공, 중전기, 종합목재 등 현대계열사로, 태광, 동양나일론, 풍산 등 울산지역 전체로, 부산, 마산, 창원, 구미, 광주, 전북, 수도권, 강원지역으로 들불처럼 번져갔고, 대공장에서 중소공장으로, 중화학공업에서 경공업으로, 광공업, 운수업, 판매직, 사무직 등 전 산업으로 빠르게 퍼져갔다. 7·8·9월 석 달 동안 3,458건의 투쟁이 봇물 터지듯 솟구쳐 나왔고, 이 시기에 새로 만들어진 노동조합은 1,300개가 넘었다.


“노동자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 ‘세상을 뒤흔든 100일’의 외침은 더 이상 기계이기를 거부한 노동자들의 ‘인간선언’이었고, 1970년 11월 “근로자도 인간이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며 자기 몸을 불태웠던 전태일 열사의 가슴 벅찬 ‘부활’이었다. 7·8·9월 노동자대투쟁 이후 민주노조운동은 88년 11월 노동법개정투쟁, 88~89년 현대중공업 128일 파업투쟁, 90년 현대중공업 골리앗투쟁과 5월 전노협 총파업, 91년 5월 투쟁, 93년 현총련 공동 임투, 95년 현대자동차 양봉수 열사 투쟁, 96~97년 노동법개정 총파업, 98년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반대 투쟁, 2000년 대우차 매각 반대 완성차 4사 공동 투쟁, 2001년 화섬 3사 공동 투쟁, 2002년 발전노조 파업, 2003년 화물연대 파업, 2004년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박일수 열사 투쟁과 공무원노조 파업, 2005년 건설플랜트 파업 등 투쟁을 멈추지 않았고, 88년 전국노동법개정투쟁본부와 지역·업종별 노동조합 전국회의, 90년 전노협, 91년 박창수 노대위와 ILO 공대위, 93년 전노대, 95년 민주노총, 2005년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등 조직의 양과 질을 발전시켜왔다.


2007년, “노동자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노동자들의 외침은 지금도 절박하다. 최근 몇 년 동안 울산지역에서는 건설플랜트 노동자, 덤프와 화물차 기사, 울산과학대학교 청소용역 노동자, 효정재활병원 간병사, 반구어린이집 보육교사, 옥서초등학교 조리보조원, 자치단체 비정규직 노동자, 현대차와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 학습지 교사 등 비정규직 노동자, 특히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계속돼왔다. 이 투쟁들에 고스란히 스무 살 민주노조운동의 ‘미래’가 담겨 있다.


민주노조운동은 ‘대기업 정규직의 제 배 불리기’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20년을 전망하기 위해서 비정규직 노동자, 특히 여성 비정규직의 자리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을 성찰하며, 운동의 이념과 조직을 뿌리에서 재구성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87년 노동자대투쟁 20주년 기념사업이 이런 성찰의 자리와 연대의 한마당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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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05 09:26 2007/06/05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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