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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힘 기관지 원고


‘우리 지역’에 노동자 미디어가 필요한 까닭

우리가 살고 있고 활동하고 있는 ‘지역’을 돌아보자. 노동운동이 존재하고 있는 지역에는 어디랄 것 없이 민주노총지역본부나 한국노총지역본부가 있다. 광역 단위가 아닌 곳에는 총연맹 지구협의회들이 있고 금속, 화섬, 공공, 공무원, 병원, 택시, 버스, 전교조 등 산별연맹의 지역조직들이 있다. 여기에 화물연대, 덤프연대, 학습지노조, 대리기사노조 등 특수고용 비정규직 노조들도 존재한다. 노동조합 조직 말고도 각종 노동운동 단체들이 있다. 이주노동자나 비정규직 노동자를 지원하는 단체, 교육단체들, 산재추방운동단체 같은 조직들이다. 민주노동당이나 사회당 같은 진보정당 지역조직과 문화단체, 시민운동단체들도 있다. 현장은 현장대로 정파별 현장활동가조직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 조직들은 일주일 또는 달마다 홍보물을 낸다. 거리선전전도 하고 지역집회도 벌인다. 지역에서 기자회견을 가장 자주 하는 조직들도 노동운동이나 시민운동 단체들이다. 그런데도 노동운동세력이 지역의 여론을 주도하거나 지역 주민 다수의 지지를 끌어내는 경우는 드물다. 파업이 벌어지면 국영, 민영, 케이블 할 것 없이 TV 방송 전체가 직간접으로 파업 파괴에 열을 올린다. 라디오, 지역 일간지와 주간지, 인터넷신문 등 지역의 주류 또는 아류 미디어들도 죄 들고 일어나 ‘노동조합 때리기’에 한 목소리로 가세한다. 노동조합은 고립되기 십상이고 노동운동 진영의 목소리는 지역의 다수 대중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분명 적지 않은 세력이고 조직력인데도 노동운동은 여전히 우리 사회와 우리 지역에서 ‘소수파’다.

 

현장 노동자들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현장의 노동자들 대부분은 자신의 이해와 직접 관련이 있는 내용 말고는 노동조합이나 현장조직의 선전물들을 그닥 꼼꼼히 읽지 않는다. 더구나 단위사업장을 넘어선 노동계 소식에 관심이 많지 않다. 민주노총의 기관지인 ‘노동과 세계’를 읽는 민주노총 조합원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노조 간부들이나 활동가들조차도 이 점에서 자유롭지 않다. 지역에서 노동운동 진영이 내는 홍보물 전체를 놓고 거기에 쏟아붓는 재정과 인력, 노력의 크기를 계산해보면 결코 적지 않은 액수와 사람, 공이 들어가는데도 결과와 효과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내용의 중복, 운동권 글투의 어려움과 생경함, 뒷북치는 소식들과 식상함 등등이 원인일 터다.

 

지역에서 쏟아지는 주류, 아류 미디어들과 회사들마다 발행하는 각종 홍보물에 맞서 노동운동 진영이 ‘노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노동자의 입으로 진실을 말하는 노동자 언론’을 만들고 키워야 할 필요성은 더없이 크다. 갈수록 개별화, 실리화, 보수화되고 있는 조직 노동자들에게 노동운동의 목표가 ‘정규직 조합원들만의 현재의 이익 추구’가 아니라 ‘전체 노동자의 미래의 이익 추구’여야 한다는 사실을 꾸준히 알려내고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도 노동자들의 가슴을 파고드는 일상 미디어 전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뿐만 아니라 노동운동 내부의 소통과 연대를 위해서도 노동자 미디어는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주류 언론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돼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알려내고 ‘자발적 연대’를 끌어내기 위해서 지역의 노동자 미디어는 매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비정규직 투쟁과 노동자 미디어의 역할 - 울산노동뉴스 사례

2000년대를 넘어서면서 노동운동의 주요 투쟁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의해 전개됐다. 예전처럼 금속 대공장의 남성 노동자들이 아니라 건설플랜트 노동자, 사내하청노동자, 자치단체 비정규직노동자, 보육교사, 비정규직영양사, 조리보조원, 학습지교사, 덤프차 기사, 화물차 기사, 간병사, 청소용역노동자, 대리운전기사 등 비정규직, 특히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의 전면에 나섰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대부분 소규모이고 분산돼 있으며 장기간 계속된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승리의 관건은 지역의 연대를 얼마나 많이, 지속해서 이끌어낼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2005년 5월 1일 창간한 울산노동뉴스는 울산지역 노동자들의 대중, 진보 인터넷 신문을 표방하며 울산지역 노동문제와 노동자 투쟁 전반을 다뤄왔다. 효정재활병원 간병사들과 울산과학대학 청소용역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이 벌어졌을 때 울산노동뉴스는 이 투쟁들에 바짝 밀착했다.

 

지난해 8월 효정재활병원 간병사들이 울산지역연대노조에 가입하고, 울산노동뉴스와 인터뷰를 하면서 간병사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병원 측은 울산노동뉴스와의 인터뷰를 이유로 지부장을 해고하고, 나머지 조합원들도 해고시켰다. 해고된 간병사들은 병원 앞 연좌시위를 시작했다. 울산노동뉴스를 통해 울산지역에 이 투쟁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해고 간병사들 6명만이 외롭게 자리를 지켰던 병원 앞 집회는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지나면서 50명을 훌쩍 넘기는 ‘자발적 연대’의 자리로 발전했다. 서지원 지부장은 울산노동뉴스에 투쟁 일기를 연재했다. 이 연재투고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독자들은 서 지부장의 글을 읽으면서 간병사들의 열악한 삶의 현실을 속속들이 알게 됐고, 한 사람의 평범한 50대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가 활동가로 어떻게 변화하고 성장해가는지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울산과학대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해서도 울산노동뉴스는 밀착 취재했고, 텍스트 보도, 소리방송, 영상소식, 포토뉴스, 인터뷰 등 모든 꼭지를 통해 기사화했다. 이 투쟁 역시 처음에는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들만의 외로운 투쟁이었다가 조금씩 지역의 연대를 이끌어냈고, 몇몇 사건들을 계기로 급속히 전국으로 이슈화됐다. 천막농성, 단식, 정몽준 의원 사무실 점거 등을 거치면서 연대는 계속 확산됐고 마침내 전원 원직복직이라는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다.

 

우리 지역에 노동자 미디어 종합 진지를 만들자

지역의 현장 소식과 투쟁 소식을 날마다 알려내는 인터넷신문이 있고, 이 인터넷신문을 그 지역의 노조 간부와 활동가들이 매일 들여다본다면 아무리 작은 사업장의 투쟁이라도 지역 전체가 그 투쟁을 속속들이 알게 되고 공감할 수 있게 된다. 이로부터 노동조합 공식 체계를 통해서 간부들이 동원되던 기존의 ‘비자발적 연대’를 벗어나 지역의 ‘자발적 연대’를 끌어낼 수 있게 된다. 여기에 공동체 라디오를 전망하는 인터넷 소리방송이 투쟁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전달하고, 사안 사안마다 투쟁 현장의 생생한 모습을 영상소식이 알려낸다면 효과는 더 커질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현장의 일반 노동자 대중이 하루 가운데 인터넷에 접속하는 시간은 많지 않다. 세계 1위의 장시간 노동도 노동이려니와 집에 있는 컴퓨터는 자식들 차지고 가끔 인터넷에 들어오더라도 포털 사이트를 돌아보거나 게임을 하는 게 대부분이다. 노동자 인터넷신문은 고사하고 자기 노동조합 홈페이지에도 임단투 같은 특정한 때가 아니면 접속하는 일이 별로 없다. 그래서 대중들의 손에 직접 쥐어지는 종이신문이 필요하다. 지역의 노동조합, 현장조직, 노동단체, 진보정당 들에서 내는 각종 홍보물과 거기 들어가는 돈, 사람, 노력, 그리고 그 결과와 효과를 따져본다면 지역 노동자 주간지는 지금 당장이라도 가능하고, 그 종이신문을 보수언론에 맞서 지역의 영향력 있는 매체로 키워나가는 것도 그렇게 마냥 어려운 일만은 아니다. 더 꼼꼼히 계산하고 계획한다면 지역 일간지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걸쳐 만들어진 지역 노동자 미디어는 현장 구석구석에 촉수를 뻗고 전임기자와 현장기자단의 망을 촘촘히 얽어내면서 강력한 ‘소통과 연대의 도구’로 기능할 것이다. 아울러 교육, 장애, 환경, 여성 문제 등 지역사회의 제반 이슈들에 대해서도 노동자의 목소리를 낼 수 있고, 투쟁 시기와 선거 시기에 노동운동 세력의 입장을 대중들에게 보다 풍부하게 전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공동체 라디오와 퍼블릭 액세스, 나아가 노동자 TV에 대한 고민도 구체화시켜야 한다. 내년이면 지역마다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이 설립될 공산이 크다. 알려진 바로는 현재 전국 160여 군데에서 공동체 라디오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가운데 지역 노동운동 세력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광역시 단위의 경우 구 하나를 포괄하는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을 노동운동 진영이 갖게 된다면 상황은 많이 바뀐다. 공동체 라디오는 노동운동의 고립화, 점점 떨어지는 조합원 대중의 집회 참석률, 실리화하고 보수화되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의식 변화 등 노동운동의 위기를 극복할 유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현장의 노동자들이 라디오를 계속 들으면서 일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다양한 방법으로 현장 노동자들이 방송에 직접 참여하고 현장의 목소리가 전파를 타고 생생하게 소통된다면, 그렇게 대중의 마음과 직접 호흡하면서 공동체 라디오가 성장한다면 노동운동은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롭게 전진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퍼블릭 액세스는 미디어 활동가를 발굴하고 역량을 강화하는 활동과 더불어 노동자 TV를 전망하면서 이뤄져야 한다. 당장 인터넷신문에서부터 영상소식을 제대로 발전시키고 컨텐츠를 축적하는 것이 급선무다.

 

노동자 미디어는 노동조합, 노동자계급정당, 현장조직 등과 더불어 세상을 바꾸는 또 하나의 힘이다. 노동운동을 혁신하고 새로운 전진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노동자의 힘으로 우리 지역을 바꿔내기 위해서 지금 당장 노동자 미디어 전략을 구체화하자. 지난 20년 노동운동이 쌓아온 역량만으로도 우리 지역의 노동자 인터넷신문과 종합 주간지는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지역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활동가들의 우직한 ‘저지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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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17 16:36 2007/06/17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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