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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울교협통신] 10호 96.3.22

 

MBC 노동자들의 파업투쟁

강성구는 물러나라!

MBC 노동조합은 3월 14일 전면 파업에 들어갔다. 92년 9월, 50일 파업투쟁이 있고나서 3년 6개월만에 다시 벌이는 투쟁이다.

MBC 노동자들의 이번 파업투쟁은 지난 3월 13일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 이사회가 강성구 사장의 연임을 결정하면서 비롯되었다. 방문진은 지난 3월 8일에도 KBS 홍두표 사장의 연임을 결정한 적이 있다. '문화방송 대주주인 방문진 이사진 10명 가운데 6명과 방송공사 이사 12명 전원을 추천하는 방송위원회가 행정·사법·입법부가 각각 추천한 9인으로 구성돼 구조적으로 정부·여당 편향을 가질 수밖에 없도록 돼 있'(주1)는 방문진의 이 결정을 두고 MBC 노동자들이 들고 일어선 까닭은 이렇다.

첫째, 방문진 이사회가 청와대의 꼭두각시 짓을 그만두고 방송의 공익성과 자율성, 독립성을 지킬 수 있게끔 이 참에 방송법을 뜯어고치는 데까지 밀어부쳐야 한다는 조합원들의 생각이 하나로 모아졌기 때문이다.

둘째, 총선 전에 MBC 노조를 박살내고, 방송단일노조를 세우려는 움직임에 쐐기를 박겠다는 정부의 의도를 이번에 정면으로 맞부딪쳐서 깨뜨리지 않는다면 MBC는 끝내 '정부의 시녀'라는 더러운 이름을 떨쳐버리지 못할 것이라는 위기감과 조합원들의 방송 민주화 의지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셋째, YS와 그의 아들 김현철, 청와대 정무수석 이원종, 신한국당 사무총장 강삼재, 방문진 이사장 김희집과 강성구 사장 사이에 얽히고 곪힌 뒷거래와 추문에 분노했기 때문이다. 김희집은 고대 총장으로 있을 때 김현철의 고대 편입학을 주선했던 사람이다. 그는 유력한 사장 후보였던 이득열의 후보 사퇴를 부추기면서까지 강성구의 연임을 밀고 나갔다. 이원종은 3월 5일 YS에게 강성구의 사장 연임을 끝까지 고집하여 내정을 받아냈다. 강삼재는 한동안 방송가의 최고 스캔들로 떠올랐던 강성구의 여자 추문에도 얽혀 있었고 강성구가 마산 MBC 사장에 있을 때부터 서로 잘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강성구는 이 때 YS의 아버지 김홍조를 극진히 모셨다고 알려진다.

90년 KBS와 골리앗, 96년 MBC와 …?

3월 14일 새벽 5시부터 MBC가 파업에 들어가자 KBS 노동조합도 비상대책위를 꾸려 밤샘농성을 시작했고, KBS, MBC, EBS, CBS 등 4개 방송사 노조로 이루어진 [전국방송사단일노조준비위]는 대표자회의를 열어 정부가 경찰력을 투입할 경우 연대파업을 벌이기로 결의했다.

투쟁은 18일 MBC 19개 지방사 노조의 전면파업 돌입으로, 19일 KBS의 연대집회와 21∼22일 대의원대회에서의 연대 결의로 이어지고 있다.

한편 3월 15일 [공공서비스부문 해고노동자 원직복직투쟁위원회(이하 공해투)]의 정보통신부 항의 방문 싸움에서 28명이 연행되고 박표균, 박현영, 남진우 동지 등 3명이 구속되자 투쟁은 16일 공공부문 6사의 명동성당 집회투쟁과 23일 공노대 집회로 번져가고 있다.

16일 집회 자리에서 석치순 서울지하철노조 위원장은 "공공 6사는 MBC 파업, 총선과 연계하여 더욱 수위높은 투쟁을 벌여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MBC의 투쟁이 KBS와 만나고 방송사 연대투쟁으로 이어져 방송단일노조 건설로 나아갈 수 있을지, 그리고 이 투쟁이 공공부문 해고자 복직투쟁과 맞물려 공노대의 총력투쟁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 나아가 96년 임투전선이 총선 바람에 파묻히지 않고 민주노총 원년의 힘찬 공동투쟁으로 뻗어갈 수 있을지…

온 누리가 봄 기운을 느끼듯 올해도 어김없는 한판 싸움이 다가옴을 느낀다. MBC 동지들의 투쟁은 올해 임투가 이미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과감한 전령(傳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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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1) 한겨레 신문, 1996년 3월 20일,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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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4 07:42 2005/02/14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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