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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울교협통신] 13호 96.4.12

 

4.11 총선 결과를 보고

4.11 총선이 끝났다.

63.9%의 투표율은 이 놈의 정치판에 '한 표를 던질 의미'를 찾지 못한 다수 국민들의 간접 저항을 말해준다. 광주·호남, 부산·경남, 대전·충청 고정표야 기본으로 갈라먹는다치고 대구·경북, 강원에서 자민련이 웬만큼 챙기면 남는 건 수도권인데 이회창, 박찬종을 앞세운 신한국당과 DJ를 내세운 국민회의 사이에 뚜렷한 쟁점도 없고 그렇다고 민주당이 돌풍을 일으킬만한 대안을 내놓지도 못하는 판이니 찍을 데를 못찾은 많은 유권자들이 '뻔한 판에 뻔한 표'를 던지지 않겠다고 선거 자체를 포기한 것이다. 그만큼 한국 정치가 굴러가는 '뻔한 꼴'에 신물이 나 있다는 얘기고, 흔쾌히 지지할 정치세력이 없다는 말이다.

전국구를 합쳐 총 299석 가운데 신한국당 139석, 국민회의 79석, 자민련 50석, 민주당 15석, 무소속 16석으로 결과는 어떻든 '여소야대'로 나타났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 보면 승자가 신한국당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여당은 당장 과반수 의석 확보를 위해 먼저 움직일 이유가 별로 없다. 과반수 -11석은 그렇게 크게 부담되는 숫자가 아니다. 무소속을 끌어들여도 되고 5.18 특별법을 제정할 때처럼 일부 야당과 정책연합을 해도 무리가 없다. 급한 건 민주당인데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실패한 민주당은 또다른 야권 통합을 시도하거나 신한국당과의 개혁연합을 적극 모색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내몰렸다. 민주당이 어떻게 움직이건 신한국당으로서는 급할 게 없다. 그만큼 준비된 카드가 많기 때문이다. 국민회의는 죽으나 사나 자민련과 한 배를 탈 수밖에 없게 되었다. 더구나 DJ의 원내 진출이 좌절되면서 대권을 향한 독자 드라이브의 폭이 그만큼 좁아졌다. 한편 자민련은 내각제를 담보로 한 정국 파트너의 선택 폭이 넓어졌다. JP가 쓸 수 있는 카드도 그만큼 많아진 셈이다. YS는 95년 6.27 지자체 선거의 참패에서 벗어나 중권 경쟁에서 승리함으로써 대권으로 가는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더구나 신한국당 내부에서 민정계다 민주계다 하는 계파의 의미가 많이 약화된 상황은 차기 대권 후보 지명에 있어 사실상의 전권을 YS가 쥐게 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97년말로 다가오는 대선과 관련해서 주목되는 것은 정당별 득표율이다. 신한국당 35.1%, 국민회의 24.8%, 자민련 16.4%, 민주당 11.3%, 무소속 12.4%. 이 득표율을 토대로 대선 구도를 구상해 보면 몇가지 시나리오들이 제출될 수 있다.

첫째, DJ와 JP가 내각제 개헌에 합의하고 대선 이후의 일정한 역할분담에 근거하여 단일 후보를 내는 경우이다. 이 경우 DJ보다는 JP가 좀더 유리하다. 아니면 DJ와 JP가 제3의 인물을 내세울 수도 있는데 이 경우는 마땅한 인물을 찾기가 어렵다는 맹점이 있다. 이 시나리오는 국민회의 24.8%와 자민련 16.4%를 합친 41.2%의 득표율을 근거로 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YS로서는 이회창 후보를 내세워 신한국당 35.1%와 개혁 성향의 민주당 득표율 11.3%를 합친 46.4%의 지지율을 근거로 정면 승부할 공산이 크다. 이른바 개혁여당과 보수야당의 대결로 대선 판이 짜여지는 경우다.

둘째, 야권 통합을 근거로 하여 이른바 '수평적 정권교체'를 내세운 3파전으로 가는 경우이다. 이 경우 자민련은 확실한 캐스팅 보드를 잡게 된다.

셋째, YS와 JP의 연합 가능성이다. 그러나 이 경우는 DJ의 위협 변수가 적은 현실에서는 실현 가능성이 별로 없다.

이번 총선에서 노동자·민중후보들의 '투쟁'을 살펴보는 것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한 평가가 될 것이다. 먼저 민주노총 후보를 보면 서울 성동을 김명희 2,883표(4.3%), 경북 김천 이병무 1,115표(1.4%), 부산 연제 박순보 26,225표(25.2%)가 전부다. 전국노점상연합회 후보로 나선 송파을의 김흥현 후보는 1,383표(1.6%)를 얻는 데 그쳤다. 안양 만안에 출마한 노동정치연대 김종박 후보는 3,181표(3.0%)를, 서울 성동갑에 나선 진보정치연합 김철수 후보는 3,309표(3.9%)를, 창원을에 출사표를 던진 노진추 강성모 후보는 2,638표(2.9%)를 획득했다. 한편 전국연합 후보는 서울 관악갑 함운경 10,123표(8.9%), 성남 중원 정형주 8,794표(8.2%), 대구 수성갑 박형룡 4,429표(4.7%)를 얻었다. 부산 연제의 박순보 후보를 빼면 최소한 10% 득표를 넘긴 후보가 없을 정도다. 박순보 후보조차 지난 14대 총선과 비교했을 때 10,000표 가까이 떨어졌다. 일단 수치상으로 보면 노동자·민중진영의 이번 총선 참여는 대단히 미미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성과 또한 매우 저조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총선 대응은 노동자·민중진영의 독자 정치세력화를 위한 소중한 시도이고 나름의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한 귀중한 모색이다. 이 경험을 밑거름 삼아 민주노총 시대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향한 거대한 진군이 본격화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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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4 07:50 2005/02/14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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