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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울교협통신] 15호 96.4.26

 

106주년 노동절에

1

노동절이 말 그대로 '노동자의 축제'가 되는 날은 언제일까?

1시간에 1명, 하루 7명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고 하루 평균 1명씩이 과로로 죽어 나자빠지는 '죽음의 고역같은 노동'의 생지옥에서, 하루 4명이 직업병에 걸리고 340명이 부상으로 병신이 되는 세계 제일의 산재왕국에서 '죽지 않고 일할 권리'조차 빼앗긴 채 '세계화'의 '신한국 건설'의 총알받이로 무한경쟁에 내몰리는 1996년 한국의 노동자들에게 매해 돌아오는 5월 1일 노동절이 '축제'일 수는 없다.

전국민주금속연맹의 위원장과 민주노총의 수석부위원장이 제3자 개입금지라는 말도 안되는 올가미에 걸려 감옥살이를 하고 있고, 민주노조를 지키겠다는 신념 하나로 투쟁의 선봉에 섰던 숱한 우리 동료들이 문민정부 들어와 한 술 더 떠 자행되는 구속, 수배, 해고의 칼바람 앞에서 삶 전체를 뒤흔드는 고통과 힘겹게 씨름하고 있는 마당에 올해로 백여섯번째 맞이하는 세계 노동자의 날이 마냥 흥겨운 잔치 마당일 수는 더더욱 없다.

더구나 박삼훈, 정월화 동지를 죽음으로 내몸 자본의 신경영전략이 오늘도 현장 구석구석을 초토화시키고 있고 양봉수, 조수원 동지가 죽음으로 항거했던 부당해고의 차가운 칼날이 여기저기서 시퍼렇게 우리의 목을 겨누고 있는데, 김시자 동지가 온몸을 불태워 허물고자 했던 썩어빠진 어용의 보루들이 아직도 쓰러지지 않고 '노사협조'라는 이름으로 민주노조운동의 한쪽 발목을 칭칭 휘감고 있는데 살아 있는 우리가 '되찾은 매이데이'를 자축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106주년 노동절은 따라서 오늘 우리들에게 여전히 '투쟁의 날'이다.

2.

민주노총 원년에 맞는 투쟁의 날, 노동절! 우리 앞에 놓여진 과제들은 그만큼 무겁다.

첫째, '신노사관계'라 이름붙여진 총자본의 새로운 개량화 공세에 맞서 총노동의 대안 이념과 반격의 무기를 어떻게 벼려낼 것인가?

이는 89∼90년 전노협 건설 논쟁, 92년 노동운동 위기론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크고 작은 격론들, 93∼94년 민주노조 조직발전 전망을 놓고 혼란스럽게 확인되었던 대립들, 95년 민주노총 강령 논쟁, 96년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대한 입장 차이로 이어져 온 한국 민주노조운동 내부의 노선 대립이 '참여와 협력'의 신노사관계 패러다임에 자발 포섭되는 것으로 왜곡되느냐, 아니면 21세기 한국 사회 미래를 노동자의 눈으로 재구성한 민주노조운동의 총노선으로 발전·통일되느냐 하는 문제와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둘째, 이른바 '신노사관계'의 시험대가 될 96년 임투에 어떻게 임할 것인가?

잊지 말아야 할 분명한 사실은 93년 이인제를 앞세운 문민정부의 이른바 '신노동정책'이 현총련 공동임투를 어떻게 교란시켰던가 하는 점이다. 당시 전노대 지도부의 일부가 지배계급 내 개혁세력의 입지 강화를 위해 투쟁을 자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듯이 올해 민주노총 지도부의 일부가 '신노사관계'에 대한 과도한 환상 때문에 또다시 임투 전선을 혼란에 빠뜨린다면 이는 민주노총의 존립 자체마저 심각하게 뒤흔드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셋째, 산별노조 건설운동과 노동저 정치운동을 현장활동 속에서 어떻게 구체화시켜 나갈 것인가?

'평등세상 앞당기는 전노협'의 정신은 전노협과 대공장의 결합, 이를 통한 비제조업 업종회의의 견인으로 기획·실천되었던 '민주노조 총단결'의 정신으로, 그리고 오늘 '철의 노동자 총단결'과 '천만노동자 총단결'의 정신으로 계승·발전되고 있다. 산별노조를 건설하고자 하는 현장운동은 '자본에 의해 분할된 온갖 경계들을 뛰어넘는 평조합원의 연대활동'으로 구체화되어야 한다. 노동자 정치운동은 바로 이 대중활동으로부터 분화되고 검증된 선진활동가들이 보다 강고한 단결을 향해 스스로를 완성시켜 나가는 과정이다.

3

1996년 5월 1일, 우리 앞에 던져진 이 무거운 화두(話頭)들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87년 이후 이 땅에 단 하루라도 투쟁이 없었던 날이 있었던가를 되돌아 본다면 오늘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보다 분명해지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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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4 07:51 2005/02/14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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