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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울교협통신] 18호 96.5.17

 

한의사와 양약사의 힘겨루기


  사슴의 뿔로서 보혈효과에 좋은 약은?

  ① 인삼 ② 녹용 ③ 대추 ④ 감초

  중학생 퀴즈 문제가 아니다. 19일 있을 '한약 조제 약사시험'에 나오는 문제 가운데 하나다. 출제위원의 한쪽인 약대 교수들이 이런 문제를 내자 한의대쪽 출제위원들이 들고 나섰다. 출제를 거부하고 시험지를 공개한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5월 16일 '한약 관련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 5월 19일 있을 시험은 약대 교수들만으로 문제를 다시 내서 그대로 본다. 이날 시험을 보지 못한 약사들은 6월 안에 시험을 다시 본다. △ 한약 조제의 전문성을 살리기 위해 앞으로는 지금 있는 약사법을 고쳐 약대 안에 두기로 한 한약학과 졸업생만으로 한약학사 시험을 보게 한다. △ 약학의 전문화를 높이기 위해 약대 학제를 지금의 4년제에서 5∼6년제로 늘린다. △ 군이나 통합시에 '공중보건한의사제도'를 두어 한의사도 군대를 안가고 보건소에서 3년동안 의무진료를 할 수 있도록 한다. △ 보건복지부 안에 한의약 업무를 떠맡을 국장급의 '한방담당심의관실'을 새로 둔다.

  대한한의사협회(회장 박순희)는 "한약 조제 시험 철회는 하지 않고 6월에 추가 시험을 실시하겠다는 것은 약사들을 구제하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며 "한방담당심의관실 설치 등 다른 대책도 지금까지의 복지부 행태로 볼 때 믿을 수 없다"고 반발하고 전국 72개 한방병원과 6천명이 넘는 개업 한의사들이 휴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5월 19일 정부가 시험을 강행한다면 전국 11개 대학 한의대 교수들이 집단으로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대한약사회(회장 정종엽)는 "정부가 한의사들의 실력 행사에 졌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정종엽 대한약사회 회장이 정부의 종합대책에 반대해 회장직에서 물러날 뜻을 밝힌 데 이어 전국약학대학학생회협의회(의장 정동만)도 수업 거부 등의 집단 행동을 벌일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한약 분쟁'은 93년 약사법을 고친 데서 비롯되었다. 개정 약사법의 큰 원칙은 "약사의 한약 조제는 금지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약을 다뤄온 약사들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경과규정'이란 걸 둔 게 문제였다. △ 한약 취급 경력이 있는 약사들에게 2년 동안 한약 조제를 허용하고 △ 96년 7월 8일까지 약사들을 대상으로 한약 조제에 관한 시험을 치러 한약 조제권을 보장한다는 이 '경과규정'을 놓고 약사회는 약사회대로 "약사의 한약 조제를 금지한 개정 약사법은 약사의 직능을 침해한 것"이라며 헌법 소원을 내는 등 거세게 반발했고 한의사협회는 한의사협회대로 "일부나마 약사의 한약 취급을 허용해준 '경과규정'이 잘못됐다"며 맞섰다.

  어쨌든 이 '경과규정'에 따라 95년 12월의 1차 시험에 이어 이번 시험이 치뤄지게 됐는데, 지난 해 1차 시험 때와 달리 약사회쪽에서 시험 거부 방침을 버리고 2만 4천명이 넘는 약사들이 응시하자 한의사협회쪽이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약사들로서는 지난 1차 시험 때처럼 계속 시험을 거부하다가는 모두 한약 조제권을 잃게 될까봐 그런 것이고, 한의사들로서는 8천명이 조금 넘는 한의사 수를 훨씬 뛰어넘어 한약 취급 약사들이 '공인'되어버리는 최악(?)의 상황에 맞선 것이다.

  마땅한 '뾰족수' 없이 5월 19일은 다가오고 있고, 한의사회는 5월 18일 장충단 공원에서 전회원이 참여하는 대규모 규탄 집회를 열기로 하는 등 집단 행동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일이 이렇게까지 치닫게 된 데는 '시험 합격률을 높여 한약 취급 약사를 한명이라도 더 늘리겠다는 약사회쪽과 이를 조금이라도 줄이려는 한의사쪽의 첨예한 이해관계 다툼이 깔려 있다'. 그러나 그 속내를 좀더 들여다 보면 문제는 퍽 복잡해진다. 한의와 양의의 관계, 의약의 분업관계, 의료계와 정부의 관계, 그리고 그 뒷면에 제약자본과 의료서비스자본의 이해관계들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뿌리를 건드려 보자. 의료서비스부문이 개별 자본의 이윤 경쟁으로부터 자유로운 공공부문으로 사회화된다면, 그리고 국민이 건강하게 자기 삶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우리 사회가 공동으로 책임지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복지'라는 것 자체가 생소한 우리 사회에서 이른바 공공영역의 책임성을 얘기하는 게 어찌 보면 우스울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인간 삶의 기본권 문제에 있어서는 자본의 이윤 경쟁을 막아낼 수 있는 공공영역의 안전판이 마련되지 않으면 안된다. 주택, 토지, 교육, 의료, 교통, 환경 등의 영역에서 우리 사회는 이른바 정경유착과 개별 자본들의 이윤 경쟁으로 생겨난 엄청난 부조리와 부패들을 떠안고 있다. 거대 독점자본의 '합리성'이 작은 정부를 강제하며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은 환상이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기본 생활권의 문제를 공동체의 힘과 책임으로 해결해가는 게 아니라 또다른 자본의 논리에 종속시켜 풀려고 한다면 그 논리의 건강성과 합리성이 웬만큼 바탕에 깔린다 하더라도 이윤을 쫓아 운동하는 자본의 본성 때문에 '삶의 질' 자체가 왜곡되고 제한되리라는 것은 충분히 내다볼 수 있는 일이다. 따라서 우리는 "가진 능력만큼 일할 자리가 있고, 건강이 파괴되지 않을만큼의 시간 동안 일할 수 있으며, 돈이 없어 애들 학교에 못보내는 일이 없고, 몸 아플 때 아무 걱정 없이 병원에 갈 수 있으며, 늙어서 큰 걱정 없이 살다 죽을 수 있는 세상"에 대한 소박한 꿈을 '각자가 경쟁에 이겨서' 쟁취(?)하는 게 아니라 '공동체의 책임'으로 이루려는 희망을 버릴 수 없는 것이다.이번 '한약 분쟁'도 마찬가지다. 문제가 여전히 개별 자본과 직종별 이해 다툼에 머물러 있는 한 '묘약'이 있을 수가 없다. 이윤 경쟁으로부터 의료서비스부문을 '해방'시키는 길밖에 없다. 언제부터 병든 사람 고치는 일이 '돈벌이'가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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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4 07:53 2005/02/14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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