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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울교협통신] 19호 96.5.23

 

하청노동자 산재상담소에 거는 기대

  현총련이 6월부터 아래 단위노조에 하청노동자 산재상담소를 두기로 했다는 소식은 무엇보다 반갑다. 이번에 문을 열 하청노동자 산재상담소는 그동안 이른바 '업체 사람들'이라고 이래저래 '사람 대접' 못 받던 내주 하청노동자들의 아픔을 큰 공장 직영 노조들이 제 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매우 뜻 깊다. 상담활동으로 첫걸음을 떼긴 하지만 이런 활동을 시작으로 직영과 내주 하청,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를 허무는 보다 앞선 실천들이 조금씩 쌓여갈 것을 생각하면, 그동안 말로만 외쳐졌던 산별노조 건설운동이 이렇게 물꼬를 트는구나 싶어진다.

  반가운만큼 바램도 크다.

  첫째, 이번 산재상담을 시작으로 내주 하청노동자들의 실태를 조사하는 일이나 '업체사장의 불법 중간착취'를 막아내는 일, 내주 하청노동자들의 조직화를 돕는 일들을 하나씩 벌여가기 바란다.

  자본은 이른바 '노동력 이용의 유연성'을 높이려 애쓰고 있다. 새로 만드는 작업공정의 반 가까이를 하청으로 넘기고, 위험작업이나 직영노동자들이 작업을 꺼리는 공정을 하청노동자들에게 떠맡긴 지는 오래다. 변형시간근로제나 근로자파견법을 기를 쓰고 들여오려 하는 것도 바로 자본 마음대로 하청노동자들을 부려먹겠다는 심뽀에서 나온 것이다. '유연하게' 노동력을 이용하겠다는 자본의 손아귀에서 직영노동자라고 용 뺄 재주는 없다. 잦은 전환배치나 공장이전 따위로 '일자리'가 불안해지기는 마찬가지다. "정년 다 채워 회사 관둬도 애가 이제 대학생인데, 40대에 반 어거지로 짤리게 되면 어쩌나?" 나는 불안이 직영의 고참 노동자들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은 지도 꽤 됐다. 직영에서 왠만하면 새로 노동자들을 고용하지 않으니까 일 강도가 점점 세진다. '과로사'가 남의 얘기가 아니게 된 지도 오래다. 보자. 자본이 노리는 건 우리 노동자를 직영노동자와 하청노동자로 크게 찢어 놓고 지 마음대로 부려먹겠다는 거다. 직영은 직영대로 전환배치다 다기능화다 해서 일 강도와 밀도를 엄청 높이겠다는 심뽀고, 하청은 하청대로 경기 나쁠 때 마음놓고 짜르겠다는 수작이다. 비정규직이다 파트타임노동자다 해서 일은 곱절로 시켜 먹고, 돈은 중간에서 엄한 놈이 삼켜 버리는 이 '골 때리는 구조'가 '업체사람들 못난 탓'이 아니라, 직영이고 하청이고 우리 노동자 모두를 분열시켜 지 마음대로 부려먹겠다는 자본의 '새로운 경영전략'에서 나온 것이라면, 직영노동자와 하청노동자의 연대,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단결이야말로 마땅한 우리의 '맞불'이 되어야 한다.

  내주 하청노동자와 직영노동자의 단결에 앞서 먼저 하청노동자들이 뭉쳐야 한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하청노동자들이 먼저 안움직이면, 직영의 조합원들이 자기 일로 관심조차 가지지 않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내주 하청업체 하나하나씩 노조를 만들기는 어려다. 한 공장에 있는 내주 하청노동자가 모두 모여 한꺼번에 노동조합을 만들어내거나, 아니면 울산지역에 있는 하청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파트타임노동자, 일용노동자 모두가 하나의 노동조합으로 뭉치는 수밖에 없다. 한 공장에서건 지역에서건 단위업체를 뛰어넘게 되므로 '지역노조'와 같은 모양이 될텐데, 적어도 2만명을 훨씬 넘을 것으로 보이는 울산지역의 내주하청노동자나 비정규직 노동자, 파트타임노동자나 일용노동자 모두가 한꺼번에 노동조합을 만들어낼 수는 없기 때문에, 앞선 내주하청노동자들이 먼저 이와 같이 조직대상을 뚜렷이 하는 '지역노조' 꼴의 조합을 세워내고, 조직을 넓혀가는 길 말고는 마땅한 수가 없다. 이렇게 하청노동자가 수는 적더라도 먼저 움직이는 모습을 보일 때 직영의 노동자들이 '도울 길'이 생긴다. 산재상담소는 바로 그 첫걸음이다.

  둘째, 현장조직에서 하청노동자 활동가들을 찾아내고 키워내는 일들을 시작하기 바란다.

  현대중공업 전노회가 조직대상으로 하청노동자까지 문을 연 것은 앞선 연대의식의 모범이다 여기서 좀더 나아가야 한다. 분과(중공업)나 사업부(자동차), 부서(정공)나 단위사업장(남부)에서 함께 일하는 하청노동자들의 문제를 자기 문제로 다뤄야 한다. 바로 같은 현장에서 일하는 동료 노동자의 문제를 나 몰라라 하고서 연대니 단결이니 암만 떠들어봐야 되지 않는다. 자본이 쳐놓은 온갖 울타리를 뛰어넘어 '철의 노동자 총단결', '천만노동자 총단결'로 나아가려 한다면, 공장 울타리 안에서부터 "노동자는 하나!"라는 정신이 실천되어야 한다.

  선진노동자라는 이름에 걸맞는 앞선 실천이 현장조직운동의 몫이다. 선진노동자라 했을 때 그 '선진'은 '단위기업 종업원의 선진'이 아니라 '천만노동자의 선진'이다. 따라서 선진활동가들의 조직운동이 그 안에 직영이니 하청이니 미리 나눠버리는 기업별 노동조합의 굴레를 그대로 쓰고 앉아 뭉개고 있을 까닭이 없다. 할 수만 있다면 빨리 굴레를 깨고 하청노동자 활동가들이 적은 수라도 현장조직에 함께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산재상담소가 '일회용'이 아니라 '산별노조 건설운동의 첫걸음'이 되게 하는 것도 바로 현장조직운동의 이와 같은 앞선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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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4 07:54 2005/02/14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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