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민투위신문 <노동자의 길> 칼럼 원고.
얼마 전 고려대학교 3학년 김예슬 학생이 자퇴를 선언했다. 그가 쓴 대자보가 화제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더 많이 쌓기만 하다가 내 삶이 시들어 버리기 전에.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는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김예슬은 쓸모 있는 상품이 되기 위해 끝없이 경쟁에 내몰려야 하는 삶은 ‘인간의 길’이 아니라며 “대기업에 인간제품을 조달하는 하청업체”로 전락한 대학을 거부했다.
“25년 동안 긴 트랙을 질주해왔다. 친구들을 넘어뜨린 것을 기뻐하면서. 나를 앞질러 가는 친구들에 불안해하면서. 그렇게 ‘명문대 입학’이라는 첫 관문을 통과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더 거세게 채찍질 해봐도 다리 힘이 빠지고 심장이 뛰지 않는다. 지금 나는 멈춰 서서 이 트랙을 바라보고 있다. 저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취업’이라는 두 번째 관문을 통과시켜 줄 자격증 꾸러미가 보인다. 다시 새로운 자격증을 향한 경쟁 질주가 시작될 것이다. 이제야 나는 알아차렸다. 내가 달리고 있는 곳이 끝이 없는 트랙임을.”
경쟁 질주에서 이긴 소수의 ‘승자’도 있다. 이들에겐 부와 권력, 명예, 심지어 상상을 초월한 사치와 향락까지 주어진다. 사람들이 기를 쓰고 경쟁에서 이기려는 까닭이 여기 있다. 하지만 김용철 변호사가 쓴 <삼성을 생각한다>(사회평론)를 보면 ‘승자들이 사는 법’이란 것도 씁쓸하기 그지없다. 삼성 이건희 전 회장은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백혈병으로 죽어가며 벌어들인 막대한 이윤으로 수조원의 비자금을 만들었다. 이 ‘검은 돈’은 검찰 등 법조계와 고위 행정관료, 정치인들에게 뿌려졌다. 김용철 변호사는 지난해 5월 대법원이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 발행 사건에 대해 이건희 전 회장에게 무죄를 확정한 배경에 법조계에 뿌려진 ‘삼성 장학금’과 ‘떡값’이 놓여 있다고 고발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말 이 전 회장을 단독 특별사면했다. 이 나라에서 경쟁에 이긴 사람들, 검사와 법관, 고위 행정관료, 대기업 임원, 국회의원, 심지어 대통령까지도 재벌이라는 절대권력 앞에서는 비자금으로 사들인 ‘쓸모 있는 상품’에 지나지 않는다. 법도, 정의도, 자신이 추구해온 가치와 영혼까지도 재벌의 이익 앞에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대한민국에서 ‘성공’한 소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성공을 지키고 더 높은 지위에 오르기 위해서는 무소불위의 권력인 재벌 총수에 절대 복종하고 충성해야 한다.
자, 이렇게 사는 게 성공이고 행복일까? 60억원 가량의 주식을 갖고 있고 연봉만 10억원 안팎인 것으로 알려진 삼성전자 이 아무개 부사장이 지난 1월 “회사 때문에 힘들다”며 아파트 24층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건 또 어떻게 봐야 할까?
김예슬은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경쟁’ 논리에 대해 의문을 던졌다. “왜 우리는 이기기 위한 경주에 삶을 낭비해야 하는가?”
유명한 경영 지도자 에드워드 데밍은 경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부당하고 파괴적이다. 이러한 어리석은 짓은 그만둬야 하다. 공동의 문제에 대해선 협력해야 하며, 인센티브나 보너스는 팀워크에 해로울 뿐이다. 공부에서든, 다른 무엇이든 우리의 즐거움을 빼앗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1등이 되고자 애쓰는 것이다.”(<경쟁에 반대한다>(산눈)에서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