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기

분리된 생산자와 생산수단을 합치려는 사상, 사회주의다.

오늘 노동자가 앞장서고,

노동자를 앞세우는 것보다 더 진보적인 행위가 있을까?

그 노동자가 설혹 계급사회를 찬양하더라도.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거미는 줄을 치며 늑대는 굴을 판다.

오직 노동자의 의지만이 사회주의 역사를 만든다.

 

그렇다면 맨 앞줄, 그래 바로 당신! 너는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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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9 10:36 2010/09/09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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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자유로운 템포 | 2010/09/09 12:54 | DEL
[양한승] 뒷줄의 질문이라는 글을 읽고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분명 한걸음님은 양한승님이 쓴 글을 읽고 글을 쓰신 것 같은데 양한승님이 쓴 원문은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도대체 이 글이 누구의 생각인지 불분명한데, 맨 첫줄에 분리된 생산자와 생산수단을 합치려는 사상(이) 사회주의라고 적어놓았다. 이것이 누구의 생각이건, 생각해볼 문제다. 먼저 첫번째 질문은 자본주의 국가에서 생산자와 생산수단이 분리되어 있는가이다. 사실 생산자라는 말은 애매한데 ...
한걸음 2010/09/09 14:39 URL EDIT REPLY
출처는 http://ngoking.blog.me/80114947189 입니다.
거기서 양한승님과 직접 대화하시면 될 것 같고요, 자본주의가 신분예속으로부터 자유롭고 생산수단으로부터 자유로운 노동자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는 걸 부정하는 건 아니실테고, 생산자와 노동자를 구분해 써야 한다는 거라면 양한승님께 직접 물어보시길.
치치 2010/09/10 11:22 URL EDIT REPLY
아.. 고맙습니다. 양한승님 블로그에 가서 대화를 나누기가 멋적네요. 아마 양한승님은 한걸음님 말씀대로 생산수단이 박탈된 노동자의 상태를 극복하는 것이 사회주의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사회주의의 정의처럼 사용한 문장을 그런 식으로 표현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을 것 같네요. 저는 어제 님의 글을 보고 정신이 아득해서 "분리된 생산자와 생산수단을 합치려는 사상이 사회주의, 사회주의" 하면서 계속 돌아다녔어요. 물론 제가 쓴 글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보통 우리는 자본가들이 하는 일을 생산이라고 하지 않으니까요. 경영이라든지 하는 다른 말로 표현하죠. 그래서 제가 쓴 글은 다른 분들의 교정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회주의가 생산관계의 이행만을 뜻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사회관계들이 생산관계에서 생겨난 결과들이고 생산관계가 바뀌면 다른 관계들도 바뀐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아마 한걸음님도 제 의견에 동의하실거라고 생각합니다.
치치 2010/09/10 11:49 URL EDIT REPLY
게다가 양한승님의 글은 전반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 오직 노동자의 의지만이 사회주의 역사를 만든다고 했는데, 인간이 역사의 주체라는건 부르주아 역사관이고(이어서 문제가 아니라 거짓이죠) 오히려 인간은 역사의 산물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합한 표현이죠. 그럼 무엇이 역사를 만드냐고 한다면 고전적인 대답은 피말리는 계급투쟁이겠지만 이 계급투쟁도 주체의 역량만 가지고 가능한 것이 아니라 객관적 조건이 있어야하죠. 얼마전에도 제가 트위터는 세상을 바꿀 것인가라는 논쟁에 잠깐 참여해서 김규항씨 견해에 반론을 제기한 적이 있는데, 그 논쟁과도 관련해서 얘기하자면 전세계적으로 오히려 학생운동이 훨씬 더 급진적이고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고 훨씬 더 전투적으로 싸우죠. 하지만 학생들이 변혁의 주체가 되기엔 그들이 갖고 있는 조건이 문제가 되죠. 그래서 노동계급이 개입하지 않으면, 학생들이 영웅적으로 싸우면 싸울수록 박사발이 나는 경우가 많죠. 68혁명 당시에도 프랑스에는 노동계급의 지원으로 드골을 퇴진시켰지만, 독일에서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고립되었고 그 결과가 적군파죠.
plus 2010/09/10 18:08 URL EDIT REPLY
'분리된 생산수단과 생산자를 합치려는 사상, 사회주의'라는 양한승님의 함축된 표현이 여러 논쟁을 불러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직 노동자의 의지만이 사회주의를 만든다'는 대목도 마찬가지고요. 풍부한 논쟁이 되려면 역시 양한승님과 직접 토론하는 게 더 좋을 듯합니다.
한편으로 저는 생산관계와 역사의 주체에 대한 치치님의 의견에 선뜻 동의하기 힘든데요. 생산관계'만' 바뀐다고 사회주의가 되는 건 아니라는 거야 당근일테고, 주체역량만 갖고 역사를 만들 수 없다는 것도 맞는 말이지만 인간이 역사의 주체라는 건 부르주아 역사관이고 거짓이라는 말은 잘 이해가 안 갑니다.
제가 양한승님의 글을 옮긴 이유는 오히려 이 글에 표현된 대중관에 공감하기 때문인데요. 저는 진정한 '전위'라는 게 대중의 바깥에서 대중을 계몽하는 게 아니라 대중의 선진적 일부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근데 양한승님은 선진적 일부라 하더라도 대중의 앞줄이 아니라 오히려 뒷줄에서 대중 스스로의 창조력(이게 역사를 발전시키는 힘이라고 믿습니다)을 촉진시키는 활동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것이 대중의 꼬리에서 대중을 좇아가는 추수주의는 아니겠죠. 암튼 저는 그렇게 읽었단 얘기고요. 사회주의와 역사관에 대한 치치님의 얘기들은 더 듣고 싶습니다.
치치 2010/09/10 19:07 URL EDIT REPLY
"인간이 역사의 주체라는 건 부르주아 역사관이고 거짓"이라는 말이 잘 이해가 안 가신다고하신건 혹시 노동자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구호나, 혁명이 일어나면 혁명의 주체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하지만 저는 인간이 역사의 주체란 말에서 인간 대신 노동자나 계급을 쓴다고 해서 그것이 유물론적 역사관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봉건적 생산양식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으로 이행했을 때 그 역사의 동력이 무엇이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부르주아지라는 새로운 계급은 어떻게 출현했는가, 부르주아지가 지배계급이 되도록 가능하게 했던 조건은 무엇이었는가. 하지만 이 동력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계급투쟁이죠. 이 계급투쟁 속에서 부르주아지들은 봉건체제를 완전히 타도한거죠. 만약에 노동자나 노동계급이 역사의 주체라고 하게되면 역사를 만드는 수많은 결정적인 요인들이 다 삭제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