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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울교협통신] 51호 97.1.31

 

총파업의 성과와 목표

1. 노동법 개악의 성격

  1980년대 이후 세계적 수준에서 나타나고 있는 지배세력들의 새로운 반격인 신자유주의(신보수주의)공세다. 노동법 개악의 본질은 세계자본주의 체제에 편입하기 위한 자본의 국제경제력 강화를 이루기 위한 법적 제도적 정비다.

  "신자유주의는 사회적 관계의 총체를 최대한 시장경제적관계로 개편하거나 시장경제적 관계에 종속시킴으로써 자본운동의 자유를 극대화하려는 자유주의의 세로운 조류다. 영국의 새처리즘, 미국의 레이거니즘 등으로 대표되는 이 신자유주의는 탈규제화, 자유화, 민영화, 유연화, 개방화 등을 추진하면서 노동에 대한 공격을 그 핵심적인 내용으로 하고 있다."(김세균 - 민주주의, 신자유주의 그리고 노동자 총파업투쟁 7p에서 인용)

 

2. 총파업투쟁의 성과와 한계

2-1. 성과

  첫째, 민주노총은 이번 투쟁으로 합법화를 뛰어넘는 지위를 얻어냈고 노동조합운동의 대표성을 획득했다.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어용노총에 반대하는 비합 소수파운동으로 출발한 민주노조운동은 민주노총을 결성함으로써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다수파로 전환될 계기를 마련했으며 이번 총파업투쟁으로 그 확실한 전기를 마련했다. 박인상은 몰라도 민주노총과 권영길을 모르는 국민은 없을 정도로 민주노총은 대중적 합법성과 대표성을 쟁취해냈다.

  둘째, 한국노총 산하 노동조합들의 한국노총 탈퇴와 민주노총 가입이 늘고 있다. 한국은행, 수출입은행, 신한은행, 전국상호신용금고, 한국감정원 등 38개 금융기관 노조와 유관기관 노조는 1월 17일, 14-15일 총파업에 불참한 한국노총 금융노련을 탈퇴하고 별도의 협의체를 구성하여 민주노총 가입을 추진하기로 잠정합의했다. 부천의 경원세기 노조, 울산의 LG화학 노조와 동양나일론 노조, 인천의 영창악기 노조가 노총을 탈퇴했거나 탈퇴하여 민주노총에 가입하기로 했다.

  셋째, 이번 총파업투쟁은 이름만 있고 활동이 없던 '휴면노조'들을 정상화시키고 있으며 단위 노동조합의 조직력을 회복시키고 있다. 안산의 이나베어링을 비롯해 1백여개로 추정되는 휴면노조 가운데도 상당수가 이번 투쟁으로 정상화의 길에 들어섰다. 울산의 고려화학 노조는 유니온숍이 아닌 상태에서 50여명이 새로 조합에 가입하는 개가를 올렸다. 병원노련 소속 단위노조들의 경우에도 조합원이 늘어나는 경우가 많아졌다.

  넷째, 미조직 노동자들이 이번 투쟁으로 노동조합 결성의 필요성을 자각하기 시작했고 자신감을 갖게 됐다. 한국노총 산하 지역상담소에서는 작년 12월 이후 노조 결성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경기 안양상담소엔 지난 해 12월 이후 지금까지 38건이 몰려 평소의 거의 4배에 이르는 노조 결성 문의가 잇따르고 있고 수원상담소와 경북 구미상담소에도 하루 평균 10여통의 전화가 걸려오는데 300인 미만의 제조업 중소사업체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창원의 경남태양열 등 전국적으로 20여군데 사업장에서 노조를 결성했다. 신규노조 중에서 민주노총으로 가입하는 노조들도 생기고 있는데 광주의 광남일보, 불교방송 등이 그러한 경우다.

  마지막으로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계급이 국민들 사이에서 새로운 사회세력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3김을 누른 권영길'이라는 주간신문의 표제에서 보듯 이번 총파업투쟁에서 여야 할 것 없이 제도권 정치가 제 할 일을 못찾고 헤매는 동안에 민주노총은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과 힘을 보여줬다. 국민들은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조직된 노동자계급을 우리 사회에서 가장 조직적이고 힘있는 세력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민주노총은 그만큼 보수정당들의 거짓 정치를 투쟁으로 제압하고 청와대와 직접 '정치'를 했던 것이다.

2-2. 한계

  첫째, 한국사회의 사회세력으로 등장했으나 제도권(부르조아) 정치를 압도하지 못했다. 지난해 12월 26일부터 올해 1월 중순까지 정국을 주도했던 세력은 민주노총이었다. 그러나 이 '정치'는 이제 겨우 싹을 틔웠을 뿐이고 풍부한 가능성만을 보여줬을 뿐이다. 민주노총 투본 대표자회의가 17일 제도정치권으로 공을 넘겨 수요파업으로 전환한 것, 나아가 2월 총력투쟁을 위해 수요파업을 유보한 것은 노동자 정치의 '싹'을 좀더 키울 수 있는 길을 너무 빨리 막아버린 게 아닌가 하는 점에서 매우 아쉽다. '노동자계급의 조직적 정치적 독립'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둘째, 국가경쟁력 이데올르기를 극복하지 못했다. 자본과 노동시장이 세계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국가 경쟁력 강화론을 노동조합이 수용한다면 노동자의 이익을 일관되고 철저하게 대변해 나갈 수 없다. 그러나 이번 총파업과정에서 자본의 무한경쟁 시대에 대응하는 '국가경쟁력강화론'이 갖는 허구성을 돌파해 내지 못했다. 이는 세번째 투쟁전술의 오류로 연결된다.

  세째, 민주노총의 투쟁전술의 오류도 지적되야 한다. 첫번째로 민주노총의 운동론에 대한 문제다. 민주노총은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을 주창해왔다.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은 이번 총파업과정에서 노동자대중의 분노를 조직하기 보다는 억눌렀다. 전면적 가두항쟁으로 발전시켜 민주주의의 내용을 심화 확대시킬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두번째로 현장의 목소리를 조직하지 못했고, 지역투본 또한 '따로국밥'이었다. 노동법 개악의 독소조항을 전면적으로 부각시키지 못하고 '민주노총 합법화'와 '정리해고'만 부각되었다. 아래로부터 현장권력을 무력화시키내는 독소조항을 부각시키지 못했다. 이는 민주노총의 토대를 취약하게 만들 것이며, 조합원 대중의 요구와 투쟁으로 산별노조가 건설되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의 만들어 질 위험성이 있다. 또한 지역투본은 집회만 여는데 그쳤다. 조합원들의 의견을 모아내는 사업은 눈을 씻고 보아도 없었다. 총파업 정국에서 조합원대중은 투쟁의 주체로 세우려는 노력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의사결정과정과 집행과정에서의 비민주성이다. 총파업을 전후해서 민주노총의 의사결정과정에서 투명성은 실종되었다. 중앙위에서 논의해서 결정되지 않으면 위원장에게 위임하는 형식이 되었고, 이후에도 중앙위는 계속 위원장에게 위임한다. 87년이후 민주노조운동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민주노총의 이런 형태는 대단히 잘 못되었다. 회의체계를 통한 결정은 민주노조운동의 기본이다.

3. 총파업투쟁의 목표

첫째, 노동법, 안기부법 개악 완전 무효화

  이 목표는 지금도 여전히 우리의 최소한의 목표다. 1월 20일 여야 영수회담에서 민주노총 합법화와 민주노총 지도부에 대한 영장 집행 유보, 국회 재논의로 입들을 맞춘 모양이지만 이 걸로는 어림없다. 국회에서 시행령을 좀더 유리하게 만드는 정도로 그치거나 노개위 공익안 수준에서 재개정하자는 따위도 우리의 목표가 될 수 없다. 정리해고에 대한 불안감으로 1월 들어 간호사 한명과 현대중공업 조합원 한명이 자살했으며 창원 대원강업 이영식 조합원과 울산 현대자동차 정재성 소위원이 분신하는 등 대중적 불안감과 고통은 극단으로 표출되고 있다. 정리해고, 변형근로시간제, 비공인파업 금지,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해고자의 조합원 자격 인정기간 축소, 직권조인 합법화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악법 조항들의 완전 철폐만이 우리가 수긍할 수 있는 최소치의 목표들이다.

둘째, 금속산업 노조 대통합 추동

  어용노총하고도 연대파업을 하는 마당에 이제 더 이상 금속산업 노동조합들끼리 현총련이다 자동차연맹이다 금속연맹이다 찢어져 있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 이번 투쟁의 선봉에 섰던 자동차연맹과 현총련이 그간 투쟁의 선봉에 서면서 집중 탄압을 받아 조직력이 많이 훼손된 상태에서도 적극적으로 투쟁대오에 결합했던 금속연맹과 더불어 빠른 시일 안에 통합금속 단일연맹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25만 통합금속연맹의 출범이야말로 이번 총파업투쟁의 최대의 조직적 성과로 기록되어야 한다.

셋째, 노동자 정치세력화.

  '대선 때 심판하자'는 구호는 모호하다. 신한국당 후보를 표로 심판하자는 얘길텐데 그럼 누굴 지지하자는거냐 했을 때 수평적 정권교체니 또는 당선가능한 야당 후보 지지니 하면서 또다시 노동자를 비주체적 표거수기로 내몰거나 혼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많다. 따라서 이 구호는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입장에서 주체적으로 더 구체화되어야 한다. 지금은 노동자들의 정치적 감수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때이다. 민주노총 지도부가 제도정치권으로 공을 너무 일찍 넘겨버린 점은 아쉽지만 대중적으로 확인된 노동자의 독자적 정치세력화에 대한 열망을 발전시켜내는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노동자 정치조직 건설을 위한 구체적인 준비와 실천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일은 민주노총 지도부뿐만 아니라 변혁적 노동운동진영 전체와 진보적 지식인, 특히 선진노동자들이 앞장서서 실천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산별노조를 건설하는 일이 장기간의 집요한 실천과 투쟁을 요구하듯 노동자 정치조직 건설 또한 더 오랜 기간의 집요한 투쟁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려서는 안된다. 자칫 대선 때 후보를 내고 다음 총선 때 노동자후보를 많이 내는 것만으로, 노동자가 제도정치권에 많이 진입하는 것만으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협소화시켜 이해하게 되면 보수정치와 구분되는 노동자정치의 대의와 원칙이 실종되게 된다. 만약에 이번 투쟁에서 제대로 된 노동자 정치조직이 있었다면 우리는 이 투쟁의 마지막까지 보수정치권에 공을 넘기지 않고 우리 식대로 승리를 얻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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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4 10:07 2005/02/14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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