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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울교협통신] 55호 97.3.7

 

스타렉스(starex)와 노동강도

  현대자동차 상용4공장 그레이스부의 UPH(시간당 생산대수) 협상이 한창이다. 그레이스부에서는 지난 1월말 쯤 UPH 협상을 벌여 콘베어 속도를 23UPH에서 30UPH로 올리는 것에 합의했다. 그런데 회사가 새 차(스타렉스)를 '투입'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상용4공장 대의원들에 따르면 문제가 한 두가지가 아니다. 공장 설비 능력에 견주어 무리하게 생산량을 늘리려니까, 게다가 충분한 검토 없이 그레이스와 스타렉스를 복합 라인으로 만들면서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공정 폭이 좁다거나, 새 차 투입에 따른 작업 분배가 균형 있게 되지 않는다거나, 작업 시간이 초과되면서 뒷 공정과 작업 간섭이 생긴다거나, 통로가 비좁아 자재 옮기기가 어렵다거나, 공법에 대한 작업자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 않아서 불량과 혼선이 생긴다거나, 사고자 대치 인원이 모자란다거나 하여 안전사고 위험이 크고 노동강도가 강화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조립 불량이 생겨도 그냥 흘려 보내라고 독촉하는 '관리' 아래서 작업자들의 불만이 크다는 얘기다. "이렇게 준비 안된 공장에서 어떻게 생산을 하느냐!"는 승용2공장 전입자의 말은 그만큼 조합원들의 불만이 엄청나게 쌓여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상용4공장 대의원들에 따르면, 문제는 회사가 생기본부에서 만들어내는 '계획 M/H(맨 아워)' 그대로 작업분배표를 만들어 새 차를 투입한 데서 비롯되었다 한다. 상용4공장 그레이스부는 지금껏 이른바 '소상(소형 상용) M/H'가 관행이었는데 전공장 표준표를 가지고 '들이 미니까' 피부로 와닿는 노동강도가 엄청나게 세졌다는 얘기다.

  대의원들은 처음에 이런 문제점들을 들어 스타렉스 M/H 협상이 끝날 때까지 새 차를 시간당 두 대 꼴로 투입할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요구가 거부되면서 2월 25일 상용4공장 그레이스부 의장과 주간조 조합원 500여명은 전체 집회를 열어 대의원들로부터 경과를 보고 받고 이 날부터 28일까지 '자발적' 잔업 거부에 들어갔다. 몇몇 반장들을 빼고는 거의 전 조합원이 이 자발적 잔업 거부에 동참했다.

  3월 4일부터 회사는 이른바 'time-check'를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라인이 안정화되려면 한참 걸릴 것 같다는 게 많은 조합원들의 생각이라고 한다. 생산 효율이 50%를 못넘고 있는 상태에서, 그리고 직행률이 거의 0인 상태에서, 게다가 한 차당 불량 건수가 30개를 넘는 상황인데도 회사는 3월 3일 신차 발표회를 가졌다. 예약 주문만도 이미 1,000여대가 밀려 있다고 한다. 부사장이 사업부에 직접 상황실을 차려놓고 상주할 만도 하지 싶다.

  협상과 투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 주문량에 못미치는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작업자들의 고통 쯤은 아랑곳 하지 않고 밀어 붙이려는 자본의 시도는 현장 조합원들의 자발적 투쟁에 부딪혀 주춤거릴 수밖에 없었지만, 내수 시장을 둘러싼 한국 완성차 자본 사이의 치열한 경쟁은 콘베어 속도를 더 높일 것이고 그만큼 더 노동강도를 강화시킬 게 틀림 없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95년 "양봉수의 피를 먹고" 태어난 마르샤를 떠올리게 된다. 스타렉스를 둘러싼 이 투쟁이 또 다른 양봉수의 피를 요구할 지는 오로지 상용4공장 조합원들과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전체 조합원의 단결력에 달려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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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4 10:09 2005/02/14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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