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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울교협통신] 56호 97.3.14

 

문민 황태자의 세도

  어수선하다. 총파업 뒤 끝에 한보가 난리를 치더니, 황장엽 노동당 비서 망명에, 듣기만 해도 소름이 확 돋는 '10만 간첩설'로 웬 때 아닌 '공안 바람'인가 싶다가, 불쑥 그 놈의 '경제 위기론'까지 기승을 부리는 통에 정신을 못차리던 판인데, 그동안 입방아만 요란했던 이른바 '김현철 의혹'이라는 게 불거져 나오면서는 맨정신으로 세상 굴러가는 꼴 가늠하기가 더더욱 어려워졌다.

  생긴 것부터가 제 아버지를 빼다 박은 김현철은 '소통령(小統領)'이라는 소리를 들을만큼 권력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안기부의 과장한테서 1급 정보들을 보고받고, 젊은 재벌들과 어울리면서 뭉칫돈을 주무르고, 잘 나가는 굵직굵직한 '자리'에 사람들 앉히는 일까지 끼어들었다니, '황태자의 세도' 치고는 지나쳐도 한참 지나친 셈이다.

  어찌 됐든 태어나길 잘 태어나야 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재벌 총수의 아들이 당연하다는 듯 그 재벌의 총수가 되는 세상, 회사 들어온지 10년도 채 안된 30대 중반의 '직원'이 회장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다가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정해졌던 것처럼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는 기업의 우두머리가 되는 세상, 북한은 권력을 세습하는 봉건왕조라고 목청을 돋구어 비난하는 사람들이 재벌의 부와 권력이 '세습'되는 이 나라의 경제 질서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입을 대지 못하는 세상.

  이런 세상에서 대통령 아들이 '좀' 튀었기로서니 그게 무슨 큰 흠이 될까 싶기도 하지만, 도가 지나쳤던지, 그렇게도 고개가 뻣뻣하던 아버지는 아들 때문에 국민들 앞에 고개를 숙여야 했고, 그 아들은 국회 청문회에서 '수모'를 겪어야 하는, 게다가 아차 수 틀리면 쇠고랑을 차야 하는 처지로 내몰렸다. 더구나 두 군데 보궐선거에서 이른바 DJP 쪽이 크게 이기는 바람에 대선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워진 임기 말년의 아버지로서는 눈물을 머금고라도 이 골치 아픈 '아들 문제'를 '처리'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YS는 이 '처리'를 새로 뽑은 이회창 신한국당 대표에게 맡겼다. 역사에 길이 기록될 노동법과 안기부법의 '날치기' 현장에 함께 했던 이 '대쪽'이, 구린 내 나는 곳마다 안 낀 데가 없달만큼 얽히고 설켜 있는 '김현철 보따리'를 자기가 좋아하는 말마따나 "법대로" 남김 없이 풀어 헤치리라 생각하는 '순진'한 백성들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어수선한 세상 일을 어찌 알겠는가? 육해공에서 잇달아 터진 대형 참사와 이른바 '개혁 드라이브'의 후퇴로 95년 지자체선거에서 참패했던 YS는 노태우, 전두환 전대통령을 구속시키는 '강수'로 96년 총선에서 압승했는데, 이 때 자기 아들을 구속시킬 생각까지 했다 하니 이번에도 또 다른 '깜짝수'를 낼지 모를 일이다. YS가 이대로 '정면 돌파'를 할 작정이라면 그건 이번 대선이 문민정부의 개혁을 이어가는 이회창(?) 개혁연합 대 DJP 보수연합의 대결로 치러질 공산이 그만큼 커진다는 걸 뜻한다.

  황태자의 세도를 엿볼 수 있는 '증거'(주1) 몇 토막으로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올해 끄트머리 대선에 대해 어수선한 생각들을 정리해 보자.

  "여보세요. 접니다. 다른 일 없으시죠. 다름이 아니고 YTN(연합텔레비전뉴스) 말여요. 그 며칠전부터 엉뚱한 소리가 나와가지고…."

  "그래서 말여요. 참 기가 막힌 게 말여요. 사실은 김우석 장관이 이런저런 자리에서 우리가 얘기를 했었잖아요. 본인이 YTN 개국을 생각을 좀 했나봐요. 그 얘기를 내가 듣고 우리 정무수석과 상의를 했단 말여요. 그 관심을 갖는 것 같은데…."

  "그 이전부터 현소환 사장(연합통신 사장, 당시 YTN 사장 겸임 예정이었음)에 대해 좋지 못한 것이 집중적으로 올라오는 거여요. 그때서부터 저는 알고 있었단 말이죠. 현 사장에 대해 잘 알지만…. 그 옛날엔 우리하고 좀 문제가 많잖아요. 정서적으로도요. 솔직히 아버님(김영삼 대통령)도 좋지 않게 과거부터 생각해오고 있었는데…. 그 옛날엔 우리하고 좀 문제가 많았잖아요. 정서적으로도요. 솔직히 아버님(김영삼 대통령)도 좋지 않게 과거부터 생각해오고 있었는데…. 어떻든 우리가 힘이 필요하니까 같이 해왔었던 것 아녀요. 그런데 최근 들어 무척 좋지 않더라고요. 그 안에(연합통신 내부에) 여러가지 얘기들도 있고요. 박관용 특보 얘기도 나와요. 아들 간 것도 그렇고…(당시 박관용 대통령 정치담당 특보의 아들이 YTN 기자로 입사). 그뿐만 아니라 아주 좋지 않은 것이 맣이 올라오더라고요. 장인어른(김현철씨의 장인인 김웅세 롯데월드 사장 지칭) 얘기도 나오고 해서 걱정이 돼 가지고요."

  "그래서 정무수석하고 얘기 좀 하다가 차제에 김우석 장관도 관심을 갖는다니까…. 연통(연합통신)하고 YTN하고 어차피 분리되니까 상황 봐가며 교체를 한번 해보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며칠 전에 얘기했단 말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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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1)인터넷한겨레(http://news.hani.co.kr), '박경식씨가 공개한 현철씨 통화 육성', "김현철씨의 전화통화 테이프는 지난 95년 3월 개국한 뉴스전문 케이블방송인 '연합텔레비전뉴스'(YTN) 초대사장으로 민주계인 김우석 전건설장관을 앉히기 위해 김씨가 당시 청와대 이원종 정무수석과 은밀히 추진해온 일이 외부에 알려지자 한 인사에게 전화를 걸어 유출경위를 확인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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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4 10:10 2005/02/14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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