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리울러들의 수다"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미디어캠프...
(4개의 주제별 수다방 운영) 수다 -> 글쓰기(수다방 사람들과 함께 한 이틀 간의 주구장창 글다듬기)
-> 책 만들기 -> 그리고 그리고 하이라이트~ 낭독으로 마무리된 2박 3일.
아! 낭독~ 참 근사하고, 행복했다.
무엇보다 "아... 나 정말 너무 너무 멋진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구나..." 라는 느낌.
정말 벅차고 행복했다는...
캠프에서 진행된 작업 결과물들 정리 중~
그 중에서도 우선 낭독 촬영본 파일 정리 중인데... 그날의 이야기들, 공유할 수 있는 방법으로
진보블로그 라디오 파드캐스팅을 활용할 수 있을지 우선 내 낭독 파일로 테스트~
* 원본은 wmv 파일인데 진보넷 블로그에 업로드 하기에는 용량이 넘 크고...
흠흠 mp3로 바꾸는 방법을 써야하는 걸까?
우선은 태그스토리에 avi로 올려서 이곳에 퍼오는 방식으로 1차 테스트~
* 수다방별로 진행된 수다들도 모두 녹음되었는데 흠흠 기본이 2시간 이상이니...
용량상의 문제로 다음세대재단의 소리 아카이브를 이용하는 방법도 고려~
노리울러들의 수다> 음식남녀방
혜린
제목/ 아빠의 라면
“삐리리리릭~ 삐리리리릭~”
“아... 음... 아....4시네”
아빠가 일 나가시기 위해 맞춰 놓은 자명종 소리다. 이어서 부엌에서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슬쩍 잠이 깼지만 바로 다시 잠을 청한다.
“일어나세요! 일어나세요! 아침이에요! 일어나세요!”
내 자명종 소리. 6시다. 애들 잡기로 유명한 우리 고등학교 등교 시간은 6시 40분. 언제나 그렇듯 지각을 간신히 면할 아슬아슬한 시간에 일어난 나는 어제 입은 상태에서 몸만 빠져 나온 교복에 다시 몸을 집어넣고 가방을 챙겨 방을 나온다. 오늘도 세수는 학교 가서 해야 할 것 같다. 도시락을 챙기며 슬낏 본 싱크대에는 국물 한 수저 남지 않게 깨끗이 비워진 라면 냄비가 있다.
내가 대학을 다닐 때까지 우리 아빠는 공사 현장에 스티로폼을 날라주는 화물트럭 운전을 하셨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쯤 자기 소유의 트럭이 있어야 일감 따기도 좋고, 같은 일을 해도 벌이도 나아 우리집은 빚을 내 중고 트럭을 샀다. 덕분에 벌이는 나아졌지만 이 녀석이 중고 티 내느라 그러는지 고장이 잦아 빚 갚으랴, 수리하랴 들어가는 돈이 만만찮았다. 당시 아빠는 하루 2~3시간 정도만 주무시고 일을 하셨다. 화물 트럭 운전일이라는 게 겨울이나 건설경기가 안 좋을 때면 일거리가 떨어지기 때문에 일이 있을 때 악착같이 하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렇게 하루에 몇 탕을 뛰느냐가 바로 수입으로 이어지고 그러다보니 아빠의 식사는 짬 날 때, 최대한 빨리 해결하는 식이셨다. 그럴 때 라면은 어디서나 짧은 시간에 싸고 빠르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메뉴였을 것이다.
애들 잡기로 유명한, 재단비리로도 유명한 지긋지긋하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했다. 청주에서의 자취생활 시작. 싸고 간편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라면은 자취생에게는 최고의 식량이다. 하지만 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거의 라면을 먹지 않았다. 소면을 사다 먹으면 먹었지 왠지 라면을 끼니로 먹는 건 생활을 엉망으로 하는, 나 자신에 대해 되게 예의 없는 짓을 하는 듯한 느낌이랄까. 잠도 양껏 못 주무시면서 끼니의 대부분을 라면으로 떼우던 아빠의 이미지 때문이었는지 하여튼 라면은 나에게 유쾌하지 못한 기억과 냄새와 느낌의 음식이었다.
졸업을 한 학기 남기고 휴학을 결정한 후 이런 저런 아르바이트로 정신없이 바쁘던 어느 날. 새벽에 전화가 왔다.
“네, 이혜린입니다”
“혜린아.... 으으으으윽.... 윽윽...”
엄마였다.
“지금 응급차 안이야. 너네 아빠 죽을지도 모른데”
심근경색이었다. 엄마 말씀으로는 자고 있는데 기척이 이상해서 보니 아빠가 베개와 이불이 흠뻑 젖을 정도로 땀을 흘리면서 가슴을 쥐어 잡고 계시더란다. 바로 119에 전화를 하고, 가까운 병원으로 갔더니 그곳에서는 수술이 어렵다며 서울로 올라가라고 했단다. 삼성의료원으로 가는 응급차 안에서 엄마는 전화를 하셨던 거였다. 전화 통화를 마치고 나니 3시 30분. 버스도 없는 시간, 택시를 타자니 돈이 안 되고, 서울 올라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어 결국 아는 사람에게 부탁해 그 분의 차로 응급실 도착. 싸늘한 분주함. 응급실의 첫 느낌이었다. 아빠가 누워 계시는 침대로 갔다. 말문이 막혀 그냥 아빠 손을 덥석 잡았는데 그 손의 싸늘한 기운은 아직도 생생하다.
“미안하다. 미안해서 어떻하니. 어떻하니. 해 준 것도 없는데... 넌 혼자 컸는데... 해 준 것도 없는데... 미안하다... 병원비는... 미안하다”
아빠가 입원해 계시는 동안 일을 하시는 엄마 대신 내가 병실을 지켰었다. 생사의 고비를 넘기기를 몇 번. 힘든 수술과 치료 기간을 거치면서도 아빠는 내내 돈 걱정 뿐이셨다. 다행히 수술이 잘 돼서 아빠는 퇴원하실 수 있었다. 물론 하시던 트럭 운전은 더 이상 무리였다. 병원비 때문에 트럭도 급매물로 서운한 가격에 남에게 넘겼다. 10년 같던 1년 간의 치료 기간. 아빠는 그 1년 동안 10년 이상 늙으셨다. 그리고 아빠는 더 이상 라면을 드시지 않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아빠가 슬금슬금 라면을 끓여 드시기 시작했다.
“하도 먹었더니 인이 박혀서 그런지 자꾸 생각나. 참느라 스트레스 받느니 먹는 게 건강에도 나을 거 같아”
대신 건강을 생각해 조리법을 바꾸셨단다. 일명 아빠식 라면. 우선 면은 맹물에 따로 끓이고 면만 건져 찬물에 헹궈내 기름기를 없앤다. 이 때쯤이면 면을 삶을 때 따로 불에 올려둔 다른 냄비 물이 끓기 시작한다. 여기에 마늘과 양파, 파 그리고 라면스프를 3/2 넣는다. 양파는 심장에 좋은 음식이기 때문에 넣고, 라면스프는 너무 짜기 때문에 정량 보다 적게 넣는 게 핵심. 이제 국물이 끓으면 따로 삶아 헹궈 둔 면을 넣고 다시 보글보글 끓여낸다. 이렇게 완성된 아빠식 라면. 라면 특유의 쨍하고 칼칼한 맛도 부족하고 이도 저도 아닌 맹맹함이 없지 않지만 괜찮다, 맛있다 말씀 드렸더니 요즘도 내가 집에 가면 가끔 끓여주시곤 한다.
또래만큼은 아니더라도 많이 건강해지신 아빠. 여전히 음식을 조절하시고, 마음도 편하게 가지시려고 노력하신다. 아빠가 그렇게 스스로를 챙기시고 보살피는 모습이 난 참 좋다. 아! 몇 년 전부터 난 라면을 끓여 먹는다. 물론 아빠식 라면으로다. 그리고 최근엔 아빠식 라면을 응용해 첨가물을 다양화한 혜린식 라면을 개발, 주위에 품평을 강요하기도 한다. 청양고추는 기본 멸치, 미역, 무, 북어채 등등 냉장고 사정에 따라 첨가 재료는 달라지지만 이렇게 만들어 먹으면 맘도 몸도 든든해지는 기분. 썩 괜찮다. 좀 더 주위의 평가를 들어보고 자신감이 생기면 집에 갔을 때 아빠에게 끓여드려야겠다.
난 생각없이 수시로 먹었는데....ㅎㅎ..
아이들과 너무너무 행복한 감응들이 있었던듯...부럽고.... 그렇네여....
아이들과의 행복한 마주침.....강건하세여....쭈우욱...ㅎㅎ
저기 덩치 큰人이 저라는
불씨-imitation/ 캠프 때 당신 생각 정말 많이 났다는 거! 보고 싶다 ^^
생각하기 싫은 pig/ 나도 낭독회 촬영본 캡쳐 하고, 편집하고, 출력하면서 듣고 또 듣고 또 들어도 다들...참 찡하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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