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을 가족들과 보내고, 여동생과 함께 청주에 내려왔다.

5살 아래인 동생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바로 취업을 했고

이제까지 6년 가까이 생산직에서 2교대 혹은 3교대로 일을 했었는데,

최근 직장을 옮기기 위해 두 달 정도 쉬고 있다.

 

내가 대학 졸업 때까지 동생은 고등학생이었고,

우리집은 이러저러한 빚 때문에 지하방을 전전하며 봉지쌀을 사다 먹던 형편인 그 때,

엄마는 대전에서 돈을 버시고, 난 청주에서 학교를 다니고, 아빠와 동생 둘이 살던 안산집은

대놓고 득실거리는 바퀴벌레 떼와 찌든 때 퀴퀴한 냄새에 쩔어 있었고, 냉장고는  늘 텅 비어 있었다.

난 일 년에 서 너 번 집에 올라가서 궁색함으로 찌들은 집 청소를 하고, 

쌀이나 찬 거리 등을 채워 놓고는 후딱 다시 청주로 내려오곤 했다. 

청주에 내려올 때마다 미안함과 죄책감이 뒷통수를 당겼지만

막상 청주에 내려오고나면 집 안 사정은 잊고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후배들 술 사주기 바빴다.

 

어렸을 때부터 순하고 무난했던 성격에 동생은 그런 상황에서도

탈 없이 학교를 다녔고, 졸업하고 취업을 했다.

취업을 하고 몇 년 동안 우리 집 생활비는 동생 월급으로 충당이 됐었다.

나도 과외며 학원이며 이러저러한 아르바이트로 버는 돈의 일정 부분을 집에 보내곤 했지만

내 맘 편하기 위해 꼴랑 얼마 안 되는 돈을 집으로 보내는 거였지,

가족들과 함께 산다는 것 아니 집에 올라가는 것 자체가 나에겐 너무 불편한 일이었고

피하고 싶은 현실이었다. 그리고 늘 그렇게 아니 지금까지 피하고 있다.

 

택시운전에서부터 시작해서 트럭운전까지 평생 운전대를 잡으며 너무너무 열심히 사셨던 분이지만

일 이년에 한 번씩 큰 병치레를 하셔서 집을 휘청거리게 했던 아빠...

반복되는 가난과 가난이 주는 불안감에 신경질적이었던 엄마...

그리고 최대한 가족들과 자신의 삶을 분리시켜 놓고는 착한 척만 하는 언니...

 

엄마도 아빠도 그리고 나 조차 나름대로 삶에 허덕이면서 울상을 짓던 그 때,

사실 난 동생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지 못했고 알고 싶어하지도 않았다.

집에 올라갔을 때 밤 근무를 끝내고 들어와서 자고 있는 동생의 퉁퉁 부은 다리와

공장에서 사용하는 화학약품 때문에 벌겋게 부어오른 몸 구석구석의 흔적들을 보면서,

 "너 어떻게 사니?, 어떻게 살고 싶니?" 이런 말을 하기가 두려웠다.

잠깐 동생 얼굴 대할 때면 만화책 얘기, 연애인 얘기나 하면서 대충 키득거리고

난 부랴부랴 청주로 내려오기가 바빴다.

 

최근 우리집은 그 동안 그렇게 옴팡지게 가족을 붙잡고 있던 빚을 드디어 털어냈고,

여전히 넉넉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말 그대로 먹는 것, 입는 것은 걱정 안 해도 되는 형편이다.

아마도 내가 철들고 나서 가장 편안한 상황인 것 같다.

동생도 이제는 생산직 말고 월급은 적더라도 사무실에서 일할 수 있는 직장을 찾고 싶다고

새로운 일을 찾고 있는 중이다.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동생이 청주에 놀러왔고 일주일 정도 함께 지내고 있다.

물론, 일주일 중 3~4일은 내가 밖으로 돌기 때문에 그 간 제대로 같이 얼굴 보고

얘기할 짬이 없기도 했었지만... 사실 동생이랑 나눌 얘기가 뭐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지난 주, 다른 지역에서 미디어활동을 하는 후배, 같이 공부방에서 수업하는 후배들 고민 들으면서 나름 조언(?)이라고  "20대라는... 빛나는 시기에... 난 ... 너희들이... 삶의 시야를 넓힐 수 있는... 경험들과... 공부들...하길 바라고... 등등" 이런 얘기를 주절거렸었는데...

막상 집에 들어와서 동생과 함께 있으며 같이 밥 해 먹고, TV 보면서 키득거리긴 하지만

26살의 내 동생과는 어떻게 서로의 삶을 이해해야 할지, 어떤 대화를 나눠야 할지

사실 고민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자고 있는 동생을 보면서... 말을 걸어보자는 생각을 해 본다. 

아니 이제는 동생의 삶을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많이 늦었지만 그래서 어색하겠지만...

그래도 조금 더 서로를 알고, 서로 힘이 되고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그래야... 동생에게, 덜 미안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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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27 05:31 2007/02/27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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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2007/02/27 07:17
긴 호흡님의 [동생에게 말 걸기] 에 관련된 글. 아마 동생이 가장 힘들었을때가 중학생때였을 것 같아여. 놈이 우는 것도 그때 봤으니까......!! 누나가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고등학
from.  2007/02/27 15:52
긴 호흡님의 [동생에게 말 걸기] 에 관련된 글. 시스타와 나는 서로 사생활 관리를 안 하기(못하기 ?)때문에 치명적으로 가까운 편이다. (서로 매일 "가방 뒤지지마!"라고 하고 있는 걸
요한  | 2007/02/27 05:45
...언니들한테 어리광도 부리고 싶었을텐데...밀렸다고 생각한거 잘 해주세요...^^(...마음이 짠...하네요...ㅡ.ㅜ)
개토  | 2007/02/27 05:45
공감........최소한의 먹고 살 여유가 말을 걸 수 있는 힘을 만들어 준다는게 가슴 아파요...
긴 호흡  | 2007/03/03 00:32
요한/ 잘 하려고 해도 아직은 좀 어색하네요^^;;;; 헤헤
개토/ 말 걸기... 이제부터라도 노력하고 애쓰려구요!! 정말 마음에 여유 없이 살았던 것 같아요.. 특히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virus  | 2007/03/16 05:31
언니야, 나 26일 쯤 청주 내려가도 될까? ㅎㅎ 말걸어줘 ^^
긴 호흡  | 2007/03/16 21:14
오호~~~ 26일 좋지!!!! 좋아 좋아!!! 아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