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다녀간 후, 굉장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왜일까, 왜일까, 피하지 말고 생각해보자 그러자 생각 생각하다가 그래도 마음이 풀리지 않아 챙겨보던 드라마 마지막회를 보고 이제 새벽이다. 뭐, 덕분에 기분은 풀렸다. 일단 고맙다.

 

드라마는 그랬다. 별 기대 없이 시간 때울 요량으로 보기 시작했고, 캐릭터 하나에 꽂혀서 그 인물 중심으로 즐기다가 산으로 가는 이야기에 이게 뭐냐 투덜거리다가, 마침 캐릭터가 아닌 배우에(정확히는 배우의 미모에) 더 관심이 가서 그렇게 키들키들 놀며 보던 상황. 드라마의 주제인 가족 사연으로 막 눈물 뽑아내는 이야기와 사건들은 그리 와 닿지 않았고, 예쁜 아이들의 서툴지만 절절한 연애 이야기(안타깝고 애잔하길 바랬으나 결국 망해버림)도 산으로 가버린지 오래라 그냥 그러려니 하고 보던 중.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 재개발로 폐허가 된 공간들을 훑던 카메라가 20여 년 전, 지금은 중년이 된 아이들을 그 공간에 담았을 때 찡했다. 청춘, 추억 이런 것 보다는 수 십년의 일상을 담고 있던 공간이 비워지고 허물어진 그 이미지가, 그곳에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어떤 순간을 데려다 놓은 그 장면이 마음에 박혔다. 그 공간에서 해사하게 웃고 있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과거의 아이들은 그래서 참 슬퍼 보였다.

 

나는 나의 유년기, 10대, 20대가 그렇게 그립거나 애틋하지 않다. 불행했다, 고단했다 그런 거 보다는 내가 나를 대하는 게 서툴렀던 시기여서, 그 시기는 유난스럽게도 나라는 사람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가게 해야 할지 막막하고 당황스러웠던 순간들로 기억된다. 나이가 들면서 내가 나 자신을 더 편하게 받아들이게 되고 자연스러워진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에 나는 40대의 지금이 나쁘지 않다. 젊음이라는 게 건강함과 아름다움 이런 장점은 있지만 어리다는 건 그만큼 나를, 나와 관계한 타인을, 세상을, 그리고 닥치지 않은 미래의 시간을 이해하고 조율하는 데 어렵고 버거웠던 시간대라고 여겨진다. 그런 불안과 당혹스러움을 겪어내면서 조금씩이지만 나에게 익숙해져가는, 계획한 혹은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들을 쌓아가며 도달한 지금이 나쁘지 않다. 조금은 다행이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앞으로도 그럴 거 같다. 내가 나 스스로를 배신하지 않는 그런 삶을 살 수 있다면, 내가 아닌 나를 바라거나 내가 아닌 그 무엇인 척하면서 스스로를 구기고 함부로 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허깨비 같은 시간을 살지 않는다면 혹은 줄인다면. 침착하게 나를 살피고 들여다보면서 자연스럽게 타인과 세상과 관계하면서 살 수 있다면. 10년 후 혹은 30년 후 나의 지난 시간들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들이 그리 크게 후회되거나 서럽지는 않을 듯 하다. 다만 그러기 위해 지금의 순간 순간들이 중요하다는 거, 곤란하거나 혼란스러울 때 피하지 않고 덜 도망가고 차분히 때론 꾸준히 그 상황들을 응시하면서 한 걸음을 내 디딜 수 있어야 할 거다.

 

피붙이, 가족이란 참 묘하다. 나의 삶의 방식, 태도와 참 다른 그래서 바꾸거나 고치는 게 아니라 이제는 그냥 그렇게 받아들이는 서로 적절한 거리가 필요한 관계인데 나와 그들일 때는 그게 어느 정도 되다가도(안 될 때도 종종 있다. 여전히) 내 사람들, 남편 그리고 동료들이 관계되면 마음이 이상하게 꼬인다. 그들이 덜 대접 받은 거 같고, 눈치 보게 된 거 같고, 그들을 더 챙겨주지 못한 게 묘한 응어리로 가슴에 맺힌다. 생각이란 걸 해 보면 그냥 내가 하면 되는 건데, 기대거나 바랄 부분이 아닌데, 사실 내가 못해서 쓸쓸해지는 건데 이런다. 참 당연한 걸 자꾸 잊는다.

 

현실은 드라마와 다르다. 사람은 그렇게 마냥 예쁘고, 근사한 존재가 아니다. 관계 역시 개연성 있게 딱딱 맺히고 풀리고 그러지 않는다. 어이없을 정도로 대단하다가도 금새 비루해지는, 그래왔고 그럴 거 같은 견고한 그 무엇도 순간 허물어지고 잊혀져버리는, 기억조차 못할 숱한 오해와 실수, 금새 익숙해지고 마는 착각들과 다른 기억들을 겪어내며 서로 다른 위치에서 서로가 관계하며 삶의 서사는 그렇게 구성된다. 순간 같지만 너무 긴 그 시간들은 그래서 스르륵 너무도 쉽게 흘러간다. 가끔은 멈춰서서 바라보는 게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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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17 04:36 2016/01/17 0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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