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 매슈 본, 2014

감독의 전작 <킥 애스>를 재밌게 봤었던. <킹스맨>이 그 감독 영화였다니- 재환이 챙겨주지 않았더라면 아마 선택하지 않았을 영화인데 그래서 더 재밌게 봤다. 재환이 좋아라하는 웃음의 지점들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했고, 엉뚱하게 되바라진 <킥 애스>에서도 즐겼던 웃음+액션 코드도 재미졌고. 웬만한 슬래셔 무비 저리가라 급의 사지절단 선혈낭자 교회 신과 더불어 전 세계 지도자들과 부자들(인류 재건의 주인공으로 선별된) 머리가 폭죽처럼 터져나가던 엘레강스한 ㅎ 그 장면은 길이길이 남을 명장면- ㅋ 

 

<사과> 강이관, 2005

우연히 다시 본 영화. 예전에 볼 땐 여주인공에게 공감이 잘 안 됐던, 모자랄 거 없는 사람이 왜 저렇게 연애와 사랑에 휩쓸리며 사나 싶어서 답답하고 그랬던 기억이 난다. 다시 보니 그녀는 휩쓸리지 않았다. 의식하든 아니든 중요한 순간 순간 자기의 필요와 마음에 따라 끊임없이 크고 작은 선택을 했다. 그런 선택들이 쌓이면서 '지금'이 되어버린 거다. 설레고 재밌지는 않지만 성실하고 든든하다고 여겨졌던 남편은 사실 세상 물정에 어둡고 우유부단한 사람이었고 그래서 지게 되는 삶의 무게를 나눌 줄 모르는 어수룩하고 서툰 사람이었다. 나에게 완전히 속할 수는 없는 그래서 더 매력적인 연인은 여전히 나를 설레게 하고 빠져들게 하지만 동시에 나를 초라하고 불안하게 만든다. 설렘과 안정, 이 두 남자 사이에서 그녀는 남편과의 결혼을 선택하고, 아이를 갖게 되고, 옛 연인과 다시 만나고... 어느 순간 '왜 이렇게 되어 버린 거지, 왜 모두에게 미안한 상황이 되어버린 거지'라며 당황한다.

누구에게도 미안해할 필요없다고 얘기해 주고 싶어졌다. 스스로에게 조차도. 그냥 사람은 삶은 관계는 그렇게 실수도 하고, 실수를 반복도 하고 자기 선택과 그 선택으로 인한 불행도 감수해 가며 사는 거라고. 너무 놀라지 말고, 견뎌내라고. 남 탓도 자책도 말고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더 나빠지지는 않을 거라고. 나이가 들다 보면 부모, 연인, 남편 등 누군가에 의한 영향은 점점 줄어들테니까. 아니 건강한 영향 또는 관계는 내가 필요로하는 모든 것을 어떤 역할의 누군가에게 오롯이 요구하거나 상대의 필요에 내 모든 것을 내어주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여튼 희안한 영화다. 장면이나 연기가, 인물이나 사건이 특별할 게 없는데 보는 사람 주변을 묘하게 멤돈다. 20년 전쯤의 나, 10년 전쯤의 나, 지금의 나 ... 

 

<엘르> 마우고시카 슈모프스카, 2011

와... 보는 내내 대단하다 싶었지만 특히 영화의 마지막 신은 압권이다. 백 마디 말이 아닌 장면으로 보여주는, 영화다! 

 

<스틸 앨리스> 리처드 글랫저/ 워시 웨스트모어랜드, 2014

알츠하이머에 걸려 언어와 기억, 스스로를 잃어가는 주인공. 그녀는 꽤 성공한 언어학자이자 교육자로서의 삶을 누려왔던 사람이다. 질병 자체의 비극성과 절망감도 상당하지만, 무엇보다 주인공이 병을 앓게 되면서 변하는 둘째 딸과의 관계가 인상적. 그나저나 번역이 거칠어서 자막 해석하느라 영화는 막상 제대로 못 본 듯, 기회가 된다면 다시 보고 싶기도...

 

<장고 : 분노의 추적자> 큐엔틴 타란티노, 2012

설정 좋고, 음악 좋고 ... 여기까지. 되바라진 호쾌한 액션을 기대했는데 이건 쫌(미안하다 아무래도 이건 '킹스맨'이 짱인 듯). 

 

<언더 더 스킨> 조나단 글래이저, 2013

요상한 외계인 영화. 외계인이라는 소재 덕에 가능했던 존재의 거죽, 피부에 대한 묘사는 인상적(외계인이 사냥을 위해 자신을 위장하며 옷과 화장품 쇼핑하던 장면, 사냥을 나서며 도시의 인파를 응시하는 평범한 풍경이지만 묘하게 이질적인 시선으로 담아낸 장면들, 거울 속 모습을 보고 사냥을 멈추고 도망치던 장면, 인간과의 첫 섹스에서 몸의 구멍/성기를 들여다 보며 놀라던 장면, 그리고 피부가 벗겨진 상태에서 자신이 훔친 인간의 피부를 쥐고 그 표정을 바라보던 장면 등). 예상가능한 상황을 일부러 틀어버린 듯한 줄거리는 나쁘지 않았고(좋다기 보다는 솔직히 나쁘지 않았다 정도), 황량하면서도 이국적인 스코틀랜드 풍광은 꽤 근사했고, 음악은 매우 매우 좋았다. 그런데 이 장점들이 영화 전체로 어우러지면서는 뭔가 요상하다 정도의 매력으로만 남았던, 너무 다르려고 애쓰다 힘이 빠져버린 듯한 느낌의 영화다. 

 

<머니볼> 베넷 밀러, 2011

전형적인 스포츠 영화려니하며 보기 시작, 갑자기 뜨거워지고 막 그러면 곤란한데 하다가 '음- 담백하고 깔끔해서 좋네' 정도로 보다, 예상하지 못한 찡함에 좀 당황. 사실 영화로는 너무 예상 가능한 뻔한 감동코드인데, 여기에 찡함을 느낀 게 괜히 뒤통수 맞은 기분이랄까. "야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라는 대사와 "누군가를 사랑해서 내가 아닌 그 무엇이 되려고 애쓰는 건 너무 어려워... 그냥 이 쇼를 즐길거야"라는 노래 가사가 오래 기억에 남을 듯. 여튼, 기대 못한 찡함을 누려서 고맙- 이 감독,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미하엘 콜하스의 선택> 아르노 데 팔리에르, 2013

영화는 나무랄 데가 없다. 대범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성실하고 충실하게 기록한, 시대극으로써도 뛰어난 영화다. 하지만 보는 내내 마음이 너무 무겁다. 자근자근 짓눌리는 느낌. 이 속상함을 말하려고, 보여주려고 만든 영화겠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민란을 소재로 한 이런 서사... 참 아프다. 

사족/ 어디서 들었는지, 읽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민란(정치투쟁 성격이 강한 변란이 아닌 민란) 의 유형 중 놀라웠던 건 그것이 부당한 지배체제에 저항하는 행위로 실행된 것이 아닌, 생존의 위협에 몰린 백성들이 자신의 생계를 임금에게 호소하기 위한, (정의로운) 나랏님이 모르시는 나쁜 신하(관료)의 죄를 고하기 위해 일어났다는 점. 그래서 민란을 주도하는 사람(장두)은 처벌 받을 것을 전제하고 시작하는, 민란이 성공하더라도 그 끝은 주동자가 죽음으로 임금에게 사죄하는 방식이었다는 것. 정의라는 개념은 고정될 수 없다는 점, 동시에 그 사회에서 정의로움을 규정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그것은 어떻게 구성되고, 사회 전체에 영향력을 갖고 지속되는가라는 질문들이 영화에 겹쳐지기도 했던... 

 

<인터스텔라> 크리스토퍼 놀란, 2014

인류를 구하고, 소중한 존재를 지키려하고... 이런 거 떠나서(사실 인류애와 부성애를 축으로 하는 미국인 백인 남성 중심의 이야기 구조는 그닥 매력적이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그 절박함에 울컥했다. SF장르의 매력, 시간과 공간의 뒤틀림이 이 절박함을 참 잘 살려줬다. 전후 맥락 빼고, 그냥 그 절박함이 주는 힘. 이 영화는 그렇게 기억하고 싶다. 

 

<나쵸 리브레> 재러드 헤스, 2006

큭큭. 잭 블랙, 코미디에 최적화된 그의 축복 받은 자태- 너무 좋아.

 

<매드 맥스 Mad Max> 조지 밀러, 1979

<매드 맥스 2 Mad Max : The Road Warrior> 조지 밀러, 1981

<매드 맥스 3 Mad Max : Beyond Thunderdome> 조지 밀러/조지 오길비, 1985

<매드 맥스> 20여 년만에 다시 본 영화, 역시 어마어마하다. 장면 장면, 장면들의 연결은 물론 불안과 긴장을 끌고 가는 방식도 너무 깔끔하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날렵한, 그 날렵함이 지금 봐도 신선하게 느껴질 정도. 액션영화 보고 설레인 게 얼마만이더냐- 

이어서 본 <매드 맥스 2>는 의외로 그냥 그냥. 영화가 나왔던 당시에는 황량하면서도 기괴한 이미지들이 인상적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 보니 좀 얇다. 수 십년 간 그런 이미지 자체가 많이 소비되어서이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뭔가 오리지널이 가진 아우라랄까 그런 미덕이 느껴지질 않아서 아쉽다. <매드 맥스> 중 가장 좋아했던 시리즈로 기억하는데 음... 이번엔 그닥. 굳이 다시 꺼내들어 봐서 왜... 그냥 예전 기억으로 남길 걸 하는 마음이 들 정도. 

<매드 맥스 3>는 맥스 캐릭터의 일관성도 없고, 시리즈 영화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장르 자체가 다른, 그러면서 재미없는 영화였다. 성인vs어린이, 문명vs자연 식의 갈등 구조도 지나치게 도식적이고, 포스트 아포칼립스 SF액션으로 시작해서 헐리우드식 휴머니즘으로 오락가락하다가 피터팬의 네버랜드를 경유해 어드벤쳐물로 끝나 버리는 기분이 들 정도. 말 그대로 산으로 가버린 시리즈다. 간만에 3편을 정주행했는데 나는 뭐- 스타일도, 연출도, 영화의 톤과 리듬도 1편이 독보적이다. <매드 맥스>는 10년 후에 봐도 감탄하면서 보게 될 거 같은 좋은 예감. 

 

<지미스 홀> 켄 로치, 2014

켄 로치의 영화 중 최고는 아니다. 내 리스트에서는 상당히 아래에 있을 영화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런 주제와 내용, 관점의 영화는 켄 로치이기 때문에 가능한 그래서 허투르게 볼 수 없었던 영화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의 마지막 영화가 되지 않을까라는 이야기가 생각나며 영화 마지막 장면에 괜히 짠한 마음이 들었던. 

 

<엔젤스 쉐어> 켄 로치, 2012
이어서 선택한 켄 로치 영화. 좋다- 으아, 따뜻한 영화인데 너무 좋아. 흠도 많고 모지라고 어설프기 짝이 없는 이 천사들 ㅋ 그들에게 돌아간 '몫'이 흐뭇하기 그지없다. 과하지 않게 캐릭터에 생기를 넣는 사려깊은 따뜻함도 참 좋았던, 한 몫 잡겠다는 범죄 계획이 참 얼토당토 않다고 생각했는데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과 결말이 맘에 쏙. 아니 뭔가 토닥 토닥 격려 받은 듯한 기분이다. 누군가에 의해 주어진 한 번의 '기회'. 함께 살아간다는 것, 관계의 힘을 무겁지 않게, 하지만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노장 감독의 시선과 태도가 참 고맙다고 느껴진 영화. 

사족) 영화의 연장선에서 혹은 별개로 좀 더 생각해 보고 싶은.
차브. "폭력, 게으름, 청소년 임신, 인종주의, 주정 같은 노동계급의 부정적인 특징"을 부각시키며 혐오를 유도하는 영국식 말이다. 혐오는 우연한 사회현상이 아니라 "뿌리깊은 불평등의 산물"이다. 그리고 "여러 세대에 걸쳐 최하층 사람들을 악마화하는 것은 불평등한 사회를 정당화하는 손쉬운 방법이었다." <차브 - 영국식 잉여 유발사건> (오언 존스, 북인더갭) 중

 

 

<아드레날린 24 2> 마크 네빌딘/브라이언 테일러, 2009

웃자고 덤비는, 엉망진창, 못되 먹겠다고 작정한 영화. 채널 돌리다가 이게 도대체 뭐야 싶어서 봤는데 이게 또 끝까지 보게 만드는, 거참. 하도 막 나가니까 무례하고 불쾌하다는 느낌이 아니라 그래 너 어디까지 가나 좀 보자 싶게 만드는(기대하게 하는?). 낄낄.

 

 

<페인 앤 게인> 마이클 베이, 2013

소재도 좋고, 배우도 좋고, 만듦새도 좋은. 그런데 영화는 그닥. 이런 식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얘기하는 영화는 이젠 좀 식상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5/05/03 15:54 2015/05/03 15:54
https://blog.jinbo.net/productive_failure/trackback/3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