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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유람기1

지리산 유람기 1.

 

생애 두 번째로 지리산을 다녀왔다. 소위 진보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들 중에 지리산을 품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없겠는가! 좀 더 정확하게는 지리산이 품어준다고 해야 맞을 지도 모르겠다. 젊은 시절 이러 저러한 이유로 2-3번씩 갖다 오는 지리산을 30대가 되어서야 두 번 갔다왔다.

 

첫 번째는 몸이 아프고 나서 시골 은둔생활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은 2002년 늦여름이었고 이번이 두 번째였다.

첫 번째 첫날은 지독하게 고생을 했던 기억이 있어 이번엔 맘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더군다나 겨울 지리산을 가볍게 볼 수 없기에 파산에 가깝게 무리를 하면서 준비를 단단히 했다.

나 자신을 위해 돈을 써 볼일이 그렇게 많지 않았기에 여전히 사적인 욕망을 위해 한 번에 목돈을 쓴다는 사실이 익숙하지는 않다. 돈을 더 벌면 좀 나아지려나? 그렇지만 재정 준비보다도 시간을 내는 것이 더 힘들고 맘이 편하지 않았다.

현재 2-3 곳에 직 간접적인 활동을 하면서 특별히 휴가를 가거나 시간을 장기간 내서 여행을 다녀온 적이 그리 많지 않았기에 이번 여행을 더 특별히 가고자 했던 것 같다.




 원래 12시 경까지 있던 이 기차는 여수, 순천, 광양을 거쳐서 진주까지 가는 기차였는데 KTX가 나온 이후로 9시45분차가 막차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새벽6시 경에 도착하던 기차가 4시경으로 당겨지는 바람에 시간이 상당히 애매해졌다.

기차에 오르자마자 배낭의 술을 꺼내 먹는 추태(?)를 보인 끝에 진주에 도착 곧장 목욕탕으로 향해서 잠시 쉬고 7시에 도착하기로 한 경상지역 동지를 기다렸다. 그렇게 지리산 등반을 하는 16일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경상지역 동지들을 만나 짐을 분배하고 간단히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중산리 행 버스를 타고 중산리에 도착하니 9시가 조금 넘었다. 도착하자마자 한 동지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 재차 짐정리를 하고 아쉬운 작별 인사를 하고나서야 산에 오를 수 있었다.

 

첫 등반 코스는 눈이나 얼음도 없는 무난한 코스였건만 역시 얼마 오르지 않아서 지치기 시작하는 사람이 늘어 갔다. 총 7명의 등반대원 가운데 후미에 3-4명이 처지면서 속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그리 문제될 만하지는 않고 전체적인 속도도 문제가 없어서 쉬면서 점점 절경을 자랑하는 지리산 풍경도 보면서 등반을 계속했다. 오를수록 산 자락에 쌓인 눈이 더 선명해 지면서 겨울 지라산을 실감하게 했다.

 

점점 멀어지는 동료들을 뒤로하고 점심을 하기 위해 먼저 서둘러 산장으로 행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같이 산행에 참여한 일명 '해고자'는 자기 부인과 또 한 동지를 데리고 오느라 애 썼다고 한다.

 

로타리 산장에 12시가 못되어 도착한 우리는 물을 길어서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개인 식수를 먼저 물을 끓이고 모자라는 물을 길으러 내가 나섰다. 산장 바로 위 암자에서 물을 길어와야 하는데 산장에는 “식수 20M" 이렇게 되어 있었다. 20M 올라 간 암자에는 이런 표지가 있었다. 식수 50M 이런 젠장! 그나저나 이곳부터는 이제 얼음이 얼어 길이 빙판이 었다.

하여튼 물을 길어 내려오니 이미 라면이 끓고 후발대도 도착해서 라면을 먹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다 몇몇이 제기하는 의문, 라면에서 소주냄새가 난다는 것이었다. 몇몇은 너무 힘들어서 입에서 단내가 나는 줄 알았다나! 라면에 소주를 부었는지 소주병을 잘 닦지 않고 물을 부어서 그랬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제부터 점점 더 어려운 길이다. 빙판길이 시작되는 곳이다. 출발하기 전, 한 동지 “아이젠 빨리 해보고 싶어!”라고 외쳤다. 그리고 화장실 가면서 아이젠을 하고 내려가기 시작하더니 웬걸. 아이젠을 신고도 얼음이 무서워 한 걸음도 제대로 못 떼는 것이었다. 산장 근처 평지에서도 이러니 이거 보통 큰일이 아니었다. 아무튼 갈 길은 가야했기에 길을 나섰지만 이것이 다가올 고난을 짐작케 했다.

 

이제 슬슬 눈과 얼음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점점 더 가파라지는 바위 언덕을 딛고 한 걸음 한 걸음 정상을 향해 나아갔다. 물론 뒤에서는 못 간다는 한 동지의 외침이 들려왔다. 무서워서 못 간다고, 힘들어서 못 간다고 외치는 소리에는 처절했지만 지친 기운이 역역했다.

 

오르면 오를 수록 굽이굽이 끊이지 않고 이어진 지리산 골짜기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또 눈꽃이 하나 둘 날리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나무나 바위 위에서 날리는 줄 알았던 눈이 정상을 향해 다가갈 수록 점점 더 많아졌다.

지리산 정상에 거의 다다른 가파른 마지막 능선을 앞두고 고드름을 발견했다. 같이 오르던 동지들과 함께 고드름을 뚝, 뚝 끊어서 한 입에 넣고 우드둑, 우드둑 씹었다. 먹고 나니 어떤 얼음보다도 시원하고 담백했고 간식으로 충분할 만큼 기운이 넘쳤다.

 

소소하게 날리던 눈발이 이제 점점 더 세차지고 많아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천왕봉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가 천왕봉에 오르는 것을 반기는 것인지 거부하는 것인지 천왕봉 위에는 세찬 눈보라가 몰아쳤다. 이 때가 약 3시경 대략 6시간 정도에 정상에 오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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