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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에 길들여진 사람들

지난해 맘 먹고 아침운동을 했다. 검도를 했는데, 초심 같지는 않지만 여전히 하고 있다. 뭐 운동신경이 워낙 없어서 진도도 안나가고 이런 저런 일정 때문에 못나가고 해서 별 발전이 없긴 하다.

그거야 그렇다 치고 처음 검도를 배우면서 가장 맘에 안들었던 게 하나 있는데 바로 국기에대한 경례다. 검도의 5가지 예절 중에 하나라나 뭐라나!

 

그 사람들하고 국가주의나 전체주의에 관한 논쟁을 할 수도 없고, 그래서 5초도 안되는 아주 잠깐 동안 찾아 그 시간이면 항상 국기에 대한 예의(경례)가 아니라 국기에 대한 푸념과 욕을 하곤 했다. 물론 속으로!

 

그런데 지난 늦 가을에 한가지 변화가 생겼다. 무슨 이유인지 어떤 사정인지 모르겠지만 체육관 정면에 붙어 있던 액자형 태극기가 사라졌다.

 

 

 



국기에 대한 경례->사범님께 대한 경례 이 순서가 이어져야 하는데 구령을 붙이는 사람이 멈칫 멈칫, 국기가 없으니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과 함께 아무 소리도 못하고 있다. 그래서 그 이후로 국기에 대한 경례는 하지 않고 사범님에 대한 경례만 하는 것으로 마무리 하고 있다.

 

나로서야 이보다 좋을 수 없지만 생각하면 할 수록 희한한 일이다.

 

아주 일반적인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어떤 '상징'에 과도하게 경도되어 있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사례일 것이다. 언제나 일상처럼 진행하던 의식이 국기라는 사물 하나가 사라지는 순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혼란 스러워 하는 점이나 그 상징이 없으니 의식을 거치지 않는 모습이나 상징에 집착하고 있는 인간의 모습이다.

 

그래서 국가라는 상징도 무너트리고자 한다면 혼란기를 거치는 과정이 필요하겠지만 충분히 무너트릴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과도한 연결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하나의 상징이 없는 혼란에서 새로운 상징, 즉 국가를 무너트리고 대안사회를 제시해야 하는데 대중들이 상징화된 대상으로 인식하는 수준을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이다. 즉 국가를 넘어서는 대안세계로서의 '그 무엇'을 건설한다고 해도 받아들이는 대중, 주체들이 상징화된 표상으로만 인식한다면 언제든 새로운 상징(후퇴하는 체제)에 의해서 교체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징에 포섭되는 사회주체가 아니라 새로운 사회 구성 그 자체가 되어야 하는데 거기까지 가기 위한 방법이나 길이 있는지 알기 어렵다.

언제쯤 이 답을 찾을 수 있을 지 아니면 확신을 얻을 수 있을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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