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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보] ‘두세 살 아이 턱뼈도’ 67년만에 처참한 모습 드러낸 충남 아산 피학살자들

충남 아산시 배방면 설화산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현장

구자환 기자 hanhit@vop.co.kr
발행 2018-03-16 08:03:39
수정 2018-03-16 08:0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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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자들의 증언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15일 발굴 19일째를 맞은 충남 아산시 배방면 설화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현장에서는 약 50여구의 유해가 발굴되었다. 유해 중에는 2~3세 어린아이의 턱뼈가 나왔고, 20대 여성으로 보이는 유골과 쌍가락지, 은비녀, 어린아이의 장난감도 나왔다.

당시를 목격한 주민들은 1951년 1월 이곳으로 끌려간 사람들 70~80%가 여성이었고, 어린아이를 업은 여성도 있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증언으로 볼 때 아이를 업은 여성은 결혼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여성인 것으로 추정된다.

충남 아산시에서는 한국전쟁 당시인 1950년 10월에서 1951년 1월, 서울수복과 1.4 후퇴시기 사이에 부역자로 지목당한 민간인들이 각 지역에서 경찰과 치안대에 의해 학살됐다.

여성의 올림머리에 은비녀가 꽂힌채 발굴됐다. 머리카락 속에서는 귀후비개가 함께 나왔다. 귀후비개의 반대편 침은 음식물에 체했을 때 응급치료로 손톱위를 찌르는 용도로 사용됐다.
여성의 올림머리에 은비녀가 꽂힌채 발굴됐다. 머리카락 속에서는 귀후비개가 함께 나왔다. 귀후비개의 반대편 침은 음식물에 체했을 때 응급치료로 손톱위를 찌르는 용도로 사용됐다.ⓒ유해발굴단
한곳에서 서로 엉킨채 드러난 유골과 유품들. 여성의 골반뼈 위에 쌍가락지가 놓여 있고 그 위 신발위로 유골잔해가 드러났다. 정강이 뼈 위로는 어린아이의 두개골이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한곳에서 서로 엉킨채 드러난 유골과 유품들. 여성의 골반뼈 위에 쌍가락지가 놓여 있고 그 위 신발위로 유골잔해가 드러났다. 정강이 뼈 위로는 어린아이의 두개골이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유해발굴단
한 여성의 왼손에 끼워진 채 발굴된 은으로 된 쌍가락지.
한 여성의 왼손에 끼워진 채 발굴된 은으로 된 쌍가락지.ⓒ유해발굴팀
발굴된 피학살자들의 유골과 신발.
발굴된 피학살자들의 유골과 신발.ⓒ구자환 기자
총알 자국이 선명하게 남은 20대 여성의 골반뼈.
총알 자국이 선명하게 남은 20대 여성의 골반뼈.ⓒ구자환 기자
발굴한 유해를 세척하는 자원봉사자들
발굴한 유해를 세척하는 자원봉사자들ⓒ구자환 기자
유골과 함께 드러난 신발. 약병과 은가락지, 의류, 어린아이의 장난감, 탄피와 탄알, 불발탄, 고무줄, 단추 등의 유품이 발굴됐다.
유골과 함께 드러난 신발. 약병과 은가락지, 의류, 어린아이의 장난감, 탄피와 탄알, 불발탄, 고무줄, 단추 등의 유품이 발굴됐다.ⓒ구자환 기자
턱뼈와 치아만 남은 유골. 치아의 상태로 보아 20대로 추정된다.
턱뼈와 치아만 남은 유골. 치아의 상태로 보아 20대로 추정된다.ⓒ구자환 기자
흙더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피학살자 유해.
흙더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피학살자 유해.ⓒ구자환 기자
나무뿌리 밑에서 서로 엉긴채 드러난 유해들.
나무뿌리 밑에서 서로 엉긴채 드러난 유해들.ⓒ구자환 기자
흑더미속에서 세상밖으로 나오는 민간인피학살자.
흑더미속에서 세상밖으로 나오는 민간인피학살자.ⓒ구자환 기자
총알이 관통한 두개골의 모습. 당시 향토방위대는 5미터 이내의 거리에서 근접사격을 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총알이 관통한 두개골의 모습. 당시 향토방위대는 5미터 이내의 거리에서 근접사격을 가한 것으로 추정된다.ⓒ구자환 기자
불에 탄 흔적이 남은 유골. 당시 경찰과 반공청년단인 향토방위대는 민간인들을 학살한 후 시신을 불에 태워 증거를 은닉하려 했다.
불에 탄 흔적이 남은 유골. 당시 경찰과 반공청년단인 향토방위대는 민간인들을 학살한 후 시신을 불에 태워 증거를 은닉하려 했다.ⓒ구자환 기자
총알자국이 선명히 남은 유골.
총알자국이 선명히 남은 유골.ⓒ구자환 기자
충남 아산시 배방면 유해발굴현장. 비를 피하기 위해 현장을 천막으로 뒤덮고 발굴작업을 하고 있다.
충남 아산시 배방면 유해발굴현장. 비를 피하기 위해 현장을 천막으로 뒤덮고 발굴작업을 하고 있다.ⓒ구자환 기자
동굴 입구 오른쪽 벽면에서 겹겹이 쌓인 채 드러난 유해. 발굴팀이 붓으로 흙을 제거하고 있다.
동굴 입구 오른쪽 벽면에서 겹겹이 쌓인 채 드러난 유해. 발굴팀이 붓으로 흙을 제거하고 있다.ⓒ구자환 기자
비교적 보존상태가 양호한 모습으로 발굴된 유해. 두개골의 크기로 볼 때 20대 초반의 여성으로 추정된다.
비교적 보존상태가 양호한 모습으로 발굴된 유해. 두개골의 크기로 볼 때 20대 초반의 여성으로 추정된다.ⓒ구자환 기자
지각의 변화로 유해들이 원형을 보존하지 못하고 흩어진 채 발굴됐다.
지각의 변화로 유해들이 원형을 보존하지 못하고 흩어진 채 발굴됐다.ⓒ구자환 기자
수령이 40년 정도로 보이는 나무의 뿌리밑에서 대량의 유해가 발굴됐다.
수령이 40년 정도로 보이는 나무의 뿌리밑에서 대량의 유해가 발굴됐다.ⓒ구자환 기자
세척을 마친 유해를 건조하고 있다.
세척을 마친 유해를 건조하고 있다.ⓒ구자환 기자
발굴된 유해를 감식하는 박선주 유해발굴단장
발굴된 유해를 감식하는 박선주 유해발굴단장ⓒ구자환 기자
발굴된 유해들이 세척과정을 거쳐 현장에 보관되어 있다.
발굴된 유해들이 세척과정을 거쳐 현장에 보관되어 있다.ⓒ구자환 기자
2~3세의 아동의 턱뼈. 당시 목격자들은 아이를 업은 부녀자도 있었다는 증언이 사실이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2~3세의 아동의 턱뼈. 당시 목격자들은 아이를 업은 부녀자도 있었다는 증언이 사실이었음을 증명하고 있다.ⓒ구자환 기자
15일 67년만에 세상밖으로 나오는 피학살자.
15일 67년만에 세상밖으로 나오는 피학살자.ⓒ구자환 기자
피해자들이 신었던 신발과 불에 타서 검게 그을린 의류가 처참한 당시의 상황을 전해준다.
피해자들이 신었던 신발과 불에 타서 검게 그을린 의류가 처참한 당시의 상황을 전해준다.ⓒ구자환 기자
유해발굴팀이 현장에서 드러난 유골과 유품을 박선주 발굴단장에게 확인하고 있다.
유해발굴팀이 현장에서 드러난 유골과 유품을 박선주 발굴단장에게 확인하고 있다.ⓒ구자환 기자
20대로 보이는 치아와 턱벼, 골반뼈가 한 장소에서 서로 뒤엉켜있다.
20대로 보이는 치아와 턱벼, 골반뼈가 한 장소에서 서로 뒤엉켜있다.ⓒ구자환 기자
충남 아산 유해발굴 현장에서 드러난 쌍가락지와 탄피. 쌍가락지는  우리나라 전통혼례의 중요한 예물의 하나로 혼인을 한 몸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충남 아산 유해발굴 현장에서 드러난 쌍가락지와 탄피. 쌍가락지는 우리나라 전통혼례의 중요한 예물의 하나로 혼인을 한 몸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구자환 기자
충남 아산시 배방면 설화산 민간인피학살자 유해발굴 현장. 땅속 2미터 속으로 5층으로 겹겹히 쌓인 민간인의 유해가 발굴되고 있다.
충남 아산시 배방면 설화산 민간인피학살자 유해발굴 현장. 땅속 2미터 속으로 5층으로 겹겹히 쌓인 민간인의 유해가 발굴되고 있다.ⓒ구자환 기자
15일 충남 아산 배방면 유해발굴 현장. 동굴 입구 오른쪽 벽면에서  1950년 10월~1951년 1월 사이 인민군 점령기 부역했다는 이유로 학살당한 민간인들의 유골이 서로 엉긴 모습으로 드러났다.
15일 충남 아산 배방면 유해발굴 현장. 동굴 입구 오른쪽 벽면에서 1950년 10월~1951년 1월 사이 인민군 점령기 부역했다는 이유로 학살당한 민간인들의 유골이 서로 엉긴 모습으로 드러났다.ⓒ구자환 기자

 

 

 

 

15일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에 의해 발굴단 충남 아산 부역혐의 피학살자 유골
15일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에 의해 발굴단 충남 아산 부역혐의 피학살자 유골ⓒ구자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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