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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정상회담의 '충격과 공포'

[차이나 브리프] 트럼프 시대의 미국 패권과 북핵
2018.04.11 08:07:34
 

 

 

 

지난 3월 8일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을 전격 수락하고, 그 사실을 한국 특사가 발표토록 하는 충격적 조치를 취했다. 그 배경은 무엇인가. 

이혜정 중앙대학교 교수는 한반도의 핵전쟁 위협이 북미 정상회담을 강제했다고 분석한다. 지난해 11월 북한의 '핵무력 완성 선언'으로 미국은 첫째 지구적 차원에서 핵 비확산 체제(NPT)의 붕괴, 둘째 동북아 지역의 불안정화, 셋째 미국 본토에 대한 북핵의 위협이라는 세 가지 도전에 직면했으며 이를 타개하기 위해 대북 직접 협상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됐다는 것이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성균관대학교 성균중국연구소가 발행하는 <차이나 브리프> 47호에 실린 이혜정 교수의 글을 연구소 측의 동의를 얻어 전재한다. 

외교적 충격과 공포 

2018년 5월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위원장 간의 정상회담이 열릴 예정이다. 이 두 지도자가 2017년 내내 괌 포격과 북한을 절멸시키는 화염과 분노 등의 '말 폭탄'을 교환하며 한반도를 전쟁 위기로 몰아넣었던 걸 고려하면, 북미 관계의 놀라운 반전이다. 이 반전은 평창 동계 올림픽을 계기로 한미 군사훈련을 연기하며 남북관계를 복원한 한국 문재인 정부의 적극적인 평화·중재 외교의 결과다.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한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이자 특사인 김여정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방북을 요청했다. 여건이 갖춰진 이후 남북 정상회담 추진으로 화답한 문 대통령은 3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대표로 하고 서훈 국정원장 등으로 구성된 특사단을 평양에 파견했다.  

5일 김정은 위원장을 면담하고 6일 서울로 돌아온 특사단의 성과는 놀라웠다. 특사단의 언론발표문에는 4월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회담 개최, 남북 정상 간 핫라인 설치, 북의 군사적 위협 해소와 체제안전 보장을 조건으로 하는 비핵화 및 북미 대화 의지, 대화 지속 기간 북의 핵과 미사일 실험 중지와 남에 대한 핵‧재래식 무기의 위협 금지, 연례적인 한미 군사 훈련 재개 수용 등이 담겨있었다. 특사단은 8일 미국으로 출발했다.

3월 8일은 트럼프 정부의 외교에서 기념비적인 날로 기록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국 조야의 반대를 무릅쓰고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관세 부과를 발표한 직후 다음 날 면담 예정이던 한국 특사단을 직접 불러 면담하며 김정은 위원장의 정상회담 제안을 전해 듣고는 이 제안을 그 자리에서 수용했다.  

더 나아가, 이 결과를 한국 특사단이 직접 발표하도록 조치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이는 내용은 물론 의전 상으로도 전례가 없는 '외교적 충격과 공포'였다.
 

▲ 정의용(가운데)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3월 8일(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접견 결과를 발표하며 오는 5월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청와대


'충격과 공포'는 9·11 테러 이후 부시 정부가 이라크를 침공할 때 사용했던, 미국의 압도적 군사력을 상징하는 표현이다. 2016년 미국 대선 운동 과정에서 트럼프가 김정은과의 '햄버거 협상'의지를 밝히기는 했지만, 김정은의 정상회담 제안을 그것도 한국 특사단에 의해 전달된 제안을 수용한 것은 분명 예상을 뛰어넘은 일이다. 그리고 이 회담이 성공한다고 해도, 실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의 길은 결코 순탄할 수만은 없다.

그렇다고 해도,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의 성사가 왜 '충격과 공포'인가? 왜 미국의 주류 언론과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트럼프의 섣부른 '양보'를 걱정하는가? 트럼프는 분명한 대북정책을 지니고는 있는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양보해서는 안 되는 미국의 이익은 무엇인가?  

이들은 북미 정상회담이란 역사적 전환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질문들이고, 그 핵심은 결국 '미국에게 북핵은 대체 어떤 위협인가'일 것이다. 이에 대한 답은 서로 연관되지만 일정하게 독자적인 세 가지 차원, 즉, 지구적 차원에서 비확산과 지역 정책, 그리고 미국 본토에 대한 위협에서 찾을 수 있다. 

핵 비확산(NPT) 체제에 대한 도전 

첫째, 북핵은 지구적 차원에서 미국이 주도해온 핵 비확산(NPT) 체제에 대한 도전이다. 거시적·구조적으로 보면, 핵을 최초로 개발하고 실제 사용한 유일한 국가인 미국이 소련과의 합의를 통해, 핵 국가의 핵 군축은 장기적 목표로만 규정하고 비핵국가들의 핵무기 개발은 제도적으로 금지한 1969년의 비확산조약은 위선적이었다.  

냉전은 미소가 각자 진영을 통제하면서 핵 억지의 '담합'을 진행한 이중 봉쇄였고, 이 기간 한국의 핵 개발은 미국에 의해 그리고 북한의 핵 개발은 소련에 의해 저지되었다.

냉전이 끝난 이후 미국은 전 지구적 차원에서 핵을 통제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고, 비확산체제의 시효를 영구화하는 것은 그 주요한 과제였는데, 이것이 '소위' 제1차 북핵 위기의 배경이었다.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전쟁 초기 트루먼 대통령이 핵무기 사용을 위협한 이후 한반도에서 핵 위기는 상시적이었다. 1995년 비확산 체제의 영구화에 성공한 미국은 2001년 9·11 테러를 배경으로 핵 억지의 주요한 기반으로 미사일 방어를 제한하는 탄도탄요격미사일조약(ABM)에서 탈퇴하고 비핵국가에 대한 소극적 안전보장을 폐지하는 새로운 핵전략을 내세우며, 이라크와 이란 및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이후 2003년 이라크를 침공했다. 이것이 '소위' 제2차 북핵 위기의 배경이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은 비확산 체제를 기반으로 국제제재를 받고 있다. 하지만 비확산체제의 현실적·규범적 기반 자체가 일정하게 붕괴되었다. 미국은 ABM 조약에서 탈퇴한 이후 미사일 방어망 구축을 지속적으로 시도하고 있고, 소련과 중국은 이에 강력하게 반발해오고 있다. 

비확산 체제의 불평등한 규범에 대한 도전도 제기되었다. 핵 국가들이 핵 군축 대신 핵무기 개발에 진력하는 것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발이 2017년 핵무기 금지조약의 체결로 이어진 것이다. 

핵 억지의 국제정치적 현실에서 보면, 미국의 핵우산 혹은 확장 억지정책은 북핵에 대해서도 성공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핵 군축과 협상의 역사에 비춰보면,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 역시 불가피하고 기존의 협상이 실패로 돌아간 것은 '쌍방 과실'이다. 

이러한 핵 억지와 협상의 현실론 혹은 보편주의는 미국 내에서 극소수의 견해이다. 기존의 협상이 실패한 원인을 북한의 일방적인 책임으로 돌리는 시각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북핵 문제는 기본적으로 북한의 체제문제이기 때문에 그 체제의 변환 혹은 붕괴 없이는 핵 문제의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북한 예외주의도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지역안정에 대한 위협 

둘째, 북핵은 한반도와 동북아의 지역적 안정에 대한 위협이다. 이 지역에서 자신의 패권적 기제와 영향력을 보존하기 위해서, 미국은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 북핵 문제와 지역안정에 대한 중국과의 협력, 그리고 한국과 일본과의 기존 동맹을 강화하는, 세 가지의 복합적이고 상충되는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 

북미 간의 핵 협상은 한국전쟁 이후 양자 간의 안보 딜레마를 인정하는 기반에서 진행되는 것이다. 1990년대의 제네바 합의나 2000년대의 6자회담 구도는 모두 이를 위해 평화협정을 통해서 한국전쟁 이후의 정전상태를 종식시키고 북미 수교를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 북핵문제 해결의 이정표를 세운것으로 평가받는 9.19 공동성명이 나온지 13년이 지났다. 사진은 성명 합의 직후 6자회담 참가국 수석대표들이 손을 맞잡은 모습. 왼쪽부터 당시 수석대표였던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사사에 겐이치로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 송민순 외교통상부 차관보,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 알렉산드로 알렉세예프 러시아 외무부 차관. ⓒ연합뉴스


그런데 북한 위협의 감소 혹은 해소는 한미 동맹의 기반을 침식한다. 현실에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의 증강은 미사일 방어망 구축 등에서 한미일 군사협력의 강화로 이어져왔다. 이는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 논란이 증명하듯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을 초래했다. 북핵과 주한미군을 둘러싼 안보 딜레마가 남북한이나 북미 사이만이 아니라 미중 사이에서도 작동하는 것이다. 

2008년 미국발 세계금융위기 이후 중국의 부상은 가속화되었고, 한국의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 심화되었다. 오바마 정부는 미국의 재건에 집중하면서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는 동시에 포섭하는 재균형 정책을 추진하였다.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한국의 이명박, 박근혜 보수 정부의 대북 강경책에 편승하여 북핵 협상을 중단하고 사이버 비밀공작 등을 통해서 북한의 핵 개발 저지를 시도하는 전략적 인내 정책을 시행하였다. 2008년 이후 6자 회담은 중단되었고 이후 북한은, 특히 김정은 체제 하에서 급속히 핵과 미사일 능력을 향상시켰다.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는 북핵에 대한 억지와 한미일 군사협력의 강화에는 성공하였지만,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 자체를 저지하지 못하고 중국의 적극적인 협력도 견인하지 못했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2016년 대선 과정에서 대안적인 전략이 등장했다. 기존의 한미일 군사협력과 대북 확장 억지는 유지하면서, 중국을 견인하기 위해서 국제제재 동참에 대한 압력과 함께 한반도 급변사태와 통일 후 한반도에서 중국의 이익을 보존하는 유인책을 제공하고, 북미 간의 협상에서도 당근과 채찍을 보다 강화하는 방안이 외교안보전문가들 사이에서 초당파적인 지지를 확보해나갔다. 

이러한 합의의 이면에는 한편으로는 압도적 다수인 기존의 한미일 동맹의 강화를 강조하는 '동맹파'와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의 부상이나 북미 협상을 위해서 기존 동맹 질서의 일정한 해체가 불가피하다고 보는 키신저 식의 지정학적 현실주의 혹은 '미중담합론' 그리고 '북미협상파' 사이의 갈등이 존재했다.  

'동맹파'는 북한의 김정은 체제가 불안정하고 비합리적이기 때문에 기존 핵 억지의 작동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즉, 북한 예외주의에 근거해서 국제제재의 강화와 함께 한미일 군사동맹의 일체화/나토화를 중심으로 하는 봉쇄와 억지의 강화를 주창했다. 한미일 미사일 방어망과 동북아판 나토는 북핵에 대한 대응인 동시에 중국에게 북핵 문제 해결에 대한 협력을 압박하는 군사적 견제 수단이었다. 

북미 정상회담을 강제한 한반도 핵 위협 

셋째, 미사일 능력의 향상으로 북핵은 미국 본토에 대한 안보위협으로 부상하였다. 그 정점은 2017년 11월 북한의 화성 15형 발사와 이후 국가 핵 무력 완성 선언이다.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는 기존의 미국 국내정치와 대외정책의 전통을 모두 부정하는 이단이었다. 패권과 동맹의 문법은 그에게 미국인의 삶을 위협하는 글로벌리즘일뿐이었다. 미국(백)인의 실제 안녕과 번영을 도모하는 미국 우선주의가 그의 대외정책 목표였고, 그의 평생의 신념이라면 자유무역에 대한 반대와 동맹에 대한 회의, 그리고 강력한 지도력에 대한 동경이었다. 

트럼프에게 북핵은 무엇보다도 본토에 대한 안보위협이었고, 그에 대한 논리적 대응은 예방전쟁이거나 흥정의 대가로서 김정은과의 담판에 의한 위협의 해소였다. 이러한 그의 본능은 집권 초기'최대의 압박과 관여'정책으로 일정하게 제어되었다.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로 유엔 차원의 국제제재에 대한 국내외의 합의는 쉽게 도출되었다. 하지만 제재는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없었고, 북핵 문제와 북한 문제를 분리한 중국의 협력은 제한적이었으며, 제재의 궁극적 목적이나 관여의 조건에 대한 새로운 정책적 합의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사이 트럼프의 예방전쟁 수사와 군사적 옵션에 대한 주문은 강화되었고, 그 결과물은 '코피전략'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에서 전쟁 불가를 거듭 확인하며 미국의 예방전쟁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했다. 미국의 대북정책 생태계에서 최대 다수를 이루는 '동맹파'도 반발했다. 코피전략이든 그 어떤 예방전쟁이든, 동맹과 미국의 패권적 영향력 자체를 폐기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구조적으로 보면 한반도 핵전쟁 위협이 북미 정상회담을 강제했다. 트럼프가 미국본토에 대한 위협을 해소하고자 하는 자신의 협상가적 본능에 충실하고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가 분명하다면, 5월의 북미 정상회담은 한반도 평화의 역사적 전기가 될 수 도 있다.

 

이혜정 교수는 2002년부터 중앙대학교 정치국제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미국 외교와 국제정치를 연구‧지도하고 있습니다. 이 교수는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노스웨스턴 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주로 '정치적 현상의 기원'을 중심으로 군부 정치 개입의 기원을 탐구하기 시작해 미국 패권의 기원과 근대 국제관계의 기원으로 연구 지평을 넓혔고, 한미 동맹에 대한 연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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