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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관변호사 증거인멸 길 터준 법원… ‘신 사법농단’

전관변호사 증거인멸 길 터준 법원… ‘신 사법농단’

등록 :2018-09-12 05:00수정 :2018-09-12 07:21

 

 

사법농단 영장 기각율 90% 달해
유해용, 수만건 증거 파기하고
법관들에 ‘억울하다’ 이메일도
여당, 국정조사·특별재판부 추진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자신의 사무실 앞에서 대법 기밀자료 무단 반출과 파기 혐의와 관련된 압수수색이 끝난 뒤 입장발표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자신의 사무실 앞에서 대법 기밀자료 무단 반출과 파기 혐의와 관련된 압수수색이 끝난 뒤 입장발표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사법농단’에 관여한 의혹을 받는 전·현직 법관의 ‘무죄’와 ‘선의’를 강조해온 법원의 오만함이 결국 수만건 증거 인멸이라는 초유의 상황을 초래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에 아랑곳 않고 “죄가 되지 않는다” “압수하지 않아도 알아서 제출할 것”이라며 지금껏 압수수색 영장의 90%를 기각했다. 대법원 역시 ‘법관 독립’을 명분 삼아 ‘법원 방어’에 골몰하는 조직 이기주의를 방치하며 화를 키웠다.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에 이은 ‘김명수 대법원의 신사법농단’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여당은 사법농단 국정조사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하기로 했다.

 

11일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 수사팀은 법원의 영장 기각을 틈타 수만건의 증거를 파기한 유해용 전 대법원 선임·수석재판연구관(현 변호사) 사건과 관련해 ‘1차적 책임’을 법원에 물었다. 검찰 관계자는 “(유 변호사에 대한) 법원의 영장심사가 아무런 이유 없이 사흘간 미뤄졌고, (그사이) 대량의 형사사건 증거물이 고의로 폐기된 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국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법시스템이 마치 보란 듯이 공개적으로 무력화됐다”고 밝혔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들은 검찰이 법원행정처와 전·현직 법관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할 때마다 무더기로 기각해 빈축을 샀다. 일반 사건의 압수수색 영장 발부율이 90%였던 점과 대조적으로, 유독 법원을 향한 압수수색 영장만 거꾸로 기각률이 90%에 이르렀다. “공개적인 사법시스템 무력화”라는 검찰의 반발은 ‘법원이 영장 발부 권한을 통해 수사 방해를 하고 있다’는 말을 에둘러 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검찰은 “철저히 수사해 법에 따라 처분하겠다”고 했다. 전날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도 “증거 인멸 행위에 대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정한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냈다. 법원 내부에 수사를 방해하는 ‘조력자’가 있다면 사법농단과 무관한 현직 법관이라도 처벌할 수 있다는 ‘경고’인 셈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영장 발부를 미뤄주는 방식으로 증거 인멸 시간을 벌어준 것이 아닌지, 공문서 유출에 대한 검찰의 고발 요구 대신 ‘문건 회수’에 나선 대법원과 유 변호사 사이에 어떤 교감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등을 조사할 방침이다.

 

유 변호사가 압수수색 영장 심사가 한창 진행 중일 때 검찰 수사의 부당함을 주장하는 문건을 작성해 전자우편으로 현직 법관들에게 전달한 사실이 이날 드러난 것도 법원에는 ‘악재’가 될 전망이다. 문건에는 주요 혐의에 대한 ‘유무죄’ 판단, 검사 면담 내용 등 수사 진행 상황 등이 담겼다. 유 변호사는 전자우편에서 압수수색의 위법성을 주장하며 “(유출) 자료는 개인 의견을 담은 자료로 공무상 비밀이나 공공기록물이라고 보기 어렵다” “법원 근무 시 작성한 자료를 추억 삼아 갖고 나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중앙지법의 영장 기각 논리와 비슷하다. 이 전자우편이 법원행정처나 영장판사들에게 전달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검찰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12일 오전 유 변호사와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을 불러 조사한다. 특히 같은 날 현 ‘김명수 대법원’ 소속 고위법관까지 부르는 강수를 뒀다. 대법원 선임재판연구관 시절 수석재판연구관이던 유 변호사에게 행정처의 재판 개입 문건을 전달한 김현석 현 수석재판연구관(고법 부장판사)을 부르기로 한 것이다.

 

법원은 ‘당황’하면서도 진화에 나섰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7일 청구된 영장의 심사가 10일로 늦어진 것은 ‘고의’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8일 근무한 두 영장판사 중 한명은 이미 유 변호사 관련 영장을 기각한 전례가 있기 때문에 심사하기 부적절했고, 나머지 한명은 다른 업무가 있었다는 것이다.

 

한편 검찰은 2015년 4월 서울남부지법이 사립학교교직원연금법 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한정위헌 취지로 위헌심판을 구한 결정을 법원행정처가 취소하라고 압력을 행사한 정황을 포착했다. 이는 박병대 당시 행정처장 주례회의에서 논의됐고, 양승태 대법원장이 결단해 재판장에게 요구가 전달됐다고 한다. 실제 해당 재판부는 이후 자신의 결정을 직권으로 취소했고, 다시 단순위헌 취지로 제청했다고 한다.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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