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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상식이 안 통한다” 어느 핵공학자가 말하는 한국 원전 현실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소장 “원전 몸은 썩어가는데, 옷만 바꿔입으면 뭐하나”

 

양아라 기자 yar@vop.co.kr
발행 2018-11-04 20:48:58
수정 2018-11-04 20:4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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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탈핵·탈원전 주의자가 아니다. 원자력을 전공했기 때문에. 그렇다고 원전을 더 짓자는 친원전도 아니다. 원전의 안전 문제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보고 싶을 뿐이다."

'원전의 찬·반 중 어느 쪽이냐'는 질문에, 한 핵공학자가 내놓은 답. 그는 여느 핵공학자처럼 '원전이 절대 안전하다' 말하지 않는다. 그는 "한국 원전은 지금 위험하다", "안전해져야 한다"며 전국을 돌며 강연하고 있다. 그는 당장의 탈핵이나, 원전을 더 짓자고 목소리 내지 않는다. 현존하는 원전을 제발 안전하게 가동을 하자고 말한다. 

"대전 대도시에 핵폐기물이 쌓여있다"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소장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소장ⓒ김철수 기자

원자력 공학을 전공했고, 한국원자력연구원, 한국전력기술 등에서 일했던 핵공학자.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소장을 지난 2일 대전 유성구 대덕연구단지 인근에 있는 테크비즈센터에서 만났다.

그는 먼저 대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대전이라는 대도시에 핵폐기물이, 그것도 임시 건물에 쌓여있다고 상상할 수 있나. 대전에는 원전도 없는데도,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핵폐기물이 있다."  

대전에는 원자력 종합연구개발 기관인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있다. 고준위핵폐기물 1600여 다발을 반환하지 못하고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있었던 곳이다. 원자력연구원은 아파트 단지들과 인접해 있다. 또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는 연구 과정에서 발생한 콘크리트, 장갑, 세척수 등 방사성 폐기물까지 무단 폐기하는 문제까지 발생했다. 정부의 핵폐기물 관리·처리의 총체적인 문제가 드러난 셈이다.  

그는 앞으로 문제가 될 원전의 해체와 핵폐기물 처리와 관련된 인력들도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한수원 인력이 1만2천명이다.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인력이 1%는 될까? 제가 한수원에서 인정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가진 해체 전문가는 딱 두 명 있다."  

원자력 공학 중에서도 그는 핵폐기물을 전공했다. 그는 핵폐기물 쪽으로는 취업을 할 수없어, 원자로 설계 등의 일을 하기도 했다. 그는 핵폐기물 분야는 원전 건설 분야보다 정부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얼마나 안전하면 만족하시겠습니까?" 

내년부터 원전 안에 있는 고준위핵폐기물(사용후핵연료가 포화상태)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고 말했다. 이미 외국에서는 핵폐기물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었고, 이를 알고 있었음에도 충분한 저장 공간을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싼값에 원전을 짓겠다는 안일한 생각이 불러온 사태라고 비판했다. 그의 말처럼 신규 원전을 통한 핵폐기물 '돌려막기'는 끝났다.

한 소장은 고준위핵폐기물 문제 해결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고준위핵폐기물처분장이) 얼마나 안전하면 당신이 만족하겠습니까?'라는 질문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이 사용자다. 기술·사회·경제적으로 얼마만큼 만족해야 하는지, 국민들한테 요구 제안서가 지금 필요한 거다. 결론이 제대로 안 나올 수도 있지만, 그 절차가 국민한테 신뢰를 얻는 과정이 될 거다."

핵폐기물 처분장에 관한 충분한 정보 없이 건설에 필요한 액수를 추정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64조가 될지, 600조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다면 핵폐기물 처분장을 지을 돈이 지금 있나?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돈을 모으는 일이다. 그 사이에 땅도 파보고 바람도 측정해보고 지하 환경이 어떤지 조사도 해보고, 그 자료를 기록해서 20년 뒤에 후손들한테 처분장을 만들 수 있는 근거를 주면 된다. 그러면 후손들이 판단하고 조상님들이 준 돈을 가지고 짓자고 할 거 아니냐."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자력계는 달라졌을까?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소 소장이 2017년 8월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환경운동연합에서 한빛원전 4호기 격납건물 콘크리트 공동 발생, 문제점과 과제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소 소장이 2017년 8월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환경운동연합에서 한빛원전 4호기 격납건물 콘크리트 공동 발생, 문제점과 과제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뉴시스

그는 그동안 원전의 안전성 문제를 사회에 끊임없이 얘기해 왔다. 그에게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충격이었다. 그는 일본 원전 사고가 터지고 나서 한국 원자력계가 끝장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 원자력계는 달라지지 않았다. 원자력계 학자들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원인은 쓰나미였다며 동일본 대지진은 원전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우리 원전의 격납건물 두께가 두꺼워 안전하다고 주장했다.  

그의 생각은 다르다. "우리나라 발전소는 3일 간만 전기가 끊어지면 핵연료가 다 녹아내린다. 좁은 공간에 사용후핵연료를 놓았기 때문에 발열량에 의해서 끓어가지고 녹아내린다. 지진이나 해일이 와가지고 전력망 무너지고, 전기차도 못 들어오면 후쿠시마같은 사고가 일어난다"

격납건물역시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다. 영광 한빛4호기는 지난해 격납건물 콘크리트에 최대 30cm 가량의 공극이 확인됐다. 원전사고 시 방사성 물질의 유출을 막는 '최후의 방벽'에 구멍이 생긴 것이다. 심지어 격납건물 상단에 약 20cm가량 콘크리트가 비어있는 '환형 공동'까지 발견됐다. 또 냉각 핵심 부품인 증기발생기 내부에서는 20년간 방치된 것으로 추정되는 망치까지 발견됐다. 부실공사가 원인이었다.  

한 소장은 한빛 원전 부실공사에 관해서 한 언론사와 인터뷰를 통해 "(중대사고가 발생했다면) 격납건물이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6시간이나 3시간 만에 터진다", "(사고 시) 시뮬레이션을 하면 돔 뚜껑이 날아간다"고 경고했다.  

그동안 격납건물의 부실공사에 쉬쉬하고 있었던 한수원은 지난해 9월 한 소장에게 내용증명을 보내며 '허위사실'이라면서 고소 협박을 하기도 했다. 그는 "한수원 사장한테 제발 고발 좀 해달라고 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어 "그 사람들도 나는 통제가 안 되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겠나. 왜냐면 전 틀린 말은 안 한다. 안전을 강조하다 보니 표현이 거칠 뿐"이라고 덧붙였다.

"원인규명 없이 시간만 끌어오다 문제를 키웠다" 

하지만 그는 한수원이 이 문제에 대한 원인규명을 제대로 하지 않고 되려 키웠다고 말했다. "2년 전에 이 문제가 나왔을 때, 한수원과 규제기관들은 이걸 덮기에 바빴다. 원인규명이나 대책 마련은 안 하고 버텼다. 2년의 시간 동안 뭘했나. 조치했었어야 하는데 문제를 지금까지 키운 거다."

그는 "한빛 원전을 짓고 난 다음에 공기(공사기간) 단축을 계속해 왔기 때문에, 기술이 조금 좋아졌더라도 부실은 더 많아지면 많아졌을 것"이라며 "반성해볼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한 소장은 전 원전에 대한 제대로 된 전면조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전에서 발견된 문제는 한빛 4호기 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빛원전 2호기에서는 2016년 6월 격납건물 철판(라이너 플레이트:CLP)과 외부 콘크리트 경계면의 135개 지점에서 부식이 발견됐다. 그는 "부식은 안에서 일어나는 데 그걸 육안으로 검사하고 있다. 초음파 검사 어렵지도 않다. 그걸 안 하다가 30년 만에 터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부식이 됐으면 물이 흘러왔다는 것이고, 그럼 철근은 멀쩡하겠나. 물이 철근을 피해서 들어왔겠냐. 그래서 제가 원인규명 하자고 제기했다. 그런데 은근슬쩍 원전안전위원회도 인허가를 주고 넘어가버렸다" 원자력안전위(원안위)는 지난해 한빛 2호기의 가동을 근본 원인에 대한 조사없이, 지난해 3월 재가동을 승인했다. 

"Not in my term", 책임지지 않는 관료들이 진짜 '적폐'  

그렇다면 한수원과 원안위는 왜 철저한 원인 규명을 하지 않는 걸까? 그는 이렇게 답했다. "이렇게 가면 자기네 죽으니까. 책임지기 싫으니까. 어쩌면 그들이 안전을 방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일 누가 원전 공사에서 철근이라도 빼먹었으면 어떻게 할 거냐. 처참한 현실을 더 잘 알면서 진실이 밝혀지면 두려우니까 저러는 거다." 그는 결국 원전을 관리 감독하는 기관이 잘못했다고 인정하고 고치려고 노력해야 국민들에게 신뢰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 소장은 원전 사고 이후를 걱정하며 "원자력 방재는 실체가 없다"고 주장했다. "말로는 원안위가 책임을 지고 있는데, 원안위가 그것을 집행할 예산도 없다. 통제하고 평가할 의지도 없고.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도 없다. 일 년에 합동훈련 몇 번 하는 거 말고는 예산도 없다. 실패한 훈련 없이 다 통과한다. 잘못되면 빵점 메겨서 다시 해야 하는 데, 그런 예가 존재하지 않는다"

한 소장은 원자력안전위원회를 원자력안전'위해'회라고 비꼬았다. "원전에 대해서 고민하는 게 아니고, 군림하기 위해서 모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만 있는 거다" 그러면서 한 소장은 진짜 적폐는 '관료'일지도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Not in my term, 퇴직할 때까지만 일이 안 생기면 된다는 거다." 그는 직업의식의 결여가 만든 결과라고 지적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 일본 국민들은 집 잃고 생명 위협받는데, 관료들은 퇴직하고 집에가서 쉰다. 그렇게 돼서는 안 된다." 그래서 그는 원전 안전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와 국민의 생명을 위협했으면, 이분들은 퇴직하고 나서라도 찾아내서 징벌적 손해배상 해가지고 구상권을 행사해야 한다. 사장이 시키면 당신 때문에 나 그렇게 되기 싫다고 고발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원전의 몸은 썩어가고 있는데, 옷만 바꿔 입으면 뭐하나" 

후쿠시마 제1원전에는 수소폭발로 떨어져 나간 원자로 벽의 일부가 그대로 남아있는 등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상흔이 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남아있다.사진은 공동취재단이 제공한 것이다. 2018.02.20.
후쿠시마 제1원전에는 수소폭발로 떨어져 나간 원자로 벽의 일부가 그대로 남아있는 등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상흔이 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남아있다.사진은 공동취재단이 제공한 것이다. 2018.02.20.ⓒ뉴시스

그는 일본 원전 사고 이후, 원자력계가 발표한 중대사고 대책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옆집 주유소가 터져서 사람 다치고, 불나고 난리 났으면 우리 주유소는 뭐부터 해야 하나? 기름 새는 데는 없는지, 불꽃은 없는 지 벽은 잘 세웠는지 검사를 해야 하는 거 아니냐. 그런데 불이 났으니까 소화기만 들입다 잔뜩 사다놓은 거다. 지금 발전소가 제대로 지어진 거냐는 확인했어야 한다. 중대사고 대책은 그거 확인하고 문제가 없을 때 추가로 하는 거다. 지금 몸은 썩어가고 있는데 옷만 바꿔입고 브롯지만 달면 뭐하냐." 

그는 '체인 이론'에 대해서 설명했다. "목걸이를 잡아 당기면, 그중에 약한 부분이 끊어지는 거지 동시에 다 끊어지는 게 아니다. 그런데 안전계통만 내진 7로 옮겨놓고, 나머지 것만 내진 3~5로 내버려 두면, 약한 곳이 무너지면 다 무너지는 거다. 전체의 안전성을 올리지 않고 일부의 안전성만 올리는 것은 의미가 없는 거다" 그는 구조 전체를 점검하는 것이 필요한데 임시방편적인 대책만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원전 문제는 참 해결하기 어려운 것 같다'는 말에 그는 "상식을 능가하는 기술은 존재 안 한다"고 답했다. 그에게 원전 기술의 상식은 '안전'이다. 그는 한수원과 원자력계에 그 "상식이 안 먹힌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모든 게 첨단으로 한다고 해도, 진실을 밝혀내고 딱 보면 그게 상식이다. 진실을 어렵게 해놓으니까 그렇지, 딱 해놓고 보면 왜 이걸 몰랐을까다. 창조주가 아닌 이상 새로운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그는 쉬운 예를 들었다. "차 문 열어놓고 달리면 안 된다는 건 상식이다. 그런데 차문을 열고 10~20년간 운전하게 되면, 당연히 차 문 열어놓고 운전하게 된다. 그러다 자칫 사고가 나는 것이다. 그게 상식으로 어느 순간 굳어져 버리고 룰이 된다. 우리가 이 상식을 안일하게 생각하면, 사고는 반복된다."  

"원전 수출하고, 뒷감당할 자신 있나?"  

한국전력이 한수원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UAE에 짓고 있는 바라카 원전.
한국전력이 한수원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UAE에 짓고 있는 바라카 원전.ⓒ뉴시스

그는 원전의 안전 문제를 지적하다 "이런 나라가 외국에 원자력 발전소 수주한다고 하면 누가 사겠나?"고 반문했다.  

"만약 우리가 영국에 수출했다가 이런 문제가 터졌으면 어떻게 됐을까? 그러면 우리 국가가 망한다. 격납 건물 지어놓고 물새고 사고 나면 그러면 우리가 다 책임을 져야 하는데 수출 뒷감당 할 능력이 있나. 이런 것도 안 짚어보고 수출이 좋다고만 한다. 수출하려면 국내를 안전하게 만들고 수출로 가야 한다." 

그는 '원전은 절대 안전하다'고 말하는 원자력계 교수들은 향해 그러면 왜 학생들에게 안전을 가르치고 연구를 하고 있냐고 묻는다.  

"원자력이 절대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원전이 사고날 확률이 10의 마이너스 7승이다 8승이다, 그런 소리들을 해댄다. 원전이 다 멀쩡하다고 했을 때 나온 확률이다. 그러면 격납건물 콘크리트 열화되고 구멍나고 해서 10의 마이너스 4승, 3승으로 떨어지는 얘기는 왜 안 하냐. 그많던 확률이 어디로 사라졌나." 

그에게 본인과 같이 원자력계를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핵공학자들이 있냐고 물었다. 박종운 동국대 원자력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를 꼽았다. "박종운 교수를 빼고는 거의 없다. 심정적으로는 잘못됐다고 생각해도 목소리를 내지 못하거나, 생각을 지우려고 한다. 결국 비겁함이 지배하는 거다. 제도가 그렇게 만들었다. 용기를 가지고 이야기하라고 말하고 싶다."

한국 원전에는 안전을 위협하는 불씨들이 존재한다. 그는 불씨들을 제거하고 가동 중인 한국의 원전이 안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한수원이나, 원자력연구원에 있는 사람들은 '이제 그만 해라'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두 개 더 남았다고 말한다. 진짜 있다. 그렇다고 제가 대안없이 불 지르지는 않는다. 큰 불을 끄려고 맞불을 지르는 소방수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냥 불만 지르는 방화범은 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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