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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용 칼럼]내일은 나아질 것인가

박래용 논설위원

입력 : 2018.12.25 06:00:00 수정 : 2018.12.25 06:00:01
 

2016년 1월 경향신문은 ‘청년’을 주제로 신년기획을 선보였다. 당시 청년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41%가 ‘이번 생은 망했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청년 46.4%는 ‘지금 세상이 붕괴되고 새로운 시작을 원한다’고 했다. 그런 절망의 표출이었을 것이다. 같은 해 4월 총선에서 20대 투표율은 52.5%로 뛰어올랐다. 직전 총선 투표율(41.6%)에 비해 비약적인 상승이다. 그해 겨울 청년들은 나라다운 나라, 공정한 나라를 외치며 촛불을 들었고, 그 염원은 2017년 대선으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20대는 문재인 대통령의 열혈 지지층이었다. 그런 젊은이들이 등을 돌리고 있다. 부동층 이탈로 거품이 꺼진 데 이어 원조 지지층인 집토끼마저 떠나는 것은 가장 위험한 상황이다.

[박래용 칼럼]내일은 나아질 것인가

청년 이탈은 한 가지가 아닌 복합 요소가 작용한 결과다. 청년들 사이엔 취업에서부터 주택·복지·연금에 이르기까지 정부 정책에서 철저히 소외된 버림받은 세대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대신 미래 부담을 전가하는 정책은 늘어나고 있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젠더·병역 이슈에 거부감을 느끼는 기저에는 ‘공정’에 대한 분노가 깔려 있다. 빠르게 변해가는 젊은이와 기성세대 간의 갈등은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이슈는 청년들로 하여금 무엇이 공정이고 정의인지 되묻게 만들었다. 최순실 딸 정유라의 이대 부정입학에 분노했던 청년들은 이런 불공정 사태가 현 정권 들어서도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결과의 평등 못지않게 기회와 과정에서의 평등도 원하고 있다. 공정 경쟁의 기본수칙이 안 지켜질 때 청년들은 분노한다. 이미 그런 분노는 평창올림픽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구성 때 표출된 바 있다. 기대가 실망으로 변한 상심은 더 크다. 정권이 바뀌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믿었다. 개혁정부가 소명을 잊지 않고 애쓰고 있다고 믿으면서도 현실은 달라진 건 없다는 데 더 허탈할 수밖에 없다. 여러 가지 개혁 시도는 철벽에 가로막힌 듯 힘을 잃고 있다.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무능한 이미지가 겹쳐진다.

이명박은 “청년들이 위험한 도전을 피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박근혜는 “대한민국에 청년들이 텅텅 빌 정도로 한번 해보라”며 “중동에 가라”고 했다. 그들은 딴 나라에서 온 대통령 같았다. 도전정신이 없다고 힐난당한 청년들은 말할 권리도 박탈당한 채 고통을 혼자 끌어안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문 대통령은 청년 문제를 해소하겠다고 했다. 정작 청년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노력을 안 해서가 아니라 노력을 하는데도 결과물을 기대할 수 없는 현실이다. 새 정부에서도 아무도 우리의 불만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소외감은 청년들을 더욱 지치게 하고 있다. 취업난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청년들이 고달플수록 청년은 잘 팔렸다.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청년을 찾아 청년 문제를 해소하겠다고 공언했다. 청년은 꾸준한 인기상품이었다. 청년들은 우리를 소비하지 말라, 아파도 된다고 말하지 말라고 한다. 여당은 가슴이 아프다지만, 청년들은 가슴이 시리다. 믿었던 정부의 실력이 고작 이 정도라는 게 아프고, 다를 거라 믿었던 대통령도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게 아프다. 6급 수사관 한 명과 싸우는 모습을 보고 “뭔가 잘못됐다”고 느끼고 있다. 대통령이 기내에서 “국내 문제에는 답변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그들이 알고 있는 대통령상(像)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재조산하(再造山河·나라를 다시 만든다)’를 외쳤던 초기의 당당함과 신선함, 파이팅은 찾아보기 어렵다. 

젊은이들이 떠나는 마을, 회사, 정당에 미래가 있을 리 없다. 온라인 청년 커뮤니티에서는 20년 집권은커녕 3년만 기다리자는 말이 나온다. 한국당도 싫지만 민주당은 더 싫다는 댓글이 달리고 있다. 가치를 정책화하려면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정책의 방향성을 정교하게 가다듬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새로운 정책들이 현장에서 왜 외면받고 있는지 냉정히 따져봐야 한다. “보수는 철학이 없고, 진보는 정책이 없다”는 말이 왜 나오는가. 민주당 토론회에서는 “현 상황이 계속된다면 야당의 실수 없이는 21대 총선 승리를 기대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결국 재집권에 실패해 현재 집권세력이 제2의 폐족으로 전락할 것”이란 말까지 나왔다. 교수들이 고른 올해의 사자성어에도 이런 걱정스러운 마음이 담겨 있다. 핵심 지지층이 무너진 것은 당면한 위기가 심각한 상태임을 보여준다. 집권 3년차를 맞아 국정 운영 방식을 재점검하고 그에 따른 쇄신이 필요한 때다. 이제는 온전히 자신의 능력으로 평가받는 ‘진실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청년들은 내일은 나아질 것인지를 묻고 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12250600005&code=990100#csidxed87b2bd665dc62b014e98a3d099f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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