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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늙은이들이 다 죽기 전에 사죄하라고"

위안부 피해자 다큐멘터리 영화 <김복동> 시사회
2019.07.25 08:58:59
 

 

 

 

"그렇게 좋게 지냈는데도 잘 기억이 안 나요. 내가 제일 나이가 어리니까 많이들 사랑을 해줬죠? 그런데도 기억이 안 나요. 잊어버리는 약을 먹었나. 어떻게 된 거야. 아주 그렇게 까맣게 몰라"

영화 <김복동>의 후반부에 위안부 피해 생존자인 길원옥은 지난 1월 세상을 떠난 또 다른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이 어떤 사람이었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영화가 끝난 뒤 진행된 대화에서 송원근 감독은 "길원옥 할머니의 현재가 위안부 피해자들이 닥친 문제가 아닌가 한다"며 "영화의 가장 큰 메시지인 기억에 대한 메시지가 이 장면에 담겨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강덕경, 김복동, 황금주, 김학순, 송신도, 정서운, 안점순, 문필기…. 우리 곁을 떠난 위안부 피해자의 이름 중 일부다. 우리는 이들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나. 그들의 삶에 대해서는 무엇을 알고 있나. 

그들 중 한 명의 삶을 들여다보고 기억할 기회가 생겼다. 위안부 피해자이자 평화·인권운동가 김복동의 삶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김복동>이다. 8월 8일 개봉을 앞둔 <김복동>의 시사회가 24일 메가박스 동대문점에서 열렸다. 

 

 

▲ <김복동> 포스터.


담담하게 풀어낸 평화·인권운동가 김복동의 삶 

김복동은 1926년 경상남도 양산시에서 태어났다. 16살이 되던 1941년, '일본이 전쟁하고 있는데 군복 만드는 공장에 손이 모자라다. 3년만 일하면 된다'는 동네 구장과 반장, 그리고 일본인의 말에 속아 위안부로 끌려갔다. 

1946년 한국에 돌아온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이 평화·인권운동가로 변모하기까지는 50여 년의 시간이 걸렸다. 1992년 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김복동은 자신이 위안부였음을 밝혔다. 1993년에는 유엔인권위원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했다. 이후 김복동은 위안부 피해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과를 받아내기 위한 지난한 싸움을 시작했다.

<김복동>은 이와 같은 김복동의 삶을 조명하지만 관객에게 눈물을 강요하지 않는다. 송원근 감독은 영화 활영을 위해 작성한 메모에 "사실에 입각해 감정을 짜내지 않는다. 그저 담담하게 던지 판단은 보는 이들이 하도록 한다"라고 적었다. 감독의 의도는 실현됐다. 그럼에도 영화는 슬프고 아리다.

 


또 <김복동>은 단순히 피해자가 아닌 평화·인권운동가 김복동을 조명한다. 주한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 제막식에서 마이크를 잡은 김복동은 당당하게 외친다.

"평화의 길이 열렸으니 일본 정부에 고한다. 이 늙은이들이 다 죽기 전에 하루빨리 사죄하라고. 알겠느냐. (일본) 대사!" 

2013년 해외 최초로 소녀상을 설치하기로 한 미국 글렌데일의 소녀상 제막식에 참석한 김복동은 '일본 총리가 앞에 있다면 무슨 말을 하고 싶냐'는 외신기자의 질문에 단단한 목소리로 답한다. 

"사죄하라지예. 과거에 천왕 때 잘못한 것을 현 정부가 나서서 사죄하는 것이 마땅치 않아요? 눈앞에 보이는 것 같으믄 사죄하라고 멱살을 잡지" 

평화·인권운동가 김복동을 조명한 덕분에 관객은 김복동이라는 이름을 부당함에 끝까지 맞서 싸운 빛나는 이름으로 기억할 수 있게 된다. 

 

 

▲ 집회에서 마이크를 잡고 발언 중인 김복동.ⓒ영화 <김복동> 배급사


위안부 피해자의 삶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일이 소중한 이유

<김복동>은 전반적으로 담담하게 김복동의 삶을 풀어내지만 한 장면에서 강력한 감정을 전달한다. '평화·치유 재단' 설립 기자회견에서 학생들이 항의하는 장면이다.

'평화·치유 재단'은 2015년 한일위안부 합의에 따라 일본 정부가 지급한 10억 엔을 운용하기 위해 설치됐다 지난 18일 해산된 재단이다. 2015년 한일위안부 합의 당시 박근혜 정부는 피해자들과 대화 없이 일본 정부와 합의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아베 총리는 합의 후에도 "(위안부) 강제연행을 직접 보여주는 증거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기자회견장에서 스크럼을 짜고 버티던 학생들은 경찰에 의해 끌려나가면서도 이렇게 외친다. 

"위안부 문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던 국회의원들은 다 어디 갔습니까!"
"끝까지 기억하고!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송 감독은 이 장면에 대해 "영상 속 학생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느낌이 있었다"며 "일본이 저렇게 해도 미래 세대는 끝까지 싸우고 기억할 것이라는 메시지는 정확하게 던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의 사과는 요원해 보이는 가운데 시간은 흐르고 있다. 이제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21명 남았다. 암울한 전망이라 꺼내기 조심스럽지만 우리와 미래 세대는 기록과 기억에 의존해 위안부 문제를 풀기 위한 싸움을 계속하게 될지도 모른다. <김복동>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최용락 기자 ama@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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