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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국회 앞 농성장을 지키는 이들의 간절한 추석 소원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9/09/14 09:35
  • 수정일
    2019/09/14 09:35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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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국회 앞에서 수백일 째 농성 중인 형제복지원 피해자와 5.18 단체들

남소연 기자 nsy@vop.co.kr
발행 2019-09-13 20:12:53
수정 2019-09-13 20: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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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에 명절의 넉넉함을 즐길 수 없는 이들이 있다. 국회 앞에서 수 백일째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형제복지원 피해자들과 5.18단체들도 비슷한 처지다.

각기 다른 이유로 국회 앞에 모였지만, 이들이 바라는 건 비슷하다. 명절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정기국회에서 수 년째 표류 중인 법안들이 통과되는 것이다.

특히 이번 국회는 20대 마지막 정기국회이기 때문에 이들의 간절함은 어느 때보다도 컸다. 만일 이번 정기국회에서도 관련 법안들이 처리되지 못한다면, 해를 넘기는 것은 물론이고 21대 국회에서 법안 논의를 다시 시작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추석 연휴를 이틀 앞둔 10일, 국회 앞에서 차려진 농성장 두 곳을 찾아 이들의 절박한 목소리를 들어봤다.

2012년부터 국회 농성 이어온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최승우 씨
 

국회 앞에서 농성 중인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최승우 씨
국회 앞에서 농성 중인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최승우 씨ⓒ민중의소리

"추석에도 이곳에 있어야죠."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인 최승우 씨에게 '추석에는 무엇을 할 계획이냐'고 묻자 허탈한 웃음과 함께 돌아온 답변이다.  

중학교 1학년 때 형제복지원에 끌려가 갖은 고초를 겪었던 최 씨는 지난 2012년부터 국회 앞에서 진상규명을 위한 법 제정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시작했다. 이제 그의 농성장 주변에는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 피해자 등 과거사 관련 단체들이 모여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과거사법)' 개정안 통과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함께 내고 있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과거사법은 지난 2010년 활동이 종료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를 다시 구성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 위원회를 통해 그동안 규명되지 못했던 국가폭력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명예 회복 조치를 취해달라는 게 피해자들의 요구다. 하지만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제동으로 관련 논의는 별다른 진전 없이 답보 상태다.  

최 씨는 "지금 과거사법 개정안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위원회에서는 통과됐는데, 자유한국당이 안건조정위 구성을 신청하는 바람에 90일 동안 묶여있다"며 "벌써 몇 년 째 논의를 해 온 건데, 무엇을 더 논의해야 한다고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국회법에 따르면, 안건조정위로 넘어간 법안은 최대 90일까지 묶여있게 된다. 과거사법 개정안은 추석 연휴가 지난 후 오는 23일까지 안건조정위에서 논의하게 되는데, 이때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전체회의로 법안이 넘어가도 또다시 계류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어 법안 처리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최 씨는 "국회는 법을 만드는 곳이 아니냐"며 "그런데도 지금 국회의원들은 자기들 당리당략만 생각하지, 국회 앞에서 농성하는 피해자들은 안중에도 없다"고 울분을 토해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을 직접 찾아가 호소도 해봤지만, 그때마다 돌아온 건 '외면'이었다.

최 씨는 "(형제복지원 사건이 일어났던) 부산이 지역구인 한 의원을 찾아갔지만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만 하더라"라며 "어떤 의원실은 '왜 자꾸 찾아오느냐'고 해서 부딪힌 적도 많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 씨는 걱정만 늘어간다. 이번 국회에서도 과거사법이 처리되지 못하면 또다시 기나긴 시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안건조정위에서 과거사법 개정안이 합의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게 저의 제일 큰 걱정"이라며 "지금 전혀 논의가 안 되면 21대 국회로 넘어가고, 그러면 똑같은 상황이 반복된다. 참 걱정이 많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농성장 건너편에는 '함께 웃는 한가위', '행복한 추석 되세요'라고 적힌 각 정당의 추석 인사 현수막을 걸려 있었다. 그 현수막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최 씨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저는 과거가 제대로 청산되지 않으면 현재에도 그 일이 반복될 테고, 미래로 더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이번에는 여야가 합의를 해서 과거사법 개정안이 본회의까지 무사히 잘 갔으면 좋겠다"고 자신의 소망을 전했다.  

"지금까지 하나도 이뤄진 게 없어, 하지만 포기 않는다" 
다시 신발 끈 조여 맨 5.18 단체들 
 

국회 앞에서 농성 중인 5.18 농성단
국회 앞에서 농성 중인 5.18 농성단ⓒ민중의소리

최 씨의 농성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5.18 단체들의 농성장이 있다. 지난 2월 국회에서 열린 '지만원 공청회'를 계기로 5.18 유공자들과 관련 시민단체들은 이곳에서 농성에 돌입했다. 매서운 칼바람을 맞으며 시작했던 농성은 어느덧 무더운 여름을 지나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곳에서 만난 김용만 농성단 홍보팀장은 "얻어낸 게 하나도 없으니 농성을 끝낼 수가 없는 괴로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 팀장은 "자유한국당 '망언 3적(김진태·이종명·김순례 의원)' 제명, 5.18 역사왜곡처벌법 제정,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을 가동하라고 요구하면서 농성을 하고 있다"며 "하지만 농성을 한 지도 200여 일이 지났지만 그중에서 아무것도 이뤄진 게 없다"고 씁쓸해했다.

실제로 '극우논객' 지만원 씨가 국회에서 공청회를 열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고, 해당 공청회에서 5.18 모욕 발언을 했던 의원들에 대한 처벌은 솜방망이에 그쳤다. 진상조사위도 여전히 관련 법안들이 통과되지 못하면서 출범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적 관심이 높았던 사안들이었지만, 5월이 지나자마자 다른 현안들에 밀려 흐지부지되는 상황이다.  

김 팀장도 이 부분을 가장 아쉬워했다. 그는 "우리가 이렇게 농성을 해도 어차피 '망언 3적' 제명이나 법안 통과는 다 국회에서 해야 할 일"이라며 "그런데 지난 5월에만 하더라도 반드시 관철시킬 것처럼 얘기하던 정치인들이 5월이 지나자마자 그런 사안들이 있기냐 했었냐는 것처럼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다"라고 지적했다.  

최악의 경우, 내년 5월까지도 이렇다 할 진전 없이 시간만 흐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도 5.18 단체들은 좌절하지 않는 듯 보였다. 오히려 '장기전'을 대비해 다시 한번 신발 끈을 조여 매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김 팀장은 "농성단 입장에서는 전열을 재정비해서 투쟁 역량을 높여야 할 때인 것 같다"며 "이번이 20대 국회 마지막 정기국회다. 내년에 설사 임시국회가 열린다고 하더라도 총선을 앞두고 있어 국회의원들 마음은 다 콩밭에 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국회의원들은 큰 그림을 보지 않고, 그때그때 당리당략만으로 움직이는 근시안적 정치를 하고 있다"며 "그래도 우리는 국회를 향해 끊임없이 '말'을 해야 한다. 농성단이 없으면 그 일을 할 사람이 없다"고 강조했다.  

김 팀장은 반드시 5.18 관련 사안들 중 하나라도 해결해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물론, 그때까지 농성을 계속 이어나가겠다는 계획도 함께 밝혔다. 

김 팀장은 "우리가 요구했던 것들을 하나도 얻지 못한 채 농성을 멈춘다는 건 저들의 시간 끌기 작전에 항복하는 것밖에 안 된다"며 "지금으로서는 농성을 계속 이어나갈 수밖에 없다"고 힘줘 말했다.  

남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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