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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젊었을 때는!” 꼰대 향기 물씬한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장의 노동관

이완배 기자 peopleseye@naver.com
발행 2019-11-17 10:05:02
수정 2019-11-17 10: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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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래프톤이라는 게임 회사 창업자이자 2017년 9월부터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이끈 장병규 위원장이 최근 『중앙일보』 및 『조선일보』와 잇따라 인터뷰를 가졌다. 요지는 “현 정부의 기업 정책이 형편없다”는 쓴소리였다.

1일자 『중앙일보』와 인터뷰 제목은 ‘내일 당장 망할지 모르는데 벤처가 어떻게 52시간 지키나-고양이 목에 방울 단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장’이었고, 9일자 『조선일보』와 인터뷰 제목은 ‘친기업·반기업 아닌 문정부는 無기업’이었다.  

정부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어도 정부가 잘 못한다고 생각하면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다. 심지어 이런 비판은 바람직하기도 하다. 그런데 비판 내용이 실로 한심해서 한 마디 안 할 수가 없다.

장 위원장의 비판은 주 52시간제에 집중됐다. 그런데 장 위원장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20대 때 2년 동안 주 100시간씩 일했다.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다. 내 인생을 위해서 한 거다. 스타트업에는 그런 사람들이 꽤 있다. 이런 스타트업에 주 52시간을 적용하는 것은 그야말로 국가가 나서서 개인의 권리를 뺏는 거다”라고 주장했다. 와, 이런 꼰대를 보겠나?

배달노동조합인 '라이더유니온' 회원이 지난달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앞에서 열린 '4차산업혁명에 안전은 없다'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라이더유니온은 면허시스템 정비 및 안전교육 강화, 이륜차 정비자격증제도 도입, 표준공임단가 등 정비 시스템 정비, 특수고용노동자의 노조할 권리 보장 및 ILO 핵심협약안 준, 산재적용제외신청 제도 폐지 및 산재보장성 강화, 보험료 현실화를 요구했다.
배달노동조합인 '라이더유니온' 회원이 지난달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앞에서 열린 '4차산업혁명에 안전은 없다'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라이더유니온은 면허시스템 정비 및 안전교육 강화, 이륜차 정비자격증제도 도입, 표준공임단가 등 정비 시스템 정비, 특수고용노동자의 노조할 권리 보장 및 ILO 핵심협약안 준, 산재적용제외신청 제도 폐지 및 산재보장성 강화, 보험료 현실화를 요구했다.ⓒ뉴스1

꼰대 역사에 길이 남을 명문장 

본격적으로 이 문제를 논하기 전에 “나 젊었을 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꼰대짓의 전범(典範)을 먼저 소개한다. 요즘 자유한국당 근처에서 기웃거리며 보수 경제학의 맏형을 자처하는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가 2017년 자신의 SNS에 남긴 글이다. 이 글은 대한민국 꼰대 역사에 길이 남을 명문장이다. 매우 긴 글인데 지면 사정상 3분의 1로 발췌했다.  

이 땅을 헬조선이라고 할 때 한번이라도 당신의 조부모와 부모를 바라보고 그런 이야기를 하라. 초등학교부터 오뉴월 태양 아래 학교 갔다 오자마자 책가방 팽개치고 밭으로 가서 김을 매고…, 저녁이면 쇠먹이를 거두려고 강가로 가고, 겨울이면 땔감을 마련하려고 산으로 갔던 그런 분들을 쳐다보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라.  

대기업이 착취를 한다고요? 한국에 일자리가 없어서 대학을 나오고도 독일의 광산 광부로 갔고 간호사로 갔던, 그래서 국제미아가 되었던 당신의 할아버지 할머니 시대의 이야기를 물어 보고 그런 이야기를 하라. 

나는 부모 모두 무학으로 농부의 아들이고, 그 것도 땅 한 평 없던 소작농의 아들로 자랐다. 중학교 때까지 등잔과 호롱불로 공부했다. 나는 대학 4년 내내 아르바이트로 내 생활비를 마련하며 다녔고, 때로는 부모님께 도움을 드리면서 다녔다. 

그렇게 야근하는 날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은 삼겹살인줄 알고 살았다. 그렇게 살아 왔기에, 무책임한 노조가 망가뜨리는 회사를 보아왔기에, 우리보다 잘 사는 것으로 알았던 많은 나라들이 꼬꾸라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리고 미국과 일본이 어떻게 잘 사는 사회인지 보았기 때문에, 나는 당신들처럼 아프다고 못하고 힐링해야 한다고 응석을 부리지 못한다.

어떤가? 감동이 물밀듯이(!) 밀려오지 않나? 꼰대 능력을 토익(TOEIC)처럼 테스트한다면 이병태 교수는 900점을 훌쩍 넘길 실력자임이 분명하다. 

“나는 어렸을 때 불우했어요”라는 심리 

도대체 이들은 왜 “나 어렸을 때는 말이야” 이러면서 꼰대짓을 할까? 행동경제학과 심리학에서는 이를 불우한 어린 시절 효과(Hard-knock life effect)라고 부른다. 2015년 『실험사회심리학저널(Journal of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에 소개된 스탠퍼드 대학교 테일러 필립스(Taylor Phillips) 경영학과 교수의 실험을 살펴보자.  

필립스는 백인들을 두 그룹으로 나눈 뒤 그들에게 얼마나 어렵게 살아왔는지를 묻는 취지의 다섯 문장을 제시했다.  

①:내 인생은 어려움으로 가득 찼어요(My life has been full of hardships).
②:나는 수많은 고난을 겪었어요(There have been many struggles I have suffered).
③:내 인생에는 수많은 장애물이 있었어요(My life has had many obstacles).
④:내 인생은 매우 쉬웠어요(My life has been easy). 
⑤:내 인생에는 도저히 극복하지 못할 어려움이 있었어요(I have had many difficulties in life that I could not overcome). 

응답자는 각 문장에 1~7점 사이의 점수를 매겼다. 예를 들어 “내 인생은 어려움으로 가득 찼어요”라는 문장에 완전히 동의하면 7점, 전혀 동의하지 않으면 1점을 주는 식이다. 단 ④번 문장은 다른 문장들과 반대로 “내 인생은 매우 쉬웠어요”였기 때문에, 집계할 때 이 문항에 대한 점수만 거꾸로 계산했다. 이 말은 다섯 항목 모두 점수가 높을수록 응답자가 스스로의 삶을 고단했다고 생각했다는 뜻이다.  

집계 결과 백인들의 고난 수치는 중간쯤인 3.8점이 나왔다. 백인들은 자기의 삶을 평범하게 생각했다는 이야기다.  

이번에는 새로운 백인들에게 똑같은 다섯 문장을 제시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점수를 매기기 전에 한 문단을 소리 내서 읽도록 지시했다. 그들이 읽은 문단의 내용은 이랬다.

“최근 반세기 동안 인종차별 문제에 관심이 매우 높아졌지만, 그럼에도 오늘날 미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백인들이 여러 면에서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주거, 의료, 구직, 학업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백인이 흑인보다 혜택을 더 많이 받는다고 조사됐습니다.”

이 한 문단을 읽은 백인들에게 아까와 마찬가지로 다섯 문장에 대한 점수를 매겨달라고 요청했다. 그랬더니 이들의 고단함 숫자는 4.4점으로 집계됐다. 첫 팀의 평균 3.8점보다 수치가 훨씬 높아진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까? 사람들은 “어렸을 때 어렵게 살았어요?”라고 평범하게 물으면 그냥 솔직하게 대답을 한다. 그런데 “백인이 모든 면에서 흑인보다 훨씬 유리해”라는 문장을 읽으면, 백인들은 ‘사람들이 우리 백인들의 기득권을 공격하려 하는구나’라는 위협을 느낀다.

이때부터 백인들은 자기가 어렸을 때 얼마나 어렵게 살았는지를 과장하기 시작한다. “비록 내가 백인이고, 지금 꽤 괜찮은 직장을 다니고 있고, 집도 한 채 보유하고 있지만 그건 절대 백인의 기득권 덕분이 아니다. 다 내가 고생한 덕분이지”라는 말을 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이들은 “내가 어렸을 때 얼마나 어렵게 살았냐면!”이라는 장황한 설명을 시작하는 것이다.

왜 그들은 꼰대짓을 할까? 

이 연구를 한국 사회에 적용해보자. 이병태 교수의 꼰대짓은 이 연구에 너무나 잘 들어맞는다. 왜냐하면 이 교수가 “나 어렸을 때에는!”을 읊은 시기가 2017년 7월, 즉 정권교체가 막 이뤄진 직후였기 때문이다.  

성인이 된 이후 평생 기득권을 누리며 잘 살았는데 촛불 혁명으로 정권이 바뀌었다. 적폐청산의 목소리도 높아진다. 이러면 당연히 자신의 기득권이 위협을 받는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내가 어렸을 때 얼마나 어려웠냐면” 이런 꼰대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 (자료사진)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 (자료사진)ⓒ제공 = 뉴시스

장병규 위원장도 비슷할 것이다. 자본가로 살면서 초과노동 착취로 잘 살아왔는데, 주 52시간제로 그 기득권이 위험해졌다. 그러니 “나 젊었을 때에는 주 100시간씩 일했어”라는 꼰대 소리가 등장한다. 결국 이런 꼰대짓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반항이라는 이야기다.

말이 나온 김에 장병규 위원장한테 한 마디만 더 하겠다. 지금 선진국의 노동 시간이 어떨 것 같은가? 프랑스의 법정 노동시간은 주 35시간, 최대 44시간이다. 독일은 주 5일 노동을 기준으로 40시간 노동에 연장 노동 8시간이 가능하다. 영국도 주 48시간 제도를 채택했다.

미국은 사무직에 한해 주 40시간을 넘겨 자유롭게 연장 노동을 할 수 있긴 하지만, 이는 연봉 13만 4004달러(약 1억 6000만 원) 이상을 받는 노동자들에게만 적용된다. 장병규 씨. 당신 회사에서 노동자들에게 연봉 1억 6000만 원씩은 당연히 주고 그런 말을 하는 거겠죠?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 교수가 2018년 전경련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주 52시간제에 관한 질문을 던지자 크루그먼은 “한국 같은 선진국에서 노동자들이 아직도 주 52시간을 일한다고요?”라고 깜짝 놀랐다는 일화가 있었다. 당시 『머니투데이』의 기사 제목은 ‘선진국인데 주 52시간요?…韓 근로시간에 깜놀한 크루그먼’이었다.

장병규 씨, 크루그먼이 반(反)기업적 경제학자라서 저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프랑스, 영국, 독일이 4차산업혁명에 관심이 없어서 저런 제도를 운영하는 것도 아니다. 자기 생각이 옳다고 고집할 수는 있는데, 그게 유일한 진리인 줄 알고 『중앙일보』나 『조선일보』에 대고 꼰대 소리를 하는 건 좀 많이 곤란하다. 

4차산업혁명은 인공지능을 바탕으로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방향으로 진행 중이다. 이 속도가 너무 빨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기본소득을 도입해 일자리를 잃은 사람의 소득을 보장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이런 선진적 논의가 진행되는 판에 한국의 4차산업혁명위원장은 노동시간 감축은커녕 “나 젊었을 때에는 주 100시간씩 일했어”라는 꼰대 소리나 하고 있다. 이런 젠장! 4차산업혁명위원장 생각이 2차산업혁명 시대에 머물러 있으니 그게 될 일이었겠나?

이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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