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노동자 법적 보호를 위한 연대 회원들이 2013년 6월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1회 국제가사노동자의 날 기념 캠페인’에서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와 국회에 ‘국제노동기구(ILO) 가사노동자보호협약 비준’과 ‘가사노동자 인정 않는 근로기준법 예외 규정 개정’ 등을 촉구했다. / 연합뉴스
채선자씨(가명·64)는 매일 오전 5시에 눈을 뜬다. 집안 살림을 대강 정리하고 집을 나서는 시각은 오전 6시 10분. 지하철로 1시간 거리에 있는 가정집에서 가사도우미 일을 하고 있다. 오전 7시 10분부터 오후 7시 30분까지 꼬박 12시간을 근무한다. 그가 월~금요일 꼬박 일해 매달 받는 급여는 200만원이다.
이곳에서 일한 지 4개월 됐다. 이전에는 한 곳에서 10년을 근무했다. 조선족인 채씨는 2007년 말 한국으로 건너와 직업소개소를 통해 한 가정집을 소개받았다. 2007년 12월 말부터 그곳에서 일한 채씨가 처음 받은 급여는 120만원, 가끔 ‘뜻밖의 보너스’도 있었다. “바깥 사장님이 미국을 자주 왔다갔다 하셨는데 몇 개월에 한 번씩 집에 오실 때마다 ‘고생이 많다’며 50만원씩 주고는 했어요.” 일한 지 6년째 되던 해 받은 월급이 160만원이었다. 그런데 고용주의 결혼한 딸의 집에서 일하던 한국인 가사도우미가 다치는 일이 벌어졌다. 딸이 후임을 구하지 못하자 고용주는 채씨에게 “딸의 집에서 일해달라”고 했다. 채씨는 2014년 5월부터 고용주 딸의 집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입주 도우미로 꼬박 4년 일해
채씨는 입주 도우미로 이곳에서 4년을 꼬박 일했다. 월급은 220만원. 외출은 토요일 오후 2시부터 일요일 오후 7시까지 주어졌다. 급여가 160만원에서 60만원 더 올랐지만 관리해야 할 일 역시 늘었다. “아파트가 80평대라 혼자 청소하려면 고생했지요.”
채씨의 일과는 오전 6시에 시작해 오후 10시에 마무리됐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 부부 내외와 오전 7시 10분이면 초등학교 통학버스를 타야 하는 첫째 아이 식사를 먼저 챙겨 보냈다. 이어 둘째를 씻기고 먹여 오전 9시 30분까지 어린이집에 보냈다. 오후 6~7시쯤 퇴근하는 엄마의 저녁까지 챙기고 나면 채씨가 식사를 했다. 설거지 및 청소를 마치면 채씨는 아이들을 데리고 잤다. “애들이 나랑 자려고 하니까 우리 셋이 모여 잤지요. ‘자기 전에 책 읽어줄 테니 책을 방에 가져다 놔라’ 하면 네 권씩 들고 오는데 읽어주다 보면 하나씩 꾸벅꾸벅 졸아요. 그러면 나도 같이 잠들었지요”라고 말했다.
채씨는 그러나 지난해 3월 이곳을 나왔다. 퇴직 의사를 먼저 밝힌 것은 채씨였다. 아파트 이웃이 고용주에게 “채씨가 아이에게 너무 강하게 말한다, 주차장에서 전화하느라 아이 손을 놓았다” 등의 말을 전달한 것이 화근이었다. 채씨는 해명하고도 분이 풀리지 않아 만류를 뿌리치고 집을 나왔다. 얼마 뒤 채씨의 통장에는 채씨가 일한 ‘근무일수×7만7000원(일당)’의 급여가 들어왔다.
채씨는 결국 지난해 6월 고용주를 상대로 퇴직금 청구소송을 냈다. 소송 결과는 당연히 채씨의 패소였다.
가사노동자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에 해당되지 않는다. 또 ‘근로자 퇴직급여보장법’이 보호하는 근로자가 아니다. 1심 재판부는 기각사유 한 줄 없이 패소판결을 내렸다. 항소심 재판부 역시 “퇴직급여법 제3조 단서는 동거하는 친족만을 사용하는 사업 및 가구 내 고용활동에는 법의 적용을 배제하고 있고, 원고는 ‘가구 내 고용’에 해당하므로 퇴직급여법이 적용됨을 전제로 한 소송 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지난 9월 패소판결을 내렸다.
또 채씨가 낸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명시했다.
“퇴직급여법상 사용자의 근로자에 대한 퇴직급여제도의 설명의무를 어느 범위의 사업 또는 사업장까지 인정할지는 그 당시 사회·경제·문화적 여건을 고려하여 입법기관의 재량에 맡겨져 있으므로 위 규정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보기 어렵다.”
즉 가사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 근로기준법 및 퇴직급여법이 처음 제정된 지 6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사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사회·경제·문화적 여건’상 헌법이 정한 기본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고용주 상대 퇴직금 청구소송 패소
가사노동자는 일을 하고, 이에 따른 급여를 받더라도 ‘노동자’로 보호받지 못한다. 근로기준법 제11조 제1항이 예외로 정한, ‘노동자가 아닌 노동자’다. ‘가사노동자는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대명제는 1953년 이 법이 처음 제정된 이후부터 확고하게 우리 삶에 자리 잡았다. 가사노동자가 노동자가 아니면 가사일 역시 노동이 아니다. 가정주부를 흔히 ‘집에서 논다’고 표현하는 편견 가득한 문장 역시 법이 보장하는 한도 내에서 ‘맞는 말’이 되고 있는 셈이다.
때문에 가사노동자는 노동관계법이 정한 그 어떤 법의 보호도 받을 수 없다. 퇴직금·최저임금·산재보험 적용에서도 모두 제외된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아도 불법이 아니다. 행여 일을 하다 다쳐도 고용주는 이를 부담할 법적 책임이 없고,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아도 ‘가사노동’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고용주를 고발할 수도 없다. 채씨와 같이 퇴직금 소송을 내본들 패소다. 법이 그렇게 정해놓았기 때문이다. 고용주는 채씨에게 퇴직금을 줄 의무도, 법적 책임도 없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이다. 18대 국회에서 처음 제정법안으로 발의됐다. 그러나 18·19대 국회 모두 ‘임기만료 폐기’됐다. 20대 국회에서도 재발의됐지만 역시나 임기만료 폐기를 앞두고 있다. 입법자들은 가사노동자가 노동자로서의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고, 이들을 여타 노동자들과 같이 보호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인정하면서도 이들을 위한 법안 통과에는 소극적이다.
농촌 10대 여성들의 무작정 상경과 식모 취직 실태를 다룬 경향신문 1965년 2월 6일자 보도.
이유는 복잡하다. 가사노동자의 업무 형태, 고용방식 등이 각기 달라 이를 하나로 포괄하는 법 제정 자체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지난 3월 18일 열린 국회 환경노동소위 제1차 회의록 등을 살펴봐도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안’은 직업소개소나 O2O(Online to Offline)를 통해 가정에 파견되는 가사노동자 외에 ‘비공식부문 가사노동자(알선업체 및 공공기관을 통해 파견된 것이 아닌, 개인이 자체적으로 계약을 맺어 근로하는 노동자)’까지 보호해주는 법으로 보기는 어렵다.
최영미 한국가사노동자협회 대표는 “종국에는 비공식적으로 근무하는 가사노동자들도 사업체 안으로 들여와 보호하고, 이용자는 불만사항 등을 사업체에 알려 개선을 요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이 법이 공표돼도 여전히 다수를 차지하는 비공식부문 가사노동자들을 포섭하고 보호할 방법은 없는 셈이다.
그러나 마냥 ‘가사노동자 보호’만을 주장하기도 어렵다. 가사노동자의 권리보호 이면에는 기혼 직장여성의 노동권 보장이라는 문제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여성가족부와 통계청이 지난 7월 발표한 ‘2019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 자료에 따르면 2018년 상용노동자 5인 이상 사업체의 여성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은 244만9000원이다. 또 여성 임금근로자 10명 중 4명 이상은 일자리 안정성이 떨어지는 비정규직이다. 임금 역시 남성임금의 69% 수준에 불과하다.
2019년 12월 5일 기준 강남지역 가사도우미 월 급여(출퇴근)는 200만~300만원 후반대까지 다양하다. 13년차 가사노동자 권모씨(65)는 “한국인 베이비시터는 주 5일 10시간 기준으로 220만원 이상은 받으려 한다”면서 “요즘 한국인은 입주 도우미로 잘 안 들어가려고 하기 때문에 대부분 조선족들이 입주 도우미를 한다. 주 6일 근무 토~일 반일 휴무를 주면 적어도 250만~300만원은 줘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의 시세만으로도 맞벌이 부부 중 한 사람의 월급이 고스란히 가사노동자 급여로 들어가야 하는 셈이다.
‘노동자’로 보호 못 받는 가사노동자
무역 관련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송모씨(38·여)는 월급의 3분의 2를 아이 돌보미 선생님 급여로 쓴다. 송씨의 월평균 급여는 300만원대 초반이다. 돌보미의 월 급여는 210만원이다. 여기에 명절마다 20만원씩 상여금을 주고, 생일 때도 10만원을 챙겨준다. 송씨는 “집에 와서 저녁을 차릴 여유가 없다 보니 사 먹는 비율이 높은데 식비까지 합하면 내 월급을 전부 시터비용과 식비로 쓰고 있다”고 말했다. 송씨의 월급의 상당액을 가사노동자 급여로 지출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송씨가 지급하는 가사노동자의 시간당 임금은 2019년 최저임금 8350원보다 낮다. 송씨는 “만약 시터 이모님 월급을 최저임금에 맞춰서 드려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때는 내가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돌보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고 말했다.
송씨의 사례처럼 여성의 노동에 기대 여성이 노동할 수 있는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가사노동자 보호를 위한 각종 제도 및 법 개선은 기존 직장여성의 경력단절이라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통계청이 지난 11월 26일 발표한 ‘2019년 상반기 지역별 고용조사 중 경력단절여성 현황’에 따르면 직장을 그만두는 사유 중 육아(64만9000명·38.2%)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이어 결혼(52만2000명·30.7%), 임신·출산(38만4000명·22.6%), 가족돌봄(7만5000명·4.4%), 자녀교육(6만9000명·4.1%) 순으로 나타났다. 육아 때문에 직장을 그만뒀다고 응답한 경력단절 여성의 비중은 2017년 58만6000명(32%), 2018년 61만9000명(33.5%)으로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가사노동자 보호와 직장여성 노동권
부모들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하는 맞벌이 부부에게 육아와 가사를 대신 맡아줄 가사노동자는 사실상 ‘최후의 보루’다. 간병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들에 대한 처우 개선 및 법을 통한 보호는 필요하지만 이들의 처우 개선이 또 다른 여성 경력단절자를 만들 수 있는 한계선 안에서 두 ‘여성’은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 셈이다. 가사노동자도 법이 정한 노동자로 당연히 보호받아야 할 존재다. 그러나 그들이 노동자로 인정받는 노력과 동시에 기존 직장여성들이 직업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보호장치 마련을 위한 노력도 필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채선자씨는 지난 9월 26일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다(2019헌바454). 헌법재판소는 이제 근로자 퇴직급여보장법 제3조 단서 중 “가구 내 고용활동에는 적용하지 아니한다” 부분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결과는 알 수 없다. 가사노동자들이 여전히 1953년에 머물러 ‘식모’로 살아야 할지, 법이 보장한 ‘노동자’로 살아갈 수 있을지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달렸다.
노동권·사회보장권·건강권·인격권이 뭐예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15년 9월 국가인권위원회의 연구용역을 받아 작성한 ‘비공식부문 가사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들은 노동권과 사회보장권, 건강권, 인격권을 모두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명확히 규정되어 있지 않은 근무시간 탓에 장시간 근무를 하고, 4대 보험 가입 역시 되지 않았다. 가사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근골격계 이상 증상을 경험했고, 간병인의 경우 정신적 스트레스가 높았다. 인격권 침해사례도 많았다. ‘비공식부문’ 가사노동자란 ‘노동법과 사회보장제도’ 등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를 의미한다.
●노동권 8년째 베이비시터 일을 하는 한동숙씨(61)는 지금까지 근로계약서를 한 번도 작성하지 않았다. 산후도우미로 처음 일을 시작해 아이가 5살 되던 해에 첫 집에서 일을 그만뒀다. 앞으로 등·하원 도우미만 있으면 될 것 같다는 통보를 받아서다. 한씨는 월 180만원의 급여로 생계를 꾸려갔기 때문에 등·하원 도우미 월급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웠다. 한씨는 오전 7시 30분부터 아이 부모 중 한 명이 퇴근할 때까지 근무했다. 하루 12시간 근무한 날도, 부부가 모두 야근을 해 15시간 이상 근무한 날도 있었다. 별도의 추가수당은 없었다. 현재 일하고 있는 집 역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 친한 언니가 넘겨준 가정집 일을 하면서 친한 언니가 받던 급여 180만원을 동일하게 받고 있다.
자료에 따르면 설문에 응답한 가사노동자 가운데 육아도우미는 전체 응답자(139명)의 절반 이상인 54.7%(76명)가 주당 40시간 이상 근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6시간 이상~39시간 미만도 29.5%(41명)로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노인 간병인들은 전체 응답자(23명)의 65.2%(15명)가 40시간 이상, 26.1%(6명)가 16시간 이상~39시간 미만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상 1회 방문당 2~3시간 근무를 미리 약속하는 경우가 많은 가사도우미는 16시간 이상~39시간 미만이 67.3%(138명), 15시간 이하 24.4%(50명)로 전체 응답자(205명)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사회보장권 이들은 장시간 노동을 하면서도 4대 보험 가입에서 배제돼 있다. 이들은 의무 가입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일반 가정집은 사업주 등록이 돼 있지 않기 때문에 고용주가 보험 가입을 해주려 해도 가입 자체가 불가능하다. 박귀자씨(58)는 “애 아빠가 사업하시는 분은 회사 명의로 4대 보험 가입을 해주는 집도 있다”면서 “그런데 세금 떼어 가는 것도 싫고, 애 봐주러 가면서 무슨 보험이냐 싶어 보험에 들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건강권 많은 가사노동자가 아프거나 다쳐도 고용주로부터 치료비 등을 요구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전체 가사노동자 응답자의 55~77%가 근골격계 이상을 겪고 있다고 답했지만 치료비는 사실상 각자의 몫이다. 권모씨(63)는 “애를 업다 보면 손목 인대가 자주 나간다. 그러면 파스라도 붙이고 일을 해야 하는데 파스값을 달라고 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이어 “친척이 간병인 일을 하는데 어깨와 허리, 무릎까지 다 아파도 일을 쉴 수가 없으니 토요일마다 한의원에 가서 자주 침을 맞는다더라”고 했다.
●인격권 신체적 고통보다 가사노동자들이 가장 고통받는 부분이 인격침해다. 박귀자씨는 “아이 엄마가 음식을 해놓으면 내가 퇴근 전까지 먹이는 일만 하기로 처음 약속을 했는데 점점 ‘그 정도도 못 해주시냐’는 식으로 변해갔다”며 “아이 돌보는 일만 하기로 계약해도 결국 살림살이까지 해주길 요구하기 때문에 심정적으로 불편함을 느낄 때가 있었다”고 말했다. 한동숙씨는 “독감이 유행할 때 아픈 애 보면서 끼니를 거르다 보니 속에서 안 좋은 냄새가 났는데 애 엄마가 말을 하다 말고 거북한 표정을 지었다. 인간적으로 무시당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실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34.6%(가사)~60.2%(육아)가 ‘업무 이상의 지나친 요구’를 받은 경험이 있으며, 14.8%(육아)~31.8%(가사)가 과도하게 감시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간병인의 경우 특히 인간적인 무시를 경험했다고 응답한 사람이 전체 응답자의 31.2%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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