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로 한수원이 국회에 제출한 2014년 7월 현재 '고용형태별 원전 직원 현황'을 보면, 전체 핵발전소 종사자 1만9693명 가운데 한수원 정규직은 6771명(34%), 비정규직은 1114명(6%)이고, 3분의 2인 1만1808명(60%)이 협력업체(하청업체) 직원이었다.
방사선 뿜어내는 핵연료봉 가까이서 근무
▲ 김종일씨는 새로 시작한 일을 하기 위해 늦은 오후 숙소를 나섰다. 숙소는 안동 시내에 있는 모텔이다. 암이 발병해 청과 유통사업도 접어야 했다. 경제적 자립을 위해 지인들의 소개로 새로운 일에 도전했다. | |
ⓒ 이희훈 |
A사에 들어간 김씨는 월성 원전 4호기 계측 공정에 투입됐다. 이 달(4월)에는 모두 17일을 일했다. 같은 해 7월에는 월성 원전에서 일하는 한수원 직원들을 위한 사택 신축공사 현장에서 일했다. 여기서 흔히들 '잡부'로 부르는 작업 보조를 이틀간 했다. A사에서 일한 기간은 19일이 다였다.
원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가슴에 휴대용 방사선측정기(TLD)를 착용한다. 방사선 수치를 기록하는 기계다. 방사선은 무색, 무취, 무향이다. 기계 장치가 아니면 흔적을 발견하기 어렵다.
17일간 일할 때 김씨에게 누적된 방사선 수치는 1.66mSv(밀리시버트)였다. 7월에 이틀 일할 때는 1.42mSv가 누적됐다. 피폭량만 살펴보면 그는 19일간 일해 3.08mSv가 누적됐다.
2009년 7월 김씨는 다른 하청업체인 B사에 들어갔다. 이번엔 단기 계약직이 아니라 일당을 받고 일하는 일용직 근로자로 고용됐다. 월성 1호기 원자로 설비 개선 공정 중 정비 보조 업무에 투입됐다. 방사선을 뿜어내는 핵연료봉 가까이서 일했다. 때론 방사성 폐기물을 운반해 반출했다.
일할 때는 머리에 헬멧을 쓰고 입은 마스크로 가렸다. 방제복을 입고 납조끼도 착용했다. 이따금 몸을 구부려 작업할 때면 자세가 불편했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숨이 막혔다. 그래서 때때로 감독관의 눈을 피해 안전 장비를 벗었다.
감독관인 한수원 직원은 CCTV로 작업을 지시했다. 감독관의 말에 따라 볼트를 조이고 풀었다. 계획에 없는 행동은 허락되지 않았다. 감독관은 '작업 보조'를 조정했을 뿐 현장엔 들어오지 않았다. 방사선 수치가 높은 현장에는 하청 업체직원들만 들락거렸다. 그는 당시 자신이 "마루타였다"라며 "방사선 수치가 높을수록 하청업체, 낮을수록 한수원"이라고 했다.
한전 KPS 직원들은 출입하는 근무자들의 휴대용 방사선측정기를 깐깐히 살폈다. 이따금 "선량 다 되어가네"라고 말했다. 선량은 방사선 피폭량 허용치를 말하는 거였다. 이런 소리를 들은 날에는 일할 때 휴대용 방사선측정기의 전원을 'OFF' 했다. 어떤 때는 현장 구석에 휴대용 방사선측정기를 숨겨놓기도 했다.
이유가 있다. 연간 방사선 피폭량이 허용치(50mSv)를 넘으면 강제로 일을 쉬어야 했기 때문이다. 다음날 또 출근하려면 휴대용 방사선측정기의 작동을 멈춰야 했다. 하루라도 더 일해 돈을 벌려면 이래야 했다.
그런데 김씨가 아는 형은 달랐다. 그의 말에 따르면 어느 날 아는 형의 휴대용 방사선측정기의 수치가 100mSv 가까이 측정됐다.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술렁거렸다. 그 형이 더 이상 일을 못하게 될까봐 걱정했다. 예상은 빗나갔다. 그 형은 현장이 아니라 사무 업무로 근무지가 변경됐을 뿐 해고되지 않았다. 동료들 사이에 '일 그만두면 몇 년 치 방사선이 한 번에 피폭됐다고 떠들고 다니면서 소문 낼까봐 사무직으로 뺐다'란 뒷말이 돌았다.
작업현장에서 나오는 직원들은 체내외 전신 스캔 방사선 검사(홀바디 검사)를 받는다. 하루는 홀바디 검사 장비가 고장났다. 한전 KPS 직원은 '기계가 방사선에 오염돼 고장났다'라며 '오늘은 측정 없으니 그냥 나가라'라고 했다.
이렇게 2009년 7월부터 2012년 4월까지 총 327일간 일한 뒤 26살 때 월성 원전을 떠났다.
방사선 수치는 기록으로 남는다
김종일씨가 월성 원전에서 일하면서 누적된 방사선 수치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국가방사선작업종사자 안전관리센터에 기록으로 남았다. 앞서 말한 대로 2008년 4월 1.66mSv, 7월 1.42mSv 피폭됐고, 2009년 7월 ~ 2010년 3월까지 9개월간 21.32mSv 피폭됐다. 이어서 2010년 11월 0.49mSv, 12월 0.48mSv, 2012년 2월 0.48mSv, 3월 0.19mSv 피폭됐다.
나머지 기간은 방사선 수치가 0.1mSv 이하로 기록 대상이 안 됐다. 휴대용 방사선측정기를 착용하지 않아 기록에 남지 않은 경우도 있다. 2011년은 1~4월까지 월성 원전 1호기에서 일했으나 방사선 측정 기록은 남지 않았다.
지난 2013년 당시 민주당 최재천 의원과 에너지정의행동은 '한수원 출입 방사선 종사자 업체별 인원수 및 총피폭량 자료'를 공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2012년 한수원 출입 방사선 종사자 1만 4715명 가운데 한수원 노동자 5250명의 1인당 피폭선량은 0.14mSv이다. 가장 피폭선량이 많은 월성 1호기 압력관 교체 공사에 투입된 하청업체 노동자의 수치는 2.65mSv로 18.9배인 것으로 나타났다. 원자력안전정보센터는 '2015년 원자력안전연감'을 인용해 원전 노동자의 평균 방사선 피폭량이 0.58mSv라고 밝혔다.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는 1인당 원전 노동자의 연간 피폭량 허용치는 50mSv, 5년간 합산 피폭량은 100mSv 이하라고 규정하고 있다. 김종일씨의 총피폭선량은 ICRP 연간 피폭량 허용치 50mSv보다는 낮으나, 한수원이나 원자력안전정보센터가 내놓은 원전 노동자의 평균 방사능 피폭량보다는 높다.
그의 총 피폭량에 대해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직업환경의학교실은 법원에 낸 사실조회서에서 이렇게 판단했다.
2009년 7월부터 연간 누적피폭선량을 새로 계산하기 시작하였을 때, 2010년 3월까지 단 9개월 만에 누적피폭선량이 21.32mSv에 도달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방사선 종사자의 연간 피폭선량한도가 특정 연도에 일시적으로 50mSv까지 허용될 수 있지만, 5년 동안 누적하여야 하는 경우에는 전체 100mSv, 즉 일년 평균 20mSv이하로 5년간 유지하여야 피폭선량 한도를 초과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9개월 만에 누적피폭선량이 21.32mSv라는 것은) 피측정자가 2010년 3월 이후 앞으로 상당기간 계속 일을 하고자 한다면 더이상 똑같은 방식으로는 상황이 지속될 수 없는 피폭선량에 도달하였다고 판단된다.
월성 원전 그만 둔 이듬해 암 3기 판정
▲ 김종일씨의 숙소는 모텔이다. 모텔에서 "달방"을 얻어 직장까지 출퇴근한다. 숙소에서 쉬다 회사의 연락을 받고 다시 방을 나섰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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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27살 되던 해 대출을 받아 유통업을 시작했다. 과일과 야채를 소매업체에 납품하는 일이었다. 벌이도 괜찮았다. 열심히 일하면 대출금도 몇 년 안에 갚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꿈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다.
2013년 새해 아침 자고 일어났는데 피곤했다. 3일이 지나고 5일이 지났다. 몸에 열이 나고 식은땀을 흘렸다. '볼거리'에 걸린 것처럼 목이 심하게 부었다. 증세가 심상치 않았다. 울산대학교 병원을 찾아갔다. 의사가 '혼합세포 충실성 고전적 호지킨 림프종, 머리·얼굴 및 목의 림프절'이라고 진단했다. 생경한 낱말이었다. 의사는 '악성 종양으로 흔히들 말하는 암'이라고 했다. 암 3기 판정을 받았다. 눈앞이 캄캄했다.
2013년 1월 8일 입원했다.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머리를 삭발했다. 항암치료를 시작한 지 3년째 되던 2015년 어느날 고향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원전 주변에 사는 주민들이 갑상선암 공동소송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생각해 보니 원전에서 일할 때도 비슷한 소문이 직원들 사이에 떠돌았다.
친구가 말해준 무료 법률 상담소를 찾아갔다. 여기서 변영철 변호사를 만났다. 3월 변영철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요양신청을 했다. 근로복지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그에게 '불승인 처분'을 통보했다.
"원고(김종일씨)가 업무수행 중 전리방사선(방사능)에 노출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노출량이 많지 않고 이 사건 상병 발생과의 연관성에 대한 근거가 미약하며, 이 사건 상병 발병 당시 원고의 연령이 일반적인 상병 호발 연령인 점과 노출력에 의한 잠복기가 짧았던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이 사건 상병에 대한 업무관련성을 인정하기 어려움."
▲ 김씨는 산재요양청구 소송 1심에서 패했다. 그 후 암 완치 판정을 받고 새로운 직장을 얻어 고향을 떠나 안동에서 일을 한다. 몸의 완전한 회복과 경제적인 재기를 꿈꾸고 있다. 또한 소송에서도 승소해 다른 피해자들의 디딤돌이 되고자 한다고 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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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와 의논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2018년 울산지방법원은 그가 제기한 '산재요양 불승인처분 취소'에 대해 '원고(김종일씨)의 청구를 기각한다'라고 판결했다. 법원은 "이 사건 상병의 정확한 발병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라고 전제하면서도 의학적 소견과 피폭방사선량, 전리방사선 노출에 따른 위험증가의 정도 등을 종합해 봤을 때 "업무와 상병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라며 근로복지공단의 손을 들어줬다.
1심에서 진 것이다. 이 해에 암은 완치 판정을 받았다.
- 소송을 제기한 이유는 무엇인가?
"디딤돌이 되고 싶었다. 병을 앓고 나니 그런 마음이 들었다. 똑같은 피해자가 분명히 또 나올 텐데, 그 사람들을 위해서 길을 터주고 싶었다. 이제는 누군가 원전 노동의 위험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확천금을 노리고 한 소송이 아니다.
솔직히 1심이 기각되고 항소를 포기할까 고민했다. 이제 병이 다 나아서 여한이 없다. 여기서 멈춰도 손해볼 게 없다. 그런데 변영철 변호사가 알아서 할테니 항소를 하자고 했다.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 원전에 반대하나?
"아니다. 원전은 가성비가 가장 좋은 발전으로 알고 있다. 석탄 화력은 찌꺼기(분진)가 발생하고 환경에도 좋지 않다."
- 법원이 암 발병과 방사선 피폭의 연관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아예 배제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그가 언급한 의견이란 앞서 말한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직업환경의학교실이 울산지방법원에 제출한 '사실조회서'다. 여기엔 근로복지공단의 판단과 달리 암 발병과 방사선 피폭의 연관성이 있다고 했다.
"김종일에게서 진단된 호지킨 림프종과 한전 KPS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면서 노출된 전리방사선(방사능)과의 원인적 연관성은 1) 지금까지 조사된 가장 큰 규모의 원자력발전소 및 관련산업 종사자에게서의 림프종 및 백혈병 발생 증가가 보고 되고 있다는 점. 2) 일부 조사규모에 따른 통계적 유의성의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조사에서 노출 이후 초과 상대위험도 등 위험의 증가가 보고된다는 점. 3) 원고에게서 진단된 호지킨 림프종은 나이가 들면서 그 발생이 증가하는 혼합 세포 충실형으로서, 그 호발 연령이 70대 이후로 보고되는 점에서 비추어 발병자는 매우 젊은 나이에 기대하기 힘든 희귀한 암에 걸렸다는 점. 4) 지금까지 알려진 호지킨 림프종의 다른 발병원인들을 원고 김종일에게서 특별히 찾을 수 없다는 등에 비추어 그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판단된다."
변영철 변호사에게 연락해 항소심에서 판결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는지 물었다. 변 변호사는 대한의사협회가 작성한 '감정촉탁' 문서를 보내왔다. 거기엔 김종일씨의 방사선 피폭과 암 발병과의 연관성에 대한 의견이 담겨 있었다.
"호지킨림프종(혼합세포 충실성 고전적 호지킨림프종)은 전리방사선(방사능)에 대한 역학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아 업무관련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됨. 단 업무관련성을 배제할 수는 없음."
변 변호사는 "업무관련성이 높지 않다고 했을 뿐이다. 업무관련성을 완전히 배제한 의견은 아니다. 항소심에서 승소할 희망은 있다"라며 "병명은 다르지만 같은 일을 했던 원전 피폭 노동자 C씨는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산업재해)를 인정받았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근로복지공단은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19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해당 산재 신청에 대해 심의를 했다, 연구기관에 의뢰해 저선량 방사선과 암발병의 연관이 낮다는 답변을 받아 (산재 신청을) 불인정 했다"라며 "산재 신청자가 1심에 불복해 항소했고, 현재는 부산고등법원에서 재판 중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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