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한-러시아 수교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1990년 9월 한국과 소련의 수교는 북방외교의 대단한 성과로 칭송받았었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지금 러시아에 대한 한국인의 시선은 경시, 또는 무관심으로 바뀌었고, 이는 양국 간의 상호 이해 및 협력에 큰 장애가 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는 우리가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 될 유라시아의 군사정치 대국이다. 북핵 문제 해결, 나아가 한반도 평화와 남북 통일을 위해서 그리고 유라시아 대륙으로 뻗어나가기 위해서 러시아와의 협력은 긴요하다. 러시아에 대한 한국인의 경시는 러시아 및 한-러 관계의 실상에 대한 오해와 편견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이에 <프레시안>은 32년의 외교관 생활 중 11년을 러시아에서 활동한 러시아 전문가 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의 '러시아 바로보기'를 통해 러시아의 실상과 한-러 관계의 진실을 파헤쳐본다.
박병환 소장은 1985년부터 2016년까지 외교관으로 활동했으며 우즈베키스탄 공사, 이르쿠츠크 총영사, 러시아 공사 등을 역임했다. 영국 옥스퍼드대 외교관 연수과정(1987~89년)과 러시아 외교부 산하 외교아카데미(2005-07년)에서 수학했고, 외교관 퇴임 후 상명대 글로벌지역학부 초빙교수를 거쳐 올해부터 유라시아전략연구소에서 러시아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2009년 <시베리아 개발은 한민족의 손으로>(공저, 국학자료원)를 펴냈고 곧 러시아에 관한 신간을 펴낼 예정이다. 다음은 '러시아 바로보기' 연재 순서.(편집자)
① 대러시아 경협차관은 과연 우리가 떼인 돈인가?
②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략하였나?
③ 스킨헤드가 준동하는 나라?
④ 나로호 발사, 왜 러시아와 협력했나?
⑤ 국민 생선 명태와 러시아의 갑질?
⑥ 러시아는 외국인 투자의 무덤인가?
⑦ 러시아와 소련, 뭐가 다른가?
⑧ 푸틴은 독재자인가?
⑨ 러시아는 중국과 동맹관계인가?
⑩ 한국 언론의 러시아에 대한 오해와 곡해
스킨헤드가 준동하는 위험한 나라?
일부 한국인들은 스킨헤드 이야기를 하면서 러시아는 여행하기에 위험한 나라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말이 있듯이 막상 러시아를 가보면 그런 선입견이 깨진다고 한다. 필자가 모스크바에서 근무하던 시절 가깝게 지낸 한 미국인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뉴욕이나 워싱턴보다 안전한 곳이 모스크바이다. 왜 그러한가? 밤에 도심 뒷골목을 젊은 아가씨들이 마음대로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서도 신체에 위해를 가하는 이런저런 범죄가 일어나기 마련이다. 러시아가 치안이 완벽하여 범죄가 전혀 없는 곳이란 뜻이 아니라 일반적인 기준에서 볼 때 유달리 위험한 곳은 아니라는 말이다.
스킨헤드라고 불리는 젊은이들은 사실 1960년대 영국에서 처음 나타났다. 스킨헤드가 원래 인종주의적 성향을 보인 것은 아니며, 일부 젊은이들이 주로 독특한 헤어스타일이나 복장을 하고 다니는 일종의 하위문화(sub-culture) 현상 중 하나였다. 다만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많은 식민지를 가졌던 영국이기에 그 지역 사람들이 영국으로 이주하면서 유색인종에 대한 배타적인 경향이 생겨난 것으로 이해된다. 스킨헤드는 일종의 유행처럼 유럽 대륙으로 확산되었고 러시아에도 그런 류의 젊은이들이 나타났다.
그런데 스킨헤드는 단일 집단이 아니라 다양한 독립적인 소그룹으로 구성되어 있고, 모두가 인종주의적 경향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종주의를 배격하는 그룹도 있어 획일적으로 그들의 성향을 규정하기 어렵다. 러시아에서 스킨헤드가 거론되는 것은 주로 히틀러의 생일인 4월 20일 전후이다. 이때가 되면 러시아에 있는 우리 대사관과 총영사관은 교민과 유학생들에게 주의 메시지를 보내는데 실제 사건이 일어난 적은 거의 없었다. 러시아는 2차 대전 때 나치 독일의 공격을 받아 2천5백만 명 이상의 희생을 치르며 독일군을 물리쳤는데 극소수일지라도 러시아 젊은이들이 히틀러의 생일 주간에 인종주의적 행태를 보이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주민의 이동이 엄격히 통제되었던 소련이 해체된 이후 사회적 이동이 자유롭게 되면서 아제르바이잔, 조지아(옛 그루지야) 등 코카서스 지역 및 중앙아시아 사람들이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와 같은 대도시로 몰려들어 식당, 야간업소, 소매업 등의 상당 부분을 장악하였다. 이들에 더하여 재래시장에서 장사하는 중국인이나 베트남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 일부 슬라브계 주민들이 이들의 행태에 혐오감을 갖게 되었고 일부 젊은이들은 이주민들에 대한 거부반응을 종종 폭력적으로 나타내었다.
모스크바 근무 시절 모스크바 경찰청 외사국장과 식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한국인들은 대체로 교육 정도나 소득 수준이 높아 신경을 쓰지 않는데 중국인과 베트남인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다.' 역사적으로 러시아에서는 오래전부터 슬라브족들이 아시아계 민족들과 더불어 살아왔기 때문인지 필자가 볼 때 아시아인에 대한 편견이 있어 보이지 않지만 중국인에 대해서는 하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러시아에 와있는 중국인들은 일부 유학생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재래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인데 이들은 러시아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하고 있다.
상당수 한국인들이 스킨헤드에 이어 우려하는 것이 마피아의 존재이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가 급격한 정치경제 개혁 조치를 취하면서 엄청난 사회적 혼란이 발생하고 치안이 부실했던 시기에 마피아 즉 조직폭력배들이 생겨나서 일반 시민들의 삶을 위축시켰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혼란은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정리되어 이제는 그런 폐해는 옛 얘기가 되었다. 러시아 정부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총기의 불법 소지를 엄하게 단속하기 때문에 미국에서 자주 일어나는 불특정 다수에 대한 무차별 총기 난사와 같은 끔찍한 사건이 러시아에서는 없었다. '마피아들 간에 충돌이 있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일본의 야쿠자를 생각해 보라고 답하고 싶다. 국제사회에서 치안 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일본에도 야쿠자들 사이에 충돌이 있지만 일반 시민들의 삶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다.
아마도 한국인들에게 러시아가 위험한 지역이라는 인식이 형성된 데는 스킨헤드나 마피아보다는 2010년 2월과 3월에 연달아 한국인들에게 발생했던 폭행 사건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는 시베리아 알타이 지방의 바르나울에서 연수하고 있던 한국인 대학생이 괴한의 흉기에 찔려 사망한 사건이고, 두 번째는 모스크바에서 유학 중인 대학생이 괴한의 피습을 받아 중상을 입은 사건이다. 당시 우리 정부는 러시아 정부에 대해 조속한 범인 체포 및 처벌과 재발 방지 노력을 강력 요청하였다. 수사 결과에 따르면 용의자들은 스킨헤드나 마피아와는 무관한 단순 불량배였으며, 그 뒤로는 유사한 사건이 발생한 적이 없다. 어느 나라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우범지대가 있고 바깥출입을 자제하여야 할 시간대가 있는데 러시아에서도 관련하여 조심하고 유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러시아의 치안 상태는 중국과 비교할 때 양호하다고 할 수 있다. 즉 여행자 대비 사건 발생 건수 비율로 볼 때 러시아의 여행안전지수가 더 높다. 그리고 한국과 러시아 정부가 비자면제협정을 체결함으로써 2014년 1월부터 많은 한국인들이 러시아를 좀 더 수월하게 방문할 수 있게 되어 매년 방문자 수가 늘고 있다. 유럽과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많은 관광객이 러시아를 찾는다. 여름에 해외여행을 할 경우에는 모스크바 또는 상트페테르부르그를 선택하여 쾌적한 날씨와 백야를 즐기면서 거리에서 맘껏 '안구정화(眼球淨化)'할 것을 권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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