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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혈병 딸 떠난지 13년만에 삼성서 사과편지 받았지만…

등록 :2020-04-24 05:00수정 :2020-04-24 06:08

 

 

반도체공장서 일하다 숨진 황유미씨
아버지 앞으로 딸 생일날 편지 날아와
2년전 ‘반올림-삼성’ 중재협약 따라
삼성서 피해자에 개별사과문 발송

진정성 기대한 황씨 “두루뭉술” 허탈
“사망 인과관계·책임자 처벌 언급없어”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가 2017년 3월6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리움미술관 앞에서 투병 시절 딸의 사진이 담긴 손팻말을 든 채 삼성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 행진을 준비하고 있다. ♣H6s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가 2017년 3월6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리움미술관 앞에서 투병 시절 딸의 사진이 담긴 손팻말을 든 채 삼성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 행진을 준비하고 있다. ♣H6s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 급성백혈병에 걸려 숨진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 대표)씨 앞으로 지난 21일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김기남 삼성전자 대표이사가 보낸 사과편지였다.
 

 

“고 황유미님과 가족분들이 오랫동안 고통받으셨는데 삼성전자는 이를 좀더 일찍부터 성심껏 보살펴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 아픔을 함께 느끼고 하루빨리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습니다. (중략) 고통을 겪으신 모든 분들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2007년 3월6일 유미씨가 숨진 지 13년 만에 황씨가 삼성 쪽으로부터 받은 첫 개별 사과편지다. 반올림 관련 피해자들에게 동일한 편지가 발송됐다.

 

물론 이번 편지가 삼성 쪽의 첫 사과는 아니다. 2014년 5월 권오현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반도체부품 부문장)이 첫 공식 사과를 하며 고개를 숙였다. “저희 사업장에서 일하던 직원들이 백혈병 등 난치병에 걸려 투병하고 있고 그분들 중 일부는 세상을 떠나셨다.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로, 이 문제를 해결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점 사과드린다.” 하지만 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 피해자모임인 반올림 쪽은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과 내용에 반도체와 백혈병의 인과관계를 인정하는 대목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앞 반올림의 장기 농성이 시작됐다.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가 페이스북에 23일 올린 삼성전자로부터 받은 반도체 백혈병 관련 첫 ‘개별 사과문’. 황상기씨 제공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가 페이스북에 23일 올린 삼성전자로부터 받은 반도체 백혈병 관련 첫 ‘개별 사과문’. 황상기씨 제공
 

 

오랜 갈등에 마침표가 찍힌 건 2018년 11월23일 공식 사과를 포함한 조정위원회의 중재 판정을 양쪽이 수용하기로 합의하고 이행협약을 맺으면서다. 조정위원회 권고에 따라 삼성전자의 사과문도 발표됐다. “삼성전자는 과거 반도체 및 엘시디(LCD) 사업장에서 건강유해인자에 의한 위험에 대해 충분하고 완벽하게 관리하지 못했습니다”라는 문구가 새로이 추가됐다. 백혈병 발생의 인과관계 인정이 아닌, 부분적 관리 책임을 인
 
정한 표현으로, 힘들게 절충안이 만들어진 결과다. 중재안이 수용되면서 2015년 10월7일 시작해 1023일 동안 계속되던 농성도 끝났다.

 

공식 사과 17개월 만에 피해자들에게 개별 사과문이 발송된 이유에 대해 삼성전자 쪽은 “중재협약은 반올림 연계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끝낸 보름 안에 피해자들에게 개별 사과문을 발송하기로 했다. 최근 이들에 대한 보상이 마무리됨에 따라 개별 사과문을 보낸 것”이라고 밝혔다. 중재협약이 개별 사과문의 내용까지 적시한 건 아니지만, 이번 개별 사과문의 내용은 앞서와 다르지 않다. 2018년 당시 ‘충분치 않지만 삼성전자의 다짐’으로 받아들이겠다던 황상기씨의 남은 기대도 무너졌다.

 

황씨는 23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두루뭉술한 사과다. 받아보는 처지에선 사과인지 아닌지 명확한 게 하나도 없어 어리둥절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황씨는 “사과한다고 했는데 어떤 유해인자 때문인지 그 성분과 노동자 사망과의 인과관계가 무엇인지 또 산업안전 관리 소홀 책임자에 대한 처벌은 어떤 것인지 등 구체적 언급이 없다”며 사과의 진정성 부족을 거듭 지적했다. 개별 사과문 발송으로 중재협약에 따른 지원보상과 사과 절차는 마무리됐지만, 거듭된 사과도 피해자 유족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했다.

 

황씨에게 삼성 쪽의 사과편지가 도착한 4월21일은 숨진 유미씨의 35번째 생일이었다.

 

구본권 선임기자 starry9@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941836.html?_fr=mt1#csidx4d7188865331d40af79f2ea9ef1e4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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